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14)화 (14/107)

인싸 팽주성 (3)

사실 팽주희는 이 불가사의한 일에 대한 내막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인근의 포두와 현령은 무능하여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대충 넘어갔지만 팽주희는 듣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포목점을 운영하는 어느 내외가 하루는 친족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났는데, 밤을 보내기 위해 근처 마을에 들렀다가 아내가 변을 당했다. 누가 이런 흉악한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무능한 현령은 마을 사람들을 붙잡아서 심문했지만 당연히 쓸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팽주희는 처음부터 남편을 붙잡아서 심문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저런 상황에서 아내를 죽일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마을 사람들 중에 남편이나 아내와 원한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재물을 탐해서 죽인 거라면 남편도 같이 죽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남편을 의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무능한 현령과 포두들은 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헛되이 낭비해버렸다. 그 덕분에 남편은 사람들의 동정을 받으며 포목점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어떻게?’

팽주희는 놀라워하며 포쾌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소문으로 이 일에 대해 들었다 하더라도, 어떤 일인지 다 듣기도 전에 팽주희의 생각을 알아맞히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정말 팽주성의 말대로 이 포쾌에게는 신통력이 있는 것일까?

‘아니. 하지만...’

어리숙한 양민들과 달리 오대세가의 직계쯤 되면 신통력에 이상한 환상을 가지지 않았다. 살면서 신통력을 가진 무인을 한두번 정도는 만나보는 것이다.

무슨 눈만 마주쳐도 마음 속 깊은 생각을 읽어내고, 백 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고...

이런 것들은 수상쩍은 약장수나 할 소리였다.

정말로 뛰어난 불승(佛僧)도 고작해야 상대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알아차리는 정도였고 이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신통력이었다.

당연히 눈앞의 포쾌가 팽주희의 속마음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연우혁은 상대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바로 말을 이어갔다.

포쾌 노릇을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법은 이미 체득한 상태였다.

먼저 강렬하고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 상대가 너무 놀라거나 수상해 할 경우, 상대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붙여준다.

그러면 이제 상대가 알아서 연우혁의 능력을 상상 속에서 비범하게 부풀려줬다.

연우혁의 신통력이라는 건 결국 주변에 있는 정보들을 세밀하게 흡수하는 능력. 딱 거기까지였지 사람의 마음을 멋대로 조종하거나 읽어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연우혁이 무림에서 일어난 무수히 많은 사건들을 해결해봤다지만 가끔 논리보다는 힘이 우선일 때가 있는 법.

‘사실 가끔도 아니지.’

그럴 때 연우혁이 언제나 주변을 다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 부풀리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멋모르는 상대라면 알아서 겁먹고 자백하게 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포쾌는 너무 인식이 안 좋아.’

대화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포쾌라는 직업의 인식은 연우혁이 파악한 것보다 몇 배는 더 안 좋았다.

양민이고 무림인이고 만나면 질색부터 하는데 고관대작들은 어떻겠는가.

나중에 뇌물을 바쳐서 더 높은 관직을 노린다 하더라도 수많은 경쟁자가 있을 텐데, 그럴듯한 명성은 든든한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저 같은 포쾌한테 물어보실 정도로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하신 걸 보니, 누군가 죽은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먼 길을 떠났을 때 누군가 죽었다면 도적을 만나거나 중병에 걸렸을 경우를 생각하기 쉬운데, 그랬다면 저한테 물어보시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내외 중 한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고 위장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내가 죽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팽주희는 자신도 모르게 편한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연우혁은 공손히 대답했다.

“친족을 만나러 갔으니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남편일 것이고, 그렇다면 남편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하지만 내가 내막을 알고 있는 건 어떻게 짐작했나?”

“그건 간단합니다. 대(大) 하북팽가의 피를 이으신 분께서 이런 일을 짐작하지 못하고 물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연우혁의 아첨에 팽주희는 싱긋 웃었다. 아첨인 걸 알면서도 기분 좋게 들리는 아첨은 드문 법이었다.

“아첨이 심한데? 하북팽가의 위세는 대단하지만, 그 위세에 지혜가 들어가 있지는 않거든.”

그 말에 연우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좋은 대답이었으니까.

팽주희도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말을 이어갔다.

“놀랍군. 내 오라비가 사람 보는 눈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허풍을 잘 걸러듣는 건 또 아니거든. 정말 능력 있는 포쾌를 데리고 왔... 아. 하긴. 제갈 소협이 데리고 왔지.”

“팽 대협도 데리고 오자고 하셨습니다.”

팽주희는 별로 믿지 않았는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놀랍군. 놀라워. ...그래서, 아까 그 남편 말인데.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현령은 무능해서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가버렸고, 내가 들었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지. 아무 근거도 없이 남편을 불러와서 심문할 수도 없었고.”

질문을 받은 연우혁은 조심스럽게 기억 속에서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포목점을 운영하는 내외, 마을에 들렸다가 아내가 칼에 당해 쓰러짐, 그렇다면 분명 수상했던 점은...

“시체를 누가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까?”

“응?”

“시체 말입니다. 아내의.”

“으음... 남편이 발견했지.”

“위치는?”

“마을 근처의 수풀이었나?”

“주변 지리에 익숙한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남편이 먼저 발견한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라면 그걸 이유로 심문했을 겁니다.”

“...제갈세가보다 뛰어난데!”

팽주희는 연우혁의 등을 후려쳤다. 내력을 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컥...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미 다 해결해 본 사건으로 이렇게 칭찬을 듣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제갈세가보다 뛰어나단 말은 제갈세가의 무인들한테 찔리기 좋았다.

“아. 정작 들어야 할 이야기를 안 들려줬군. 앉아봐.”

팽주희는 옆을 탁탁 치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이 정도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지금 백면신투의 보물이 어딨는지는 대충 알고 있어.”

“예? 그렇습니까?”

팽주성을 따르는 무인들과, 팽주성과 친한 무인들로 구성된 이 일행은 생각보다 능력이 있었다.

다른 낭인 나부랭이들이 지나가는 나무꾼을 붙잡고 ‘아는 대로 불어라’라고 윽박지르는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먼저 소문이 언제부터 돌았는지를 확인했고, 그 소문이 어디서 돌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했으며, 장보도 몇 장을 얻어서 어딜 가리키는지도 확인해 놓은 상태였다.

‘아니, 생각보다 유능하군!’

연우혁은 놀랐다.

그냥 생각 없는 무림의 젊은 후기지수들 모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긴 오대세가의 일원쯤 되면 생각이 없어도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당장 가문의 힘으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새로 갖고 온 장보도도 확인했는데 위치는 똑같더군. 산채야. 팔강산에 자리 잡은.”

팽주희는 손가락으로 마을 저편의 산을 가리켰다. 꽤 크고 울창한 산이었다.

“위치는 파악하셨는데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다는 건... 의견이 갈리시는 겁니까?”

포쾌의 예리한 말에 팽주희는 즐거운 기색으로 대도의 날을 두드렸다. 똑똑한 자들과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산채까지 들어가서 싸우는 건 계산을 하게 되니까.”

산적들은 생각보다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의 무공은 떨어질지 몰라도 타고난 잔혹성과 야만성이 그걸 벌충했다.

특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에게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는데, 약초꾼이나 사냥꾼 등등이 주로 피해자였다. 한 번 잡히면 목이 잘리고 시체가 나무에 매달렸다.

날 밝고 탁 트인 곳에서 오대세가의 위엄을 앞세우며 비급을 찾는 일과, 어둡고 습하고 길 없는 곳에서 끈질긴 산적들과 사투를 벌이는 일은 전혀 달랐다. 들어가길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와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러니까 장보도도 수상하고, 소문도...

-그런 식으로 따지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지 않나! 분명 장보도를 갖고 온 놈 때문에 소문이 퍼진 거겠지. 다른 장보도는 장물아비가 그려서 판 것일 테고.

-팽 형! 결정을 해주십시오.

-팽 형!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아. 저래서 다투는 거였나.’

그러는 사이 제갈규가 일갈했다.

“멍청하기는. 백면신투의 부하나 제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멍청하겠나? 그런 수상쩍은 뜨내기 장물아비한테 물어볼 정도로?”

“떠돌이가 백면신투의 안가(安家)나 숨겨놓은 거처를 발견한 걸 수도 있지!”

“백면신투가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했겠냐!”

“안 할 건 또 뭐요!”

‘이런.’

연우혁은 제갈규의 등장으로 반전되는 분위기를 보며 아차 싶었다.

반으로 갈려 있던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제갈규의 반대 편으로.

산채에 들어가기 싫어서 미적거리던 자들도 제갈규가 멍청하다고 하자 오기가 생겼는지 들어가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젠장. 그냥 얌전히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후회해봤자 분위기는 이미 끝장난 뒤였다. 팽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내렸다.

“가서 확인해보세. 설령 아무것도 없더라도 산적을 토벌해서 나쁠 건 없겠지.”

*   *   *

‘산채, 장보도, 비급...’

연우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해결했던 사건들 사이에서 단서를 뽑아보려고 애썼다.

연우혁이 해결했던 사건들은 지금처럼 ‘백면신투가 숨긴 비급에 대한 소문이 왜 돌고 있을까?’같은 거대한 질문에 대해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보다는 비급을 찾으러 왔다가 죽은 네 사람에 대한 사건, 말을 할 때마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신기한 무림인에 대한 사건 등 이런 식으로 쪼개져서 알려줄 뿐이었다.

이렇게 해결한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 이 중 어떤 게 비급과 관련된 사건들인지 떠올리는 건 오로지 연우혁의 몫이었다.

‘산채에서 일어난 사건이 뭐가 있었지? 산적 전원 독살... 주변 지형을 보니까 아니고. 미동(美童)을 두고 결투한 산적들인가? 아니... 아닐 것 같군. 비급 때문에 무림인들이 돌아다니는데 그런 한가한 짓을 하진 않겠지.’

팍, 파파팍-

길도 없는 산을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지만, 무림인들의 체력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선두에 선 무림인들이 병장기를 휘두르자 없던 길이 만들어졌다.

팽주희는 화승(火繩)처럼 보이는 노끈을 꺼내 불을 붙였다. 말린 쑥으로 만든 일종의 모기향이었다.

사천당문에서 나온 당령은 향낭(香囊)을 꺼내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벌레들이 감히 접근하질 못했다.

연우혁은 영안으로 주변에 날아드는 벌레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슬금슬금 염일림 쪽으로 이동해서 벌레들을 피했다. 염일림은 벌레들이 많이 달라붙는 체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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