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5)화 (5/107)

삼절객 담풍호 (2)

매우 불안해진 연우혁은 담풍호가 방금 말한 능력들을 자세히 캐물었다.

원래 이런 지식들은 비전에 해당되는 것이라 처음 본 포쾌한테 말해줄 이유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담풍호는 거절 한 번 하지 않고 흔쾌히 설명해줬다.

타심통은 불교의 육신통에 들어가는 능력이지만 꼭 스님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었고, 도사들이나 술사들 중에서도 비슷한 신통력을 보여주는 사람이 가끔씩 나왔다.

“사람의 마음을 샅샅이 읽는 겁니까?”

“그럴 수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부처겠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뛰어난 타심통을 갖고 있던 사람은 불승이었다. 그 자는 말을 하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었지.”

‘생각보다 만능은 아니군.’

하긴 눈 하나 마주치는 것만으로 상대의 마음 속 깊이 읽을 수 있다면 그건 인간보다는 신선에 가까운 존재였다.

“담귀는 귀신하고 이야기하는 신통력... 영안(靈眼)은 뭡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신통력이다. 불문에서는 혜안(慧眼)이라고도 하지.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영안, 혹은 혜안이라고 불리는 이 능력은 가장 막연하고 희귀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애초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당장 무림인들도 단련된 이들은 안력(眼力)이 일반인들보다 강해져 날아오는 화살의 궤적을 보고 피하는 게 가능해지지만, 이걸 영안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럼 내 능력은 영안인가?’

연우혁은 생각에 잠겼다. 타심통이나 담귀는 아니었고, 영안이 그나마 가까운 것 같았다.

정신을 집중하면 원래라면 보기 힘들거나 알아내기 힘든 것들까지 세세하게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

“상단전과 신통력은 무림에도 아는 사람이 적다. 차라리 고서를 찾는 걸 추천하지.”

“아, 그, 피를 토하고 죽는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사람의 몸은 원래 하나였다.”

담풍호는 나뭇가지로 흙에 모양을 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태어나면서 정(精), 기(氣), 신(神) 이 셋으로 나눠지게 된다. 원래 무인은 정을 단련해 기로, 기를 단련해서 신으로 합쳐야 한다.”

무공에 대해 잘 모르는 연우혁에게는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목숨과 관련된 일이라 최대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정은 하단전. 기는 중단전. 신은 상단전이다.”

“그러니까... 어... 무공, 그러니까 내공을 쌓아서 하단전을 탄탄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 중단전을 탄탄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상단전을 탄탄하게 만드는 겁니까?”

“...탄탄하게 만드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비슷하다. 하지만 너는 상단전이 먼저 열렸지. 이는 역행이다. 당연히 몸에 좋지 않고, 신통력을 쓰는 자들은 이런 이유로 단명하지. 정과 기가 받쳐주지 못하는데 신이 발달됐으니 피를 토할 수밖에 없으니.”

연우혁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한마디로 지금 무공도 없고 몸도 튼튼하지 않은데 영안이 있어서 죽게 됐다는 소리 아닌가?

‘내가 얻고 싶어서 얻은 것도 아닌데?’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있다. 지금이라도 무공을 익혀서 하단전과 중단전을 단련해라.”

“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막막한 방법에 연우혁은 당황했다.

“들어보니 평범한 경지로는 못 버틸 것 같은데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나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안 떠오르는군.”

“......”

한마디로 살고 싶으면 익히라는 소리였다.

담풍호는 연우혁을 한 번 훑더니 말했다.

“무공의 기초는 익힌 것 같은데, 맞나?”

“포쾌들에게 주는 무공을 익히긴 했습니다만, 겉핥기로 배운 수준이라...”

“그래 보이는군. 삼류 수준이니.”

‘수련할 시간도 없었는데.’

갑작스레 무림에 떨어지고 나서 연우혁의 손에 들어온 건 포쾌의 요패뿐만이 아니었다. 포쾌들한테 주어지는 묵곤(墨棍)이라는 몽둥이 하나(시커멓기만 하고 별다른 능력은 없었다), 철전 몇 푼, 그리고 포쾌들에게 지급하는 무공서 한 권 등이 들어왔다.

그리 두껍지는 않고 글자가 어렵지도 않았다. 겉장에는 거창하게 위국(爲國)신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몸이 한 번 익혀놓은 상태였는지 심법도 권법도 한 번에 따라할 수 있었다.

“한 번 책을 봐주시겠습니까?”

“...포쾌라 잘 모르나보군. 다른 무림인에게는 절대 이렇게 무공을 알려주지 말도록.”

담풍호는 살짝 당황했지만 연우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포쾌들 전원에게 나눠준다는 것부터가 이 무공의 수준을 짐작하게 해줬던 것이다.

‘내가 무공에 대해 아는 건 적어도, 이 무공이 저잣거리에 굴러다니는 수준이라는 건 알겠다.’

당장 길 가는 포쾌 한 명 잡고 술만 먹여도 무공에 대해 알 수 있는데 뭘 숨기겠는가.

담풍호는 위국신공 책을 한 번 훑어서 읽어보더니 혀를 찼다.

“금강선공이군. 그것도 어려운 부분들을 다 빼버린.”

“금강선공이라면 대단한 무공 아닙니까?”

“삼백 년 전 무공이지.”

“그렇게 대단한 무공을 포쾌들한테 알려줘도 되는 겁니까!”

“삼백 년 전이라는 뜻을 오해했나보군. 삼백 년 전 무공을 누가 익히겠나. 낡은 무공이다.”

“......”

민망해진 연우혁은 입을 다물었다.

담풍호는 친절한 목소리는 아니어도 나름 자세히 설명해줬다.

내공심법이란 무릇 정순한 내공을 얼마나 빠르게 쌓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데, 금강선공은 낡은 심법인 만큼 결과가 느리고 둔했다.

대신 불문의 무공인 만큼 안정적이고, 운기조식 중에 어지간해서는 내상을 입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위국신공은 그나마 금강선공에서 어려운 부분들을 전부 다 빼버린 무공서였다. 까막눈인 포쾌들도 몸을 단련하고 쥐꼬리만한 내공을 쌓아서 건강하게 해주는 목적에 실로 충실한 책이었다.

“같이 있는 권법과 보법도 어려운 부분들을 다 빼버렸군.”

“......”

담풍호는 다시 책을 연우혁에게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이 무공을 수련하는 걸 도와주겠다. 그걸로 보답을 갈무리하지.”

“아, 그래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무공으로도 괜찮으십니까?”

“조악하지만 어쩔 수 없지.”

“......”

연우혁은 ‘내가 혹평했지만 사실 장점도 있는 무공이다’란 대답을 살짝 기대했지만, 상대 무림인은 실로 냉정했다.

*   *   *

저잣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왈패를 ‘아 저 자는 그래도 최소한 삼류의 무인은 되겠구나!’라고 하지 않듯이, 무공을 익힌 자와 익히지 못한 자의 구분은 엄격했다.

고수들의 눈에나 삼류의 경지가 우스워 보이는 거지 대부분의 양민들에게는 엄연히 무공을 익힌 무림인인 것이다.

사실 연우혁처럼 포쾌가 무공을 익힌 것만 해도 나름 대단한 일이었다.

무공 수련에 아예 관심이 없는 포쾌들도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편 같은데.’

실제로 연우혁은 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보고 가볍게 기대했다.

군살 없이 적당히 근육이 잡혀 있는데다가 단전에는 내공이라고 불리는 힘이 조금이나마 깃들어있었다. 제대로 무공을 배우지 못했다는 걸 감안했을 때 이 정도면 꽤 준비가 잘 되어있는 편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담풍호는 냉정했다.

“무림에서 흔히 말하는 이류의 경지는 초식 하나의 형(形)을 온전히 따라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그걸 머리에 담아두고 수련하도록.”

“제가 이류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어느 정도 걸릴까요?”

담풍호는 손가락 하나를 폈다.

“일 년입니까?”

“십 년. 그것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을 때다. 나이 들어서 수련할수록 근골이 굳고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느려진다.”

“......”

무림을 떠도는 소문에는 일류의 고수들이 즐비했지만 실상은 이류의 경지도 만만치 않았다. 평생 수련해도 이류에 도달하지 못하는 무림인도 있었다.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무공서만으로 무공을 익히는 경우, 자신이 펼치는 초식이 제대로 된 초식인지 비뚤어진 초식인지 구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삼절객은 그래서 자신이 시범을 보여주고, 연우혁을 따라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이 금강권ㅂ... 아니, 위국권법의 형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보고 따라하도록. 이 금강... 아니. 위국권법의 첫 초식이다.”

“진충보국(盡忠報國)입니다.”

“뭐?”

“첫 초식의 이름 말입니다.”

“...그래.”

‘괜히 말했다.’

담풍호가 한심하게 쳐다보자, 연우혁은 괜히 말했다고 후회했다.

이름이 잘 기억 안 나는 것 같아서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초식들 이름이 좀 많이 거창하긴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초식 이름은 뭐지?”

“어... 충군애국(忠君愛國)입니다.”

“그냥 이초식이라고 하겠다.”

“예.”

연우혁은 어디 가서 주먹 뻗을 때 절대 초식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쉭!

담풍호는 가만히 서더니 주먹을 뻗었다. 순간 공기를 가르고 주먹이 허공을 타격했다. 연우혁은 담풍호가 주먹으로 허공을 때리고 그 주먹을 원래대로 돌릴 때까지도 보지 못했다.

‘빠르다!’

진짜 고수의 무공을 처음으로 본 연우혁이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빠르기가 차원이 달랐다.

“못 봤어도 상관없다. 원래 그런 법이니까. 몇 번 반복하고 팔성의 위력으로 펼치겠다. 최대한 집중해서 보도록.”

처음에는 완전한 초식을, 그 다음에는 좀 더 힘을 뺀 초식을, 또 그 다음에는 더 힘을 뺀 초식을...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마지막에는 가장 느리게 초식을 보여주는 건 여러 명문정파에서 사용하는 수련 방법이었다. 다양한 위력의 초식을 반복해서 봄으로서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주먹이 허공을 쳤다. 연우혁은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집중했다.

그 순간 두통과 함께 담풍호의 주먹이 천천히 보였다.

단순히 주먹만 천천히 보이는 게 아니었다. 담풍호의 뒤쪽 발이 살짝 밀려나서 바닥을 잡고 있는 게 보였다. 다른 쪽 팔은 언제든지 다음 초식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보였다. 단전에서 뻗어 나온 내공이 기맥과 혈도를 따라 유려하게 흘러가는 게 보였다.

쉭!

“봤... 봤습니다.”

두통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연우혁이 말했다. 담풍호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보라고 했을 텐데.”

“그, 그게 아니라. 초식을 어떻게 펼치신지 제대로 봤다는 겁니다.”

“!”

평범한 무인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건방진 소리를 했다고 화를 냈겠지만, 담풍호는 연우혁이 상단전이 열린 특이한 포쾌란 걸 알고 있었다.

“뭘 봤나?”

연우혁은 자신이 본 걸 최대한 열심히 설명했다. 담풍호는 오늘 처음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영안이 이런 능력인 줄 몰랐군.”

“...어, 좋은 게 아닙니까?”

“남의 무공을 보는 것만으로 그렇게 깊숙이 파악하는 무인을 무림에서 좋아하겠나.”

영안이 없는 무인들한테도 쉽게 절초나 비기는 보여주지 않는 게 무림이었다. 한 번 보여지는 순간 그 때부터 파훼가 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포쾌는 보는 순간 그 무공을 파악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신통력을 갖고 있었다. 어디 가서 칼침 맞고 죽기 쉬운 신통력이었다.

“......”

이해한 연우혁이 침을 삼켰다. 고민하던 담풍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 들키면 되겠지.”

“아니...”

“무공에는 도움이 되겠군. 신통력이 무공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 눈은 계속 쓸 수 있나?”

“의식적으로 써본 건 처음입니다만, 두통 때문에 많이 쓰긴 힘들 것 같습니다.”

“길들이도록. 초식에 익숙해지듯이 신통력도 마찬가지다. 아마 기운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조절하는 법을 익히면 줄어들겠지.”

담풍호는 손가락을 뻗었다.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겠군. 첫 초식을 펼쳐봐라.”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세를 잡았다. 거의 텅텅 빈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리고, 아까 담풍호가 보여준 것과 거의 비슷한 자세를 취한 뒤, 똑같은 투로로 내공을 뻗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결과는 천지차이였다. 담풍호의 내공은 거대한 강처럼 막힘없이 뻗어져 나왔지만 연우혁의 내공은 가뭄에 바짝 말라서 쩍쩍 갈라진 저수지의 물마냥 잘 나오지 않았다.

연우혁은 더욱 내공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 머리 쪽이 열리는 느낌과 함께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며 주먹에 내공이 실렸다.

그걸 본 담풍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깜짝 놀란 담풍호는 검을 뽑아들어 번개처럼 연우혁의 혈도를 점혈했다.

점혈당한 연우혁은 쓰러지면서 중얼거렸다.

“팔, 팔을 자르시면 안 됩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