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76화 (176/193)

< 키메라(4) >

본능적인 움직임 속에 간간이 섞여 있는 특이함. 다른 사람이 봤다면 눈치 못 챌 정도의 차이지만 앨런에겐 보였다. 계속 주시하니 몇몇 괴물의 행동 패턴은 동류와 확실히 달랐다.

일반적인 괴물은 불을 밝힌 차가 나타나면 바로 달려드는데, 제자리에 가만히 있거나 다른 괴물을 방패로 삼아서 버텼다.

하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날개 달린 키메라들이 짙은 음영을 그려내며 비행했다. 대부분은 학교 옥상으로 향했지만, 극히 일부는 주위만 빙빙 돌았다.

‘관찰이 목적인가?’

현재 아바라는 광범위 통신 재밍이 걸린 상태라 도시 어딘가에 숨어있는 적들도 같은 제약을 받을 터.

“수상한 키메라가 있네요. 따라가 볼까요?”

“저 위에 있는 것들?”

“네.”

“학교의 생존자랑 모신교 사람들은 괜찮으려나.”

“조금 전의 지원으로 키메라가 꽤 많이 쓸려나갔고, 부화장도 10개나 불태웠죠. 대니 사제님은 심도 5로 추정되니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앨런 형제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연의 마력이 몸에 부딪혔을 때 얼마나 강하게 튀어나오는가, 자세는 어떤가, 안광은 얼마나 깊은가 등 여러 요소로 판단했죠.”

“괜찮은 방법이군요.”

가장 좋은 방식은 몸에 손을 대고 마나하트를 조사하는 것이지만, 허락이 없이 그런다면 싸우자는 의미였다. 애초에 누가 마나하트를 들여다보는 행위를 아주 싫어하기도 했다.

앨런의 눈이 어둠을 꿰뚫고 비행 키메라를 관찰했다. 굉장히 징그러운 외형이었다. 다른 괴물과 똑같은 새빨간 근육 몸체에 박쥐 날개가 달려있는데, 피막이 꼭.

“사람 피부 같네요.”

“맞을걸. 부화장 안에 쌓인 시체들 기억나지?”

“네.”

“역겨운 놈들이야. 처음에는 카르텔이 흑마법사를 고용한 줄 알았는데, 이젠 확실해. 어떤 식으로든 재봉사와 연결되어있어.”

이런 대규모의 마법을 펼쳐서 도시를 망가트리려면 매우 강력한 마법이 필요했다. 사용자의 수준 또한 높다는 뜻인데, 재봉사 말고 다른 범죄자가 또 있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만약에 새로운 놈이면 더 심각하지. 세계적인 미친놈이 하나 늘어났다는 뜻이니까.”

“일렉토 카르텔도 이런 식의 결말은 원하지 않겠죠.”

도시 하나가 망가졌다. 카르텔은 손님과 인적자원이 필요했고, 카르텔 구성원도 결국 사람이라 사회적 인프라에 기대기도 했다.

그런데 수틀렸다고 도시를 날려버린다? 카르텔 자체의 판단이라면 어차피 수뇌부가 멍청이니 곧 망할 테고, 아니라면 그들은 꼭두각시일 확률이 높았다.

키메라 군단의 동태를 살피던 시바도 대화에 참여했다.

“순혈 엘프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별종도 가끔 튀어나오는군요. 저런 끔찍한 괴물을 만든다니···.”

“선입견입니다. 순혈 엘프도 사람처럼 누구에게서 태어났냐, 주변 환경은 어떻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이제 슬슬 끝나가는군요.”

폭탄차의 행렬은 키메라 대군 상당수를 길동무로 삼았다. 마침 마지막 차가 폭발하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아직 살아남는 키메라가 꽤 있지만, 저 정도는 모신교와 자경단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냉정하게 말해서 저들도 버거워한다면, 감히 누군가를 구한다고 도시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몸도 돌보지 못하는데 감히 누구를 도운단 말인가.

전장을 빙글빙글 돌던 비행 키메라 중 일부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불이 꺼진 도시,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쳐다보는 별들 그리고 슥 날아가는 검은 실루엣.

앨런의 눈이 키메라를 쫓았다. 도시 기능이 멈춘 상태로 밤이 되면 앞이 아예 안 보일 것 같았지만, 사물 구별이 생각보단 쉬웠다. 인공 안구와 마력수련법 덕분이기도 하고.

“우리도 움직이죠.”

추적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키메라는 복잡한 도시를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만, 앨런 일행은 은신을 유지해야 해서 운신에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게다가 원래 날개 달린 것들은 빠르기도 했다. 키메라는 금방 사라졌고,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할 수 있었다.

높아 봐야 5층 정도의 건물만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모양새나 몰려있는 생활편의 시설을 보면, 거주 구역 같았다.

앨런은 구역 끄트머리의 건물 옥상에 발을 디뎠다.

“부화장이 없는데 이 근방에서 자취를 감췄군요.”

“수상하긴 해. 어떻게 해? 다 뒤져?”

“아뇨.”

앨런이 손짓하자 상자가 사방으로 마탄을 발사했다. 은밀히 그리고 천천히 비행하며 목적지에 안착했다.

[탐지]를 기본으로 [은밀], [확장] 등을 더한 마탄은 주변의 구조를 읽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발사하는 레이더였다.

앨런의 바이저에 주변 광경이 새겨졌다. 다만 육안으로 보는 모습과는 좀 달랐다. 폴리곤 덩어리가 엮이며 구역을 입체적으로 보여줬고, 건물의 내부도 훤히 보였다.

좌우로 움직이던 앨런의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밑에는 암흑만 가득했다. 지하가 새까맣다는 뜻은 마력의 파장이 못 들어간다는 의미였다.

“밑에 무언가가 있네요.”

“원래 지하에 무언가를 숨기기 좋지. 브레이커도 보물고나 비밀 정보 보관소를 땅속에 처박아 놨거든.”

앨런 일행은 지상으로 내려갔다. 다른 곳은 키메라가 득실거리는데 여기는 조용하니 무언가 이상했다. 물론 참사의 흔적이 존재하긴 했다.

누군가 타고 가려다 실패했는지 운전석 문 유리에 금이 간 차, 발자국 모양이 남아있는 트롤 인형, 문짝이 통째로 뜯겨나간 가게 등등.

앨런은 오른쪽 눈으로 황폐해진 도시를 봤고, 왼쪽 눈으로는 아래로 내려갈 길을 찾았다. 그건 생각보다 쉬웠다.

빌라 하나를 지나자, 커다란 싱크홀이 보였다. 검은 지역과 연결되어있기도 하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푸드덕!

싱크홀에서 빠져나오는 비행 키메라였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날개를 열심히 움직이며 상공으로 향했다.

“입구는 저기 말고 없냐? 바로 들킬 것 같은데.”

“거미 먼저 보내볼게요.”

“통신 재밍 걸렸다며.”

“재밍도 본질은 마력의 파장이니 우회로가 있어요. 게다가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도 아니니 괜찮을 거예요.”

“아, 미궁에서도 운용하니 그리 어렵진 않겠네.”

앨런은 통신을 방해하는 숲에서도 멀쩡히 거미를 사용했다. 테일러는 그런 장면이 너무 익숙해서 앨런을 평범한 마법공학자의 기준으로 생각할 뻔했다.

앨런 일행은 근처 건물에 몸을 숨겼고, 거미는 싱크홀 벽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갔다. 통신 재밍 때문에 보내오는 영상이 많이 흐렸고, 노이즈가 자주 발생했다.

싱크홀 바닥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점액, 살점 등 부화장을 이루던 물질이 하나도 없었다.

“악당도 집은 깨끗하게 쓰는 법이지. 키메라가 끼에엑 거리며 튀어나오면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잘걸.”

“작업공간과 생활공간은 분리하는 게 맞죠.”

앨런은 일단 거미를 멈춰두고 상황을 살폈다. 싱크홀 아래에 존재하는 통로는 3개여서 어디로 먼저 들어갈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12시와 4시 통로에서 비행 키메라가 자주 빠져나왔다. 8시 통로는 매우 조용했는데, 가끔 정찰을 마친듯한 키메라가 들어갔다가 얼마 후에 다시 나오곤 했다.

앨런은 8시 통로에 초점을 맞췄다.

“저기 같네요. 다른 쪽은 지하의 부화장과 연결된 통로 같고요.”

“하긴, 회장실을 직원이 들락날락하는 장소에 두진 않지.”

다시 거미가 전진했다. 천장에 딱 붙어있기도 했고, 문어처럼 주변과 동화된 상태라, 키메라가 바로 밑을 지나가도 눈치채지 못했다.

앨런의 선택이 옳았는지, 통로에는 인위적인 흔적이 많이 보였다. 무너지지 않게 세운 지지대, 천장에 달린 마석등, 키메라가 흘린 점액을 청소하는 오토마톤 등등.

마침내 홀과 비슷한 장소에서 사람을 발견했다. 덩치 크고 험악하게 생긴 걸 보면 카르텔 조직원으로 보였다.

“하, 시발. 이거 맞냐?”

“좀 닥쳐. 한탄만 도대체 몇 번째야?”

“아니, 너도 생각해봐. 아바라가 날아갔어. 이거 복원되겠냐?”

“도시 하나 날아간 게 뭐 대수라고.”

“아니, 병신아. 시장 하나가 없어졌잖아. 상납금이랑 수입은 어떻게 할 건데.”

이야기를 듣던 앨런 일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인명 및 재산 피해에 대해 걱정하는 줄 알았더니, 자신의 돈줄에나 관심이 있었다.

시바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장작이 필요합니다.”

“왜?”

“불로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님도 저 대화를 들었다면 회초리 대신 채찍을 들 겁니다.”

“앨런이 하는 짓도 심란한데, 너까지 왜 이래?”

카르텔 조직원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수입? 어차피 수출로 먹고사니 괜찮아. 이런 작은 도시보다 넓은 세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항구나 국경 근처 도시만 멀쩡하면 돼.”

“하긴. 그래도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줄은 몰랐네. 왜 그랬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행여나 궁금하다고 저쪽으로 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

“호기심 많은 몇 놈 죽은 건 나도 알아.”

낄낄대던 조직원이 홀 한쪽의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히 다른 통로와 생김새부터 달랐다. 입구에 그려진 룬문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앨런은 룬문자와 마법진을 눈에 담았다. 보안의 수준이 높아서 거미로는 통과하기 힘들어 보였다.

“어렵겠네요. 그냥 날려버리죠.”

“갑자기 결과가 왜 그렇게 도출되는데?”

“그게 제일 간단하잖아요. 대규모 마법을 펼칠 마법사라면 준비하기 전에 공격해야죠.”

“그러다 재봉사라도 튀어나오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군대가 도시를 포위하고 있지도 못했겠죠.”

신중함도 좋지만, 때로는 과감함이 필요하기도 했다. 앨런은 지하를 통째로 무너트려서 카르텔 조직원, 키메라 그리고 마법사까지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열어.”

상자가 주인의 말대로 서랍을 열었다. 공간 확장이 적용된 서랍에서 거미가 계속 튀어나왔다. 급하게 제작한 거미라 형태는 조잡했지만, 배에 달린 마석 폭발물은 진짜였다.

이제부터는 속도 싸움이었다. 거미 하나라면 몰라도, 이렇게 많은 수가 우르르 몰려가면 당연히 들킬 테니까.

앨런이 손가락을 튕기자 폭발 거미 군대가 전진했다. 싱크홀 벽면 일부가 거미로 가득 찼다.

정찰 거미로 그 광경을 목격한 테일러가 미간을 좁혔다.

“분명 우리 편인데, 이렇게 보니까 좀 징그럽네.”

“생물도 아니고 기계잖아요.”

“느낌상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마석 좀 남았냐?”

“아뇨.”

“그래···.”

“형제님이 왜 아쉬워하십니까? 아바라의 은행에서 얻었으니 아바라를 위해 사용해야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내가 언제?”

“메이즈시티에 돌아가면 저랑 고해성사나 한 번 하시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럴 일 없다.”

지상은 조용했지만, 지하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홀에서 농땡이를 부리던 카르텔 조직원들은 다각다각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또 키메라야?”

“좀 닥쳐봐. ···소리가 좀 다른데? 잠깐, 기계 거미?”

거미의 배 부분은 위험한 빛으로 반짝거리기도 했다. 그들은 대번에 위기를 감지했다.

“적이다!”

하지만 이미 침입을 허용한 상황. 천장에 매달려 있던 거미가 조직원의 얼굴로 뛰어내렸다.

“모두 정신 차리고 읍!”

딱 달라붙은 거미가 입을 막았다. 조직원이 떼어내려고 손을 뻗었지만.

펑!

폭발이 먼저였다. 그것을 계기로 사방에 퍼져있던 거미가 화염의 꽃을 피워냈다.

조직원과 함께 폭사하고, 키메라에게 일부러 먹혀서 터지고, 지지대를 망가트리기도 했다. 강렬한 충격에 지반이 덜덜 떨렸다.

“우리도 좀 위험한 거 같은데?”

“맞아요.”

“그럼 태평한 소리 할 때가 아니라 물러나야지!”

앨런 일행이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다. 몇 걸음 내디디기도 전에 대지가 비명을 토해냈다.

쿠르릉!

싱크홀을 중심으로 건물들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지상의 모든 것이 지하로 쏟아져 내렸다.

“생각보다 지반이 약했나 봐요.”

“뒤는 그만 보고 일단 달려!”

폭발로 인해 촉발된 지반 붕괴. 이것도 지진의 일종이라 볼 수 있으니, 자연이 지닌 위력은 과연 굉장했다.

그나마 안전한 장소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며,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흙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먼지를 빠르게 날려 보냈다.

“마법사도 떡이 됐으려나?”

“아뇨. 정찰 거미를 폭발의 순간에 내부로 들여보냈는데 공간 이동으로 자취를 감췄어요.”

앨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인형이 저 멀리에 불쑥 솟아났다. 마법사로 추정되는 존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앨런과 눈이 마주쳤다. 착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봤다.

지잉!

앨런의 왼쪽 눈이 무언가와 공명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스승······. 아니, 아니군.]

< 키메라(4)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