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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59화 (159/193)

< 꿈(1) >

용과 드래곤은 그들이 남긴 흔적만으로도 초월적인 생명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지식을 지녔기에, 그들의 보금자리가 발견되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일대를 통제했다.

둘의 생김새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았다. 다만 출몰지역이 좀 다를 뿐이었다.

동방 대륙에는 용, 서방 대륙에는 드래곤이 주로 살았다. 솔도스 연방이 있는 신대륙은 반반이었고.

물론 그들이 남긴 거처와 물건으로 학자들이 추정했을 뿐,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앨런은 지휘관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벽화를 눈에 담았다. 벽화가 있는 벽에는 창문이 없었고, 양쪽 벽에만 존재했는데, 하나의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벽화를 비추고 있었다.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은 시바의 말에 의해 깨졌다.

“왠지 익숙한 그림입니다. 땅속으로 파고들었던 피라미드에서도 비슷한 그림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맞아요. 드래곤 골렘과 황금 병사가 탐험가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피라미드와 이곳의 벽화는 구도가 비슷했다. 용과 드래곤은 상단에, 사람들은 하단에 그려졌다.

“일종의 상하 관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 같네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겸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들이 살았던 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지배자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감으로? 사람들은 엎드려있고, 용과 드래곤은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잖아. 사람이 아니라 표정 구별은 힘든데,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들어.”

앨런이 다시 벽화를 주시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테일러의 해석을 적용할 여지가 많았다.

“혹시 미궁은 용들이 만들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초월적인 생명체라는 증거는 그들이 남긴 물건에서 찾을 수 있으니까.”

“그게 맞다면 미궁 최심부에는 드래곤하트나 여의주로 돌아가는 마력융합로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마력융합로보다 상위의 마법공학이 적용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지.”

추측이 옳다면 이들은 왜 미궁을 만들었을까. 이들을 섬기거나 더불어 살아가던 지하인들을 왜 미궁에 처박아뒀을까.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서 오가는 도중, 어떤 생각이 불현듯 솟아났다.

“이유나 과정이 어떻든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 싸운 것 같긴 하네요.”

“왜 그렇게 생각해?”

“드래곤 골렘과 황금 병사들이 잠들어있던 피라미드는 누군가의 침입을 상정하고 만든 시설이고, 여기는 군사시설이니까요. 그리고 벽화나 조각의 차이도 극명하고요.”

“앨런 형제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피라미드의 조각에는 치세와 공경, 지배와 복종의 느낌이 각각 담겨있었죠.”

“네. 여기에는 지배와 복종을 표현한 벽화가 있고요.”

게다가 앨런이 오파츠에서 발견한 문구도 달랐다.

광휘를 가릴 장막을 내려주소서.

어둠을 밝힐 등불을 내려주소서.

하나는 빛을 몰아내길 바랐고, 하나는 어둠을 쫓아내길 원했다.

물론 앨런은 떠오른 생각을 굳히진 않았다. 사고가 한쪽으로만 흐르면 번뜩이는 창의성을 발휘하기 힘들어지니까.

열린 마음과 창의성은 학자, 마법사, 마법공학자 모두에게 중요한 관념이었다.

앨런은 벽화 감상을 그만두고 지휘관이 업무를 보았으리라 추측하는 책상으로 향했다.

로렌조를 따르는 마법사들이 철저히 수색했는지, 지휘관실은 정말 깨끗했다.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모두 챙겨간 듯했다.

책상 서랍은 모두 열려있었고, 책상 아래에 숨겨진 금고도 텅 빈 내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쁜 사람들···.”

“어쩔 수 없잖니. 걔들도 직업이 직업이라 뭐가 보이면 가만둘 수 없을걸.”

“심적으로는 벽화도 떼어가고 싶었겠죠.”

앨런이 책상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비틀자 나뭇조각이 떨어져나왔다. 반대로 벽은 아무리 두드리고, 흠집을 내려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골조나 벽 같은 부분은 일반 미궁과 똑같네요. 그러니 벽화도 가만히 뒀겠죠.”

“탐험가는 미궁을 파괴할 수 없다는 법칙이 적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기술 때문에 이리 단단할 가능성도 있지.”

“오, 그 말이 맞아요.”

“너무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고 본업에 집중하자. 우리가 좀 챙겨갈 물건이 있을까?”

“잠시만요.”

앨런은 텅 빈 책상이나 책장을 이리저리 옮기며 특이한 무언가가 있는지 찾으려고 노력했다. 마법사들이 아직 발견 못 한 물건이 있다면, 이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여기는 지휘관실이니까.

눈에 불을 켠 지 몇 시간. 앨런은 여전히 방 내부를 돌아다녔고, 테일러와 시바는 앉아서 벽화를 구경했다.

“앨런, 너도 좀 쉬지 그러니.”

“맞습니다. 머리를 정리하면 새로운 무언가가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침 달빛도 반대 창문으로 들어오는군요.”

동쪽의 달이 서쪽으로 이동했다. 유적이 있는 장소는 영원한 밤이기에 달이 져도 새로운 달이 떠올랐다.

앨런이 반대편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는 달이 보였다. 이 유적은 계속 같은 시간대를 반복했다. 아니면 달만 있던 언젠가를 박제해놨을 수도 있고.

잠시 머리를 쉬어주고 있으니 자연스레 시선이 벽화로 향했다. 2개의 달이 양쪽 창문을 통해 지휘관실 내부로 빛을 쏘아댔다. 그 빛들이 벽화를 어루만졌다.

순간, 앨런은 벽화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 부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앨런이 벌떡 일어나자 테일러가 물었다.

“왜? 왜?”

“벽화 보이세요?”

“달빛 덕분에 분위기는 죽이는구나.”

“시바 씨는요?”

“저도 비슷한 감상입니다.”

두 명은 앨런과 달리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앨런은 얼른 달려가서 여의주가 그려진 부분을 문질렀다.

삐?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가만히 있던 상자와 표범이 근처에 다가와서 주인이 뭘 하고 있는지 구경했다.

앨런의 노력에도 특별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여의주는 빛나고 있었다.

창밖으로 점점 움직이는 달이 보였다. 조금 있으면 서쪽의 달이 사라지고 달빛도 하나만 남을 테니, 이런 현상도 모습을 감추리라.

‘미궁의 언어는 소용없고. 그럼 테일러 수련법?’

앨런이 테일러 수련법을 운용하기에 피라미드에서 황금 병사가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법으로 인해 변화한 마력은 미궁에도 적용된다는 뜻이 아닐까.

바로 마력을 끌어올리자 얼굴에 3개의 원이 생기고, 미간에 겹치며 밝은 빛을 만들어냈다. 바이저를 올리고 있기에 미간의 빛이 바로 벽화에 닿았다.

앨런이 만든 빛과 달빛이 마주쳤다.

원래 빛을 한곳에 쏘면 하나로 합쳐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빛과 빛이 서로를 밀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앨런이 마력을 더욱 집중하자, 달빛이 점점 밀려났다. 마치 햇빛 아래의 눈사람이 녹아내리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미간에서 쏘아낸 빛이 여의주를 완전히 뒤덮자.

콰앙!

갑자기 폭발이 발생했다. 파워슈트를 입은 앨런의 몸이 벽에 처박힐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었다.

“앨런!”

“형제님!”

느긋하게 쉬던 2명이 화들짝 놀라며 앨런의 곁으로 다가왔다.

우려와 달리 앨런은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파워슈트 표면에서 푸른색 마력 방어막이 일렁거렸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심하게 출렁이긴 했다.

“어머님! 도움!”

시바가 성법을 대충 외우자 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치유의 기운이 앨런의 몸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바로 받아들이겠지만, 마력과다증이라 시간이 좀 필요했다.

“전 괜찮아요.”

“그래도 그 정도 충격이면 내부가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시바는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카락 때문에 산적 같이 생겼는데, 눈만은 사슴을 닮았다. 초롱초롱한 눈에 단호함이 담기자 앨런도 한발 뒤로 물러났다.

테일러는 벽화를 한 번 보더니 앨런에게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몸은?”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괜찮아요. 벽화에 이런 게 숨겨져 있었네요. 유적을 탐사한 마법사 중에 미궁의 언어를 아는 사람은 없었나 봐요. 알았다 해도 저처럼 얻을 수는 없었겠죠.”

발견은 미궁의 언어와 테일러 수련법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수련법을 아는 사람은 오직 둘 뿐인데, 언어까지 아는 사람은 앨런 혼자였다.

‘미궁에서 발견한 수련법을 아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겠지. 세상은 넓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아니라 자신이었다.

앨런의 손바닥 위에는 골프공과 비슷한 크기의 정육면체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까만 물건이었는데, 예전에 봤던 소원의 조각처럼 표면이 일렁거렸다.

정육면체를 지켜보고 있으니 가만히 있던 표범이 앨런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오른쪽 눈에는 정육면체가, 왼쪽 눈에는 정찰 거미가 보낸 영상이 보였다. 사방에 배치한 거미는 지휘관실로 다가오는 마법사 몇 명을 관측했다.

“왜 무슨 일이야?”

“마법사들이에요.”

“하긴, 폭발이 발생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앨런이라도 고요한 장소에 소음이 발생하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할 테니, 저들의 행동은 당연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기까지 안내했던 안경 마법사가 나타났다. 따라온 마법사들을 뒤로 물리더니 자신만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화가 나도 유적을 부수면 안 됩니다.”

“그럴 리가 없죠.”

“농담입니다. 무언가를 찾으셨나요?”

“아뇨.”

심장 박동, 어조, 얼굴색 등에 변화는 없었다. 최근에 표정이 조오오오오금씩 살아나는 앨런이었으나, 이럴 때만은 예전과 똑같았다.

테일러는 워낙 베테랑이라 속임수에는 능했고, 시바는 수염과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을 살피기 어려웠다. 애초에 종족이 다르면 파악하기 힘들기도 했다.

마법사가 검지로 안경테를 밀어 올렸다. 그 너머의 눈이 묘한 빛을 품었다.

“무언가가 숨겨져 있긴 했군요.”

“억측입니다.”

“유적에 도착하고 나서 몇 시간 만에 찾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라니까요.”

“왜 이러십니까? 알만한 사람끼리.”

마법사의 날카로운 시선이 방과 앨런 일행을 빠르게 훑었다. 물론 정육면체는 파워슈트 안쪽에 감춰놓은 상태라, 그녀가 무언가를 발견하긴 어려웠다.

마법사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마치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연상케 했다.

“대가가 필요하신가요? 지금은 없지만, 지상에 모아놓은 돈이 상당히 있는데.”

“그냥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폭발이 발생했을 뿐입니다.”

“에셀 마탑 주식도 많이 있어요. 마석도···.”

“아니라니까요.”

앨런이 계속 부정하자, 마법사는 아쉬운 표정으로 이쪽을 한참 쳐다봤다. 옷깃을 자꾸 매만지다가 다시 야영지로 돌아갔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테일러가 혀를 내둘렀다.

“역시 마법사는 마법사야. 같이 왔던 친구들은 밖에 대기시켜놓고 하는 말이 뭐라고? 지상에 모아놓은 돈? 에셀 마탑의 이름으로 처리하려 했으면 로렌조를 언급했겠지. 자기 혼자 꿀꺽 삼키려고···.”

“탐구욕은 성장의 원동력이죠. 전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에셀 마탑은 대기업이잖아. 개인의 일탈 하나쯤은 무시해도 되지만, 쌓이고 쌓이면 상처가 곪아.”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죠.”

“어휴. 설마 밤에 습격하는 거 아니겠지?”

“마력을 보아하니 화염 마법사 같은데, 저 정도는 표범에 적용한 내화성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전투원이 아니라 연구원에 가까운 사람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어도 전투에 익숙하지 않으면, 전투 자체가 품은 열기에 휩쓸릴 수가 있었다. 전차도 내부로 들어온 수류탄 하나에 꼼짝 못 하는 법이니까.

“그럼 오늘은 탐험은?”

“이만 끝내고 쉬어요.”

“그 말을 기다렸지.”

그날 밤, 잘 자던 앨런은 눈을 떴다. 그리고 빠르게 알아차렸다.

‘여긴 텐트가 아니야.’

당황스러울 만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아니, 그 전에 고개가 먼저 돌아갔다.

앨런의 몸이 제멋대로, 아니, 앨런은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근위병을 처음 쓰러트리고 문을 통과했을 때, 잠시 근위병의 시선으로 과거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이 그때와 비슷했다.

< 꿈(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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