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3) >
로렌조와 대립하는 다마스의 부하 마법사들이 유적에 도착한 후에도 조사는 계속되었다. 서로 마주칠 때마다 으르렁거리긴 했지만, 무력 충돌까지 번지진 않았다.
각 무리를 통솔하는 상급자는 쓸데없는 전투가 벌어지면 조사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 웬만하면 서로 피해 다니라는 말을 전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테일러가 말했다.
“화끈하게 붙는 줄 알았더니 어찌어찌 해결됐네. 앨런, 네 말대로 연구원에 가깝구나.”
“싸우면 시간 낭비죠. 자원 소모도 격렬해지고요.”
“그런데 우린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냐? 슬슬 올라갈 때잖니.”
“30일은 머물기로 약속하고 왔잖아요. 잊으셨어요?”
“아, 그랬나?”
테일러가 관자놀이를 톡톡 치고 있으니, 시바가 옆으로 붙었다.
“형제님, 또 머리에 이상이···.”
“그럴 리가 없지. 그 뭐냐. 성법으로 머리 좀 만져줘라.”
평소라면 버럭 성을 냈을 테일러는 얌전히 앉았고, 시바가 그의 머리에 하얀 기운을 불어넣었다.
‘별일이네.’
앨런은 평화로운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있는 장소는 격납고였다. 거대한 탑승형 병기를 보관했으리라 추정하는 장소였다.
위를 바라보자 가지런한 치아처럼 꽉 맞물린 천장이 보였다. 형태로 보건대, 탑승형 병기는 수직 이착륙으로 격납고를 왕래했으리라.
‘남아있는 거치대를 보면 병기의 크기가 적어도 20~30m는 되었겠지. 동력원으로는 무엇을 사용했을까?’
지휘관실에 있는 벽화에서 얻은 정육면체까지 생각이 닿았다. 꿈에서 용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언급한 큐브와 같은 물건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앨런이 큐브를 꺼내려고 파워슈트 안으로 손을 넣으려는 찰나.
기이잉!
괴상한 소리가 머리 내부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바이저를 위로 올리고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음···.”
“왜 그러니?”
안마를 받고 있던 테일러가 어느새 앞에 나타나서 앨런의 안색을 살폈다.
“미궁이명증이요.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해주는 통로를 지날 때만 발생했는데, 여기서도 느껴지네요.”
“마력에 예민한 사람들은 그 증상이 유독 심하긴 하지. 그래도 층에서 발현했다는 소리는 나도 처음 듣는구나. 이렇게 해봐라. 마력으로 귀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고, 솜으로 건드리듯이 가볍게 주물러 보려무나. 회전 방향을 2바퀴마다 바꿔가면서.”
이명은 통증까진 아니더라도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앨런은 조사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다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미궁이명증 완화 방법의 하나로 최근 논문에 기재된 내용인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삼라만상에서 돌아다니다 봤지.”
“꽤 긴 내용이던데. 누가 간략하게 올려놨나 보네요.”
앨런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테일러를 보다가 시바에게도 똑같은 시선을 보냈다.
시바는 무릎을 꿇고 양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실한 기도를 올리는 종교인의 표본이었다.
‘웬일로···. 내가 꿈을 꾸나?’
기도에 형태는 상관없다며 맨날 침대에 누워서 가수면 기도를 올리던 시바였다. 그런데 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신기한 점은 또 있었다. 오늘의 시바는 성수를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시바는 도대체 어디에 보관하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성수를 미궁에 챙겨왔다. 당연히 대부분은 시바의 몸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테일러가 강탈했다.
‘물처럼 많이 마셔서 질렸나?’
앨런은 드워프가 들으면 실례라고 화낼 만한 생각을 떠올렸다.
격납고 조사를 얼추 끝내고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다마스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인상을 쓰면서도 길을 터줬다. 다른 세력이 점거한 유적에 쳐들어온 무리 치고는 굉장히 예의 바른 행동이었다.
덕분에 시비에 대비해서 마력을 끌어올리던 앨런만 허탈하게 되었다.
텐트로 돌아온 앨런은 야전 침대에 앉아서 오늘 조사한 목록을 주르륵 살폈다. 마법사들이 깨끗하게 털어가서 건진 물건은 없지만, 시설을 살피기만 해도 얻는 지식이나 단서는 있었다.
앨런은 피곤한 눈을 깜빡이며 텐트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상자가 표범에게 슬금슬금 접근하고 있었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
앨런은 둘을 중재하려다가 그만뒀다. 애초에 두 아이는 티격태격하지도 않았다.
상자가 바닥에 배를 깔고 앉더니 집게발로 표범을 건드렸다. 상자도 외장갑이 살짝 찌그러진 정도는 수리할 능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가 고장 났나 살피는 듯한 행동이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표범은 상자가 건드리려고 하면 질색하며 앞발을 날리니까. 그렇게 집게발을 쳐내고 나면 앨런 근처에 와서 누웠다. 상자는 주인이 옆에 있으니 집게발만 몇 번 달그락거리다 말았고.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삐―
상자가 냈는지, 표범이 냈는지 모를 비프음이 들렸다. 아니, 애초에 앨런은 표범이 내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 없었다.
갑자기 거리가 가까워진 둘을 보고 있으니, 테일러가 옆 침대에 앉았다.
“동일한 마법공학자의 손에 탄생한 피조물이잖아. 그리고 계속 붙어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겠지. 같은 제작자가 만든 무기들이 전장에서 만나면 공명하는 경우가 있잖아. 마력의 동질성으로 인한 현상이지. 그걸 피하려면 제작 과정에서 마력의 배열을 살짝 바꾸거나, 마력회로의 재료를 바꾸면 된다고 하더구나.”
“네?”
앨런은 되물었다. 이해를 못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째서 그런 것까지 알고 있냐는 표현이었다.
테일러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마법공학에 대한 토씨라도 꺼내면 입을 다물고 손을 내저었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그리고 길게 말할 줄이야.
“동물원에 온 꼬마처럼 굴고 있어?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그리 신기해?”
“네.”
“즉답하면 상처받아. 내가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인데 그런 간단한 이론 하나 모르겠냐. 알면서도 세월에 파묻혀서 쉽게 꺼내지 못했을 뿐이야.”
테일러는 바람 좀 쐬겠다며 텐트를 나섰다. 신기한 일도 다 있지만, 긍정적인 변화니 앨런도 좋게 생각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시바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몸이 워낙 튼튼해서 그런지 온종일 무릎을 꿇고 있는 데도 불편한 기색 하나 안 보였다.
탐구는 계속되었다.
“우리가 먼저 왔다.”
“아니지. 내가 먼저 들어갔잖아.”
“신속 마법으로 뛰어와서 혼자 들어가 놓고? 그런 식이면 우리도 한 명씩 미리 집어넣으면 되겠네.”
“그러든가.”
로렌조와 다마스의 부하들은 유치하게 싸웠다. 지성인 랭킹을 매길 때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는 마법사답지 않았다.
두 무리가 창고 밖에서 다투는 사이, 앨런 일행이 먼저 들어갔다.
“뭐 하는 거야? 장난해? 우리가 기다리는 모습 안 보여?”
“다른 일로 바쁘신 줄 알았죠. 천천히 이야기 나누세요.”
마법사 무리가 다시 서로를 노려봤다. 어차피 상대에게 양보하기 싫어서 대치하는 중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지만, 앨런은 새우가 아니기에 어부지리를 얻었다. 유적에 도착한 후로는 좋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다시 텐트 안. 그동안 유적에 정신이 팔렸던 앨런은 품속에 넣어뒀던 큐브가 생각났다.
‘아무리 즐길 거리가 많아도 어떻게 이걸 잊을 수 있지?’
파워슈트 안쪽, 큐브가 있는 장소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지이이잉!
이번에도 미궁이명증이 앨런을 괴롭혔다. 예전보다 훨씬 강도가 심했다.
“음···.”
앨런은 이명을 완화하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그중에는 테일러가 말한 방식도 포함되었다.
여전히 이명이 남아 불쾌함을 선사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애써 무시하며 큐브를 꺼내려 하자.
콰앙!
이번에는 텐트 밖에서 폭음이 들렸다. 기도하던 시바가 화들짝 놀라 제자리에서 튀어 올랐고, 사이 좋게 앉아있던 상자와 표범이 몸을 일으켰다.
“앨런!”
바람을 쐰다고 밖에 나가 있던 테일러가 텐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주문쟁이들이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어!”
“네? 왜죠?”
“나도 몰라. 누가 선빵 날렸겠지.”
이런 상황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저들은 하청 직원도 아니고 에셀 마탑에 정식으로 등록된 마법사였다.
마음 같아서는 로렌조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다마스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하는 짓을 보면 만만찮은 로렌조보다는 탐험가를 노릴 테고, 그러면 앨런은 로렌조와 동급의 마법사를 상대해야 했다.
무조건 진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매우 험난하리라 예상하는 상대였다. 게다가 저번의 화염마법사처럼 혼자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다.
앨런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내리고 있으니, 테일러가 팔을 붙잡았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싸움에는 끼어들면 안 돼. 선을 넘은 집안싸움이야.”
앨런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텐트에 불이 붙었다. 번지는 화염과 연기를 피하고자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화력의 대명사인 마법사들답게 공격을 한 번 할 때마다 성대한 폭죽이 터졌다. 에비의 보조를 받으면서도 직접 체내에 마력구조체를 생성했기에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때로는 뇌 확장 장치로 서로의 생각을 연결, 정신 자원을 최대로 끌어당겨서 합동 마법을 펼치기도 했다. 불에서 태어난 거대한 새가 상대측 진형으로 날아들었다.
콰앙!
얼마나 강대한 힘을 품고 있었는지, 충돌로 인한 바람만으로도 파워슈트가 덜덜 떨렸다.
앨런의 바이저에 타오르는 불길이 비췄다.
“도대체 이게 무슨···.”
“움직이자.”
테일러가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딱히 저항하진 않았기에 그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저기 보여? 마법사들이 지키던 유적의 입구야.”
정확히 말하면 유적과 미궁을 연결하는 검은 통로였다. 유독 그 부분만 검은색 아지랑이가 불길하게 일렁거렸다.
“얼른 빠져나가자.”
“하지만···.”
“로렌조의 부하들이 마음에 걸려? 다시 봐.”
앨런이 고개를 돌리자 전황이 확 바뀌어있었다. 분명 팽팽했었는데, 지금 보니 다마스의 부하들이 압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로렌조의 부하 마법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어차피 일이 벌어졌으니, 그동안 정신을 감고 있던 족쇄를 한껏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서 움직이자.”
“잠깐만요.”
“앨런 형제님, 얼른 탈출해야 합니다.”
앨런이 가만히 서 있으니 시바도 합세해서 등을 밀었다. 둘이 가하는 힘이 점점 강해졌다.
정신이 가속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오직 앨런의 생각만이 빠르게 움직였다.
‘갑자기?’
앨런은 괴리를 느꼈다. 테일러의 행동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나 앨런의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고 행동하니까.
‘시바 씨는?’
평소의 시바였다면 어떻게든 싸움을 중재하려 했을 것이다. 저 소란 속에서도 의견을 낼 힘은 충분히 지니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큐브···.’
큐브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미궁이명증이 발생했다. 아까는 그걸 무시하고 품에 손을 넣으려 하니 충돌이 발생했다.
앨런은 마력에 대해 매우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데도, 마법사들이 무언가를 파괴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화력이 충만한 마법이라면 징조가 느껴질 텐데도.
앨런이 기억을 되감았다. 마치 영상을 역재생하듯이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기도하는 시바, 지성이 충만한 테일러, 사이좋은 상자와 표범. 그리고 꿈.
[내 속박에서 그리 쉽게 벗어난 이유가 있겠지.]
앨런이 마법의 사슬을 풀어내자 용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했던 말이다.
‘그것 자체가 속임수라면?’
앨런은 몸이 다치든 말든 마력을 거칠게 운용했다. 바이저를 뚫고 나올 정도로 미간의 빛이 강해졌다. 그리고 품에 손을 넣었다.
‘없다.’
안쪽 보관함에 넣어둔 큐브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앨런은 그 상태로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의 팔을 잡은 테일러, 등을 미는 시바가 검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 꿈(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