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메라(1) >
뇌 확장 장치는 이름 그대로 뇌와 연결된 매직웨어라 매우 섬세하게 다뤄야 했다. 지부장의 육체는 계속 재생했고, 그럴 때마다 인공 신경망과 결합해서 일단 개종은 보류했다.
알라나 수녀는 이쪽 방면의 전문가가 오기 전에 지부장을 깨웠다. 기관포로 찜질을 당했음에도 그는 멀쩡히 눈을 떴다.
“하···, 잡혔군.”
“너도 알겠지만, 모신교에서 왔다.”
“무슨 여자 덩치가 그리 크지? 기왕이면 햇빛 좀 가려주겠나?”
알라나는 일단 소원대로 움직여줬다. 그늘이 생기자 지부장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래, 부하들을 죄다 때려죽여 놓고 뭐가 궁금해서? 그냥 나도 죽이지 그래?”
“안타까운 일이지. 그래도 살아있는 녀석들은 참회의 여지가 있어. 너에게도 속죄의 길이 열려있으니 진심으로 항복하고 협조해라.”
“너희들의 명령에 대가리 푹푹 숙이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것들을 살아있다고 표현할 수 있나?”
톡 쏘아붙이는 말투에도 알라나는 태연했다. 정화봉사단에서 온갖 일을 겪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얼굴을 들이밀며 상대를 압박했다.
“그게 싫었으면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죄? 무엇이? 가축과 사람의 차이가 뭔데? 도시는 가축우리고, 나는 그저 농부였을 뿐이야.”
“농부가 아니라 축산업자요.”
앨런의 정정에 지부장이 살기 담은 눈으로 노려봤다.
“너, 헬기에 타고 있던 놈이군. 비열한···.”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 뜻 아니야.”
“이 바닥에서 ‘비열하다 혹은 치사하다’라는 표현은 칭찬과 동의어잖아요. 그리고 꽁꽁 묶인 모습이 애벌레 같네요.”
지부장은 이를 드러내다가 바이저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쨌든 마력수련자나 신체개조자는 지부장처럼 우월주의에 빠지기 쉬웠다.
왜냐면 실제로도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100m를 전력으로 내달릴 동안 가볍게 몇 번 왕복하고, 매직웨어를 장착하거나 생체강화시술을 받으면 3대500도 준비운동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깔보고 멸시할 수밖에. 아니, 사람으로 취급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부장처럼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당한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일단 힘으로 무릎 꿇려야 했다. 그가 말하는 가축이 아니라 같은 사람임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왜 우리를 공격했지?”
“하!”
스킨헤드가 알라나의 물음에 코웃음을 쳤다. 어찌나 크게 웃으며 몸을 비트는지, 흙먼지가 조금 발생했다.
“겨우 그따위 질문이나 던져? 집에 모기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그냥 내보낸다.”
그 말을 들은 테일러가 통신을 시도했다.
[모기를 살려준다고? 시바, 너는?]
[어머님께 빨리 보냅니다. 모기도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존재하느니 그쪽을 좋아할 겁니다. 그래도 우리 집 근처에는 묘하게 벌레가 없지 않습니까? 불필요한 살생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건 앨런이 잘 알지.]
[이 아이들의 이름이 괜히 거미가 아닙니다.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이유는 심심해서가 아니라 해충을 찾으려는 목적도 있어요.]
거미 하나가 앨런의 어깨, 팔꿈치를 지나 손바닥 위로 올라갔다. 금속 특유의 매끈함과 작은 덩치 덕분에 장난감처럼 보였다.
마침 동물, 심지어 사람의 피부에도 알을 까는 파리 하나가 근처로 날아들었다. 흉악한 해충답게 사람의 빈틈을 파고들려고 했는데, 그전에 거미가 쏘아낸 레이저가 녀석을 태워버렸다.
시바는 임무를 완수한 거미 너머, 수녀와 지부장이 있는 곳으로 초점을 집중했다.
지부장은 알라나 수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고문이라도 할 텐가?”
“힘들더라도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치료 전문인 자매들이 저기 오는군.”
오프로드 차 한 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다른 수녀들보다 가녀리게 생긴 수녀들이 차에서 내렸다.
알라나의 말대로 진짜 전문가들인지 가지고 다니는 도구도 범상치 않았다. 수술용 정밀 보조 의수인 히포크라테스를 착용하고 서서히 접근하자, 지부장이 낄낄대며 웃었다.
테일러는 손가락을 관자놀이 근처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정신 놨네. 포기했나 보구나.”
“매직웨어 작동이 감지됩니다. 호르몬 조절기 같네요. 엔도르핀, 세로토닌,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에 뇌가 적셔지고 있겠죠.”
“그래서 저렇게 화끈하게 웃···.”
펑!
지부장의 머리가 폭발했고, 수술을 진행하던 수녀들의 검은색 옷이 검붉은색으로 변했다.
“화끈하게 갔네요.”
다행히 피해는 없었다. 수녀들은 참상을 겪고도 히포크라테스를 움직였다. 머리는 사라졌지만, 아직 몸이 남아있고, 때로는 말보다 육체에 더 많은 정보가 담겼다.
갑자기 시작된 야외 해부 실험. 비위가 좋은 몇몇 말고는 현장에서 멀어졌다.
앨런은 당연히 좋은 편에 속했기에 시야를 확대하고, 수녀들이 나누는 대화마저 귀에 담았다.
“장착한 매직웨어는 극소수. 나머지는 살덩이야.”
모신교는 병원을 운영할 만큼 치료와 인체 해부학에 뛰어난 지식을 지녔고, 생명공학과 의료는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렇기에 수녀들은 지부장의 몸을 빠르게 분석할 수 있었다.
“온전한 사람이 아니네요.”
수녀들의 경험에 비추어도 지부장의 육체 낯설었다. 모신교가 신체의 원상회복을 목적으로 의료를 행하는 것과 달리, 지부장의 몸은 여럿을 모아서 하나로 만들었다.
여럿에는 몬스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제작한 생체기관이 포함되었다. 누덕누덕 기운 수준이 아니라 본래 타고났다고 해도 믿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한동안 침묵하던 수녀의 입이 열렸다.
“재봉사···.”
“자매님. 제가 똑바로 들은 게 맞나요? 재봉사? 그런 괴물이 일렉토 카르텔의 배후에 있다고요?”
팔짱을 끼고 주변을 구경하던 알라나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수녀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그녀의 기술과 흡사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어떤 조직이 일부러 누명의 씌우기 위해 따라 했을 가능성은요?”
“관심을 끌어서 좋은 일이 있을까요? 알라나 자매님도 알다시피 카미로의 동쪽으로 가면 산드라가 똬리를 튼 밀림이 있습니다.”
“다른 대륙도 아니고 같은 대륙, 그것도 옆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겠군요.”
“그녀가 아니라 제자가 개입했을 수도 있어요.”
재봉사 산드라가 정착한 지역의 명칭은 태고림. 문자 그대로 태고부터 내려온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이고, 오래된 만큼 상상하기 힘든 괴물도 많이 살았다.
남대륙의 위쪽 지역 전역에 뿌리를 뻗었다고 해도 될 만큼 면적이 어마어마해서, 함부로 발을 들이면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거물이 언급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모신교는 카미로에서 발을 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들을 돕겠습니까.”
시바의 말과 성직자들의 생각은 거의 일치했다.
고민이 깊어지는 도중에도 전투는 이어졌다. 피스토 곳곳에 숨은 일렉토 조직원들은 게릴라처럼 행동했다.
감정의 골이 워낙 깊다 보니 피스토의 자경단은 카르텔을 살려둘 생각이 없고, 조직원들도 얌전히 죽어줄 마음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우려와 달리 재봉사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고, 피스토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정리되었다.
자경단장이 알라나 수녀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나머지는 자력으로 해결할 테니, 모신교 분들은 다른 곳을 도와주십시오.”
“그럼 가볼게요.”
“무운을 빌겠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얼른 이동해야 했다. 피스토는 카미로 외곽에 있는 작은 도시라 정리가 빨리 끝났지만, 중앙, 그러니까 수도와 인접할수록 전투는 격해졌다.
앨런은 멀어지는 피스토를 한동안 쳐다봤다.
“왜 그러니?”
“사람은 힘을 얻으면 변한다고 하잖아요.”
“본색을 드러내는 거지. 반대로 주위 사람들의 속마음을 확인하려면 내가 약해지면 되고.”
“자경단은 어떻게 될까요?”
“모신교가 있으니 카르텔처럼 막장으로 치닫진 않겠지. 그런데 진짜 재봉사가 배후에 버티고 있으면 어떡하냐?”
“그럼 돌아가야죠.”
10년 전, 어떤 무리가 태고림에서 신기한 나무를 발견했다. 노화 속도가 극단적으로 느려지는 열매가 맺혔다.
태고림은 워낙 거대해서 주변에 끼고 있는 나라도 많았는데, 그중 하나의 독재자가 군대를 출동시켰다. 군대는 태고림을 헤집었고, 산드라는 심기가 불편했는지 직접 나타났다.
삼라만상에는 그때의 생존자가 남긴 영상이 있었다.
“유료네요.”
정보는 힘이자 돈. 이제는 너무 익숙한 일이라 바로 결제를 마쳤다. 정지한 화면이 다시 움직였다.
[으아악!]
비명이 가득했다. 촬영자의 거친 숨소리도 한몫 거들었다.
근육을 꼬아 만든 듯한 촉수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그럴 때마다 군인들이 끌려갔고, 하나로 뭉치며 거대한 살점 골렘으로 탄생했다. 의식이 전부 살아있는 상태로.
[지옥, 지옥이야.]
군대도 나름 저항했다. 마탄, 폭격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으나, 나무 위까지 덩치를 키운 골렘을 막을 순 없었다. 사람을 원료로 재생하니, 애초에 처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짧은 영상은 굉장히 강력한 충격을 선사했다.
“생명공학 쪽도 매혹적인 분야군요.”
“앨런···.”
“물론 잘 사용했을 때요.”
“내가 뭐라고 해서 잘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인 거 아니지?”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죠.”
생명공학 혹은 마법이 강력하고 유용한 분야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일단 그걸 다루는 사람의 몸 자체가 생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쪽도 공부할 생각이니?”
“네.”
생명공학이 마법공학의 일부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공유하는 영역이 많았다.
마력과다증을 생각하면 오히려 관심을 늦게 가졌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앨런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피살이꽃으로 충분할 줄 알았더니···.’
오판이었다. 요화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꽃으로도 마력과다증을 완벽하게 달래긴 어려웠다. 그러니 아직도 불치병 중 하나이리라.
다른 방법이 없다면.
‘내 힘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유리창에 비친 앨런의 눈은 강한 각오를 품고 있었다. 시야에는 구불구불한 도로, 울룩불룩한 언덕, 그 위에서 뛰노는 괴생명체들이 보였다.
당연히 눈빛은 강렬함 대신 경고로 바뀌었다. 가죽과 털 대신 근육이 노출된 생명체는 몬스터 말고는 없었다.
[진행 기준 2시 방향에 적대적 생명체 출현. 키메라로 추정.]
알라나의 통신이 짧게 들려왔다. 다른 차에 탑승한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앨런은 대응하는 대신 눈을 감았다. 지금 탑승한 차는 픽업트럭과 유사하게 생겼고, 짐칸에는 표범과 상자가 앉아있었다. 정신이 상자와 연결되었다.
그 아이가 몸을 낮췄다. 균형을 단단하게 잡자, 몸통에서 기다란 포신이 튀어나왔다.
‘장전해.’
삐
앨런의 명령을 받은 상자가 포신으로 괴생명체를 조준했다.
‘발···.’
퐁!
앨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마탄이 포구를 빠져나갔다. 마탄은 괴생명체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 아래를 향해 불비를 쏟아냈다.
지금 발사한 마탄은 소이탄이면서, 마력을 원료 삼아 불타오르기도 했다. 괴생명체는 불을 붙은 상태에서도 내달렸지만, 차에 근접했을 때는 온몸이 녹아내린 후였다.
다시 통신으로 알라나의 음성이 들렸다.
[키메라로 추정.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무시하고 아바라로 진입···.]
마침 큰 언덕을 돌아서 지나쳤기에 막히는 시야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알라나가 말을 멈췄는지 알 수 있었다.
도시 아바라는 멀리에서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기본이고, 괴상한 살점으로 뒤덮인 건물도 보였다.
그리고 아직 제 기능을 수행하는 군대는 도시를 향해 무기를 조준하고 있었다.
< 키메라(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