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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74화 (174/193)

< 키메라(2) >

이쪽에서 저쪽이 보이면, 저쪽도 이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군대의 대응은 신속했다. 도시를 겨누고 있던 자주포 일부가 회전하고, 비행접시를 닮은 전투용 드론이 날아올랐다.

언덕 위에서 후방을 지키던 몇몇 포대는 아예 도시로 들어가는 도로를 겨냥하고 있기도 했다. 군대가 경계를 풀지 않고 공격을 시작하면 매우 위험했다.

[감속. 서로 실수하는 일 없게 천천히.]

알라나는 일단 차의 속도를 줄이며 조수석 창문을 통해 상반신을 내밀었다. 그래도 군대는 경계를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알라나뿐만 아니라 다른 성직자도 모습을 드러내자, 포신 안쪽에서 응축되던 빛이 사라졌다.

[다행이군요. 처음에는 왜 멈추지 않았는지···.]

앨런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알라나는 정화봉사단을 이끌기에 최적의 인재였지만, 달리 말하면 아주 크고 사나워 보였다.

‘어쩌면 수녀의 옷을 훔쳐 입은 카르텔 조직원으로 생각했을 수도···.’

차의 행렬은 군대가 긴장하지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마중 나온 인원에게 간단한 검문을 받고, 주둔지 한쪽으로 이동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수도승과 수녀를 보면, 다른 모신교인 역시 이곳에 머물고 있음이 확실했다.

작은 천막에서 푸근한 인상의 노인이 나왔다. 알라나가 뛰쳐나가서 그를 가볍게 안았는데, 덩치 차이 때문에 노인이 푹 안긴 모양새가 되었다.

“대니 사제님. 오랜만이에요.”

“어서 오너라.”

“어떻게 된 일이에요? 도시는 왜 저 모양이 됐나요?”

“하나씩 말해줄 테니 진정하거라. 일단 이것도 좀 놓고.”

대니 사제가 알라나의 손을 잡고 천막 안쪽으로 이끌었다. 마치 손녀를 오랜만에 보는 할아버지 같았다. 천막을 열던 대니가 잠시 뒤를 돌아봤다.

“아, 여긴 너무 비좁겠구나. 그냥 밖에서 이야기하자꾸나.”

앨런은 잠시 열린 틈으로 뾰족뾰족한 돌기를 지닌 철퇴를 목격했다. 성직자가 가지고 다닐법한 도구인가 싶을 정도로 흉악하게 생겼다.

대니는 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위엄보다는 친근함이 물씬 풍기는 행위였다.

“일단 연락을 못 한 이유부터 설명하마. 도시, 보이지?”

“연기와 이상한 건물이 보이네요.”

“살점으로 뒤덮인 건물들이 광범위 통신 방해 파동을 내뿜는단다.”

“아, 그래서 연락이 안 됐군요. 아바라가 이렇게 됐다는 건 설마 수도도?”

알라나가 목소리를 낮추자, 대니가 고개를 저었다. 주변을 둘러보라는 듯 손을 휘젓기도 했다.

멀리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노후화된 장비가 생각보다 많았고, 군인의 기강도 해이해 보였다.

“수도만은 지키고 있지.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카미로 정부는 예전부터 나라가 고통에 신음해도 수도만은 철저히 수호했다. 하지만 사태가 커지니 주변 도시로 군대를 보낼 수밖에.

알라나가 찡그린 표정으로 카미로 정부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하···. 그 사람들은 대체···. 그나저나 왜 대치 중이죠?”

“아직 도시에 갇힌 시민들이 있단다.”

“군대는요?”

“안전하게 포격만 하고 싶다고 하더구나.”

“국민이 있는데 도시를 밀어버리겠다고요?”

“평범한 현상은 아니니 이해는 한다만···.”

“이해라뇨? 그러시면 안 됩니다.”

“급하기는. 일단 우리와 자경단이 반대해서 공격은 미뤘단다.”

피스토와 마찬가지로 아바라에도 자경단이 있었다. 최후에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뿐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남대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솔도스가 괜찮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마력은 욕망을 부추기기에 온갖 사건·사고가 터졌다. 최근에도 마탄 난사 사건 때문에 떠들썩했다.

앨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도시를 관찰했다. 한동안 그러고 있으니, 시바가 조용히 물었다.

“앨런 형제님.”

“네.”

“혹시 저 끔찍한 살덩어리의 정체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생명공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살펴볼 여지는 있었다. 추측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왼쪽 눈이 초점을 변경하자, 도시가 더욱 크게 보였다. 끔찍한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심장처럼 맥동하거나, 자극을 받은 근육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정체불명의 점액질로 뒤덮여있기도 했다.

문제는 건물 안에서 아까 마탄으로 태워버린 괴물들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사람, 동물, 몬스터 등 온갖 형상을 취했는데, 빨간 근육이 외부로 드러나 있었다.

“적귀 같네요.”

“그게 뭐니?”

“저번에 설명해 드렸잖아요.”

“언제?”

“오로스 교수님 따라서 유적을 갔을 때 만났던 생체 갑옷이요.”

“아, 기억난다. 파괴 본능만 남아서 탐험가와 학생을 습격하던 것들?”

“본질은 다르긴 합니다. 적귀는 신체를 보조하는 갑옷이고, 저 괴물들은 몸 전체가 그것처럼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도시를 태워버리고 싶긴 하네. 설마 저기 들어가는 거냐? 아니겠지?”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테일러가 입술을 다물자마자, 이야기를 끝낸 알라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맞습니다.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일렉토 카르텔이 똥을 싸질러 놓은 도시에 들어가자고? 잠깐, 그 전에 살점과 괴물의 정체는 뭔데?”

“저번에 추측했던 대로 재봉사, 아니면 제자의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기엔 아직 고립된 시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앨런이 나섰다.

“저 건물, 부화장이라고 명명하죠. 부화장을 부수면 군대가 진입한다고 했나요?”

“어떻게 알았죠?”

“추측이요.”

앨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머리 회전이 빠르기도 하지만, 부리는 거미들은 훌륭한 첩보원이기도 했다.

담배를 피우는 병사들이 하는 욕, 지휘관 막사에서 뚜렷하게 들리는 단어 등을 조합하면 얼개가 어느 정도 맞춰졌다.

군대는 도시의 참상이 일렉토의 수작이라 판단했다. 어떻게든 군대를 소모시켜서 자신들이 전략적 우위에 서려는. 그래서 안전하게 포격으로 밀어버리려 했는데, 모신교와 자경단이 반대한 것이다.

물론 언제까지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어서, 잠시뿐인 유예였다.

마침 대니 사제가 철퇴를 들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미처 닦지 못한 붉은 체액은 점성을 지녔다. 최근에도 도시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의미였다.

“알라나, 일단 우리는 먼저 들어가마.”

“잠도 안 주무셨다면서요.”

“잠은 나중에 실컷 잘 수 있단다.”

대니 사제가 움직이려 하자,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던 성직자들과 자경단이 몸을 일으켰다.

앨런은 옆을 지나가는 대니에게 물었다.

“지금 사람들 구하러 가시는 거죠? 그들은 어디로 가나요?”

“일단 한꺼번에 탈출시킨 후, 멀쩡한 도시로 피난시킨단다.”

“카르텔 조직원이 섞여 있으면요?”

“그런 걱정을 하다가 다른 사람을 구할 때를 놓칠 수도 있지.”

대니는 도와달라는 말도, 강요도 하지 않고 떠나갔다. 알라나도 사랑, 평화 같은 단어를 내뱉는 정화봉사단을 이끌고 도시로 향했다.

앨런이 그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테일러가 옆에 붙었다. 그는 허리춤에 끼워둔 마나소드를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할 거니?”

“저 괴물들. 흥미로운 연구 주제네요.”

“그래?”

테일러가 피식 웃었다. 너답다는 말투였다. 혼자라도 튀어 나갈 기색이던 시바도 한마디 거들었다.

“앨런 형제님, 믿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이유만 있진 않았다. 결국, 본인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만,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상황이 더 좋지 않을까.

‘랑카에서 탈출할 때도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아니, 달아날 필요가 없었다면···.’

앨런은 헬멧을 두드렸다. 통통 소리가 들리며 진동이 느껴지니 잡념이 깊은 곳으로 잠수했다.

어느새 도시로 진입했다. 부서진 도로, 휘날리는 재, 사방에서 들리는 괴성이 손님을 맞이했다.

테일러가 인상을 찌푸렸다.

“역겨운 냄새. 앨런, 마스크 있니?”

앨런이 딱히 명령하기도 전에 상자가 서랍에서 식물 마스크를 꺼냈다. 덕분에 테일러와 시바의 미간에서 주름이 사라졌다.

“대니 사제님은 중앙, 알라나 수녀님은 왼쪽으로 갔으니 우리는 오른쪽으로 가죠.”

“천국 갈 수 있겠지?”

“테일러 형제님이라면 가능합니다.”

“난 모신교도 안 믿는데.”

“어머님은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 충분합니다.”

“집중하세요. 마침 근처에 부화장이 하나 있네요.”

앨런은 거미의 눈으로 동태를 살폈다. 대니와 알라나가 먼저 주의를 끈 덕분인지, 부화장을 지키는 괴물은 극소수였다.

원래는 5층 건물로 추정되던 부화장에 도착하자, 표면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적의 존재를 인지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끄아아아악!

내부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리더니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근육 해부 표본과 닮은 놈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광경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빠르게 등장한 그들을 반기는 건 주먹 크기의 마탄. 얇은 금속판 안쪽에서 화염이 튀어나왔다.

끼아악!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잿더미로 변했다. 앨런은 부화장에도 마탄을 퍼부었다.

“연구한다며?”

“아직 부화장은 많이 남았으니까요.”

“마탄이 원래 저렇게 위력적이었나?”

“설원에서 얻은 마정석을 갈아 넣었어요. 마력회로의 형태나 구성 성분도 개선했고요.”

“마정석을 넣었다고? 어쩐지 강하더라. 저거 시중에서 사려면 얼마쯤 하냐?”

“한 발에 100만 코인 정도일걸요.”

“돈으로 때린다는 말이네.”

시중가가 그렇다는 의미였다. 앨런은 제작자니 재료비만 따지면 훨씬 싸졌다.

부화장 하나를 완전히 불태웠다. 마치 거대한 숯 하나가 우뚝 서 있는듯한 모양이 되었다.

보람을 느끼기도 전에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그 진동이 발밑을 덜덜 떨게 했다. 실제로 소리의 진원은 지하이기도 했다.

쾅!

거대하고 길쭉한 녀석이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지렁이를 닮은 괴물이 빠져나온 하수구는 살점으로 가득했다.

“시발!”

테일러가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앨런이 봐도 끔찍한 광경이긴 했다. 오히려 비속어 한 마디가 심정을 잘 축약했다고 할 수 있었다.

“개불이잖아!”

“그게 뭐죠?”

“철수 놈이 나한테 먹이려고 했던 기괴한 생물 있어.”

거대한 개불이 앨런을 보더니 말단을 움찔거렸다. 마치 무언가를 뱉으려고 오물거리는 입과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짙은 노란 액체를 뿜어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앨런은 [공간간섭]으로 액체를 튕겨냈다. 노랗게 물든 바닥에서 지지직 소리와 함께 연기도 피어올랐다.

개불이 다시 입을 오물거리자, 표범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벌렸다. 그 아이의 목구멍에서 고열의 붉은 광선이 뿜어졌다. 쏟아지려는 액체를 증발시키며 개불의 머리와 몸통을 꿰뚫었다.

통로가 완전히 익어버려서 핏방울이 보이지도 않았다. 뻥 뚫린 구멍을 통해 반대편이 보이기도 했다.

“생김새만 징그러운데.”

“일단 피하죠. 어서요.”

테일러와 시바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앨런에 대한 믿음과 왠지 모를 찜찜함 때문에.

기우가 현실이 되었다. 먼저 처리한 개불보다 약간 작은, 4m 정도 길이의 괴물들이 하수구에서 국수 면발처럼 쏟아져 나왔다.

“씨빨!”

뒤를 슬쩍 바라본 테일러의 욕설 발음이 더 강해졌다. 노란 액체 좀 뒤집어쓴다고 바로 녹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산성 물질로 샤워하는 상황은 사양이었다.

앨런은 일행을 이끌었다. 거미를 사방에 풀어놨기에 처음 온 도시라도 손바닥 보듯 길을 훤히 알고 있었다.

공사장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개불 말고도 다른 괴물도 합류했다. 녀석들은 건물이나 부서진 차량에 몸을 숨기며 접근했다.

시바가 곰을 닮은 괴물을 어퍼컷으로 띄웠고, 테일러가 샷건으로 마무리했다.

“차라리 우리가 어그로 끌어서 다른 쪽을 편하게 만들자.”

“좋은 생각입니다. 형제님.”

“더 괜찮은 방법이 있어요.”

“뭔데?”

괴물을 처리하느라 바쁜 테일러는 앨런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

쿵!

대답은 묵직한 소리로 되돌아왔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묵직한 철근이 개불을 꿰뚫었고, 조립형 콘크리트 덩어리가 괴물들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공사장 가림막이 찢어지며 거대한 덩치들이 나타났다. 사람의 형태를 본뜬 공사용 골렘이었다. 단순 노동만 가능했지만, 뿜어내는 힘만은 대단했다.

골렘들의 조종석에는 거미가 한 마리씩 있었다. 배에서 뽑아낸 케이블로 골렘과 연결했고, 앨런이 그것들을 조율했다.

“괜찮겠어?”

“······네.”

다중 조종하느라 반응이 느려졌으나 아무 상관없었다. 작은 지휘자를 따르는 거대한 악단 구성원이 괴물들을 짓뭉개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는 둔탁한 소리, 치덕대는 징그러운 소리가 한데 어울려 합주곡을 만들었다.

< 키메라(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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