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58화 (158/193)

< 열쇠(5) >

열쇠에서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앨런은 열쇠가 뭔가 꺼림칙했고, 열쇠도 손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앨런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사람은 불을 개발하기 전까지 밤을 무서워했다. 밤은 야행성 맹수의 시간이었고, 그때가 되면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자연스레 어둠은 본능적으로 꺼리는 대상이 되었다.

‘혹은 불길한 상상을 자극하기도 하지.’

짙은 암흑을 보고 있으면 온갖 것이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거기에 아무것도 없음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일단 여기까진 앨런의 생각일 뿐,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몰랐다. 개인의 차이는 워낙 신기해서, 낮보다 밤을 포근하게 여길 수도 있으니까.

앨런은 열쇠의 표면을 긁어 보거나, 가열해서 구부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로렌조의 물건이니 참았다. 사람은 마음대로 살 수 없으니 인내를 키워야 했다. 수집가처럼 눈치 안 보고 사는 삶에 혹하기도 했지만, 자신은 그가 아니었다.

“그만!”

갑자기 들려온 비명이 생각을 끊기도 했다. 앨런이 고개를 돌리자, 상자가 집게발을 호랑이 용병의 입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당연히 꽁꽁 묶인 용병은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반항했다.

앨런은 왜 저러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상자에게 매직웨어 수거를 맡겼고, 용병의 이빨은 인공 오러를 발출하는 기능을 지닌 매직웨어였다.

뽑으려는 시도는 이해되었으나, 상황이 끝났으니 추가로 피를 보고 싶진 않았다. 인공 안구가 매직웨어인데도 뽑지 않는 이유와 비슷했다.

‘물론 특이한 물건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앨런은 열쇠를 품에 넣고 상자를 말렸다.

“그건 놔둬.”

“고맙···.”

“더럽잖아.”

“더럽다니. 얼마나 깨끗하게 양치하는 줄 알아? 치과에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한다고. 마지막 말만 안 했으면 자비에 깊은 감명을 느꼈을 텐데···.”

호랑이 용병이 구시렁거렸지만, 앨런은 평소처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결국, 무기잖아요. 아까 같은 공격으로 몇 명이나 해치웠죠?”

깍지를 껴서 움직임을 봉쇄하고, 방심한 순간에 아가리를 들이미는 공격은 여러모로 치명적이었다. 가슴이 열리며 미사일이 나가는 매직웨어라도 있으면 모를까.

용병은 상자를 피해서 열심히 구르느라 입가의 털에 흙과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다. 퉤퉤 소리를 몇 번 내더니 앨런을 올려다봤다.

“넌 멀쩡하잖아.”

“파워슈트에 흉터가 남긴 했죠. 음, 그냥 뽑을까···.”

“어, 어?”

용병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릭! 내 이름은 게릭이다!”

“갑자기 이름은 왜 알려주시죠?”

“지금이 말할 타이밍 같아서. 통성명은 상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잖아.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의미지. 물론 선택권은 너한테 있지만. 아, 나는 평화가 좋은데~.”

덧붙인 구절은 혼잣말의 형식을 취했으나, 누가 들어도 앨런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의미였다.

앨런이 손을 휘저으니 상자가 멀어졌다. 상자는 서랍을 열고 집게발을 자꾸 집어넣었다. 마치 갯벌에서 먹이를 찾은 게 같은 모습이었다.

앨런은 게릭과 그 친구들을 잘 묶어서 로렌조의 부하에게 인계할 생각이었다. 몸값을 받아내거나, 이쪽에서 고용할 수도 있었다.

상대편에 섰다고 무조건 처단하지 않았다. 나와 싸웠으니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있지만, 이 역시 선택권을 지닌 사람에 따라 포로의 처우가 달라졌다.

호랑이가 처음에 말했던 얌전히 항복하란 권유도 결정을 내린 근거 중 하나였다.

용병 업계에서는 일 때문에 충돌이 발생해서 죽는다면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지만, 사람 마음은 그렇게만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원한을 가지고 뒤를 노릴 수 있으니 무작정 척살만이 답은 아니었다.

앨런이 쳐다보자 게릭이 씩 웃었다. 자기 딴에는 순종적인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남이 보면 흉악한 호랑이 그 자체였다.

시바에게 잡힌 용병 중 하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혹시 정화봉사단에 가는 건가요?”

“자매님은 자격 미달입니다. 아니면 고해성사라도 해보시지요.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그냥 조용히 있을게요···.”

앨런은 다마스 테크에서 이탈하며 로렌조의 연락책과 통화를 했다.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상당히 강력해 보이는 마법사가 나왔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고가도로 아래, 메이즈시티의 불빛도 침범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짙은 그림자가 일어났다.

“일 처리가 빠르군.”

“열쇠는 여기에 있어요.”

“확인했다. 이상 없군. 의뢰를 무사히 완수했으니, 로렌조 님도 약속을 지킬 거다. 다시 원시림으로 가라.”

“사람은 언제쯤 물질 전송의 혜택을 볼 수 있나요?”

“···.”

기습적인 질문에도 마법사는 침묵을 지켰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따라 연구 진척도를 파악할 생각이었는데, 통하지 않았다.

“로렌조 님 말대로군. 때로는 질문이 공격의 빌미가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나?”

“그래서 시기를 적절히 골라야죠. 기왕이면 상대의 기분이 좋을 때로요. 아, 저기 묶어둔 용병은···.”

“저들은 알아서 처리하지. 추가 보수는 계좌에 넣어주겠다.”

물론 더해지는 보수만큼 용병의 몸값이 올라갈 테고, 해방을 위해 봉사하는 기간은 길어지리라. 슬슬 대화가 끝나가는 분위기가 되자, 앨런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열쇠는 어떤 능력이 있나요? 아직 연구 시작 단계인가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 이만.”

마법사의 발치에서 일어난 어둠이 용병들을 감싸더니 함께 사라졌다.

테일러는 고가도로를 떠받치는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공간이동은 아니고, 그림자를 탈것으로 삼아서 빠르게 이동하는 마법 같구나.”

“저 마법사가 직접 나섰으면 회수가 훨씬 편했겠지만 마탑주의 명령이 있으니 그럴 일은 없겠죠.”

“마법사는 고귀하니 아랫것들이나 피를 흘리라는 심보다. 너도 봤다시피 이번 일에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잖아.”

“정말 그런 마음일까요?”

“그놈들의 우월주의는 생각보다 심해. 마법사가 아닌 사람은 가축처럼 생각한다니까.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 같니?”

“끝없는 탐구심과 재능이죠.”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지. 그래서 자신들이 선택받았다고 믿어. 처음에는 아니더라도 마탑에 오래 박혀있으면 그리 바뀌기 마련이지.”

“불합리한 상황을 겪어보셨나요?”

“몇 번 그랬지. 분명 좋은 일도 있었을 텐데, 그런 사건이 유독 기억에 남아서 말이야. 그래도 능력 있는 사람들에겐 친절하긴 해.”

앨런 일행은 다시 원시림 연구기지로 향했다. 물질 전송을 목격하고 나니, 아래로 향하는 여정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그건 앨런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필요한 전투를 피할 수 있다면, 책을 한 장이라도 더 넘기거나, 룬문자를 하나라도 더 그릴 수 있었다.

연구기지에 도착하자, 이번에도 로렌조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앨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대뜸 말했다.

“열쇠는 우리도 연구 중이다. 아직 어떠한 것도 밝혀내지 못했지.”

“왜 알려주시는 거죠?”

“그리 질문하리라 예상했거든. 아닌가?”

“정답입니다.”

“그럴 줄 알았지.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목구멍에 장전된 질문이 보였어.”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로렌조는 앨런이 원하는 바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마법사니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결과였다. 마법사나 마법공학자나 결국에는 지식에 목마른 존재니까.

“유적의 위치는 어디죠?”

“그건 보상이 아니다. 거래 내용을 잘 떠올려봐라. 위치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조사를 허락한다는 내용이었지.”

“찾은 물건을 가져가도 된다는 계약이었죠.”

“그래, 그것도 포함이었지.”

“위치를 안 알려주고 어떻게 찾아가라는 거죠?”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지. 유적에 물자 및 인력을 보충해야 할 시기거든. 마침 내일 아침에 출발이니 객실에서 피로를 풀며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다음 날 아침, 연구기지 밖으로 나온 앨런은 마차를 발견했다. 마차 앞에는 거대한 곰인 아르크토테리움이 있었는데, 사람 상반신을 한입에 꿀꺽할 정도의 크기였다.

“지난번에 유물을 찾아줬더니 잘 사용하고 있네요.”

“원시림의 생물을 길들이면 마석을 소모할 필요가 없지. 필요하면 내 편으로 만들고, 쓸모를 다하면 슥삭.”

테일러가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특이하게도 안경을 낀 마법사였다.

“아, 그때 그분들이군요. 회수하신 오파츠는 잘 쓰고 있답니다.”

“원시림의 생물도 먹이에서 에너지를 충당하나요?”

“사료를 주거나 영양액을 강제로 투여해도 길들인 생물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더군요. 안타까운 일이죠.”

앨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마법사는 친절하게 답변했다. 테일러가 했던 말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법사는 곰이 끄는 마차를 가리켰다.

“불편하시겠지만 저 안에서 조금만 참아주세요.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마차입니다.”

“곰이 끄니 곰차···.”

마법사는 테일러의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마차의 문을 열었다. 앨런 일행이 들어가자 밖에서 문을 닫았다.

창문이 없으니 밖이 안 보였고, 마력감지도 무용지물이었다. 마력 파장 탐지기를 켜도, 파장이 안쪽에서만 메아리쳤다.

“진짜 비밀로 할 생각인가 보네.”

“그래도 로렌조 형제님이 약속은 지키는군요.”

“머리가 숨 쉬듯 거짓말을 하면 손발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 때로는 속임수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하더라도 부하들을 위한다는 느낌이 들어야지.”

“형제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우리를 속이면 부하들에게 쪼잔하다는 인상만 심어주겠군요.”

“잘 이해했어. 우리가 유적 좀 조사한다고 마탑이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마차는 꽤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충격 완화 마법 있음에도 크게 덜컹거렸다.

앨런은 눈을 감고 위치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혼란을 주기 위함인지 자꾸 방향을 트는 와중에도.

테일러가 조용히 물었다.

“계속 안에만 있으려니 심심하네. 여기가 어딘지 알겠니?”

“27층 같네요.”

27층은 구더기가 출몰하던 26층처럼 산과 굴곡진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그게 얼마나 심한지 주름진 땅을 쫙 펴면 다른 원시림 층보다 2~3배는 넓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마차 문이 벌컥 열렸다. 처음에 안내해줬던 안경 마법사였다.

“도착했습니다.”

유적이 있는 장소는 원시림 일부로 보이나 하늘에는 달이 있었다. 지지 않는 해가 일상적인 원시림 풍경과 완전히 달랐다.

마석등을 이곳저곳에 설치해놔서 주변은 매우 밝았고, 덕분에 유적이라 생각되는 사각형 건물의 외형도 잘 보였다. 굉장히 넓고 높았다.

“조사는 마음대로 하되, 이 주변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복귀 날짜는 7일 후, 또는 30일 후···.”

“30일이요.”

앨런은 바로 대답하고 유적으로 들어갔다. 테일러와 시바도 마찬가지로 뒤를 따랐다.

이리저리 돌아다녀 봤지만, 유적 내부는 깔끔했다. 로렌조가 발견한 물건은 가져가도 된다고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다.

돌아다니던 앨런이 입을 열었다.

“여기는 군사시설 같네요.”

“왜 그렇게 생각해?”

“물질 전송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또 있을까요?”

“유통이나 교통 시설도 있잖아.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아까 지나쳤던 공방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저씨가 말한 시설에 공방이 있을 리 없죠. 그리고···.”

“그리고?”

사각형 홀의 가운데에 있던 앨런이 한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누가 봐도 문에는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저 문에 적혀있는 글자 보이세요?”

“안개처럼 뿌옇게만 보여.”

“지휘관실이라고 적혀있네요.”

안에 들어가자마자 벽화 하나가 보였다. 용과 드래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 열쇠(5)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