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3)화 (3/107)

포쾌 연우혁 (3)

“허튼 소리!”

가장 먼저 고함을 내지른 건 사 포두였다.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연우혁을 노려보며 살기를 드러냈다.

“감히 이 자리가 어디라고 네깟 애송이 놈이 지껄이느냐? 혓바닥을 뽑히고 싶은 것이냐?”

“정신이 나간 포쾌인가?”

평일원마저 무심하게 말을 얹었다. 오 포두도 당혹스러운 눈으로 연우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하가 지금 같은 상황에 무모하게 뛰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부하를 쳐다보던 오 포두는 멈칫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연우혁의 얼굴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냉정했던 것이다.

그걸 보자 여기 오기 전에 연우혁이 보여준 신통한 능력들이 생각났다.

설마 이번에도?

‘믿겠다. 연 포쾌! 아까처럼 신통한 재주를 보여다오!’

*   *   *

‘젠장. 실수했다.’

연우혁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압박감에 표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다.

표정이 흔들리는 순간 더 위험해진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장원 외곽의 누각에서 발견된 시체, 피해자의 것밖에 없는 발걸음, 등에 깊숙이 박힌 단도, 주변에 있던 무림인들.

이걸 직접 듣는 순간 연우혁은 바로 모든 걸 알아차렸다.

잃어버린 촉대도 연우혁이 전에 해결했던 사건과 완전히 일치했던 것처럼, 장주의 살인도 연우혁이 전에 해결했던 사건과 완전히 일치했던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 범인의 이름을 말한다고 그냥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리냐’하고 콧방귀를 뀌면 진실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진실을 알더라도 남들을 설득해야 진짜 진실이 됐다.

‘살기 때문에...’

연우혁은 후회했다.

당장이라도 피바람이 불 것 같자 마음이 조급해져서 범인부터 지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기호지세다.’

연우혁은 목청을 가다듬고 최대한 오만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건방지게 구는 포쾌의 모습에 주변은 한 번 더 술렁였다. 마치 목숨을 내놓은 광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내게 신통력이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이 세계에는 무공뿐만 아니라 특이한 신통력들도 있었다. 오 포두가 육신통이니 도술이니 이야기를 한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일개 포쾌라 하더라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알려지면 주변에서 그 말을 무시하기 힘들 터.

그렇다면 어떻게?

‘설득하는 거다!’

“제 목을 베든, 혀를 뽑든, 제가 한 말씀 올린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자리라고 감히 궤변을...”

“됐네. 들어나 보도록 하지.”

평일원은 흥미가 생겼는지 손을 뻗어 사 포두의 입을 막았다. 이 자리에서 권세로든 무공으로든 가장 무게감이 있는 화산파의 무인이 못을 박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먼저 담벼락 위를 디디고 경공을 펼쳤다는 사 포두님의 고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일류의 무인이라 하더라도, 저만한 거리를 발걸음 하나 없이 날아드는 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정 대협. 정 대협께서는 자신이 있으십니까?”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러지자 정일은 당황했다.

“길,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알지 않겠느냐? 하지만 저 정도라면...”

“철심철검 대협께 묻겠습니다. 대협께서는 자신이 있으십니까?”

평일원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열에 한 번은 실패할지도 모르겠군.”

“아, 아니. 대협?!”

사 포두가 당황했다. 평일원 정도의 고수가 자신 없다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일도 당황했다. 정일은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보십시오. 철심철검 대협도 열에 한 번은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대협보다 경지가 낮은 다른 무림인들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 방법을 믿고 장주 어르신을 죽이러 왔겠습니까?”

“그... 그건, 그건 평 대협의 이야기다! 삼절객이 특수한 상승의 경신법을 익혔을 수도 있지!”

연우혁은 ‘그걸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쓸데없는 입씨름만 하게 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른 쪽을 찌르고 들어갔다.

“대협! 감히 여쭙겠습니다. 누각으로 날아서 들어가려면, 아무리 뛰어난 경공이라 하더라도 담벼락 위를 밟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담벼락 위를 밟을 때, 발바닥에서 기운을 뿜어내야 하지 않습니까?”

“보통 용천혈(涌泉穴)에서 내공을 발(發)해야 하지.”

“그러면 담벼락이 무사할 수 있습니까?”

평일원은 연우혁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귀찮다는 태도를 버리고 살짝 흥미로워하는 시선을 던졌다.

“불가!”

“알았다!”

오 포두는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뒤늦게 끼어든 오 포두는 민망해하며 평일원에게 사죄의 뜻을 밝혔다. 평일원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예. 그렇습니다. 오 포두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

갑작스러운 연우혁의 말에 오 포두는 당황했다.

아직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는데 갑자기 이 포쾌 놈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허나 포두님께서는 제게도 기회를 주셨습니다. 최선을 다해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포두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부하를 제대로 골랐다는 만족감이 진하게 담긴 미소였다.

“아무리 경공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담벼락 위를 차고 날아가려면 담벼락 위에 부서진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흔적이 있습니까?”

자리에 있던 포두들과 포쾌들, 그리고 적면삼구의 정일도 담벼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연우혁은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혹시 연우혁이 모르는 사이 누군가 담벼락에 부딪치기라도 했다면? 날짐승이 오고 가기라도 했다면?

바로 그 순간, 연우혁은 약한 두통을 느꼈다. 동시에 눈앞에 담벼락의 윗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멀리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세세히 관찰하는 것마냥 정보가 몰려왔다. 연우혁은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이게 대체!?’

“없습니다! 아무런 흔적도 없어요!”

“다시 찾아봐라!”

“그, 그렇지만...”

“됐네. 그만하게.”

평일원은 사 포두의 발악을 멈추게 만들었다.

범인을 잡고 싶은 것이었지 무고한 양민에게 누명을 씌우고 싶은 게 아니었다.

“계속 들어보도록 하지. 담벼락으로 넘어온 게 아니라는 건 이해했네. 그런데 그게 왜 총관이 범인이라는 게 되는가?”

연우혁은 혼란스러워하다가 강철 같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누각으로 이어진 장주 어르신의 발자국을 확인해보셨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발자국으로 쏠렸다.

연우혁은 발자국의 너비와 깊이가 원래 얼마였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그 순간 방금 느꼈던 두통이 다시 찾아오더니 발자국의 너비와 깊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장주 어르신의 신발은 위아래로 여덟 치가 살짝 넘습니다. 하지만 저 발자국은 가볍게 봐도 아홉 치를 넘깁니다. 또한 장주 어르신의 몸은 그리 살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발자국은 세 치 가까이 깊숙이 파여 있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장주가 중추공(重錘功)을 익혔나?”

정일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평일원은 짜증스럽게 적면삼구의 첫째를 노려보았다. 정일은 기세가 죽어 눈치를 봤다.

“누군가 장주의 발걸음 위로 다시 한 번 걸어간 거군!”

평일원은 오늘 처음으로 높은 목소리를 냈다.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진실은 다음과 같았다.

장원에서 오랫동안 일한 총관이 장주의 대우에 불만을 가지고 살의를 품은 것이다.

장주만 죽으면 장원의 여러 재산들은 총관이 떡 주무르듯 주무를 수 있었으니...

물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는 건 자칫했다가는 극형에 처할 일이었다. 총관은 오랫동안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다행히 총관이라는 위치는 장주에게 접근하기 쉬운 위치였다. 게다가 장주는 성질이 난폭해 누각에서 머무를 때는 별다른 부름 없이는 하인들도 얼씬하지 않았다.

잘 갈린 단도를 품고 장주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누각으로, 대담하게, 그리고 푹!

연우혁은 장주의 등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총관은 얼굴이 푸르게 변하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해있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은 홀린 듯 연우혁의 입만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된 겁니다.”

“허튼 소리! 허튼 소리입니다!!! 제가 어르신을 무엇하러 죽이겠습니까??!”

처음에 총관을 지목했을 때는 여유롭게 가만히 있었지만, 이번에는 총관도 발악하듯 외쳤다. 아까 사 포두보다 몇 배는 절박한 목소리였다.

“그깟 족적 길이 때문에 제가 어르신을 죽였다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발을 대보면 아실 겁니다. 이 장원에서 총관 말고는 저만한 발자국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허튼 소리! 네깟 포쾌 놈이 뭘 안다고!”

평일원은 흥미로워하며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이 포쾌의 재주는 실로 놀라웠다.

단순히 머리가 비상한 게 아니라, 무언가 신통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방금 막 도착한 포쾌가 담벼락의 위는 어떻게 확인했으며 흙 위에 남긴 족적의 너비와 깊이는 어떻게 쟀단 말인가?

게다가 이 장원에서 일하는 자들의 발 중 맞는 건 총관밖에 없을 거라니. 마치 이미 대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무슨 신선이 이 주변의 귀신을 불러 어떻게 된 것인지 듣고 온 것처럼 설명을 하니...

내버려뒀어도 사람들은 이미 연우혁의 말을 믿고 있었지만, 연우혁은 쐐기를 박고 싶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맞춰 보겠습니다.”

“!”

연우혁은 총관에게 묻지 않았다. 하인들을 보더니 물었다.

“혹시 장주 어르신이 돌아가신 그 날, 평소와 다르게 총관이 찻잔을 확인하지 않으셨습니까?”

“...헛! 맞, 맞습니다! 맞아요! 다기(茶器)를 꼼꼼히 확인하라고 꾸지람을...”

“요 포쾌 놈. 진짜 기가 막히는구나! 네놈은 뒤통수에 눈이 달리기라도 한 거냐!?”

정일은 크게 외쳤다. 옆에서 듣기만 했는데도 몸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신기했다.

“장주 어르신께서는 평소에 누각에 차를 직접 갖고 가시는 습관이 있으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총관은 찻잔을 점검하는 척 안에 몽혼약을 바른 겁니다. 이렇게 바르면 남은 찻물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게 되지요.”

“육시랄 놈 같으니!”

정일은 총관을 노려보며 외쳤다. 평소 적면삼구라고 정일과 형제들을 불렀지만, 이 선량해 보이는 낯짝을 달고서 주인을 찔러 죽이는 총관 놈에 비하면 그들 삼형제는 정인군자 그 자체였다.

“죽엇!”

“헉!”

정일은 다급히 무기에 손을 뻗었지만 총관이 노리는 건 정일이 아니었다.

총관이 노리는 건 그의 원대한 계획과 삶을 모조리 망가뜨린 건방진 포쾌 놈이었다.

‘무공을 익혔구나!’

아무리 장주가 무저항이었어도 깔끔하게 죽였다 했는데 무공을 익혔었다니. 연우혁은 원래 나오지 않았던 사실에 한탄했다.

총관의 품속에서 비수가 튀어나오더니 사납게 포쾌를 노렸다.

이런 와중에 아까와 같은 두통이 몰려왔다.

총관이 발을 디디고 많지 않은 내공을 움직이며 뻗는 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비수가 투로를 따라 연우혁의 목줄을 노리는 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삼절객 담풍호의 검이 번뜩이며 총관의 양팔을 노리며 날아드는 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먼저 알았지만 연우혁의 몸은 머리와 달리 둔하고 느렸다. 피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하는 사이 총관의 비수는 더욱 앞으로 뻗었고...

담풍호의 검이 총관의 양팔을 날려버렸다.

“크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총관은 나뒹굴었다. 담풍호는 총관을 붙잡고 점혈로 피를 멈춘 다음 연우혁을 보며 말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잊, 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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