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언피스트(1) >
테일러는 소파에 앉아서 어둑한 창고를 가만히 바라봤다. 따로 불빛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력수련법이나 인공안구 덕분은 아니었다.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시선은 아까부터 한 곳에 고정된 상태였다. 그곳에서는 작은 우주가 펼쳐졌고, 휘황찬란한 은하수가 춤을 췄다.
영혼석 입력창과 별문자였다. 사실 마석등을 켜도 상관은 없지만, 기왕이면 꺼두는 편이 구경하긴 훨씬 좋았다. 도시의 광공해 때문에 좀처럼 보기 힘든 우주와 별자리가 펼쳐진 기분이랄까.
그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앨런의 손이었다. 손가락이 별을 문지르면 픽 사라지고, 어두운 곳을 꼭 찍으면 빛이 탄생했다.
‘···1004, ···, 1400···.’
테일러는 별의 숫자를 세려다가 포기했다. 나름대로 끈기 있게 헤아렸는데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머리를 비우고 관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썩 괜찮은 구경거리긴 했다.
딸깍!
마침내 앨런이 작업을 마치고 창고의 불을 켰다. 숨을 죽이고 있던 먼지들도 다시 둥둥 떠다녔다.
상자와 표범은 천천히 주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서로의 몸에 기댄 상태로 주저앉았다.
“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얌전히 업그레이드를 받았네. 혹시 킬코드라도 입력했니?”
“아뇨. 위험하게 그럴 순 없죠. 다른 사람의 해킹도 생각해야 하고요.”
“순하게 말을 잘 들어서 물어봤다.”
“진심이 통한 거죠. 정성으로 대하니 저 아이들도 고분고분 따른 겁니다.”
테일러는 그리 말하는 앨런의 옆을 슬쩍 살폈다. 탁자에 놓인 쟁반 위에는 부서진 영혼석 파편이 쌓여있었다. 별문자를 과하게 입력한 결과물이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마력 역류로 인한 현상이지만, 오토마톤의 시점에서 보면 머리통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모습이리라.
테일러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상자에 가득 담긴 기계팔, 검게 그을린 마력로들, 해부당한 오토마톤 등이 보였다.
“그렇게 따지면 여기는 도축장인가?”
“네?”
“아니, 혼잣말이니 하던 일 계속해라.”
복잡한 강화 작업이 끝났기에 앨런은 잠시 쉴 생각이었다. 정비대에 세워진 파워슈트를 잠깐 살피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드래곤 하트 덕분에 증상이 호전되어서 요즘은 활력이 넘쳤다. 예전의 자신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말이지, 다른 탐험가와 비교하면 모자라긴 했다.
탐욕스러운 붉은 보석은 계속 앨런의 마력을 탐했다. 정제해서 돌려주긴 했지만, 투입한 양과 비교하면 굉장히 미미했다.
그래도 크게 보면 이득이었다. 앨런의 몸은 건강해졌고, 드래곤 하트는 조금씩 덩치를 키웠으니까.
‘1천 년 정도 지나면 본래의 형태를 되찾지 않을까?’
외부의 개입 없이 지금의 상황이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내린 추측이다.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사람에게는 너무 머나먼 시간대였다.
오랜만에 뇌를 비우고, 눈을 감고, 오직 숨만 쉬며 멍하니 있었다. 몸이 편하니 휴식도 생각보다 할 만했다.
이번에는 침대에 누워볼까라고 생각하는 도중, 창고 문이 열리며 다수의 발소리가 들렸다.
단단한 발소리, 사람이 신발 끄는 소리, 쇠가 작은 돌조각을 즈려밟는 소리.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 소음이 어울려서 내는 화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세 사람이 보였다. 눈동자만은 선량하게 생긴 시바, 뒷골목 양아치를 닮은 비토, 전신이 은회색으로 빛나는 메탈 고블린 키키.
테일러가 키키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넌 또 왜 왔어?”
“마침 앞에서 만나서 같이 들어왔습니다.”
“너한테 물은 게 아니잖아.”
시바가 슬쩍 웃으며 차가운 맥주병을 던졌다. 테일러는 손가락으로 병뚜껑을 제거하고 병 주둥이를 입에 물었다.
“영감님은 왤케 날 싫어합니까?”
시바가 기껏 테일러의 입을 막아놨는데, 키키가 말을 걸었다.
“난 고블린이 싫어.”
“그거 종족차별입니다.”
“싫은데 어쩌라고. 옛날 같았으면 그 뾰족한 코를 붙잡아서 위로 꺾어버렸을 거다.”
“형제님···.”
“당연히 농담이지.”
“꺾겠다는 건 농담이고 사실은 뽑아버리겠다고요?”
“오···.”
테일러가 감탄하며 손가락으로 시바를 가리켰다.
“나를 너무 잘 알아.”
“흑흑.”
키키가 우는 소리를 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워낙 일상적인 일이고, 서로가 장난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난 장난 아냐.”
그 사이, 비토는 앨런의 파워슈트를 관찰하고 있었다. 신기함 5할, 궁금함 5할이 섞인 표정이었다.
“아니, 여기서 마력회로를 어떻게 이은 거야?”
“룬문자로요.”
“그게 돼? 주변 부품이 받는 부하는 어떻게 해결하고?”
“룬문자 주위를 살펴보세요.”
“작은 선···. 이거 설마 회로 마법이야? 이건 따라 하려 해도 못 따라 하겠네. 일단 무슨 의미인지도 못 알아먹겠으니.”
똑같이 따라 하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는 있으나, 위력은 장담할 수 없었다. 룬문자를 비롯한 마법적인 조치를 취할 때는 제작자의 명확한 의도가 포함되어야 했다. 그냥 베끼기만 하면 마력이 호응을 제대로 안 해준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비토는 머릿속에 때려 박겠다는 일념으로 파워슈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앨런이 아니라면 이런 구경을 어디에서 하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걸 보여달라고 하면 머리에 구멍 뚫리기 딱 좋았다.
“너 혹시 다른 사람이 보여달라고 하면 그냥 알려줘?”
“전부는 아니죠.”
앨런의 기준에 맞는 사람, 그러니까 어느 정도 친근해져야만 허락의 폭이 넓어졌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친절한 마법공학자였지만.
“속내를 감춘 적대적인 인물이 네 것을 보고 따라 하면 어쩌려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어요.”
“왜?”
“내가 만들었으니 취약한 부분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접니다. 찔러볼 구석이 많은 장비를 들고 나타나겠다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겠죠.”
“확실히 생각이 달라.”
“똑같은 사람인데요.”
“똑같기는···.”
비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상자와 표범에게 관심을 보이는 키키를 발견했다.
주인 말고는 가차 없이 대하는 녀석들이라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잽을 얻어맞기 시작했다.
“아이쿠!”
키키가 코를 붙잡고 쓰러졌다. 약간 찌그러졌고, 10도 정도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비토가 얼른 가서 키키를 질질 끌고 왔다.
“학습능력 없냐? 만날 때마다 당하면서 매번 이러네.”
“흑흑···.”
“우는 척을 하려면 인공 안구에서 윤활유라도 흘리든가.”
“여기는 악마들밖에 없어.”
“진짜 악마였으면 넌 진즉에 저기 누워있었어.”
비토가 평평한 실험대를 가리켰다. 부품 그리고 나사 하나하나 분해된 오토마톤이 거기에 누워있었다.
앨런은 덜덜 떠는 키키를 보다가 비토를 바라봤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어요? 오늘은 관리하는 날이 아닌데, 우리도 아직 지상에 있고.”
“예전에는 본론부터 요구했을 텐데 좀 달라지긴 했네.”
“여유가 생겨서요.”
“여유? 그래 사람이면 여유를 가져야지.”
비토가 그리 말하며 안구를 파랗게 빛냈다. 앨런은 뇌 확장 장치를 사용해야만 수신할 수 있는 신호를 쉽게 받아내며 말했다.
“슬슬 빛 안 보이게 개조하는 게 어때요?”
“마력 작용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잖아. 가리려면 이것저것 복잡하게 만져야 하는데, 내 수준에서 함부로 건들긴 좀 그래. 그나저나 확장 장치도 없는데 용케 신호를 받네.”
“그리 어렵진 않아요.”
“그래. 쉬워서 조오오겠다.”
“또 삐졌네.”
괜히 한마디 거드는 키키. 비토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멱살을 잡았고, 키키도 지지 않고 머리카락을 꽉 쥐었다.
“악!”
비토가 소리를 지르며 키키를 노려봤지만, 철판으로 뒤덮인 키키의 머리에는 당연히 머리카락이 없었다.
“반칙이야.”
“너도 밀면 되잖아.”
“그건 싫어.”
앨런은 유치하게 싸우는 둘을 놔두고 전달받은 정보를 살폈다. 잠금을 풀자마자 거대한 강철의 주먹이 정면에서 훅 날아왔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고, 증강현실이자 홀로그램에 불과했다. 그래도 해상도가 워낙 높아서 순간적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긴 충분했다.
앨런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무심한 표정으로 영상을 관찰했다. 주먹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벽을 때렸다.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곳으로 시점이 옮겨갔다.
그곳에 웅크리고 있는 강철 거인 하나. 다른 거인의 주먹을 피한 녀석은 자세를 낮춰 상대의 사타구니에 팔을 집어넣었다. 그 상태로 번쩍 들어 올려서.
콰앙!
벽에 내던졌다. 콘크리트 벽에 박혀있던 거인이 아래로 훅 떨어지고, 부서진 벽에는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아이언피스트]
타이탄들이 맞붙는 격투 대회의 이름이었다. 강철의 거인들이 백병전으로 치고받는 장면 자체에 열광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군용 타이탄만큼의 출력을 뽐내진 못하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많았다.
거체가 만들어내는 소름 끼치는 굉음, 충돌할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파편들, 마력의 대류 현상이 만들어내는 엔진 소리.
관중을 매혹하긴 충분했다. 앨런도 약간 관심이 생겼다.
“비토, 이걸 왜 보여준 거죠?”
“앨런이 부르니까 잠깐 휴전.”
비토는 등에 매달린 키키를 떼어내며 말했다.
“나랑 키키가 이번에 예선에 참여하게 됐는데···.”
“몇 부요?”
“8부···.”
8부면 거의 바닥이라고 해도 좋았다. 앨런이 영상에서 봤던 기체의 출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나뭇가지로 만든 듯한 타이탄만 나올 것이다. 사실 그런 것들은 타이탄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했다.
당연히 앨런의 관심사와는 천만년 떨어진 영역. 높은 수준의 리그라면 모를까, 동네 싸움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네. 열심히 하세요.”
“잠깐만. 우리가 왜 여기에 왔겠어.”
“도움 요청이겠죠.”
“안 될까?”
“그래. 앨런. 저리 부탁하는데 좀 도와줘라.”
앨런은 테일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장을 입고, 기름 바른 머리를 뒤로 넘겼다. 마침 시간은 오후 5시.
“저녁 식사 약속 있으세요?”
“나갔다 오마. 너무 미궁에만 처박히는 것도 못 써. 사람이 햇빛도 충분히 쐐야지.”
테일러는 꿍꿍이가 가득한 말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앨런은 안절부절못하는 비토와 이쪽을 보는 상자를 동시에 눈에 담았다.
‘거대병기라···.’
그동안은 부품을 가지고 다닐 방법이 없어서 멀리했는데, 이제는 상자의 서랍이면 충분히 운용할만했다. 조립, 분해, 수리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만약에 참가를 한다면 이것저것 실험하긴 좋았다. 사실 데이터를 뽑아내려면 저만한 장소가 없기도 했다.
군사시설에 쳐들어가서 타이탄을 불러내는 방법도 있었으나, 앨런이 생각해도 그건 너무 무리수였다.
‘지금은 힘들지.’
드래곤 하트가 어떻게 안정화 될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어차피 지상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 비토와 키키를 도와줘도 괜찮을 듯싶었다.
“격납고랑 기체는 당연히 준비해뒀죠?”
“물론. 그건 키키가 했어.”
앨런이 키키를 보자, 코를 치켜들며 어깨를 쭉 폈다.
“평소에 저축을 많이 해뒀나 보네요.”
“그건 아니고 저렴한 이자에 돈을 빌려준다는 사람이 있어서 부탁했다.”
“나한테는 그런 이야기 안 했잖아. 거기가 어딘데?”
비토가 키키의 어깨를 붙잡아서 짤짤 흔들더니, 전부 토설하게 했다. 비토가 계약서를 보고 이마를 짚었다.
“아니, 씨발. 괄호 안에 숫자 안 보여? 너 오늘부터 마법공학자라는 명함 떼라.”
“이런 사람도 있어야 사기꾼도 먹고살죠.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까요.”
키키는 비토가 말할 때는 으르렁거리더니, 앨런이 쳐다보자 쭈그리로 변했다.
< 아이언피스트(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