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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82화 (182/193)

< 아로마아(4) >

인공 안구에서 마력 스파크가 발생하자, 마법사들의 집중력이 크게 낮아졌다. 시야가 제한되니 전투력도 많이 줄었고.

채널의 보안 마법이 굉장히 튼튼해서 본래라면 쉽지 않았을 일이나, 앨런의 능력과 왼쪽 눈 덕분에 간섭할 수 있었다.

마법이 앨런을 잠깐 아군으로 인식해서 느슨해진 탓이었다. 금방 눈치를 채긴 했지만, 이미 성문이 반쯤 열렸는데 어떻게 막겠는가.

마법사 측의 전력은 크게 깎이고, 성직자 측은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지원군이 도착하니 전황은 불 보듯 뻔했다.

마법사들은 결국 무릎을 꿇고, 제압당한 상태에서 매직웨어를 하나씩 회수당했다.

무사히 돌아온 테일러는 질서정연한 성직자들과 딱딱 들어맞는 후속 조치를 보며 감탄했다.

“이야. 어때?”

“대단하네요.”

“그치? 모신교. 저거 완전 군대라니까.”

“아뇨. 마법사가요.”

“갑자기 그 새끼들은 왜?”

“제대로 준비만 마치면 혼자서도 군대를 상대할 수 있잖아요. 아바라를 떠올려보세요.”

엘프 마법사 혼자서 도시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사회 기반 시설이 완전히 붕괴해서 복구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리란 추측이 돌았다.

앨런은 수인에게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

수인은 시바의 치료로 기도와 입이 멀쩡해졌으니 대답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불만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왜 서쪽으로 왔죠? 재봉사의 금제는 어떻게 하려고요?”

“금제에 대해 어떻게 알았지? 아니면 추측인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말할 생각 없으니 차라리 죽여라.”

“편해지려고요? 죽인 만큼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죠. 모신교분들이 도와줄 거예요.”

수인이 인상을 쓰더니 앨런과 성직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가 앨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동안.

“우리와 비슷한 부류면서 왜 착한 척에 집착하지?”

“그런 것도 알 수 있나요?”

“내가 너 같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봤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 재봉사는 그런 제자만 들였군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르겠네요.’입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편했다. 온갖 제약이 사라지고 위험한 지식에도 쉬이 접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고깃덩어리로 볼 것만 같았다. 부모님조차. 왠지 그건 싫었다.

앨런은 불편한 주제에서 벗어나려고 화제를 돌렸다.

“원래의 목적은 카탄과 똑같은 육체 만들기잖아요.”

“그것도 안다고?”

“순순히 실토하시네요.”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부인해봐야 아무 소용없지. 이미 답을 내렸지 않나.”

“육체 생성은 진짜 목적이 아니잖아요.”

“···.”

“금제에서 해방되려고 일을 벌였죠? 성공했으니 태고림 반대편인 서쪽으로 달아났겠죠.”

끝도 없이 치솟던 적개심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늑대 수인의 콧잔등에 가득했던 주름이 점점 펴지며, 수용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래. 스승, 아니, 산드라도 못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나. 네 말대로 금제 제거가 목적이었다. 비록 이렇게 잡혀버렸지만.”

“그걸 위해 나라 하나를 뒤집어놨단 말입니까?”

시바가 나서자 수인이 다시 침묵했다. 앨런은 짐작하는 바를 설명했다.

“어떤 방식인지는 몰라도, 금제 자체가 가하는 충격을 시민들에게 전가했을 겁니다. 제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본인의 피해도 줄어들겠죠.”

“끔찍하군요. 이들은 그냥 괴물입니다. 하지만 어머님 곁으로 보내기 전에 자신이 망친 세상을 조금이라도 복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쪽에서 정화봉사단 담당 성직자들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수인도 체념했는지 눈을 꾹 감았다.

앨런은 쪼그려 앉아서 속삭였다.

“산드라의 밑에는 카탄의 제자도 있죠?”

수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상태로 성직자들에게 질질 끌려갔다.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테일러가 컨테이너에 몸을 기댔다.

“산드라가 카탄의 제자를 왜 데리고 있을까?”

“감금은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알아?”

앨런은 수인에게서 얻은 인공 안구를 들어 올렸다. 매끈한 표면이 불빛을 반사했다.

“정성을 다해 만들었어요. 표면의 마감, 회로의 정리, 재료 등등 모든 요소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그걸 보면 알아?”

“느낌이 오죠.”

“왠지 너한테 안 어울리는 단어 같은데. 차라리 이해라면 몰라도. 그럼 본인의 의지로 재봉사의 밑에서 일한다는 말이야? 카탄의 제자라고 하면 어서 옵쇼 하고 어떤 기업에서든 모셔갈 텐데.”

“그러는 이유가 있겠죠. 아저씨도 다른 제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죠?”

“사고사로 죽거나 실종 상태···. 자의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당했겠지. 어쩌면 그걸 피하려고? 그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카탄의 제자들을 살해한다는 뜻이냐? 어째서?”

“카탄과 대립하던 조직이나 사람이 있었나요?”

“성격이 꼬장꼬장하다고 듣긴 했는데, 문제 일으켰다는 뉴스를 본 적은 없다. 당연히 누군가와 싸웠다는 말도 없었지.”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진 않았다. 하는 행동이 거슬렸을 수도 있고, 빛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었다.

“카탄의 행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나 봐요.”

“그 사람 덕분에 마법공학이 100년은 앞당겨졌다는 말이 많은데···.”

“어쩌면 산드라는 알겠지만, 궁금하다고 방문했다간 인형 중 하나가 되겠죠.”

카사라에서 파괴자를 만난 경험은 논외로 쳐야 했다. 앨런은 파괴자가 자신을 살려준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테일러 수련법.’

정확한 명칭을 모르는 마력수련법 덕분이었다. 파괴자는 마력을 끌어올릴 때 빛이 나는 미간을 꾹꾹 눌렀었다. 그게 우연일 리는 없었다.

‘사령술을 배우면 카탄의 영혼을 소환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전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사실 카탄을 소환해도 제대로 말해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카탄의 형상을 닮은 방화벽도 마음에 걸렸다.

‘그대로 뚫렸으면 어떻게 되었으려나? 설마 정신을 빼앗기나?’

지금은 알 수 없기에 앨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항만 한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부두를 찰싹찰싹 때리는 파도 너머로 시선을 던지니, 둥둥 떠 있는 잠수함이 보였다. 고속정이 잠수함을 포위했고, 성직자들이 해적을 하나씩 끌고 나왔다.

바다에서 일하는 직종이라고 어인의 비중이 높았다. 한곳에 꼭꼭 묶어놓으니 피부가 마른다는 둥, 숨쉬기 힘들다는 둥 엄살을 부렸다.

물론 성직자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오히려 투정을 부릴 때마다 끈을 더욱 강하게 묶었다.

앨런은 해적들에게 다가갔다. 위압적인 모습의 파워슈트가 가까워지니 해적들이 눈을 부라렸다. 잡힌 상황에서도 기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어떻게 될지 아시죠?”

“니가 뭔 상관이야.”

“재수 없게 말 붙이지 말고 꺼져!”

강제 개종이 썩 달갑지 않은지, 험악한 말을 내뱉었다.

“제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면 정화봉사단에서 빼 드릴 수는 없지만, 배치 장소를 바꿔 줄 순 있어요.”

“니가 뭐라도 돼?”

“용병 같은데 갑자기 뭔 개소리야?”

앨런이 알라나를 쳐다봤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 정도는 있지 않냐는 물음이었다.

“얼마든지요.”

험악한 인상의 수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해적들의 태도가 단박에 바뀌었다.

어차피 저당 잡힌 인생, 전쟁터에서 고기 방패로 죽는 것보다는 시골에서 의료 봉사나 하는 쪽이 훨씬 나았다. 심심하더라도 죽음보다는 삶이 최고였다.

앨런은 자신을 잡았던 해적단 두목의 얼굴을 바이저에 그려냈다. 퉁명스럽게 생긴 볼락 어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시는 분.”

십수 명의 해적이 웅성거렸다. 무언가를 아는 사람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앨런이 포기하고 몸을 돌리려 하자, 갈치를 닮은 어인이 소리를 질렀다.

“나, 알아!”

“이 해적은 어딨죠?”

“틸리.”

틸리는 남대륙 아래의 길쭉한 나라였다. 해룡 해협과 바다뱀 군도 옆에 있기도 했다.

“왜요?”

“랑카 탈출 도움. 속이고 노예!”

갈치 어인의 말은 어눌했으나, 앨런은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탈출한다고 사람을 모아서 노예로 판다고요?”

“마자!”

갈치 어인은 어리숙해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해적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한 일은 사라지지 않으니, 약속한 대로 배치 장소만 바꿔 줄 생각이었다. 앨런과 눈이 마주친 알라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

“나, 어디로 가?”

“빈민 봉사를 주력으로 삼는 곳으로 보낼 거다. 피 흘릴 일은 없겠지.”

정보를 듣고, 앨런 일행은 항만을 뚜벅뚜벅 걸었다. 타고 온 차가 살점 거인과의 충돌로 망가진 탓이었다.

테일러가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세요?”

“또 멀리 가야 하나 싶어서. 귀찮아도 칼을 뽑았으면 해야겠지. 말 나온 김에 내일 바로 출발하자.”

“그 전에 할 일이 있어요.”

“또?”

“이번에는 쉬워요.”

앨런은 저쪽에 있는 구겨진 차를 가리켰다. 성큼성큼 다가가서 종이처럼 접힌 엘프 상인을 꺼냈다.

“아, 그놈이 있었네. 까먹을 뻔했다.”

“혹시 모르니 이 사람한테도 물어보려고요. 해적 하나의 말만 듣고 무작정 갈 순 없죠.”

앨런은 엘프의 목 뒤 단자에 케이블을 끼워서 단숨에 깨웠다.

“으아아!”

엘프는 눈을 뜨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부상의 고통 때문에 기절했는데, 그걸 깨워버렸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시바가 손을 하얗게 물들여서 매만졌다. 고통이 사그라지는지 엘프의 앓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개자식아! 차를 그렇게 운전하면 어떻게 해!”

“그것보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앨런의 바이저에 볼락 어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엘프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얘는 왜?”

“아는 사람이죠? 노예를 팔려면 공급처가 필요하잖아요.”

“내가 순순히 협력할 거 같냐. 이 행복아!”

엘프의 입에서 욕 대신 선량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작전이 끝났으니 이제는 뇌 확장 장치를 마음껏 주물러도 상관없었다. 언어 통제도 마찬가지였다.

엘프는 사랑과 평화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묵직해서 땅이 꺼지는 착각이 생길 정도였다.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경험하니까 훨씬 행복하네. 아니, 이것도 필터야?”

“불쾌요?”

앨런의 말에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먼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산비탈 꼭대기에 있는 부촌을 가리켰다.

“무지개색으로 지붕을 칠한 저택에 있어. 질펀하게 놀고 간다고 해서 내가 별장을 빌려줬지.”

“순순히 알려주네요.”

“왜긴. 지 혼자만 가기 억울하다 이거지.”

테일러가 옆에서 히죽대자 엘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 그러다 한 대 치겠다?”

“···.”

엘프는 속앓이만 했다. 앨런과 달리 테일러는 손부터 움직였으니까. 예부터 멀리 있는 법보다 가까이 있는 주먹이 훨씬 무서웠다.

“멀리 갈 일 없어서 좋네. 지금 가서 해치우자.”

테일러는 성직자에게 말해서 트럭을 빌렸다. 그러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상자와 표범에게 턱짓했다.

“쟤들은 왜 본체만체하니? 무슨 일 있었어?”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캭!

“진짜로? 아니, 표범이 소리 낼 수도 있었어?”

“형제님, 저도 처음 듣습니다.”

둘은 일단 앨런이 손짓하니 다가오긴 했지만, 다른 곳만 쳐다봤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삑!

“음···. 난 이런 행동 양식을 입력한 적이 없는데. 무작위 별문자에 변화가 생겼나? 어디 뜯어볼까?”

앨런이 그렇게 말하니, 언제 외면했냐는 듯 표범과 상자가 주인을 쳐다봤다. 어느 때보다 훨씬 고분고분한 태도였다.

“걔들 그만 괴롭히고 가자.”

“안 괴롭혔어요. 그렇지?”

표범과 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아로마아(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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