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낭 제갈규 (1)
사흘 후.
공 총관은 포쾌들이 머무르는 관아에 직접 찾아왔다.
오 포쾌는 그 모습에 기겁했다. 얼마나 기겁했는지 오전부터 진흙과 연잎으로 곱게 싸서 굽던 닭을 던지고 도방(倒防) 건물로 피신할 정도였다.
그러나 공 총관은 분노하거나 멱살을 잡는 대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
“고맙네. 고마워!”
“은자를 훔쳐간 사람을 잡으셨습니까?”
“그래!”
오 포쾌는 상황이 괜찮게 흘러가는 것 같자 슬며시 기어나왔다.
“총관 어르신. 정말 보표 놈이 훔쳐갔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허!”
오 포쾌는 귀신을 본 것처럼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숙부한테 새로 들어온 포쾌가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아무래도 귀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직접 보니 정말로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귀신을 부리나? 혹, 혹시 내 마음을 읽는 거 아닌가?’
“선배님. 저는 마음을 읽을 줄 모릅니다.”
“허어어어억!”
오 포쾌가 뒤로 넘어지더니 허겁지겁 물러섰다. 연우혁은 생각보다 너무 효과가 극적이자 당황했다.
“정말 마음을 읽을 줄 모릅니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신통력이 있다고 들었다! 그 신통력으로 내 마음 속을 엿보고 있는 거겠지!”
“그냥 추측해봤을 뿐입니다. 신통력이 있긴 한데, 그렇게 마음까지 읽진 못합니다.”
“정, 정말이냐?”
오 포쾌는 옷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섰다.
그 소란에 다른 곳에 있던 포쾌들 몇몇이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아. 그 새로 들어온 놈 있잖나. 그 놈이 정말로 은자를 찾았다고 하던데.
-진짜 신통력이 있나보군...
포쾌들은 호기심과 경외심, 그리고 두려움이 살짝 섞인 눈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신통력이라는 것은 고명한 불승이나 도사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었지 저잣거리를 뛰어다니는 포쾌한테 어울리진 않았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점이라도 쳐달라고 하고 싶으면서도, 또 괜히 신통력이 있는 자에게 불손하게 굴었다가 천벌이라도 내려올 것 같아서 두려웠다.
“정말 고맙네.”
공 총관은 포쾌들과 달랐다.
총관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세상 물정에 밝은 만큼 신통력에 대해서도 포쾌들만큼 불확실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
물론 총관이 본 사람들 중에서도 눈앞의 포쾌만큼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천 리를 내다보듯 훔쳐간 사람을 찾아내다니.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 재주였다.
“몰래, 조용히 보표의 집을 수색해보라고 했지. 그 기름에 튀겨 죽일 놈이 안뜰 깊숙한 곳에 은자를 파서 묻어놨더군.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애꿎은 하인들을 계속 의심했을 거야.”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연우혁의 말은 반쯤 진심이었다.
애초에 전장, 창고, 은자 유출, 보표를 듣는 순간 어느 누가 가져갔는지 바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저렇게 칭찬을 계속 듣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보답을 하고 싶네.”
“!”
연우혁은 총관의 말에 놀랐다.
아무래도 상대의 말이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여기 무림에 떨어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연우혁은 빠르게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대뜸 대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너무 빨리 받아들여서도, 너무 과한 걸 요구해서도 안 됐다. 포쾌로서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기껏 문제를 해결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현령이나 포두한테 불려가서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녹봉을 받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연우혁의 말에 공 총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실로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이 주변의 포쾌들은 온통 승냥이 같은 놈들이라 빈틈만 보이면 시체 파먹듯이 달려들어 댔는데, 이 새로 온 포쾌는 뭔가 달랐다.
일을 해결하는 능력도 그렇고 눈빛에는 정기(正氣)가 가득한 것이 이런 포쾌라면 믿고 일을 맡겨도 될 것 같았다.
“아니야. 정말로 고마워서 그래.”
“하지만...”
“어르신께서 말하시는데 자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야. 연 포쾌!”
오 포쾌가 연우혁의 등짝을 철썩 때렸다. 때마침 좋게 끼어들어주는 선배의 모습에 연우혁은 속으로 감사했다. 이럴 때는 오 포쾌가 참 든든했다.
“그래. 오 포쾌가 좋은 말을 했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봐. 주루라면 무조건 금장루야. 이유는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오 포쾌가 속삭였지만 연우혁은 못 들은 척 말했다.
“어르신. 그렇다면 혹시 무공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
“!!!!”
서로 다른 충격을 받은 뒤, 공 총관은 흥미로워하며 물었다.
“무공서는 어째서인가? 포쾌들은 이미 무공을 배우고 있을 텐데?”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아직 무공에 모자람이 많습니다. 좀 더 좋은 서책을 얻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네는 정말 좋은 포쾌로군! 이 한경에 자네 같은 포쾌가 새로 들어오다니. 보통 복이 아니야.”
오 포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찼다.
포쾌는 죄인의 자택에 찾아가 명을 전달하고, 혹은 가끔 도망치는 죄인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이런 일에 상승의 무공이 무엇하러 필요하단 말인가.
무림인들은 밤낮 구슬땀을 흘려가고 잠을 줄여가며 무공을 수련한다지만, 결국 그 끝에 뭐가 남는가? 대다수는 입신양명도, 천금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무림의 사체로 발견될 뿐이었다.
“좋네. 무공서... 내가 무공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내가 찾아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을 한 번 구해보겠네.”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네.”
“?”
“혹시 창고에 다시 와줄 수 있겠나?”
* * *
공 총관이 말을 꺼냈을 때, 연우혁은 창고에 사건이라도 다시 일어났나 싶었다.
‘같은 창고에 두 번 사건이라면 뭐였지? 독살이었나?’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아니었다. 공 총관이 연우혁을 창고에 다시 데려가려는 이유는 좀 더 의외인 이유였다.
“저 창고는 참 튼튼하고 단단하네. 그건 십 년 동안 지켜본 내가 보장할 수 있지. 이번 일을 제외하면 어떤 신투도 들어오지 못했었고 말이야.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은, 그 안이 너무... 춥다는 걸세.”
“어르신. 저는 도사도, 술사도 아닙니다만...”
창고의 추위.
그게 바로 공 총관이 연우혁을 창고에 데려가려는 이유였다.
고작 창고의 추위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우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진지한 문제였다. 창고의 추위가 생각보다 혹독해서 보표들만 해도 옷을 두텁게 입고 들어가야 했다.
가끔씩 총관도 들어갈 때면 각오를 하고 들어가야 할 정도였으니...
“아네. 알아. 만약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말게. 이것 때문에 불평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무공서도 꼭 성의를 다해서 찾아주겠네. 다만 자네 같은 사람이 한 번 보면 무언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걸세.”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만, 제갈세가의 무인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연우혁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물론 영안이라는 능력이 있긴 했지만, 이 진법을 설치한 제갈세가의 무인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쉽게 찾아낼 수 있다면 상대가 먼저 찾아내지 않았을까?
“부담 갖지 말게.”
“그보다 창고에 이렇게 접근해도 되는 겁니까?”
“자네가 도둑질을 할 사람이었다면 보표한테 찾아가서 은자를 나눠달라고 요구했겠지.”
공 총관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열쇠를 돌려 창고 문을 열었다. 자물쇠가 몇 겹은 있었는지 열쇠를 돌리는 것만해도 시간이 걸렸다.
모든 빗장을 치운 총관이 창고 문을 열었다. 어둑어둑한 창고 안에서 냉기가 휘몰아쳤다.
“...!”
연우혁은 기겁했다. 이건 그냥 추운 정도가 아니라 마치 한겨울의 칼바람 같았다.
‘어떤 미친 놈이 진법을 설치한 거야?’
아무리 외부인을 막으려고 설치했다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창고에 들어올 때마다 거의 얼어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와야 할 수준이었다.
‘집중하자.’
연우혁은 집중했다.
담풍호가 말했던 것처럼, 연우혁은 무공을 수련하면서 영안을 통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원할 때, 원하는 것만 볼 수 있도록.
그게 지금 연우혁의 목표였다.
“!”
창고 안의 정보들을 확인하기 위해 집중하자,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머릿속에 강제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두통이 없다는 점이었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담풍호의 말이 맞았다.
처음에는 쓸 때만 해도 두통이 올라오던 영안이었지만,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두통이 올라오지 않았다. 힘을 조절해서 짧게 사용하는 요령을 익힌 기분이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정보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자세해졌다.
‘확실히 원래도 능력이 성장했었지.’
능력이라고 해봤자 얻는 정보들이 늘어나고 자세해지는 정도였지만, 확실히 영기와 상단전의 능력은 연관이 깊어보였다.
내공은 지지리도 안 쌓이는데 상단전의 기운은 이렇게 쉽게 쌓이다니.
‘정말 상단전의 내공을 어떻게 돌릴 순 없나...’
마제은(馬蹄銀) 한 상자, 화섭자, 야명주, 침입자를 살해하기 위해 벽 안에 자리 잡은 기관진식, 진법을 유지하기 위해 배치된 돌과 나무와 빙석...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들어오는 정보를 파악하던 연우혁은 창고 안에 기운의 흐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건을 해결하면 연우혁의 상단전으로 주변의 영기가 흡수되듯이, 이 주변의 기운이 창고의 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연우혁은 창고 안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진법을 구성하는 빙석(氷石) 중 하나가 살짝 금이 가 있다는 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진법이... 망가진 건가?’
냉기가 이 주변으로만 비정상적으로 몰리는 거 보니, 진법을 구성하는 빙석에 금이 가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육안으로는 알아보는 게 불가능할 만큼 희미한 금이었다.
연우혁은 확인하기 위해 금이 간 빙석 앞에 섰다. 그러자 빙석 앞에 고인 냉기가 사납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연우혁은 손을 뻗어 앞을 막았다.
‘아차!’
실수였다. 손으로 막는다고 저런 기운이 막아지겠는가.
연우혁은 멍청하게 멋대로 진법을 돌아다닌 스스로를 탓했다. 아무리 창고에 설치된 진법이라 하더라도 얕봐서는 안 됐었다.
그러나 그 순간 냉기가 멈췄다.
“...??”
연우혁은 당황해서 기운을 확인했지만 냉기는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연우혁의 뜻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정신을 집중해서 명령을 내리자 냉기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또 위쪽으로 움직였다.
진법 내의 기운을 이렇게 멋대로 조종할 수 있다니?
그런 게 가능했다면 무림에서 진법은 예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갇힌 사람이 멋대로 기운을 다스릴 수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것도 상단전 덕분인가?’
연우혁도 본인이 특이하단 것 정도는 알았다. 상단전이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다량의 영기를 쌓고 있고, 또 희귀한 신통력까지 있지 않은가.
그게 지금 같은 일에도 영향을 준다면...
‘일단 밖으로 내보낸다!’
연우혁은 다급히 밖으로 냉기를 쏘아 보냈다. 점점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창고 안에 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공 총관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러니까 이게...”
연우혁이 변명하기도 전에 귀가 찢어질 듯한 바람 소리가 끝이 났다. 그리고 창고 안의 냉기도 모두 사라졌다.
“죄송합...”
“대단해, 대단해! 일각도 안 되어서 이렇게 해결할 줄은 몰랐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