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미로(2) >
앨런은 들려오는 굉음에 밖을 바라봤다. 전투기와 수송기가 주르륵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공군기지 같았다.
비행기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제트엔진은 마석과 화석연료를 동시에 사용하기에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격납고 밖에서 기다리던 공군 지휘관이 알라나 수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앨런이 앉은 자리에는 동전 크기의 창문이 뚫려있어서 밖을 관찰할 수 있었다. 봉사단원들은 명당에 앉은 앨런에게 감히 뭐라고 지껄일 깜냥이 없었고.
“서로 보며 웃고 있네요. 시청과 이미 이야기가 끝났군요.”
“이럴 때 빚을 달아두면 나중에 좋지.”
옆에 앉은, 쥐상의 게리가 말을 받았다. 그 말대로 모신교는 친하게 지낼수록 좋은 종교였다.
그들이 운영하는 사랑병원만 해도 매우 큰 시설이고, 최저 의료비만 받기에 시민들의 지지가 두터웠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어볼까요?”
앨런이 차밖에 매달린 거미에게 신호를 보내자, 녀석의 배 부분에서 작은 안테나가 튀어나왔다.
“도움 감사해요.”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인데 당연히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휘관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뒤에 있는 차는···.”
“심신의 정화를 위해 고행하는 분들입니다.”
“아, 저런 식으로라도 죗값을 치르는군요. 세금으로 밥 주기도 아까웠는데 잘 됐군요.”
지휘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병을 따로 운용한다는 말이었지만 막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반면에 좀 떨어진 자리에 모여있던 군인들은 차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쓰레기들이잖아. 재활용되나?”
“모신교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뇌 확장 장치를 갈아 끼웠으니 통제수단은 충분하잖아.”
“하긴 말 안 들으면, 펑!”
앨런이 스피커 설정을 해놨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차 내부에도 전달되었다. 카카의 녹색 피부가 푸르르 떨렸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게리는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평소 같으면 군인에 대한 험담을 마구 지껄이겠지만, 지금은 앨런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봉사단원 전체가 침묵을 유지했다. 하는 짓을 보면 마법공학자가 분명한데, 왠지 모를 꺼림칙함이 느껴진 탓이었다.
“마력을 제한하긴 해도 폭발하는 구조는 아닌데···.”
“정말이야?”
“네. 모신교 사람들은 친절하네요. 왜 효율적인 수단을 포기했지?”
“···.”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폭발을 입에 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차가 통째로 수송용 비행기로 들어갔다. 수송기가 워낙 커서 차 몇 대가 들어가도 공간이 남았다.
그 사이, 앨런은 바로 마도구를 손질했고, 게리는 옆에서 구경했다.
“재밌냐? 심심해서 뭐 하는지 보고는 있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매직웨어나 마도구는 흥미 그 자체죠. 수리, 개조, 강화 등.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 내 것도 강화···, 윽!”
상자의 집게발이 쭉 늘어나더니 게리의 목을 낚아챘다. 손에 힘을 줘서 뜯어내려 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게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자, 앨런이 입을 열었다.
“그만해.”
“컥!”
주인의 말에 상자가 구속을 풀고, 게리는 입을 크게 벌려서 모자란 산소를 들이켰다. 앨런은 게리의 상태가 괜찮아지자 말했다.
“저 아이는 게리 씨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나 봐요.”
“아니, 주인이면 완벽히 통제해야 하는 거 아냐?”
“저는 구속보다는 자유를 좋아해서.”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떻게 하려고?”
게리의 말이 주변으로 퍼지자마자 상자의 몸이 들썩이더니, 게 눈을 닮은 카메라 아이를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었다.
삐이익!
“안 그러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강화는 알라나 수녀님에게 허락받고 오세요.”
“진짜 해줄 거야?”
“여러분들이 강해지면 성직자분들이 덜 다치겠죠.”
“···.”
그렇게 수송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봉사단원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범죄자들은 검사받지도 않았다. 군인들은 이들을 아예 죽은 사람 혹은 물건 취급했다.
앨런은 거미를 조종해서 밖에서만 열리는 문을 개방했다. 성직자들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앨런의 얼굴을 보고 슬그머니 내렸다.
벽에 설치된 작은 의자에 앉아있던 테일러가 손을 들었다.
“심심했지?”
“아뇨.”
앨런이 그리 말하며 마도구를 들어 올리자, 테일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틈도 없겠구나.”
“수녀님은 왜 누워계시죠?”
구석에서 눈을 감은 알라나 수녀를 가리키자, 시바가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꿈의 신전’이라는 성법입니다. 이름처럼 꿈속에서 형제자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대단하네요.”
“거리가 너무 멀면 단편적인 의사만 전달되긴 합니다.”
“그래도 굉장히 유용하겠죠. 일반적인 통신과 달리 감청의 위험도 없고요.”
괜히 알라나 수녀가 성법을 펼치겠는가. 카르텔 측이 이쪽의 통신을 도청하면 지원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예로부터 알고 맞는 매와 모르고 맞는 매의 차이는 심했다.
“누구와 연결하신 건가요?”
“카미로를 담당하는 대사제 혹은 사제님일 겁니다. 애초에 그분들 정도는 되어야 성법을 펼칠 수 있습니다.”
모신교의 성직자 체계는 단순했다. 대사제, 사제 그리고 성별만 다른 수도승과 수녀. 앞에 언급한 순서대로 지위가 높았고, 그들 역시 수도승과 수녀를 거쳐서 사제가 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모신교의 모든 성직자는 어떤 식으로든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란 뜻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테일러가 시바를 슥 쳐다봤다.
“사제만 꿈의 신전을 펼칠 수 있다고?”
“네.”
“그럼 우리에게 거짓말한 거네?”
“예?”
“꿈속에서 어머님 만난다며.”
“시바가 아직도 그런 개소···. 아니, 헛소리하고 다니나요? 여전하군요.”
마침 몸을 일으킨 알라나가 툭 내뱉었다. 시바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감고 경전을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뺀질거리기로 유명했어요. 오죽하면 어머니 수녀님이 시바를 앞에 앉혀놓고···.”
시바가 낭독을 워낙 크게 해서 알라나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그녀는 필사적인 모습에 코웃음 치더니 본론을 꺼냈다.
“적들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에 카미로의 모든 지부가 피해를 봤다고 해요. 엇나간 녀석들치고는 준비성이 철저했어요.”
“카미로에서 그럴 역량이 있는 조직은 하나죠. 일렉토 카르텔.”
그들은 카미로의 밤과 낮을 동시에 지배했다. 아로마아를 주무르는 마약 카르텔도 일렉토의 산하에 있는 조직이었다.
“잘 아는군요.”
“카미로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
알라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인공 안구에서 뿜어진 빛이 파란 지도를 만들었다.
“일단 우리는 카미로 옆 나라에 내려서 차로 이동할 겁니다. 목적지는 북쪽 끝에 있는 피스토라는 도시에요.”
피스토를 기점으로 지도가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외곽에서 번진 하얀색은 카미로의 중앙을 향해 서서히 전진했다.
“다른 형제자매님들도 지원을 올 테고, 원래 카미로에 계셨던 분들도 들고일어날 거예요.”
“나는 도시 하나에서 치고받는 줄 알았는데, 나라 전체네? 이거 완전 전쟁이잖아.”
“성전이죠.”
알라나가 테일러를 보며 단호한 음성을 뿜어냈다. 안 그래도 사나운 얼굴이 더 무섭게 보였다.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동안은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볼까 봐 전면전은 피했지만요.”
“카미로 사람들은? 그쪽은 구경만 하나?”
“물론 뜻있는 의인들이 내부에서 협력할 거예요. 아무리 우리가 강성하다 해도 나라 하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해요.”
될 것 같은데. 앨런은 속마음을 숨기며 다시 마도구에 집중했다. 도착할 때까지는 계속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
앨런은 건설이 중단된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피스토는 작은 도시였다.
‘메이즈시티가 비상식적으로 커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도시 곳곳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일렉토 카르텔이 던진 횃불은 사방으로 번졌고, 그에 자극받은 사람이나 조직들이 거칠게 변했다.
온갖 조직이 튀어나와 충돌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이제 곧 있으면 작전 시간이었다. 앨런의 임무는 해킹 견제였다. 일렉토가 부리는 마법사나 상어를 막으면 됐다.
삐
시간이 되자 상자가 작은 소리를 냈다. 동시에 사방에 배치한 거미들이 마력을 뿜어냈다. 재밍을 위한 방벽이 만들어지고, 앨런은 자신의 정신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눈을 뜨자 어둡고 작은 방이 앨런을 맞이했다. 작은 탁자 앞에는 앨런을 포함해서 6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넌 뭐야!”
“적? 어디 소속이냐?”
“여긴 무슨 좆같은 곳이야?”
앨런 혼자만 불청객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5명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 없었다.
앨런은 그들을 보며 살짝 실망했다. 충돌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발견할 줄 알았는데, 저항이 생각보다 약했다.
“전 빠질 테니 알아서 놀고 계세요.”
탄창을 밀어 넣은 앨런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리볼버를 건넸다. 가상세계에서의 싸움은 정신력과 마력의 충돌. 안타깝게도 적들은 반항할 수 없었고, 총구를 관자놀이에 붙였다.
탕탕탕탕탕!
연속으로 들리는 5발의 총성. 피는 흘리지 않았지만, 모두 탁자에 얼굴을 처박았다.
현실에서는 직접적인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모신교의 성직자들과 동조자들이 일렉토의 지부를 단번에 덮쳤다.
앨런 호위 명목으로 전투에서 제외된 테일러는 옥상에서 그 장면을 구경했다. 선두의 봉사단원들은 총탄을 견디며 전진했다.
“이야 들은 것보다 더하네. 총 맞고 걸레짝이 된 허벅지가 저렇게 빨리 나아? 치유속도를 보면 생각보다 저놈들과 신성력의 궁합이 좋네.”
“왜 저런지 아시겠습니까?”
똑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시바가 물었다. 대답은 마침 눈을 뜬 앨런이 했다.
“뇌 확장 장치에 심어둔 물건 덕분이죠? 신성력을 뿜어내던데. 성물인가요?”
“아뇨. 죽은 형제자매님을 화장했을 때 나오는 신성결정입니다.”
“알뜰하기도 해라.”
“효율적이네요. 어차피 흙이 될 바에는 도움이 되는 편이 좋죠.”
테일러는 동시에 말을 내뱉은 앨런을 슬쩍 쳐다봤다. 약간 가늘게 뜬 눈으로.
“당연히 동의를 받고 화장을 진행합니다.”
“거부하는 사람은 없지?”
“영광스러운 일이니까요.”
테일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종교란 참 무서웠다. 하지만 중심을 잘 잡으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드물었다.
정화봉사단원은 온몸으로 밀고 들어갔다. 곧 건물에서 폭발이 발생하고,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카르텔 단원을 하나씩 끌고 나왔다. 누군가가 무기를 들이대면 몸으로 막기도 했다.
“좀비 영화가 따로 없네.”
테일러가 혀를 내둘렀다. 시바의 덕을 볼 때는 좋았는데, 제3 자의 눈으로 보니 징그럽긴 했다.
마지막으로 뒤통수에 케이블이 꽂혀있는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 나왔다. 전부 삼라만상을 헤엄치는 상어 또는 마법사들이었다.
하나같이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입안을 거품이 가득 채웠고, 전신에서 경련이 발생했다.
“앨런, 네가 했지?”
“네. 생각보다 효과가 좋네요.”
“뭘 했는데?”
“러시안룰렛을 구현해서 자신의 머리에 구멍을 뚫게 했죠. 뇌 확장 장치를 살짝만 태울 생각이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나 봐요. 아무래도 타인에게 당한 것보다 스스로 행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 되나 봐요. 오, 저기 보세요.”
앨런이 인공 안구의 시야를 확대했다. 잡힌 카르텔 조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수술을 받았다. 성직자들이 능숙한 솜씨로 뒤통수에 칼을 대더니 뇌 확장 장치를 교체했다.
“치료의 전문가들이라 저런 일도 가능하군요.”
앨런의 시선을 느낀 시바가 슬쩍 말을 꺼냈다.
“형제님, 사사로운 감정으로 모신교에 입문할 생각은 아닐 거라 믿겠습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앨런 형제님의 패턴이야 뻔합니다.”
앨런이 다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봉사단원들은 동료가 늘어서 그런지 매우 기뻐 보였다. 테일러가 그 광경을 짧게 축약했다.
“강제 등용? 네크로맨서가 따로 없네.”
< 카미로(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