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미로(3) >
“이 악랄한 새끼들! 차라리 죽여!”
적들이 무슨 말을 내뱉어도 성직자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수술을 진행했다.
다른 조직이 이런 방법을 쓰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모신교에는 치료의 전문가가 많아서 너무 간단하게 처리했다.
마취 내성이 있는 카르텔 조직원 하나가 심하게 버둥거리자, 봉사단원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사지를 봉쇄했다.
“발버둥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야! 얼른 나와서 제압해!”
고기 방패로 쓰였음에도 살아있고, 피 묻은 옷가지 속의 육체는 깔끔했다. 이 모습을 본 조직원의 반항이 더 심해졌지만, 단체 제압을 이겨내진 못했다.
치료하기도 전에 숨이 멎은 봉사단원을 숫자에 포함해도, 전투가 끝나니 이전보다 30%가량 인원이 증가했다.
도시 피스토의 조력자들은 모신교의 강제 개종 장면에서 시선을 피했다. 나쁜 놈들이라 저리 당해도 싼데,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작전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앨런 일행이 습격한 건물은 피스토에서 가장 큰 지부일 뿐, 아직도 일렉토의 조직원은 도시 곳곳에 퍼져있었다.
쾅!
앨런이 갑작스러운 굉음에 고개를 돌리니, 건물 벽을 뚫고 나온 알라나 수녀가 보였다. 으르렁거리는 도중에도 오크의 혈통에서 유래한 뾰족한 송곳니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녀는 성직자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꺼냈다.
“지부장이 안 보여.”
“다시 확인해 볼까요?”
“저기 누워있는 녀석들 깨워서 물어보자.”
성직자들이 몸을 흔들어도, 성법을 쏟아부어도 정신을 잃은 상어와 마법사는 계속 혼수상태였다. 헛수고가 계속되자 자연스럽게 원인 제공자를 쳐다보게 되었다.
시선을 받은 앨런은 거미를 풀었다. 신속하게 기어간 아이는 정신을 잃은 마법사의 뒤통수에 달라붙어서 외부 연결 포트에 다리를 꽂았다.
심폐소생술이 심장과 폐를 자극한다면, 지금 앨런이 하는 행위는 가라앉은 정신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뇌 확장 장치를 통해서 마력을 주입, 정신에 구멍을 뚫은 송곳들을 모두 제거했다.
“으갸갸갹!”
마지막 쐐기를 뽑으니 마법사가 괴상한 소리 내며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구멍, 피?”
테일러는 성법에 의해 겨우 진정하는 마법사를 보며 물었다.
“쟤 왜 저래?”
“정신을 제압할 때 러시안룰렛의 심상을 사용했어요.”
“러시안룰렛이면 한 명은 살아야 하잖아.”
테일러가 턱짓했다. 앨런이 깨우기 전까지는 5명 모두가 당해서 골골거렸다.
“당연히 참고만 했죠. 뭐하러 약실을 비워놓나요?”
“알고도 용케 방아쇠를 당겼네.”
“그건 강제로 시켰죠.”
“그 정도면 거의 정신지배 아니니? 차라리 순식간에 끝내지.”
“죽이고자 했으면 그게 편한데, 목적은 제압이었잖아요.”
테일러는 개종 당하는 마법사를 지켜봤다. 누가 나쁜 놈인지 도무지 판단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런데 방아쇠 한 번 당겼다고 맛이 가? 죽음이 워낙 익숙한 놈들일 텐데.”
“정신일지라도 고통은 느껴지니까요.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50번 정도?”
“아,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했구나. 그래, 네가 즐거웠다니 됐다.”
“평소랑 똑같은데요.”
“내가 볼 땐 아냐.”
그 사이, 마법사는 정보를 술술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뇌 확장 장치가 교체되어서 반항이 불가능했으니까.
토설한 마법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사랑! 어? 평화!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착한 사람들아!”
주변에서 웃음이 터지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사랑한다고 소리치던 마법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시바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대해 설명했다.
“욕설 필터입니다. 심신의 정화는 선량한 단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말과 생각은 불가분의 관계니까요. 평소에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즐거운 생각을 많이 하면 즐거운 말만 합니다.”
앨런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카카를 쳐다봤다. 피 묻은 오크는 갑작스러운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단원들이 뒤에서 붙잡았다.
“그러고 보니 수송 차량에 탔을 때 카카 씨가 욕하시던데···.”
앨런의 말에 수도승 하나가 고개를 홱 돌렸다. 카카가 슬그머니 몸을 빼려 해도 붙잡힌 상태라 불가능했다.
수도승이 거의 이마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요즘 깨우친 것 같아서 풀어줬더니 거짓이었나? 본 수도승은 실망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살다 보면 반사적으로 툭 튀어나오는 말···.”
“변명은 그만. 다시 경어 수행을 시작한다.”
수도승이 손가락에 신성력을 담아서 카카의 뒤통수를 콕 찔렀다. 작업은 그것으로 끝났는지 수도승은 떠나고, 우울한 얼굴의 카카만 남았다.
“행···복···.”
테일러가 그 말을 듣고 낄낄댔다.
“행복 맞아? 나한테는 시벌로 들리는데.”
카카가 그 말을 들었는지 똥 씹은 표정을 지었지만, 테일러가 노려보자 최대한 선량하게 웃어 보였다.
알라나가 실력 좋은 사람들을 모았다.
“지부장은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도망갔다고 해요. 아무래도 전황의 불리함을 눈치채고 준비하고 있었겠죠.”
“눈치도 실력이지. 그래서 다음 일은 추적인가?”
“맞아요. 지부장을 사로잡아서 숨어있는 지부와 안가 등의 정보를 캐내야 해요. 병력의 규모나 목적도 포함이죠.”
“공간문을 이용하면? 그랬다면 벌써 도망쳤겠지.”
테일러의 말에 알라나가 고개를 저으며 옆에 서 있는 건장한 남자를 가리켰다. 골렘 의수를 장착해서 덩치가 매우 커 보였다.
“피스토의 자경단이에요. 이분들이 피스토의 공간문을 사전에 모두 망가트렸어요.”
“그럼 남은 건 항공기나 공간을 열 수 있는 마법사인데, 하늘은 감시 중이고, 그런 실력을 지닌 마법사가 있었으면 도망치지도 않았겠지.”
“내부 감시는 자경단에게 맡기고, 우리는 도시를 빠져나가는 차를 검문하죠.”
알라나의 말대로 인원을 쪼개서 도로에 검문소를 세웠다. 앨런 일행 역시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 중 하나를 맡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첫 습격 이후 피스토는 조용했고, 그건 검문소도 마찬가지였다.
“협조 고맙습니다.”
일반 시민이 탑승한 차를 검문한 테일러가 버튼을 눌렀다. 수직으로 세워진 바리케이드가 수평으로 누우며 통과할 길을 만들었다.
“시바.”
“말씀하십시오.”
“너무 조용한데. 벌써 빠져나간 거 아냐?”
“우리가 방심하길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 같으면 답답하게 갇혀있느니 항공 차량 타고 도주했다.”
물론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하늘은 봉쇄 상태라 무언가가 이륙하면 대공포가 포탄을 뿜어낼 테고, 공중에서 당하면 대처 방법이 마땅찮았다.
마침 낡은 차 한 대가 검문소로 접근했다.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는 방향이었다. 테일러가 평범한 가족에게 다가가는 순간.
[삑! 여기는 3번 검문소. 빠져나가는 지부장을 발견했다.]
스피커로 전환해놓은 통신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이곳이 5번 검문소니, 3번은 꽤 가까운 도로였다.
테일러가 근처에 준비한 헬기로 뛰어갔다.
“가자!”
“잠시만요.”
앨런은 이쪽을 향해 미소짓는 가족을 가리켰다. 테일러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표범이 몸으로 차를 들이받았다. 운전석 문이 대번에 찌그러지며 운전자도 비슷한 신세가 되었다.
루프 위로 훌쩍 뛰어오른 표범은 발톱을 길게 뽑았다. 푸른 칼날이 순식간에 천장을 찢어발겼다.
“시발 들켰어!”
평범한 가족의 대처가 아니었다. 엄마의 손목이 꺾이더니 작은 미사일이 나타났고, 아이의 피부를 찢고 가시가 튀어나왔다.
“표범이랑 정리하고 따라와.”
삐!
앨런은 아이들에게 뒷일을 맡기고 헬기에 탑승했다. 블레이드가 공기를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조종석에 앉은 테일러가 소리를 질렀다.
“잔챙이들이냐?”
“네. 그냥 보내줄 순 없잖아요.”
3명을 태운 헬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중에 떠오르자, 저 멀리에서 추격전을 진행하는 차들이 보였다. 거리가 워낙 멀어서 시야를 확대했음에도 깨알 같았다.
테일러가 신난 표정으로 헬기를 조종했다. 항공기의 가장 큰 장점은 지형 무시였다. 속도까지 빠르니 금방 현장에 도착했다.
지부장이 탑승한, 풍뎅이를 닮은 장갑차는 쏟아지는 공격을 전부 받아내며 내달렸다. 가끔 반격하기도 했는데, 뒤꽁무니가 열리며 폭탄이 우수수 떨어졌다.
당연히 도로는 엉망으로 변하고, 추격하는 차들이 뒤집히기도 했다. 마음이 모질면 그냥 버리고 가겠지만, 모신교 사람들은 따로 차를 빼서 부상자들을 챙겼다.
“차 괜찮네요. 무서워서 숨은 게 아니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앨런, 저걸 어떻게 잡을지나 알려줘라.”
“포드에 장착한 로켓은 폭발 대신 관통력을 극대화했으니 발사해보세요.”
“아, 철갑탄이구나?”
조준을 마친 테일러가 재빨리 버튼을 눌렀다. 로켓들이 보금자리에서 뛰쳐나갔다. 고기를 원하는 피라냐처럼 장갑차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콰드득!
명중은 했으나 결과는 별로였다. 장갑차의 표면을 감싼 마력 방어막이 로켓들을 방어했다. 구겨진 쇳덩이들이 도로에 후드득 떨어졌다.
“오.”
“감탄할 때가 아냐!”
“이번에는 미사일을 발사해보세요.”
로켓 포드 위에 달린 미사일이 전진했다. 이번에도 장갑차의 자체 방어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이전과 결과가 살짝 달랐다.
폭발도 폭음도 없었다. 반으로 뚝 부러진 미사일이 도로를 나뒹굴었다.
“뭐야? 탄두는 어디 갔어?”
테일러가 말을 내뱉기 무섭게 장갑차가 휘청거렸다. 곧 도로를 이탈해서 야지를 데굴데굴 굴렀다.
“아, 그거구나?”
“네. 룬문자의 위력은 미궁보다 지상이 훨씬 강하네요. 미궁은 공간 자체에 제약을 거는군요.”
헬기는 [공간간섭]에 의해 전복된 장갑차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뒷문이 열리며 커다란 덩치의 스킨헤드가 밖으로 나왔다.
“내부에서 탄두가 폭발했는데도 멀쩡해 보이네요.”
“저게?”
스킨헤드의 피부는 빨갛고 검게 물들어있었다. 치료 마도구가 있는지 화상이 점점 사라지긴 했다.
“분석 결과 심도 4 후반이거나 심도 5 초반이네요.”
“그럼 이거 사용해도 괜찮겠네.”
“네.”
앨런이 말을 마치자마자 테일러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띄웠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투다다다!
기관포가 잠에서 깨어나 지부장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탄피가 햇빛을 사방으로 반사했다.
지부장은 상당히 강력한지 이쪽이 퍼붓는 포탄을 꽤 오랜 시간 버텨냈다.
“단단하네. 저 피부는 뭐냐?”
“갑자기 천산갑처럼 변형했네요. 무슨 시술이지?”
지부장은 이쪽의 공격을 피해 보려 했지만,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헬기를 벗어날 순 없었다. 하늘을 노려보던 지부장이 크게 외쳤다.
“개새끼들아! 내려와서 싸워!”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포탄 하나에 머리를 얻어맞고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아직 남았는데.”
테일러가 아쉽다는 소리를 했지만, 계속 발사했다간 죽을 게 뻔했다.
뒤이어 도착한 성직자들이 지부장을 포박하고, 장갑차 안에도 생존자가 있나 확인하려다가 멈췄다.
“내부에서 미사일이 폭발했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앨런, 어디 가니?”
“지부장 구경하러 가요.”
앨런이 뛰어내리자, 테일러도 헬기를 천천히 착륙시켰다.
성직자들이 이번에도 지부장 주위에 모여서 강제 개종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른 조직원과 다른지 수술이 지지부진했다.
일단 피부가 너무 단단해서 메스가 쉽게 망가졌다. 껍질을 겨우 갈라도 육체가 빠르게 재생했다.
성직자들이 일단 손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몸이 좀 이상해. 이거 보여?”
“근육 속에 마석을 박아놨네. 잠깐, 근육도 사람 근육이 아니잖아. 저건 트롤의 몸속에 있는 회복물질 생성 기관이고.”
지부장의 육체는 이것저것 모아서 기워놓은 듯했다.
< 카미로(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