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메라(3) >
앨런은 골렘 5형제를 조종했다. 자신까지 더하면 몸이 6개니, 시야만 6개요, 다뤄야 할 팔다리는 24개에 육박했다.
덕분에 머릿속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지만, 앨런은 그것마저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수라라는 존재가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뇌 운동 강도가 굉장하네요.”
“감상은 그게 끝? 나는 하나 조종하기도 벅찰 것 같은데.”
“생각보다 할 만해요.”
“너나 그렇겠지.”
조종하느라 어눌했던 말투도 언제부터인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원래부터 남들과 달랐던 뇌에 테일러 수련법이 날개를 달아줬다.
마침 골렘 1호기를 향해 날아오는 촉수 공격. 1호기는 땅을 손으로 짚고 구르며 자리에서 이탈했다. 적의 공격이 많아지고 복잡해질수록 뇌도 뻐근해졌다.
‘오로스 교수님은 뇌도 근육처럼 취급하며 단련해야 한다고 하던데···.’
익숙해지니 평소처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앨런은 헬멧을 두드려서 집중력을 고조했다.
골렘은 노동을 상정하고 만들었기에 움직임은 어정쩡하나 파괴력 하나만은 발군이었다. 어색한 동작도 앨런이 조종하는 다른 골렘이 채워줬다.
한 바퀴 구른 1호기는 양팔을 땅에 짚고 쪼그려 앉은 자세가 되었다.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마침 앨런이 하려는 행위도 똑같았다.
양팔이 상체를 띄우고, 양다리가 대지를 밀어냈다. 속도는 약간 느릴지라도 수십 톤에 달하는 골렘이 거칠게 움직이니, 감히 앞을 막을 존재가 없었다.
작은 괴물이 앞을 막으면 짓밟고, 좀 큰 녀석이 나타나면 어깨로 들이받았다. 1호기의 뒤로 끈적한 레드카펫이 길게 깔렸다.
하지만 적은 많고, 기세는 영원할 수 없다. 1호기가 느려지자, 괴물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상체를 약간 숙이고 있던 1호기의 눈, 정확히 말하면 앨런의 시야에 부러진 전봇대가 보였다.
한 바퀴 굴러서 작은 괴물들을 깔아뭉개고, 전봇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길쭉한 무기를 손에 쥐었으니 남은 일은 휘두르는 것뿐.
콰직!
뿔을 앞세우고 돌진하던 소 괴물들의 목이 짓뭉개졌다. 앞다리가 크게 꺾이고, 거친 바닥에 엉켜서 나뒹굴었다.
평소와 다른 운동을 하니, 관절 가동부가 비명을 질렀다. 접합부에서는 윤활유가 질질 새어 나오기도 했다.
1호기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괴물들이 등짝을 보려고 달려들었다 그때 나타난 2호기. 어딘가에서 뜯어온 철판으로 공격을 막고, 때로는 휘둘러서 적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부서진 지면 속에서 고개를 쏙 내민 개불들이 입을 오물거렸다. 산성 용액의 전조였다. 고립된 1, 2호기를 녹여버릴 생각이리라.
고립? 그럴 리가.
육중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전장 자체가 워낙 혼란스러워서 개불들의 판단은 느렸다. 입을 열려다 말고 옆을 쳐다봤을 때는 이미 덤프트럭이 접근한 후였다.
“징그러운 새끼들!”
테일러는 어딘가에서 가져온 중장비로 적을 밀어버렸다. 전복의 위험이나 충돌로 인한 부상 따위는 머릿속에서 날려버린 지 오래였다.
볼링핀 밀어버리듯 움직이던 트럭도 위기에 직면했다. 바퀴 사이에 끼인 괴물 때문에 허리 얇은 고치가 기우뚱거렸다.
거기에 쐐기를 박으려고 고릴라를 닮은 괴물이 옆에서 들이박았다. 비정상적으로 부푼 팔은 장식이 아니라는 듯 굉장한 힘을 뽐냈다.
그러나 테일러에게는 탈출할 능력이 얼마든지 있었다. 운전석 차 문을 팔꿈치로 쳐서 날려버리고, 밖으로 뛰어올랐다.
허공에 뜬 테일러를 노리는 개불. 녀석들이 산성액을 뱉어내기 전에 시바가 동아줄을 내려, 아니, 던져줬다.
“잡았어!”
테일러가 줄을 낚아채자마자, 시바가 강하게 당겼다. 테일러의 몸이 대각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원래 있던 자리를 독한 액체가 채웠다.
적의 공격이 무효로 돌아갔으니, 이제는 앨런의 차례였다. 혼란이 가득한 전장도 자세히 보면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네가 때렸으니, 나도 때린다. 물론 체급이 비슷한 경우에.
묵직한 등짐을 진 3호기가 앞으로 나섰다. 등짐에 달린 케이블은 손에 들린 무언가와 연결되어있었다. 케이블이 꿀렁거리더니 손에서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불꽃은 마나 커터의 작용. 원래는 저런 크기와 길이가 아니나, 지금 상황에서 안전 리미터 따위는 필요 없었다.
3호기는 과출력 커터를 유려하게 휘둘렀다. 노동용 골렘이 그러고 있으니 매우 어색했지만, 시온을 아는 사람이 본다면 무언가 동질감을 느낄 장면이었다.
3호기가 칼을 크게 한 번 휘두르면, 주변이 괴물의 붉은 체액으로 물들었다.
4, 5호기는 소란을 감지하고 몰려드는 괴물들을 막았다. 이들은 철근을 투창 던지듯 발사했고, 그럴 때마다 괴물들은 곤충 표본처럼 변했다.
몰려든 괴물을 해치운 앨런 일행은 공사장을 빠져나갔다. 붉게 도장된 골렘이 그 뒤를 따랐다.
거리를 걷던 앨런이 우뚝 멈춰 섰다. 마침 시야에 은행이 보였다.
사람에 의한 소요 사태라면 털려도 진즉에 털렸을 테지만, 괴물들은 금은보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들어가죠.”
“앨런···.”
“마석을 찾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그 소리였어? 소유권 이전을 하려는 줄 알았지.”
“테일러 형제님.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귀의 눈에는 마귀만 보이고, 선인의 눈에는 선인만 보인다고요.”
“어허.”
테일러가 인상을 써도, 시바는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자신의 행동 양식을 타인에게 대입한다는 뜻입니다.”
“아, 알았어. 그만해.”
앨런은 은행에 벌써 들어간 상태였고, 묘하게 신나 보였다. 그리고 밖에서 망을 보던 시바는 저 멀리에서 솟아오르는 신호탄을 발견했다.
*
해가 점점 떨어졌다. 대니의 철퇴에서도 붉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부화장을 파괴할 때마다 내부를 똑똑히 봤다, 시민들이 그 안에 있었다.
탈출하지 못한 시민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쌓여있었다.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똑똑해 보이는 형제님은 부화장이라고 했지만···.’
대니의 눈에는 재조립공장으로 보였다. 지금 달려드는 괴물들은 본래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몸뚱이만.
‘사람으로 키메라를 만들다니.’
철퇴 손잡이를 부러질 듯이 꽉 움켜쥐었다. 부화장을 부술 때마다 일렉토 카르텔과 그 배후에 있을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졌다.
분을 삭이는 대니의 눈에 신호탄이 보였다. 통신 방해 때문에 저런 식으로 연락을 취했다.
“사제님, 생존자 무리를 발견했나 봅니다.”
“가자꾸나.”
대니는 자신을 따르는 성직자 및 자경단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괴물 몇 무리를 더 격파하자, 단순한 직사각형 모양의 학교가 보였다.
운동장과 내부는 점령당한 지 오래였지만, 저항하는 시민들이 아직 옥상에 남아있었다.
남자들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키메라를 발로 차고, 여자들은 대걸레 자루라도 사용해서 놈들을 밀어냈다.
시민들은 얌전히 죽어줄 생각 없었고, 모신교의 성직자들도 저들이 괴물의 먹이가 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운동장에 발을 디딘 대니가 입을 벌렸다.
“오거라!!!”
큰 소리에 괴물의 이목이 쏠렸다. 달려오는 괴물, 점점 커지는 철퇴의 빛. 대니는 그대로 철퇴를 내리쳤다.
콰직!
철퇴에 닿지도 않은 괴물마저 으스러졌다. 철퇴는 기껏해야 1m보다 약간 긴데, 공격 범위는 신기하게도 몇 배나 더 길쭉했다.
대니는 단숨에 괴물의 목숨을 끊었다. 묶여있을지도 모를 영혼을 해방해서 어머님의 품으로 보내려고.
키메라에게 잘못은 없었다.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일렉토. 도대체 목적이 무엇이냐.’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되새기며 철퇴를 기계적으로 휘둘렀다. 어느새 괴물들은 사라지고, 옥상에서 손을 흔드는 시민들만 남았다. 성직자들은 빠르게 올라가서 부상자를 살폈다.
대니는 치료가 영 서툴렀다. 주변을 감시하고 있으니, 수녀 하나가 뒤로 다가왔다.
“생존자 80명. 그중 거동이 불편한 시민은 25명입니다.”
“스스로 걸을 만큼만 치료하거라.”
“알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부상자를 부축하느라 성직자의 손이 비면 더 위험했다. 싸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달아날 순 있어야 했다.
한참 동안 치료 및 정비에 집중했다. 철퇴에 달라붙은 찌꺼기를 떼어내던 대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뿔싸···.’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자신이 동요하면 뒤를 따르는 이들마저 불안하게 만들 테니.
하지만 그런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대니와 같은 방향을 보던 사람들이 탄식을 토했다.
“아···.”
“저건 도대체···.”
안 그래도 사위가 어두워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이라는 음영이 짙게 내려앉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까 학교를 포위하던 괴물의 규모를 귀엽게 만들 정도의 적들이 몰려들었다. 숫자를 도저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파괴된 건물에서 기어 나오고, 하수구에서 빠져나와 질척한 발을 내디디고, 날개 달린 것들은 하늘을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어제까지는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많은 수가 갑자기 들이닥친다? 심지어 시민들도 있는데?
대니는 함정임을 깨달았다. 시민들은 용감히 버틴 게 아니라, 누군가가 마련해둔 미끼였다. 하지만 성직자로서, 사람으로서 물 수밖에 없었다.
검붉은 물결이 끝없이 밀려오고, 해는 완전히 떨어졌다. 도시는 제 기능을 못 하니 당연히 어둠에 잠겼다.
암흑 속에서 괴물들의 비명만 똑똑히 들렸다. 제한된 시야, 증폭된 상상력이 불안함을 부추겼다.
“지옥이야!”
어떤 시민이 외쳤다. 대니도 일정 부분 동감했다. 그만큼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적들은 힘의 분산을 위해 시민들을 남겨놨겠지만, 대니에겐 오히려 마음이 끓어오르는 제약이었다.
“가자꾸나!”
““어머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신다!””
대니가 먼저 외치고, 성직자들이 전의를 다졌다. 그들이 뿜어내는 하얀 빛이 뭉쳐서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다. 덜덜 떨던 시민들도 빛 안에서는 그나마 용기를 되찾았다.
성직자들이 횃불이라면, 괴물들은 날아드는 불나방이었다. 쉽게 죽어주진 않겠지만 일단 모양새는 그랬다.
괴물들이 학교의 건물을 타고 올라오려는 순간, 성직자들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솟아오른 때.
새로운 등불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불을 밝힌 승용차 하나가 괴물 군단의 뒤에서 나타났다. 옥상에 있는 대니의 눈에는 그 광경이 똑똑히 보였다.
작게 보이는 승용차는 그대로 돌진했고, 폭발했다.
쿠르릉!
근처의 생명이 한 줌 핏물로 변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괴물도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게 끝이 아니라, 관절이 이리저리 꺾이고, 피부도 불타올랐다.
‘폭탄? 아니야 이건 마력의 반발에 의한 폭발이다.’
경험 많은 대니가 답에 근접한 추측을 하는 사이, 차가 나타난 방향이 더 밝아졌다. 아까처럼 불을 밝힌 차들이 건물 사이에서 등장했다.
펑펑펑!
괴물들이 뭉쳐있던 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게다가 도시 곳곳, 부화장이 있던 건물에도 화염이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군대가 약속을 깨고 포격을 가하나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어쨌든 괴물이 쓸려나가니 성직자들의 사기가 높게 치솟았다.
*
앨런은 어떤 건물 옥상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바이저에 불타는 도시의 풍경이 비쳤다.
“좋네요.”
“뭐가?”
“괴물 청소요.”
앨런은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테일러는 알고 있었다.
아바라는 무슨 짓을 해도 부담 없는 실험장이었다. 마음껏 부숴도 되고, 그 과정에서 온갖 데이터를 습득할 수 있었다.
테일러의 짐작대로 앨런은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그 어디에서 건물을 마음대로 무너트리겠는가. 은행에서 훔친 마석 덕분에, 물론 좋은 일을 위해, 예산도 빵빵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본분을 잊진 않았다.
시민 구조와 적 말살.
앨런은 혼란 속에서도 정교한 움직임을 보이는 무리를 발견했다.
< 키메라(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