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로마아(3) >
컨테이너 투하는 꽤 강력한 공격이다. 안에 상품도 가득 들어있어서 무게가 상당한 보관함을 수십 미터 위에서 떨어트리니까.
하지만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다. 이미 눈치챈 적은 쉽게 피할 테고, 가장 큰 문제는 아군이 다칠 수 있었다.
성직자와 마법사들이 뒤섞인 채로 항만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몸을 지키고, 초근접전도 불사했다.
보통 뒤에서 보호받는 직종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일단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달랐다. 매직웨어의 부흥 덕분에 전투 양상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마법사의 숫자는 10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로 수십 명의 성직자를 점점 몰아붙이고 있었다.
“저게 전부인가?”
“아로마아에 도착한 마법사는요.”
일부는 여전히 카미로의 도시에서 난리를 일으키거나 태고림이 있는 방향으로 달아나기도 했다. 그래서 모신교의 병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앨런이 서쪽의 항구도시에 온 이유는 일단 여기로 도망친 마법사가 많고, 노예 상인과 해적 때문이었다. 사실 마법사 처치는 부수적인 목표긴 했다.
컨테이너를 투하하기 좋은 위치를 찾고 있으니, 테일러가 앞으로 나섰다.
“나랑 시바는 먼저 합류하마.”
시바는 벌써 전장으로 달려갔다. 죽은 성직자의 모습이 그의 마음에 채찍질을 가한 탓이다.
“저러다가 큰일 나면 안 되니 내가 옆에서 조절 좀 하마.”
“네. 조심하세요.”
“기왕이면 숨어서 마탄이나 지원해줘. 안 그러겠지만.”
테일러까지 사라지고, 홀로 남은 앨런.
삐
아니, 청소부 동물처럼 주변을 살피는 상자와 과묵한 표범까지 합쳐서 셋은 마법사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일부가 성직자들의 공세를 막아내는 동안, 몇은 뒤로 빠져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쌀 포대를 닮은 자루를 뒤집자, 덩어리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차원배낭? 용량이 상당히 크네. 아, 공간배낭이구나.’
여기는 미궁이 아니라 지상. 공간 마법이 걸린 마도구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워낙 미궁에 오래 있다 보니 오파츠인 차원배낭으로 착각할 뻔했다.
공간배낭인 자루 근처에 작은 동산이 만들어졌다. 팔다리, 몸통, 머리 등 키메라를 수십 마리 조립하고도 남을 재료들이 쌓였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자, 몸통에서 마력실이 튀어나와 육체를 이룰 파츠를 잡아당겼다. 곧, 크고 작은 키메라 수십 마리가 몸을 일으켰다.
아까 처치했던 살점 거인 비슷한 존재도 만들어졌는데, 마침 외곽에 위치해서 무슨 짓을 해도 아군의 피해가 없으리라 예상되었다.
앨런은 바로 컨테이너를 낙하시켰다. 아까와 달리 정교하게 계산했다.
먼저 떨어진 컨테이너가 모서리로 거인의 어깨를 찍어 내렸고, 뒤따르는 컨테이너가 머리를 강타했다. 효과적인 공격에 거인이 육포로 변했다.
그런데 근처의 마법사 하나가 다가가니 붉은 살점이 바닥을 기어 몸에 달라붙었다. 아바라에서 봤던 엘프처럼 덩치를 점점 키웠다.
그 과정은 매우 빨랐다. 마법사는 컨테이너 문짝을 뜯어내서 공처럼 구기더니 위를 향해 투척했다.
콰직!
컨테이너 조종석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앨런이 간섭하던 장치도 당연히 부서졌다.
마법사가 앨런이 있는 곳을 슥 쳐다보더니 질주했다. 엘프 마법사와 동문수학한 사이가 맞는지 생체 갑옷에서 비슷한 마력 흐름이 느껴졌다.
몸을 잔뜩 부풀린 보디빌더 같은 생김새까지는 같았는데, 이쪽의 크기는 3m여서 훨씬 날렵해 보였다.
머리가 승모근에 파묻힌, 늑대 수인이 이를 드러냈다.
“네놈이 초코를 쓰러트렸군.”
“초코가 아바라에 있던 엘프 마법사의 이름인가요?”
“아니.”
수인은 저 뒤에 있는 컨테이너의 무덤을 가리켰다. 생기를 잃은 두꺼운 손 하나가 위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초코? 이름을 너무 대충 지었네요.”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앨런은 컨테이너 사이에 숨은 상자에게 마탄을 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왠지 모르게 불만스러운 삐 소리만 돌아왔다.
“혼자 남은 걸 후회하게 해주마.”
“오히려 저야 좋죠. 꽤 강해 보이는 마법사를 모신교 사람들에게서 떼어놨으니까요.”
“말만큼 실력도 있나 확인···.”
수인이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그의 머리 위로 철갑탄이 쑥 하고 지나갔다. 거의 동물 같은 반응이었다.
“이런 비열한···.”
수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표범이 발톱으로 발목을 할퀴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동화]가 풀리며 모습이 잠깐 드러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수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앨런을 향해 돌진했다. 그건 굉장히 훌륭한 선택이었다.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앨런은 일단 [공간간섭]을 봉인했다. 마력과 정신력을 너무 많이 필요로 해서 상대를 확실히 끝장낼 수 있을 때만 사용하는 편이 좋았다. 그래도 쓸만한 무기는 많으니 일단 적에게 집중했다.
생명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라 육체가 강력한데, 생체 갑옷까지 입어서 성능이 몇 배로 향상되었다. 수인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항만에 깊은 발자국이 생겼다.
깊이는 동작에 담긴 힘을 의미했다. 바닥을 박찬 힘이 다리와 허리를 타고 쭉 올라와서 주먹에 고스란히 담겼다.
펑!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공기 터지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생성된 와류에 몸이 그쪽으로 당겨지기도 했다.
회수되는 팔, 날아오는 반대쪽 주먹. 앨런의 파워슈트는 장식이 아니었다. 바이저에 주먹의 예상 경로가 표시되고, 파워슈트는 주인이 입력한 대로 동작했다.
떠오르는 10개의 대응법 중 파워슈트의 선택은 전진. 앨런은 코앞까지 주먹이 다가왔어도 놀라지 않았다.
콰아아!
외장갑이 열리며 툭 튀어나온 부스터가 몸을 옆으로 급격히 밀어냈다. 머리를 거의 스치듯 지나가는 팔을 따라 몸을 들이밀었다.
이럴 줄은 몰랐는지 수인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앨런도 마법사라는 양반이 주먹질부터 할 줄은 몰랐고.
어쨌든 근접한 파워슈트는 손바닥으로 수인의 관절 및 일부 근육을 빠르게 매만졌다. 그리고 앞으로 몸을 굴렸다.
수인은 잽싸게 빠져나가는 앨런을 잡아채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익!”
룬캔버스로 빚어낸, [속박]을 기초로 한 룬문자가 행동에 제약을 가한 것이다. 생체 갑옷 곳곳에 푸른 사슬이 넘실거렸다.
이어지는 상자의 저격.
쾅쾅쾅!
마탄과 갑옷이 충돌하며 내는 소리였다. 유기물로 이루어진 갑옷이 어찌나 단단한지, [관통]을 기초로 제작한 저격용 마탄도 꿰뚫지 못했다.
“제법. 하지만 소용없다!”
“착탄지점이 찌그러졌잖아요. 마력도 많이 깎여나갔고.”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거나,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대화가 오갔다.
수인은 잠시 비틀거렸지만, 빠르게 균형을 찾고 다음 수를 준비했다. 앨런이 예상외의 움직임을 보여서 그런지, 처음처럼 무식하게 돌진하진 않았다.
대신 팔을 변형했다. 무언가를 뱉어낼 듯한 길쭉한 주둥이가 만들어졌다.
퉤!
걸쭉한 가래침을 뱉는 소리와 함께 끈적한 무언가가 연속해서 날아들었다.
회피는 쉬웠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이나 컨테이너에 달라붙은 살점들이 카멜레온의 머리로 변하고, 끈적한 혀를 내밀었다.
아무리 유연하게 회피하려 해도 공간 자체를 점유하면 피하기 어려웠다. 혀 몇 개가 파워슈트의 움직임을 제약했다.
앨런은 외장갑에서 불을 피워내며 혀를 지져버렸다. 나름 빠르게 반응하고 해결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초. 하지만 적이 무언가를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이저에 경고 문구가 가득해졌다. 수인의 커다란 주먹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쾅!
파워슈트의 무게만 따져도 200kg을 가볍게 넘는데, 공중에서 팽이처럼 회전했다. 충돌의 순간에 룬캔버스로 [완화]와 [흡수]를 그렸음에도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도 바이저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번에는 다리였다. 수인의 다리가 축구공이라도 차려는 듯 앞뒤로 크게 벌어졌다.
‘지금.’
그때 표범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수인의 등 쪽에 달라붙어서 머리가 있는 부분을 깨물려고 했다.
“소용없다!”
승모근이 훨씬 두꺼워지며 머리를 헬멧처럼 보호했다. 물론 표범의 공격은 시작일 뿐이었다. 쩍 벌린 아가리 안쪽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고기 태우는 냄새가 순식간에 주위로 번져나갔다.
수인은 그대로 후진해서 컨테이너에 표범을 처박았다. 달아나려 했으나 근육이 다리를 붙잡아서 그럴 수 없었다.
수인은 표범을 떼어내서 앨런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돌진했다.
균형을 되찾은 앨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앨런은 날아오는 표범의 뒷다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앞다리를 쫙 펴자 발톱에서 푸른 칼날이 길게 솟아올랐다. 주인의 마력까지 더해지자 출력이 굉장했다. 앨런은 표범을 대검처럼 휘둘렀다. 생체 갑옷에 깊은 고랑이 죽죽 파였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수인을 향해 표범을 내던졌다. 출처 불명의 앙칼진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무시하고 왼쪽 눈을 감싸고 있던 마력을 풀어냈다.
우웅!
아바라의 엘프 마법사를 만났을 때처럼 눈이 무언가와 공명했다. 수인을 포함한 모든 마법사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설마 스승님이?”
마법사들이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했고, 전투에서는 그것 자체가 커다란 틈이었다. 성직자들이 마법사를 밀어붙였고, 그건 앨런도 마찬가지였다.
비장의 수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수인 몰래 [공간간섭]으로 근육과 근육 사이에 자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수인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앨런을 노려봤다.
“네놈. 무슨 잔재주를 부렸는지는 몰라도 이제 끝이다.”
수인이 양팔을 크게 들고 내리찍었다. 앨런은 팔을 올려 공격을 받아냈다. 힘을 겨루는 모양새가 되자, 수인이 앨런을 그대로 짓눌렀다.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수인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벌써 승리한 사람의 미소가 보였다.
“시기상조, 아시나요?”
“무슨 개소리를···.”
“덩치가 워낙 커서 빗맞히기도 어렵겠네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상자가 쏘아낸 커다란 말뚝이 앨런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서 수인의 가슴에 박혔다. [공간간섭] 덕분에 이번에는 튕겨지지 않았다.
말뚝 표면에 큼지막하게 새긴 룬문자가 반짝거렸다. 마력을 얼마나 때려 박았는지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폭발.
콰르릉!
토마토 던지기 축제라도 열렸는지, 사방이 붉게 물들었다. 파워슈트 역시 빨갛게 물들었다. 그을음 특유의 검은색도 더해졌다.
클레이모어 지뢰처럼 최대한 폭발의 방향을 지정했는데도, 화염이 파워슈트까지 매만졌다.
연기가 어느 정도 걷히고, 앨런은 아직도 살아있는 수인을 내려다봤다. 생명 계열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답게 끈질겼다.
“내부에서의 폭발 대비는 미흡하군요.”
“미, 친놈···. 누가 거기까지···.”
벌겋게 익은 수인이 말을 하다가 기침을 토했다.
“물에 한 번 삶은 것 같네요.”
“개자식이···.”
“오히려 늑대가 개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
늑대 수인은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눈을 감았으나, 앨런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명 현상을 일으킨 인공 안구에.
보통 같은 조직의 마법사들은 서로를 연결하는 비밀 채널에 속해있었다. 거길 통해 대화를 나누거나, 마력을 공유하기도 했다.
공명 현상을 일으켰으니, 그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인은 앨런이 하려는 시도를 비웃었다.
“마음대로 될 것 같나?”
“해보면 알겠죠.”
당연히 채널은 강력한 방화벽으로 보호받는다. 앨런 같은 불청객이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니까.
앨런은 뽑아낸 인공 안구를 꽉 쥐었고, 전장 곳곳에 퍼진 마법사들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 아로마아(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