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 오 포쾌 (1)
다행히 팔은 잘리지 않았다. 담풍호의 시선이 아까보다 조금 더 서늘해진 것 같아서 연우혁은 다급히 변명했다.
“제가 무공을 잘 몰라서 제 팔을 자르는 줄 알았습니다.”
“상단전의 내공을 썼군.”
“예?”
담풍호는 변명을 무시하고 연우혁의 완맥을 잡고 진맥했다.
“상단전의 내공이라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연우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담풍호는 자기 목숨이 아니라 그런지 여전히 냉정하게 말했다.
“그렇다.”
원래 무공은 하단전에 쌓은 내공을 기경팔맥과 혈도에 퍼뜨리며 움직임으로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무예였다.
당연히 하단전에 쌓은 내공을 사용하는 걸 기준으로 무리(武理)를 잡았지, 상단전의 내공을 사용하는 걸 기준으로 잡지 않았다.
상단전의 내공을 끌어온다는 것은 백회혈에서 내공을 끌어오는 것과 비슷했으며 이는 역(逆)이자 무공에서는 금기되는 이치에 속했다.
내공은 단전에서 사지의 말단으로 뻗어져나가야 하지 정수리에서 뻗어져나가는 게 아닌 것이다.
“원래 이렇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겁니까? 혹시 무공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당연히 아니다. 아마 상단전이 열려서 그런 것 같군.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게 상단전이니.”
담풍호는 내공을 흘려보내서 포쾌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단전의 내공을 끌어내서 내지르다니. 크게 내상을 입었어도 놀랍지 않았다.
다행히 내상은 심하지 않았다. 단전과 주변의 혈도가 조금 상하긴 했지만, 상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온 것치고는 싸게 먹힌 것이었다.
“더 이상 내공을 끌어내지 말고 정양하도록. 내상이 다 나을 때까지.”
담풍호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지금 이 포쾌는 아혈까지 점혈당했는데도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상단전에 축기한 내공을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군.’
하단전에 한 줌만의 내공을 갖고 있는 삼류 무인이 일류 무인이나 내지를 권격을 찔러대지 않나, 점혈을 해도 풀리질 않나.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상단전을 타통한다는 건 원래 이런 일이었다.
그만큼 희귀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든 일. 상단전에 쌓인 내공 또한 그랬다.
‘상단전에 기운을 얼마나 축기한 거지?’
하단전이 아니라 상단전에 기운을 쌓는 건 원래 훨씬 더 어려운 일.
만약 상단전이 쉬웠다면 무림의 무학은 상단전 위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포쾌는 상단전 쪽 내공이 비정상적으로 축기되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계속해서 기운을 쌓은 것처럼.
“앞으로 상단전의 내공은 가능한 끌어다 쓰지 말도록. 운이 좋았지만 요행이 반복되리란 법은 없으니.”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상단전의 내공을 옮길 수는 없습니까?”
“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연우혁은 당연히 안 된다는 대답을 생각하고 던진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놀랐다.
만약 옮길 수 있다면 훨씬 수련이 수월해질 것이다.
쓸데없이 발달된 상단전의 내공을 하단전으로 돌려서 육신을 단련한다면...
“하단전과 중단전을 단련해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해라. 말했듯이 정(精), 기(氣), 신(神)을 하나로 합칠 수 있다면 단전끼리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
자기도 못 오른 경지를 저렇게 말하는 담풍호의 모습에 연우혁은 어이가 없었다.
만약 상대가 자기보다 훨씬 강한 무림인만 아니었다면 욕도 조금 했을지 몰랐다.
‘장난하나.’
“힘이 돌아왔다면 일어나라. 초식을 보겠다. 내공을 쓰지 못해도 초식의 형태는 잡을 수 있겠지.”
* * *
이런 저런 소란들이 있었지만 담풍호는 이 포쾌의 자질이 꽤 뛰어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무공의 초식을 보는 것만으로 이해하는 자질은 어디 가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만약 나이가 조금만 더 어리고 근골이 뛰어났다면, 그리고 상단전이 열려서 단명할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명문정파에서도 이 포쾌를 제자로 탐냈을 것이다.
만약 담풍호가 참견하기 좋아하는 무인이었다면 안타까워하거나 동정했을 테지만 담풍호는 그러지 않았다. 상단전이 열린 게 이 포쾌의 운명이라면 그걸 짊어지는 것 또한 이 포쾌가 해야 할 몫이었다.
그리하여 배운지 삼일 째 되는 날, 담풍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꾸준히 수련하도록.”
“감... 감사합니다!”
연우혁은 땀에 젖어서 털썩 쓰러졌다.
원래 다음 경지로 가기 위한 초식의 형태를 정확히 잡아주려던 담풍호였지만 그건 포쾌의 영안으로 단번에 끝났다.
대신 담풍호는 이틀을 더 사용해 근골을 가다듬고 내공을 확인했다. 워낙 기묘한 체질이라 놓친 게 있을지 몰라서였다.
“계속해서 내공을 쌓고 무공을 수련해라. 신통력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단전에 두텁게 내공을 쌓고 신통력을 통제해라. 통제할 수 없는 신통력은 더욱 수명을 깎을 거다. 그리고 더 좋은 무공을 찾아라. 네 금강선공은 너무 단순해 한계가 금방 드러날 거다.”
“더 좋은 무공을 어디서 찾습니까?”
“돈을 모아서 서관에 가라. 아주 상승의 무공은 당연히 구할 수 없겠지만 네 무공보다 괜찮은 무공은 찾을 수 있을 거다. 아니면 명문정파에 은혜를 베풀고 무공을 부탁해라. 비인부전의 무공은 불가능하더라도 속가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무공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다.”
연우혁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했다. 말을 끝낸 담풍호는 검을 허리에 차더니 바로 돌아섰다.
“앗. 제가 술이라도 대접하려고 했습니다만.”
“필요 없다. 어디 가서 내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도 하지 말도록. 쓸데없는 은원에 휘말릴 수 있으니.”
“...대협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우혁이 아직 무림에 대해 잘은 몰라도, 이 삼절객이라는 무인이 친절을 베풀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우혁이 누명을 풀어줬다는 이유만으로 참을성 있게 모든 것을 설명해준 것이다.
담풍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연우혁은 담풍호가 떠난 자리에 고개를 숙였다.
* * *
오 포두에게는 조카가 있었는데, 이 조카 또한 포쾌의 일을 하고 있었다.
나름 포쾌들 중에서는 무공의 고수 축에 속하는 오 포두와 달리 이 오 포쾌는 무공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저잣거리에서 파는 화화작(禾花雀, 참새 요리)이나 당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 오 포쾌를 봤을 때 그 중후한 덩치에 연우혁은 상대가 중(重)을 중시하는 무공을 익힌 건가 싶었을 정도였다.
물론 오 포쾌는 그냥 덩치만 큰 거였다.
“숙부께서 널 돌봐주라고 하셨으니, 내가 널 돌봐주겠어. 자. 저길 봐라.”
“?”
연우혁은 오 포쾌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냥 번성한 시장거리였다. 유삼을 걸친 상인들이 제각기 구성진 가락을 붙여가며 물건을 사라고 유혹했고, 웃옷을 벗은 일꾼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짐을 옮기고 있었으며, 근처 주루에서 나온 하인들은 화려한 깃발을 휘둘러가며 자신의 소속을 자랑해댔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뜨기라면 이런 광경을 보고 눈이 어지러워질 수도 있었지만 연우혁에게는 그냥 번성한 정도였다.
“다른 구역의 포쾌들은 여기 오면 뭐가 맛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속속들이 알고 있지. 자. 저기 노점이 보이냐? 두 노인의 소면은 다른 소면보다 훨씬 더 실하다. 따라와라.”
오 포쾌는 노인 앞에 털썩 앉더니 국수를 받았다. 많이 받아본 듯 익숙한 태도였다. 연우혁 앞에도 나무그릇이 하나 놓였다.
‘아니. 맛있잖아?’
연우혁은 살짝 감탄했다.
오 포쾌가 떠드는 걸 보고 살짝 얕잡아봤었는데, 나름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숙소 주인이 아침 저녁으로 한 개씩 던져주는 속 없는 퍽퍽한 만두와 소채(蔬菜) 한 그릇은 배를 채우는 용도였지 맛은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해 이 국수는 국물을 뭘로 냈는지 칼칼하고 깊은 맛이 났다. 오 포쾌는 연우혁이 한 젓가락 뜨는 순간 그릇을 비우고 탕 내려놓았다.
“느린데?”
“...아, 죄송합니다.”
“됐어. 천천히 먹어.”
말은 그렇게 해놓고 오 포쾌는 연우혁이 다 먹을 때까지 발로 바닥을 탁탁 치며 기다렸다. 다 먹는 순간 오 포쾌는 벌떡 일어섰다.
“어, 오 포쾌님. 값을 안 치르셨습니다?”
연우혁은 만약 상대가 ‘신입이 내야지’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주먹질까지 불사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오 포두의 조카라지만 이렇게 얕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값을 왜 치르는데?”
“예?”
“이봐. 네 허리춤에 단 게 뭐야? 포쾌의 요패 아냐? 양민들을 지키는!”
“그렇죠?”
“그런데 왜 값을 내? 당당하게 나와야지.”
“......”
‘도둑놈이었구나!’
연우혁은 미친 놈 보듯이 오 포쾌를 쳐다보았다. 더 놀라운 건 국수 파는 노인이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가만히 있는다는 점이었다. 표정을 보니 빨리 꺼져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 그렇군요. 하나 배웠습니다.”
“그래. 그래. 숙부한테 꼭 말해달라고.”
오 포쾌가 돌아선 사이 연우혁은 철전을 하나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무전취식을 하자니 양심이 찔렸던 것이다.
두 노인은 철전을 받자 깜짝 놀라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마치 처음 보는 희귀한 짐승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연우혁이 더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미친놈들...’
연우혁은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오 포쾌 뒤를 쫓았다. 어쩐지 저잣거리 상인들의 시선이 불가근불가원을 연상시키는 미묘함이 있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연우혁이 상인이었어도 포쾌들이 싫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티를 내면 달려와서 지랄을 해댈 테니...
‘돈을 벌긴 해야 하는데, 이렇게 벌긴 싫다!’
무림에 떨어지고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 포쾌들처럼 상인들 볼 때마다 돈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연우혁이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원한을 차곡차곡 쌓는 일이었던 것이다.
‘수명 좀 늘리려다가 등 뒤에서 칼침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연우혁의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오 포쾌는 저잣거리의 노점들을 돌며 맛있는 음식들만 속속들이 챙겨 먹었다. 그릇이 쌓이고 쌓일 때마다 상인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저긴 안 갑니까?”
연우혁은 이 저잣거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선배 포쾌를 잡고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나 오 포쾌는 깜짝 놀라서 크게 외쳤다.
“이런 큰일 날 사람을 봤나, 저건 번루(樊樓)잖아!”
한경은 나름 번성한 곳이었고 그런 만큼 시장도 한 군데뿐만이 아니었다. 강 근처에는 어류를 파는 시장, 북쪽에는 쌀과 고기를 파는 시장, 동쪽에는 야채와 약재를 파는 시장...
지금 포쾌들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노점들이 즐비한 저잣거리는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 중 중앙의 번루는 도시에서 가장 번영하고 호화로운 구역이라고 보면 편했다. 도시에서 내로 하는 주루(酒樓)들이나 다점, 귀금속점 등들이 다 저쪽에 몰려 있었다.
“번루에 가면 안 됩니까?”
연우혁은 의아해했다.
분명 오 포두가 말한 포쾌의 순찰 영역에는 번루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번루 놈들은 도둑놈들이라, 양민을 지키는 포쾌에게 싸구려 황주 한 잔도 주지 않는 놈들이야. 괜히 말을 해봤자 흠씬 두들겨 맞기만 하지!”
“......”
한마디로 권세가 드높은 상인들이라 포쾌 같이 하찮은 말단의 말은 안 통한다는 소리였다.
‘두들겨 맞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씩씩대며 말하는 걸 보니 번루에 가서 공짜 술을 요구했다가 두들겨 맞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음. 그럼 저는 저기 가서 순찰이라도 하겠습니다.”
“뭐? 내 말을 뭘로 들은 거냐?! 갈 이유가 없다니까?”
“아니. 오 포쾌님. 오 포쾌님이야 쌓은 공이 많으시고 명성이 높으셔서 여기 계셔도 되지만, 새로 들어온 저 같은 포쾌가 여기 있으면 포두님께서 뭐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연우혁의 말에 오 포쾌는 헤벌쭉 웃은 다음 생각에 잠겼다.
“으음. 너는 눈치가 보일 수 있겠구나!”
“예. 그렇습니다.”
연우혁도 딱히 번루에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그냥 최대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충 도는 척만 하면 되겠지.’
“어쩔 수 없지. 가자.”
‘아니 이런.’
오 포쾌는 포두에게 부탁받은 것 때문에 마지못해 일어섰다. 연우혁 입장에서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저 혼자 순찰해도 됩니다만...”
“아냐, 아냐. 길도 잘 모를 텐데. 나만 따라오도록. 길은 잘 아니까.”
그렇게 발을 디디려는 순간 옆 전장(錢莊)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헛소리 하지 마라. 네놈들을 모두 거꾸로 매달아서라도 은자를 찾아낼 테니까! 사라진 은자를 찾기 전에는 아무도 나가지 못할 거다. 물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싶으면 어느 놈이 은자를 훔쳐간 건지 이실직고를 하란 말이다!”
“!”
돈을 빌려주고 받는 전장 점포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연우혁이 깜짝 놀라는 사이 오 포쾌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속삭였다.
“연 포쾌. 요패 숨기고 돌아서라. 우린 여기 온 적 없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