< 열쇠(4) >
앨런은 금이 쫙쫙 생긴 앞 유리로 밖의 상황을 살폈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사람은 군복 비슷한 복장을 걸친 라이칸이었다.
호랑이의 샛노란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했다. 라이칸은 짐승 인간이며, 동물이 두 발로 걷는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유사한 특성을 지녔다.
그렇기에 어떤 맹수냐에 따라 선천적인 강함이 결정되었다. 호랑이면 당연히 상위권이었다.
앨런 역시 밖으로 나가자, 테일러와 대치 중인 라이칸의 입이 열렸다.
“수상한 냄새가 나더라니.”
“어떻게 알았지?”
“열화상 카메라로 확인했지. 도둑 셋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차는 그쪽의 밴의 유일하더군.”
“도둑? 사정을 알면 그런 말은 못 할 텐데.”
“용병이 구구절절한 사연까지 알 필요 있나? 돈을 주면 움직인다. 고용주에 관해 묻지 않는다. 이게 기본이지. 음, 이제 보니 너희들은 용병이 아니군. 탐험가인가?”
테일러는 용병의 말을 대충 받아주면서 앨런과 통신을 연결했다. 통화 시에 터져 나오는 푸른 안광은 앨런의 개조로 인해 잠잠했다.
[물건은?]
[아직이요.]
거미가 열쇠를 지니고 있으나 복귀하려면 여러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라이칸 용병은 혼자가 아니었다. 실력에 자신 있는지 먼저 이곳에 도착했고, 동료들은 다마스 테크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용병들은 잠든 보안 요원들을 지나쳐 지하로 향했다. 거기에는 열쇠를 지닌 거미가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이동하며 환풍구가 보이면 자꾸 무언가를 던져넣었다. 씨앗은 급성장해서 나무줄기로 환풍 통로를 막고, 웬 바퀴 달린 상자는 내부를 달리며 끈끈한 액체를 분사했다.
거미의 잠입 경로를 아는 듯한 행동이었다. 이러면 거미만으로는 포위망을 뚫기 어려웠다.
앨런은 빠르게 판단했다.
[아저씨는 시바 씨랑 들어가세요.]
[너는?]
[이길 수 있어요. 무엇보다 지금 시도가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열쇠를 꼭꼭 숨겨두면 유적 조사 권한은 저 멀리 날아갑니다.]
테일러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눈앞에 강한 적이 있는데도 미래의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 너답다.]
앨런은 괴물이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테일러는 제이크 마셜이 청년이던 시절부터 지켜봤다. 둘의 행보는 다를지라도 성장 곡선은 비슷했다. 남들이 계단 하나를 오르면, 천재는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다.
건물 오르기 시합이 있다면, 반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살이는 언제나 그래왔다.
물론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을 뿐, 지금은 앨런과 함께하고 있으니 매우 든든했다.
그래도 걱정을 담아 말했다. 앨런의 실력과 무관하게 저절로 우러나오는 마음이었다.
[위험하면 바로 도망쳐라.]
[저보다 두 분이 문제죠. 여기는 개활지, 저기는 건물이니까요.]
[네가 걱정할 정도로 늙진 않았어.]
테일러가 몸을 돌렸다. 시바 역시 같은 통신 채널에 들어와 있었기에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홀로 남은 앨런은 용병을 쳐다봤다.
“기다려주셨군요.”
“3명은 솔직히 부담되잖아. 그런데 알아서 빠져준다니 나야 좋지.”
“동료들은요?”
“녀석들도 밥값은 해야지. 날로 먹으면 되겠어? 지금 바로 무릎 꿇고 항복하면 장비 압수로 끝내주마.”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보아하니 용병은 근접전 전문이고, 그렇기에 상자의 마탄 지원은 힘들었다. 괜히 잘못하면 앨런까지 휘말릴 테니까.
[넌 아저씨랑 시바 씨를 도와줘.]
삐-
짧게 대답한 녀석이 근처 공장 굴뚝에서 뛰어내렸다. 부유 장치 덕분에 풍선처럼 두둥실 움직였다.
“준비는 끝났나? 그럼···.”
용병이 말끝을 흐리더니 모습마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눈 깜빡하기도 전에 호랑이의 얼굴이 정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시작하자고.”
털로 뒤덮였으나 단단한 뼈와 질긴 근육으로 이루어진 주먹이 큰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앨런의 시점에서 보는 감상일 뿐, 실제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콰앙!
앨런이 피하자, 애꿎은 밴이 피해를 보았다. 운전석 문이 심하게 찌그러지며 안쪽으로 처박혔다. 차가 거의 쓰러질 것처럼 옆으로 기울기도 했다.
쿠웅!
비스듬히 서 있던 밴이 다시 내려오며 큰 소리를 냄과 동시에 앨런의 파워슈트도 타격을 허용했다.
‘와, 무슨 주먹이···.’
마치 중장비와 부딪힌듯한 충격이 전신을 흔들었다. 파워슈트 덕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진동이 전신을 흔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앨런의 약한 몸은 통증을 호소했다.
주인의 몸이 안마 기계에 넣어진 사람처럼 떨리거나 말거나, 파워슈트는 제 임무를 수행했다. 타격 부위에 원판 형태의 방어막이 생성되고, 외부를 향해 폭발했다.
용병의 타격이 들어올 때마다 비슷한 힘으로 반격을 가했다. 폭발성 반응 장갑처럼.
콰르릉!
두 힘이 충돌하자 거의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주먹을 내지르는 용병은 강한 반발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슈트 성능이 좋구나. 내가 받아가마!”
땅을 박차는 다리가 아스팔트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바람이 돌조각을 사방으로 휘날렸다.
‘반응성 방어막의 효과는 좋은데 뭔가 부족해.’
파워슈트를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지와 달리 머리는 차분히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룬캔버스를 가동했다.
[흡수] [앙심] [응축] [반발]
4개의 룬문자가 내부에서 형태를 갖추자, 용병을 향해 돌려주는 폭발이 더욱 거세졌다.
[앙심]은 실질적인 현상의 표현이 아니라 마음에 관련된 룬문자였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위력이 상승했다.
파워슈트가 망가지면 수리를 해야 하고, 그러면 공부나 연구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열쇠 회수에 실패하면 유적에도 못 들어갔다.
그러니 용병은 앙심을 품기 충분한 대상이었다.
신나게 어울리던 용병이 갑자기 뒤로 물러났다.
“내가 부모의 원수라도 되나? 갑자기 왜 그러지?”
“하던 일이나 마저 하죠.”
이번에는 앨런이 직접 뛰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워슈트가.
용병의 반격을 팔뚝으로 막아내자, 이번에도 그 부위에 폭발이 발생했다. 강렬한 힘이 용병의 팔을 밖으로 쳐내자, 가슴까지 통하는 공간이 훤히 뚫렸다.
앨런은 몸을 앞으로 살짝 숙였다. 어깨로 용병의 가슴을 그대로 강타할 생각이었다. 최소한 갈비뼈 몇 개는 받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전에 용병의 주먹이 먼저 움직였다. 퉁겨진 오른손 대신 왼손을 빠르게 내질러서 앨런의 어깨를 때렸다.
파워슈트의 반응성 방어막은 이번에도 폭발했고, 용병은 반발력을 이용해서 몸을 뒤로 띄웠다.
호랑이도 고양잇과. 근육질의 몸이 공중에서 유연하게 회전하더니 담벼락 위에 안착했다. 쪼그려 앉은 호랑이가 씩 웃었다.
“아찔했어.”
“그런 식으로 회피할 수도 있군요.”
“그런 부류의 방어막이나 마법은 몇 번이나 경험해봤다고.”
호랑이가 양팔을 크게 벌리고 뛰어내렸다. 앨런은 그의 착지 지점을 예상하고 공격을 가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용병의 몸이 연체동물처럼 허공에서 꿈틀거렸다. 허리에 강한 반동을 줘서 앨런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앨런은 바로 뒤로 돌며 팔을 뻗었다. 서로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힘겨루기 상태로 돌입했다.
“보아하니 방어막은 충격에만 반응하는 것 같군.”
“안다고 뭘 할 수 있죠?”
“난 인간과 다르게 이게 있지.”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렸다. 금속 재질의 임플란트가 은회색으로 빛났다. 인공 오러 기술을 적용했는지 푸른 옷을 두르기도 했다.
카드득!
파워슈트의 외장갑에 두 줄기 선이 생겼다.
“구속했다고 생각했나? 그 반대다!”
용병은 앨런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어찌어찌 피하고는 있으나, 팔과 어깨 부분에 손상이 누적되었다. 때로는 헬멧 부분이 긁히기도 했다.
“확실히 근접전은 어색하네요.”
“···.”
용병은 대답 없이 깨무는 일에만 열중했다.
사박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자, 호랑이 귀가 뒤로 향했다. 들이밀려던 아가리를 빼고 몸을 피하려 했지만, 지금 둘은 서로를 구속하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온 표범이 용병의 등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군복 비슷한 복장에는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있는지, 둘이 충돌하자 불똥이 튀었다.
“동료가 남아있었나! 아니, 오토마톤이군.”
용병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뒤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계 표범이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뒤를 노리고 있었다.
“정정당당한 일대일 대결인 줄 알았더니!”
“일대일 맞아요.”
“···?”
“정령사나 소환사가 하수인을 부린다고 비겁하다고 하진 않잖아요.”
용병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연이은 표범의 공격에 그럴 여유도 깎여나갔다.
방어막이 실시간으로 얇아지는 모습이 보였고, 마침내 아스팔트 위로 붉은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크윽!”
강한 통증에 몸부림이 한층 격해졌지만, 앨런은 용병의 손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뭐하러 편한 길을 놔두고 고생길로 향하겠는가.
“전사가 너무 비겁하다!”
“용병 맞아요?”
“차라리 정면에서 쳐부수란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등에 공격을 허용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건만!”
용병의 등에 생긴 열상은 그 수가 불어났고, 점점 깊어지기도 했다. 군복 바지가 붉게 물들고 나서야 그가 무릎을 꿇었다.
앨런은 그를 내려다봤다. 마력도 바닥났고, 등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전투를 이어나갈 상태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허무하게 지다니···.”
용병은 무릎 꿇을 힘도 없는지, 바닥에 엎어졌다. 그 상태로 눈동자만 굴려서 앨런을 올려다봤다.
“내가 졌다. 결말은 이상하지만, 처음에 보여준 움직임은 유려하면서도 야성적이더군.”
유려함은 시온, 야성은 테일러일 것이다.
“어디에서 배웠···.”
용병이 그렇게 묻는 찰나, 파워슈트 등판이 열리며 앨런이 빠져나왔다. 호리호리한 몸은 전사의 육체가 아니었다. 단련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호랑이의 미간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육체수련자가 아니었다고?”
“전 마법공학자예요. 하, 이렇게 움직이니 정말 힘들군요.”
온몸이 축축했다. 지금은 6월이라 밤에도 따뜻하지만, 몸에 열이 워낙 많이 나서 냉장고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앨런은 룬펜을 꺼내서 파워슈트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통풍 기능이 망가졌거든요. 따로 청구는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참 고오오맙군.”
수리를 빠르게 마친 앨런이 다시 파워슈트를 입었다. 표범의 발톱을 다시 뾰족하게 갈고 있으니, 다마스 테크의 정문으로 테일러가 나왔다. 용병들은 줄줄이 포박된 상태였다.
뒤를 따르는 상자는 용병 중 하나의 팔을 뚝 떼더니 배 속, 그러니까 서랍에 집어넣었다. 용병들이 반항해도 기어코 매직웨어를 분리했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몰라도 솜씨가 기가 막혔다.
작업을 마친 상자는 엎드려 있는 라이칸에게도 다가갔다. 튼튼해 보이는 집게발이 서서히 접근하자 호랑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잠깐, 좋은 싸움을 벌였으니 자비를 베푸는 분위기 아니었나?”
“누구 마음대로요? 그렇게 누워있으니 호랑이 카펫 같네요.”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긴 하지.”
테일러가 옆에서 말을 받아줬다.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은 용병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앨런은 바로 관심을 껐다. 어느새 어깨 위로 올라온 거미가 소중히 품고 있던 열쇠를 건넸다. 외형은 평범했지만, 안에 담긴 기운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차가워.’
얼음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운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뜻이었다. 열쇠 자체가 앨런의 손을 거부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 열쇠(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