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2) >
메이즈시티가 폭발했다. 진짜 그런 사건이 발생하진 않았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몇천만 명이 부대끼고 사는 메이즈시티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호응도 격렬했다.
공간문 사용은 그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미궁 발견 후, 1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탐험가들의 뇌리에 새겨진 법칙이 박살 났다.
다른 층에 간섭할 수 없다는 법칙은 수집가가 깼지만, 그건 그 혼자만 가능하니 일단 제쳐두고.
어쨌든 공간문은 보도되자마자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가 되었다. 미궁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니, 없더라도 모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상에서도 공간문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물자를 운반하거나, 사람이 직접 이용하는 등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었다.
그와 비슷하게 미궁 탐험도 어마어마한 시간 절약이 가능해졌다. 좀 깊이 들어간다 싶으면 원정에만 몇 달이 걸리는데, 이번 발견으로 1달이 그냥 줄어들었다.
한 달의 시간을 더 깊은 곳에 투자한다면, 도달계층이 더 낮아질 수 있고, 회수하는 자원의 평균 가치도 뛰어오른다. 깊을수록 좋은 마석, 뛰어난 영혼석, 휘황찬란한 마정석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지루함 때문에 탐험의 꿈을 접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먹구름이 어둠을 불러오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메이즈시티. 마천루 중에서도 유독 강한 빛을 뿜어내는 장소가 있었다.
태양 아래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먹구름이 태양을 가린 지금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광공해라며 말해도, 그 건물은 자비 없이 빛을 뿜어냈다.
왜냐하면, 그곳은 에셀 마탑이니까. 메이즈시티에 있는 가장 큰 마법사들의 둥지이자, 마법공학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대기업이었다.
최상층, 과장 좀 보태서 구름이 살짝 걸린 장소. 통유리 안으로 회색 머리의 젊은 청년이 보였다. 제이크 마셜은 뒷짐을 지고 도시를 내려다봤다.
“미궁 입장을 제한할 필요가 있겠군.”
“누구 마음대로?”
바로 어깃장이 날아들었다. 발언한 사람은 노란 머리와 눈동자 그리고 갈색 피부의 다부진 중년인이었다. 창밖을 보던 제이크가 유리창에 비친 중년인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루미에.”
마침 번개가 치며 약간 어두운 방을 환하게 비췄다. 원형 탁자에는 몇 사람이 앉아있었다.
제이크의 부름을 받은 중년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좌중을 둘러봤다.
“우리가 누구지? 메이즈시티의 거물들 아닌가? 미궁쯤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텐데.”
“다른 나라의 미궁탐험가가 대량으로 유입되면 범죄, 전리품 가격변동, 실직 등 온갖 문제가 폭발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탐험가 생각도 해야 해.”
“메이즈시티는 충분히 버틸 여력이 있다. 그 정도로 나약하지 않아.”
“다시 말하게 하는군. 우리는 그러겠지. 하지만 영세한 탐험가조합이나 개인 탐험가는? 미궁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착한 척 못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창밖을 주시하던 제이크가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회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일반인이 목격한다면 심장마비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가 담겨있지만, 루미에는 태연했다.
“농작물도 유전자를 교배해서 더 좋은 특성을 남기려고 하잖아. 더 강한 녀석들이 살아남을 텐데 무슨 문제라도?”
“사람은 식물이 아니다.”
“내가 볼 땐 똑같아. 식물이든, 짐승이든 강한 존재만 살아남지.”
서로 노려보자 마력 파동이 발생했다. 평범한 건물이라면 무너질 충격이 사방으로 퍼졌지만, 여기는 에셀 마탑. 그중에서도 루미에가 지내는 층이라 온갖 방어 마법이 덕지덕지 발려있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이랬으면 대참사가 벌어졌을 상황에서도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태연했다. 누구는 하품하고, 누구는 손톱을 손질하고, 누구는 잠을 청했다.
“그만해, 병신들아.”
욕설과 함께 또 다른 충격이 2명을 두드렸다.
제이크와 루미에가 원형 탁자의 한쪽을 바라봤다. 몸에 딱 맞춘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있었는데, 탁자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깍지낀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루미에가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리스, 입이 저렴한 건 여전하군.”
“내 이름은 리스가 아니라 이리스야.”
“성이 ‘이’고 이름이 ‘리스’잖나.”
“닥쳐. 내 이름 가지고 트집 잡지 마.”
언성을 높이는 그녀의 바지에는 북두칠성이 수놓아져 있었다. 동방대륙에서 시작된 마법공학 기업, 칠성의 표식이었다.
“그래서 칠성의 의지는 어떻지?”
“난 제이크 편들 건데.”
“둘이 입을 맞추고 왔나?”
“지랄. 난 둘 다 싫은데 니가 더 맘에 안 들어서 그래. 외부 탐험가 유입? 원래 있는 애들이랑 싸움 붙여놓고 구경하려고? 관음증 새끼.”
“아무것도 모르는군. 경쟁에서 피어오르는 투쟁의 불꽃, 승리를 향한 반짝임보다 가치 있는 건 없다.”
“그래서 제자들도 그렇게 놔두셨나?”
“교육방침에 이견은 받지 않는다. 그쪽도 세세하게 뜯어보면 나랑 비슷할 텐데?”
“뭐, 죽어 나가는 건 다른 놈들이겠지. 어쨌든 난 시끄러운 건 질색이야. 혼란 때문에 매출이 출렁이는 것도 싫고. 그런데···.”
이리스가 말을 끌자, 주변 사람들이 힐긋 쳐다봤다. 관심이 마음에 드는지 그녀의 입가에 호선이 생겼다.
“늙은 금태양의 말에는 어느 정도 찬성이긴 해. 유입이 많으면 저 아래까지 내려갈 사람이 하나는 나오겠지. 그러니 둘의 의견을 절충해. 꼬마애들처럼 투정 부리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라고. 뭐, 싸움도 나쁘지 않겠지. 기왕 사람을 이렇게 모았으니 구경거리라도 보여주고 보내야 하지 않겠어?”
제이크와 루미에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먼저 제이크의 입이 열렸다.
“메이즈시티에 등록한 지 1년이 넘어야 공간문을 사용할 수 있게 바꾼다.”
“6개월. 내 생각에 이 정도면 충분히 안정화할 수 있어.”
“좋아. 6개월.”
공간문이 생기면 실력 있는 탐험가는 죄다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27층에서 탐험을 시작하면, 1~26층에서 회수하던 전리품이 확 줄어든다.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흐름도 막히고.
그러니 이들의 의견은 새로운 탐험가들에게 그 부분을 맡기자는 뜻이었다. 그들이 공간문을 사용하려면 면허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지속적인 탐험이 필요했다.
의견이 모이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이들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만사가 귀찮은 표정이더니, 사라질 때는 누구보다 빨랐다.
참여하기 귀찮아서 말을 아낀 게 아니라, 그들도 듣다 보니 괜찮은 의견이라 조용히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모인 지 하루만에 공간문 사용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었다.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참석한 이들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
기이이잉!
앨런은 바이저를 열고 관자놀이와 미간을 꾹꾹 눌렀다. 공간문은 엄청 편하긴 한데, 단점이 있었다. 미궁이명증이 굉장히 심해졌다.
층을 넘나들 때 덤덤하던 테일러나 시바도 약간의 어지러움을 호소할 정도니, 원래부터 예민한 앨런은 어떻겠는가.
“앨런, 괜찮니?”
“누가 귀에 입을 바짝 붙이고 한껏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에요.”
“편의의 대가니 감수해야지.”
“맞아요.”
마법사들이 앨런 일행을 보고 수군거렸다.
“미궁에서 사나?”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앨런은 그런 말을 들어도 모른 체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표범과 상자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다른 탐험가들이 부리는 오토마톤에는 이용료가 붙었지만, 로렌조는 앨런이 만든 아이는 무료로 통과하게 해줬다.
누군가는 이 틈에 오토마톤 부대를 이끌고 장사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가 먼저 인심을 썼으니 이쪽도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야 했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뭐? 내가 언제?”
“테일러 형제님은 속이 너무 빤히 보입니다.”
“무슨 소리야? 연약한 노인네를 그렇게 몰아가도 돼? 선동이 이렇게 쉬워요.”
앨런이 계단을 오르고, 군사시설 밖으로 나서자 낯선 풍경이 반겼다. 분명 공터만 가득했는데 어느새 건물들이 들어섰고, 탐험가들이 거리에 바글바글했다.
테일러가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썼다.
“보기만 해도 울렁거리려고 하네.”
“엄청나게 빨리 변하네요. 저번에 내려올 때는 저쪽에 건물이 아예 없었는데.”
“차원 배낭에 자재를 넣어와서 조립했겠지. 콘크리트 양생? 돈 지랄만 하면 마법으로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어. 그리고 에셀 마탑은 마법사를 무제한으로 부릴 수 있지.”
탐험가들이 어깨를 부딪치고 다니는 게 일상일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지만, 소매치기 같은 범죄는 발생하지 않았다.
한가락 하는 탐험가가 엄청 많아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늘씬하게 얻어맞고 손목을 잘릴 확률이 높았다.
앨런은 매직웨어 시술소를 스쳐 지나가며 가격을 흥정하는 대화를 들었다.
“와. 공간문을 사용하면 금방인데 가격이 벌써 2배는 올랐네요.”
“입장료만 해도 1천만 코인이니까. 2배 싫다고 그 돈 주고 또 올라갈 수 있겠어? 거기에 대기열도 생각해야지. 너도 이참에 수리나 해볼래?”
“그건 쉴 때 할게요.”
“수리가 휴식이야?”
“즐거우면 휴식이죠.”
테일러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앨런은 잠시 거리를 둘러봤다.
‘탐험가가 가득해.’
이들은 미궁을 격정적으로 탐험할 테고, 그러면 아직도 묻혀있는 신비가 계속 튀어나오리라.
‘큐브가 막으려고 했던 건 이런 현상이겠지. 설마 반칙이라고 생각했나?’
고민해봐도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그나마 생각나는 건 미궁 생물 유출인데, 그건 이미 마법사들이 실험해봤다. 공간문을 통과하자마자 픽픽 쓰러지니 긴 실험도 필요 없었다.
변화를 실감하던 앨런은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테일러였다.
“그래서 바로 내려갈 거냐?”
“그래야죠.”
설원에는 얼음 기둥을 세워놓은 아이스헨지라는 구조물이 있다. 이번 탐험의 목표는 바로 그곳이었다.
“거기는 파먹을 대로 파먹은 장소라 수익이 필요하면 사냥을 자주 해야겠는걸.”
테일러가 괜히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스헨지의 얼음 기둥에는 룬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룬문자가 있는데 마법사나 마법공학자가 가만히 있겠는가. 만약 그곳이 지상이었다면 학자들의 발자국만으로 수로가 만들어졌으리라.
어쨌든 룬문자가 가득하니 깨달음이 필요한 마법 계열 수련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명소였다.
‘지금 다룰 수 있는 룬문자는 4개.’
하나를 늘릴수록 그 과정이 매우 험난해졌다. 룬문자가 서로 반발하거나, 마력이 과하게 흐르며 타버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려면 극복해야 할 단계이기도 했다.
마법공학자는 보통 장인, 명장, 거장 순으로 나뉘는데, 장인은 3개, 명장은 6개, 거장은 9개 이상의 룬문자를 다뤘다.
오파츠를 수리할 능력이 있으면 거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한 기준은 위와 같았다.
게다가 학문은 다른 분야라도 결국에는 연계된다. 룬문자를 통해 시야가 넓어지면 별문자에 대한 식견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면 상자 안에 작은 자동화 설비를 만들고, 표범도 개선하자.’
마침 상자의 집게발을 쳐내는 표범이 보였다. 귀찮게 하는 생물이나, 가벼운 공격을 저렇게 처리하라고 입력했으니, 상자의 터치를 그런 부류로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음, 둘의 영혼석을 한 몸에 넣어볼까? 전투는 표범, 생산은 상자의 영혼석이 담당하게.’
앨런은 거대한 표범이 대지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녀석이 삼키는 전쟁 병기나 오토마톤은 내부에서 자원으로 변하고, 새로운 오토마톤으로 탄생한다.
‘육상모함? 네발로 달리니 모함은 아닌가?’
앨런이 고요한 눈빛으로 표범과 상자를 살피자, 둘은 싸움을 멈추고 테일러 뒤로 몸을 숨겼다.
< 문(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