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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15)화 (15/107)

충신 연우혁 (1)

그런 움직임을 염일림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벌레 때문에 다가왔다고 생각하진 못했지만, 염일림은 눈엣가시인 포쾌가 가까이 붙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꺼져라. 포쾌 새끼야.”

‘상황 파악이 좀 더디군.’

상대가 오대세가의 일원이면 모를까 듣도 보도 못한 정파의 군소 가문 출신인 이상 연우혁은 별로 두렵지가 않았다.

물론 연우혁이 그냥 포쾌였다면 염일림 같은 무림인도 두려워해야 했겠지만, 연우혁은 그냥 포쾌가 아니었다.

팽주성을 비롯해 여러 오대세가 무인들에게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다고 평가 받는 신통력 포쾌 아닌가!

“염 대협.”

“뭐냐?”

“팽 대협께서 저를 꽤 좋게 봐주신 건 알고 계십니까?”

“어쩌라는 거냐? 네가 말도 안 되는 낭설로 팽 형을 속인 걸 모를 줄 아느냐?”

“제가 팽 대협에게 가서 염 대협이 의형(義兄)을 배신할 상을 타고 났다고 말하는 게 좋으십니까, 아니면 염 대협의 사주가 의형을 수생목(水生木)의 이치로 살리는 사주라고 말하는 게 좋으십니까?”

“...미친 새끼가!”

무시했던 포쾌한테 일격을 당한 염일림은 경악했다.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포쾌는 아랑곳하지 않고 염일림을 마주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염일림의 폐부까지 꿰뚫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자. 어쩌시겠습니까?”

“뭘 원하는 거냐? 뭘??”

“그저 저를 너무 핍박하지 말아달라는 것뿐입니다. 포쾌로서 일을 하러 왔는데, 염 대협께서 계속 핍박하시면 제가 어떻게 일을 하겠습니까?”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던 염일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굴욕적이었지만 포쾌 놈이랑 드잡이질을 벌여서 염일림에게 좋을 게 없었다. 심지어 저 포쾌를 마음에 들어하는 무림인이 팽주성 말고도 더 있었으니...

“감사합니다. 염 대협!!”

연우혁은 감사하다 말고 염일림의 뒷목을 붙잡고 힘차게 잡아당겼다.

생각보다 포쾌의 힘이 강하자 염일림은 깜짝 놀랐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힘이었다.

‘뭐야 이 놈?’

쉬이익!

염일림 발 앞에 화살이 하나 꽂혔다. 팽주희는 그걸 보고 놀라워했다.

아무리 염일림의 경지가 팽주성이나 팽주희 같은 오대세가의 무인에 비하면 낮다지만, 그래도 포쾌보다 반응이 늦을 줄이야.

염일림은 화살이 나온 것에 놀라야 할지, 아니면 포쾌 놈이 잡아당긴 것에 화를 내야 할지, 그도 아니면 고마워해야 할지 헷갈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제갈규는 화살을 뽑았다. 화살 끝에는 서찰이 하나 묶여 있었다.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녹림의 이름으로 더 걸어오면 죽이겠다는군.”

“하!”

자리에 있던 무림인들은 모두 비웃는 기색을 보였다.

녹림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었다. 사실, 녹림의 세력은 무림에서 무시하기 힘들었다. 오대세가나 구파일방도 굳이 충돌하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녹림칠십이채라는, 정식으로 혈맹을 맺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무림에는 이 혈맹에 들어가 있지 않은 무허가 녹림채들이 훨씬 더 많았다.

원래 녹림(綠林)이란 말은 녹림칠십이채가 혈맹을 맺기 전부터 존재했던 만큼 사실 산적들이 자기들을 녹림이라고 해도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녹림칠십이채도 관대하게 자기들의 이름을 산적들에게 허락해줬고.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산적들이 녹림칠십이채의 이름을 팔던 말던, 누구에게 습격을 당하거나 토벌을 당하던, 녹림칠십이채는 혈맹을 맺지 않은 산채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여기 팔강채는 녹림칠십이채와 아무 상관없는 산채.

당연히 무림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녹림의 이름을 팔아봤자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꿇어도 모자랄 판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입니다.”

“빠르게 들어가서 처리한다.”

연우혁은 팽주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산적 놈들의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요?”

“글쎄, 우두머리가 이류쯤 되지 않을까.”

팽주희는 화승을 빙글 돌려서 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것도 높게 쳐준 거고.”

무공을 익힌 무림인과 익히지 못한 사람은 꽤 큰 차이가 났다. 그리고 무공서를 본 적도 없고 심법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산적들은 당연히 그 실력이 일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의 산적들은 우두머리가 이류 정도만 되어도 대단한 것이었다.

“온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에서 함성이 터지자 무림인들이 병장기를 뽑아들었다. 연우혁은 주먹을 움켜쥐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팽주성은 커다란 도를 움켜잡고 앞에 나타난 산적을 쳐다보았다.

“무기를 내려놔라. 쓸데없는 살생은 하고 싶지 않다.”

“산에 들어와 놓고 무슨 염병할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이 어르신께서 네놈의 혀를 뽑아주마!”

산적은 수부(手斧)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었다. 놈은 팽주성에게 바윗돌을 하나 차서 날리더니 재빨리 옆의 나무로 빠졌다.

“팽 형! 조심하십시오!”

제갈규가 재빨리 외쳤다. 산적 놈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 팽주성의 애병(愛兵)은 그 커다란 크기 때문에 좁은 곳에서는 위력이 반감됐다.

산적 놈은 지형에 능한 걸 이용해서 팽주성을 빽빽한 나무 사이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팽주성은 싱긋 웃었다.

“규 아우. 걱정 안 해도 되네!”

도가 번뜩이더니 나무가 잘려나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팽주성은 보법을 밟으며 돌진했다. 남은 나무들이 튕겨나갔다.

“이런 멧돼지 같은 새끼가!”

산적은 경악했다. 생각보다 상대의 무공이 강했던 것이다.

‘일류의 경지!’

이립(而立)을 조금 넘긴 놈이 일류의 경지라니. 내공과 외공이 빈틈없이 어우러진 팽주성은 석탑 같은 위압감을 풍겼다. 산적은 그 모습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잘못 생각했다!’

산적은 보법을 밟으며 물러나려고 했지만 팽주성이 한 발 더 빨랐다. 앞에 도달하더니 전력을 다해 베어버렸다. 피가 튀고 산적이 즉사했다. 이 주변을 주름잡던 놈의 허무한 최후였다.

“조심하게, 다들! 무공을 익혔어!”

팽주성은 산적이 이류의 경지에 발을 디뎠다는 걸 눈치챘다.

이 산적이 우두머리일 수도 있었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큭!”

아니나 다를까 염일림은 고전하고 있었다. 앞에 나타난 산적이 제법 난적이었던 것이다.

무공의 경지는 서로 삼류로 비슷했지만 산적이 든 창이 제법 길었다. 먼저 선공을 당하자 거리를 좁히기 쉽지 않았다. 팔과 다리에 얕은 흠집만이 늘어났다.

‘이런 젠장. 강한 사람 옆에 붙어 있었어야 했다.’

연우혁은 염일림이 창수(槍手)한테 쩔쩔매는 걸 보고 한탄했다.

지금 눈앞에 적이 연우혁에게 덤벼드는데 하필이면 도와줄 사람이 염일림밖에 없었던 것이다.

염일림은 평소에 무공 단련을 소홀히 했는지 산적도 하나 이기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아무리 창이 길이에서 유리하고, 선공을 뺏겼다지만 무림인으로서 산적 하나 이기지 못하다니.

‘아니, 아니다. 이 산적 놈들...?’

연우혁은 영안을 켜고 사방에서 덤벼드는 산적들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전원이 다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오대세가의 자제들보다는 낮은, 삼류의 경지였지만 산적들이 이 정도만 되어도 대단한 일이었다.

“뭐야. 포쾌? 포쾌 놈이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냐? 토벌이라도 하러 온 거냐?”

“......”

그리고 연우혁 앞에 선 산적은 무려 이류의 경지였다. 오대세가의 자제들과 맞붙어도 그리 밀리지 않는 경지.

하필 그런 상대가 다른 무림인들이 아니라 자기 앞에 나타날 줄이야. 연우혁은 이를 악물었다.

후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산적의 공격이 시작됐다. 산적은 곤봉 끝에 철편이 달린 편곤을 사용했는데, 초식 하나가 펼쳐질 때마다 위력이 살벌했다.

초식 하나의 형(形)을 온전히 따라할 수 있어야 이류의 경지라고 쳐주는 법.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산적의 초식은 그냥 휘두르는 것 같아 보여도 연우혁의 숨을 막고 퇴로를 지워댔다. 영안은 연우혁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연우혁의 마음을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침착하자.’

연우혁은 영안을 극대화시켰다. 상대의 정보가 더욱 더 깊게 들어왔다. 들이쉬고 내뱉는 호흡과, 경맥을 타고 흐르는 내력의 흐름.

‘아니?’

편곤을 찌르던 산적은 의아해했다.

포쾌 놈이 생각보다 잘 피했던 것이다.

포쾌 주제에 무공을 익힌 것도 신기했지만, 자기보다 수준이 낮아 보이는데 공격을 저렇게 피하는 게 믿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 주변의 지형은 산적에게 익숙하면 익숙했지 포쾌한테 익숙할 리가 없는데,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마냥 공격을 피해댔다.

퍽!

처음으로 연우혁의 공격이 산적에게 들어갔다. 팔을 타고 내려오는 묵직한 통증에 산적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 포쾌 새끼가 감히...?”

‘괜히 쳤나?’

연우혁은 상대가 격노하자 잘못 선택했나 후회가 들었다.

방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연달아 무기를 휘두른 탓에 호흡이 가빠진 산적이 초식 사이에 빈틈을 보인 것이다.

이 때다 싶어서 주먹을 내질렀는데 부위가 부위라 타격을 크게 주지 못했다.

“뒤져라!”

산적이 편곤을 움켜쥐더니 비장의 초식을 펼쳤다. 호혈호자(虎穴虎子)라고 불리는, 곤법의 마지막 초식이자 주변을 일격에 제압하는 초식이었다.

연우혁은 영안으로 그 초식을 읽어냈다. 그 범위가 생각보다 넓자 연우혁은 경악했다.

창이나 편곤 같은 무기는 실로 그 위력이 사기적이었다.

‘물러서기엔 늦었다. 몸을 숨길 바위는 없다. 그렇다면...!’

영안 덕분에 느려진 시야 속에서 사고만이 빠르게 가속하고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이미 한 번 해봤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위국권법의 첫 초식이 준비되고 주먹이 뻗어져 나왔다. 머리 쪽이 열리는 감각과 함께, 연우혁이 쌓은 내공과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 주먹에 실리는 게 느껴졌다.

콰직!

맹렬하게 날아든 편곤을 박살낸 것은 연우혁의 주먹이었다. 산적의 눈이 충격으로 부릅떠졌다. 연우혁의 눈도 비슷하게 충격으로 흔들렸다.

쓰러질 각오를 하고 상단전의 내공을 끌어내자 아직 단련되지 않은 단전과 혈도가 조금씩 찢어지며 기혈이 흔들린 것이다.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연우혁은 자신도 모르게 보법을 밟고 다음 초식을 펼쳤다. 편곤이 박살난 산적은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슴에 권격을 적중당했다.

가슴뼈가 박살나는 감각이 느껴졌다. 연우혁은 다시 한 번 머리 쪽이 열리면서 연우혁이 쌓은 내공과 다른 내공이 주먹에 실리는 감각을 맛봤다.

‘큭. 내상이...!’

상단전의 내공은 무공에 쓰지 말라고 들은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쓰게 될 줄이야.

연우혁은 숨을 헐떡이며 심법의 구절을 되뇌며 내력을 운기했다. 다행히 내상이 심하진 않았다.

“대, 대체 그게 무슨 초식이냐?”

꼴이 엉망이 된 염일림이 경악의 눈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딱 봐도 다른 산적보다 더 강해보이는 놈이었는데 일개 포쾌가 제압한 것이다.

“충...군애국입니다.”

“뭐라고?”

“못 들으셨으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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