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4)화 (4/107)

삼절객 담풍호 (1)

연우혁이 말했지만 담풍호는 무시했다. 검집에 검을 넣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물러섰다.

평일원은 담풍호에게 다가오더니 쓰러진 총관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무례를 사과하지. 빚을 졌군.”

“상관하지 않는다.”

무례한 삼절객의 태도에 적면삼구가 발끈했지만 평일원은 여전히 담담했다.

“상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빚은 빚. 기억해두지. 언젠가 쓸 일이 있으면 찾아오게.”

말을 끝낸 평일원은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연우혁은 덜컥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취급하던 사람이 관심을 보이니 뿌듯하기보다는 긴장이 앞섰다.

“포쾌라고 했나?”

“...예!”

“신통력이 제법 뛰어나군. 덕분에 죄 없는 무인을 베지 않을 수 있었네. 그 이름을 기억해두지.”

“대협께서 그렇게 말해주신다니 실로 영광입니다!”

연우혁이 긴장해있자 오 포두가 등짝을 갈기며 대신 외쳤다.

“사실 판관 나으리께서도 걱정을 하셨습니다. 이 비리비리한 놈이 좋은 포쾌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대협께서 이렇게 말해주시니, 소개한 저도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연 포쾌 또한 영광일 것입니다. 철심철검 대협께서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포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판관 나으리의 걱정도 씻듯이 사라지셨을 겁니다!”

“그래. 판관에게도 말을 전하도록 하지.”

평일원은 오 포두의 말에 담긴 속뜻을 이해했다.

판관을 두 번이나 언급한 걸 보니 저 새로 들어온 포쾌는 영 미심쩍은 시선을 받은 게 분명했다.

촉석봉정(矗石逢釘)이라고 어느 곳이든 간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자는 정을 맞기 마련.

이번 일에서 보여준 활약을 생각해보면 판관에게 칭찬 몇 마디 던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지.”

평일원은 정일을 데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원을 떠났다. 적면삼구는 연우혁에게 투패의 패도 읽을 수 있냐고 물어보다가 평일원의 눈치를 보고 허겁지겁 따라갔다.

“평, 평 대협! 대협!”

그제야 사 포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평일원을 불렀다.

차라리 꾸짖고 떠나면 모를까 아무 말도 없이 저렇게 떠나니 더 오싹해졌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저도 속았...”

평일원은 가만히 사 포두를 쳐다보았다. 뱀과 같은 눈빛을 가진 사 포두였지만 평일원의 눈빛을 마주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사 포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비켜섰다.

그 모습을 본 오 포두는 킬킬 웃으며 연우혁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앞으로 잘 부탁함세. 연 포쾌.”

*   *   *

원래 사건을 해결하면 영기(靈氣)와 명성만 주고 끝냈지만 현실은 달랐다.

포쾌가 사건을 해결하면 판관에게 보고하고 확인을 받았다.

때에 따라 가끔씩 쇄은(은 조각)을 포상으로 받았지만 그건 정말 드물고 드문 일이었다. 판관은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으니...

“그러니 이 포상에 너무 기대하지 말게. 다음에도 나오란 법은 없으니.”

“예.”

연우혁은 전낭에 은 조각을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드물고 드문 일이었지만 판관은 포상으로 쇄은을 하나씩 선사했다.

동시에 새로 들어온 포쾌, 연우혁의 재주를 침을 튀겨가며 칭찬했다. 칭찬 내용에 철심철검의 별호가 다섯 번 들어간 걸 보니 어지간히 평일원의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었다.

“포쾌는 정직하게 벌어야 하는 직업일세.”

오 포두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건방진 사 포두 놈은 망신을 당해서 얼굴이 푸르죽죽해졌고, 본인은 판관의 치하로 체면이 오를 대로 올랐으니, 인근의 다른 포두들도 오 포두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으리라.

그런 만큼 오 포두는 연우혁에게 ‘포쾌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해 줄 요량이었다.

원래라면 새로 들어온 포쾌는 다른 포쾌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일을 배워야 했지만, 이 연우혁은 직접 가르침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정직하게 말입니까?”

“그래. 가끔 간 덩어리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었다가 크게 다치곤 하지.”

포쾌는 죄인에게 다치는 일보다 저지른 죄가 발각 나서 처형 받는 일이 더 잦았다.

그만큼 받는 은자에 비해 눈독들일 수 있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정직함. 그래서 포쾌는 오래 살려면 정직함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네. 자네가 철전이든 은자든 받아내는 건 오로지 삼인(三人)에게서만 받아야 한다 이 말일세.”

“삼인... 말입니까?”

연우혁은 포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 죄 지은 자, 죄 지은 자의 친족, 그리고 죄 지은 자에게 당한 자. 이렇게 삼인.”

“...아, 그렇군요.”

연우혁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얼굴에 힘을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오 포두는 놀랍게도 진지했다.

포두 기준으로 죄 지은 자나 죄 지은 자의 친족, 혹은 이들을 고발한 자에게 은자를 받는 건 당연한 대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또 중요한 것이, 가끔씩 장신구를 잃어버렸다고 돈을 뜯어내려는 포쾌들이 있는데 이건 선을 넘은 일일세. 이런 원한은 쉬이 사라지지 않지. 안 그래도 자네를 죽이려는 자들이 몇몇은 생길 텐데 굳이 더 늘릴 필요는 없지 않나.”

“저. 오 포두님.”

연우혁은 ‘포쾌, 어떻게 양민들을 털어 먹는가’가 지겨워서 화제를 바꿨다.

“혹시 두통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두통? 두통은 의원한테 가야 하지 않나?”

“그게 평범한 두통이 아니라...”

연우혁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자신에게 신통력이 있는데, 이 신통력이 멋대로 써지고 두통이 몰려오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들은 오 포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으음! 어려운 일이군. 신통력에 관한 일이라면 도사나 술사(術士)가 알지, 평범한 의원은 잘 모를 가능성이 높네.”

“포두님께서는 짐작가시는 바가 없으십니까?”

“나는 기껏해야 무공을 익힌 무부일 뿐일세. 그런 신통력은 잘 모르지. 두통, 두통이라...”

오 포두는 딱한 눈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재인박명(才人薄命)이라더니, 젊은 나이에 참으로 안타깝게 됐네.”

“...아, 아니. 심각한 겁니까?”

“신통력을 갖고 있는데 두통이 있다면... 나도 좋게 말해주고 싶네. 하지만 아주 불길한 징조야.”

오 포두는 매우 진지했다.

신통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불우하고 짧은 삶을 살았다.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그 이유를 귀신들에게 사랑받고 원귀들이 홀리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게 맞는지는 오 포두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봤을 때 불길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니. 아니.’

연우혁은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사건의 정보나 증거는 알아서 정리가 되어 나왔었다.

그걸 이제 그냥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원들에게 물어보겠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말...”

말하던 오 포두는 멈칫했다. 앞에 낯익은 무림인이 서있었던 것이다.

삼절객 담풍호였다.

“...연 포쾌. 조심하게.”

오 포두는 언제라도 주먹을 뻗을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삼절객이 포두나 포쾌들에게 유쾌한 감정을 갖고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담 대협.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원한을 갚으러 왔다면 잘못 찾아왔소! 당신에게 누명을 씌운 건 나나 연 포쾌가 아니오!”

“은혜를 갚으러 왔다.”

담풍호는 오 포두의 말에 따지거나 지적하는 대신 자신의 할 말만 차갑게 읊었다.

“...은혜를?”

담풍호는 대답 대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오 포두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은 건지 모르겠군.”

“괜찮을 겁니다. 포두님. 포두님이 말하신 대로 누명을 씌운 건 사 포두님이잖습니까.”

“저런. 자네에게 말해주는 걸 하나 잊었군. 무림인들은 모두 광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걸세. 은혜를 베풀면 은혜를 베풀었다고 지랄, 누명을 씌우면 누명을 씌웠다고 지랄하는 자들이거든.”

“...그래도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담풍호는 계속 기다리다가 둘의 대화가 끝나지 않자 입을 열었다.

“두통이 있지 않나?”

“!!”

“!!!!”

둘 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연 포쾌. 설마...”

“삼절객 대협은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재주가 많은 무인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 거 아닙니까?”

“나는 삼절객이 자네한테 독을 먹인 거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그건 아닌가보군.”

‘이 사람. 상대가 화산파가 아니면 정말 사람 취급을 안 해주는군!’

연우혁은 오 포두가 무림인을 매우 싫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결국 연우혁은 담풍호를 따라나섰다. 오 포두는 걱정했지만, 연우혁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서 악의나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느티나무 아래 공터에서 멈춰선 담풍호는 앉으라고 손짓했다. 연우혁은 엉거주춤하게 앉았다.

“두통이 왜 있는지는 아나?”

“모릅니다.”

“그럴 것 같더군. 은혜는 이유를 알려주는 걸로 갚겠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부담스러운 은혜라 거절하고 싶었는데, 이유와 교환한다면 나쁜 장사가 아니었다.

“상단전에 대해 아나?”

“...!”

흔히들 무공을 익힐 때 단전에 내공을 쌓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 단전은 배꼽 아래의 하단전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단전이 있다면 다른 단전도 있는 법.

사람의 뇌가 바로 상단전이었다.

하단전에 내공을 쌓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상단전을 여는 일이었다. 이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무공의 심법이란 것도 하단전에 내공을 쌓는 것이지 상단전에 내공을 쌓는 게 아니었다. 보통 그런 짓을 했다가는 대번에 광증이 뇌로 올라가 미쳐버렸다.

하지만 가끔씩 선천적으로 상단전이 열려서 기운이 쌓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감히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특이하고 비범한 신통력들을 보여주곤 했다.

“너는 상단전에 기운을 축기하더군. 그걸 보고 상단전이 열려 있다는 걸 알았다.”

“제가 기운을 모으고 있었단 말입니까? 어떻게?”

“나도 모른다. 애초에 난 상단전이 열려 있지도 않으니.”

담풍호는 냉정하게 설명했다.

연우혁이 총관을 지목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순간, 주변의 영기가 연우혁의 백회혈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도사 중에는 의식적으로 선업을 쌓는 도사들이 있지. 그들은 선업을 쌓음으로서 자기 안의 영성을 올린다고 했다. 그런 것 아닌가?”

“!”

그걸 듣는 연우혁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건 원래 사건의 정답을 맞혔을 때 나오던 보상이었다.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보상이 주어졌던 것일까?

“그럼 제 능력은 상단전 때문에?”

“그렇겠지. 신통력은 보통 상단전이 열려서 생기는 힘이니. 하지만 네 신통력은 잘 모르겠군.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일을 귀신에게 물어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타심통(他心通), 담귀(談鬼), 영안(靈眼)... 이 정도면 벌써 피를 토하고 죽었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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