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19)화 (19/107)

갈모 팽주희 (1)

사실 오 포두의 잘못은 아니었다.

포두란 게 인근 양민들한테나 공포의 대상이었지 오대세가 출신의 직계한테는 그냥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비슷한 존재였으니까.

지금 하북팽가에서 나온 두 남매라면 포두를 부리는 판관은 물론이고 그 윗선인 지부까지도 독대 가능했다.

그냥 오 포두가 머무르는 정방 문을 걷어찬 다음 ‘포쾌 놈을 데려오지 못할까’하고 외쳐도 포승줄로 곱게 묶어서 바쳐야 하는데, 저렇게 공손하게 말하면 오 포두로서는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

“관무를 방해하다니.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무인들이란 거친 야인과 같아서 도무지 예의범절이란 걸 모릅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팽가 남매의 사과에 오 포두는 평소 부하들에게 보여주던 근엄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바닥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연우혁은 오 포두가 어떻게 경쟁 치열한 한경에서 포두로 오랫동안 살아남은 지 알 것 같았다.

“자. 어서 데려가십시오! 대화 끝났습니다. 자네, 여기까지 찾아온 두 분에게 절대 소홀히 대접하면 안 되네. 알겠나?”

“포두님. 제가 아직 순찰을 못 돌았습니다만.”

“그건 내 조카놈 시키면 되니까 어서 가게.”

오 포두는 연우혁의 등을 힘차게 떠밀었다.

연우혁은 언젠가 고관의 자리에 오르면 오 포두에게 무림인을 상대시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   *

다행히 팽가의 남매는 연우혁에게 시킬 새로운 일거리를 갖고 온 게 아니었다. 둘이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았다.

“하하. 연 포쾌가 무공 수련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네. 내가 연 포쾌보다 지혜는 부족하지만, 무공이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지.”

팽주성은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

확실히 팽주성 같은 고수에게 무공을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연우혁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산채 토벌에서 입은 내상은 회복된 뒤였다.

“한 번 초식을 보여주겠나?”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식을 펼쳤다.

위풍당당한 이름을 가진 권법이 연우혁의 손끝에서 펼쳐 나왔다. 권법의 이름을 알고 있는 팽주희는 웃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팽주성은 진지하게 연우혁의 초식을 관찰했다.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초식의 이해도는 나무랄 부분이 없지만 역시 내공이 많이 부족하군. 그 부분만 해결되면 능히 이류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네.”

흔히들 무림에서 초식 하나의 형(形)을 제대로 재현해내면 이류의 경지는 된다고 평가해주곤 했다.

멋모르는 이들은 밥 먹고 주먹질만 해대는 무림인들이 초식 동작 하나 따라하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초식 동작 하나를 제대로 따라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초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외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안의 기혈을 따라 흐르는 내기(內氣)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초식의 위력이 온전히 펼쳐지지 않았다.

무공의 초식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비유, 고사(故事), 선문답 등 온갖 난관들이 추가되었고 이 정도까지 가면 깊은 소양 없이는 무공 수련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를 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내공을 사용해서 초식을 펼쳐야 하는 만큼 이 내공이 부족하면 아무리 초식을 제대로 이해했어도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뻗어서 바위를 부숴야 하는 일격이라도 내공이 부족하면 손이 떨려서 자기 주먹을 부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이 포쾌는 전형적인 후자였다. 초식의 이해도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내공이 부족해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명문정파 출신의 무림인들은 열 살도 되기 전부터 내가기공으로 단전에 정순한 내공을 쌓고 혹독한 수련을 통해 그 내공의 양을 점점 늘려나갔다. 이들은 무공이 일정 경지에 오른다 하더라도 수련을 쉬지 않았다.

그에 비해 사파의 무림인들은 무공을 늦게 시작할 뿐만 아니라 그 수련 시간도 차이가 났다. 배운 무공을 휘둘러 적을 죽이기도 모자란데 느긋하게 수련에 몰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연 포쾌가 사파의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처한 상황은 비슷했다. 무공을 늦게 익히기 시작했고, 익힐 시간도 부족했다.

“저도 내공의 부족함은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서...”

“방법이 있네!”

“!”

팽주성의 자신만만한 말에 연우혁은 놀랐다.

대(大) 하북팽가에는 이런 내공 부족을 해결할 방법이 있단 말인가?

‘뭐지? 심법인가? 하지만 가문의 심법을 나 같은 외인한테 주진 않을 텐데. 다른 심법이라도 있나? 동공(動功) 같은 건가?’

앉아서 축기하는 정공(靜功) 계열의 심법과 달리 동공 계열의 심법은 연우혁처럼 바쁘게 일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에게 알맞았다.

만약 팽가의 직계 심법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서 구한 심법이라면 연우혁은 감사히 받아서 익혀 볼 생각이었다. 솔직히 위국심법은 효율이 너무 안 좋았던 것이다.

달칵!

팽주성은 나무로 된 작은 함의 뚜껑을 열더니 녹색 빛의 둥그런 영약을 꺼냈다.

“바로 이걸세. 우리 가문의 취옥단이지.”

“......”

연우혁은 매우 놀랐다.

일단 수련 방법 대신 영약이 튀어나온 것도 놀랐지만, 그 영약이 하북팽가의 영약이라는 게 더 놀라웠다.

이걸 받아도 되나?

‘팽가 가주가 친위대 보내는 거 아닌가?’

웬 요상한 술사가 기묘한 술법으로 아들딸을 홀렸다고 목이라도 잘라오라고 한다면 연우혁의 모가지는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괜찮습니까?”

“당연히 괜찮지. 가문의 비전으로 만든 영약인데. 이 영약 하나면 십 년 내공은 너끈할걸세.”

“그걸 묻는 게 아니잖나.”

팽주희가 한심하다는 듯이 오라비를 쳐다보았다.

“먹어도 상관없어. 가문의 비전으로 만든 영약이긴 하지만 외인한테 못 줄 정도의 영약은 아니니. 그러고 보니 저번에 공을 세운 사람이 받아가기도 했군.”

“아. 그걸 걱정한 거였나?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네. 내 몫으로 받은 영약이니까.”

‘이 둘을 믿어도 되나?’

팽주희는 몰라도 팽주성은 걱정할 필요가 있어도 없다고 할 사람이라 연우혁은 괜히 망설여졌다.

다행히 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팽주성이 바로 환약을 연우혁의 입에 던져 넣은 것이다.

“컥!”

“자. 운기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취옥단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강한 기운으로 변했다. 마치 상단전에 있던 기운을 강제로 끌어왔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취옥단의 기운은 별다른 내상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상단전의 기운을 억지로 끌어왔을 때는 날뛰는 말처럼 흉포하게 움직이며 내상을 입혔는데 취옥단의 기운은 그런 게 없었다. 부드럽게 온몸의 경맥과 혈도를 타고 흘렀다.

“심법의 구결을 떠올리게!”

팽주성은 평소와는 다른 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집중 상태에 빠져든 연우혁의 귀에는 아득하게 들려왔다. 기경팔맥을 따라 취옥단의 기운이 순환하며 내공을 축기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팽주성은 연우혁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아니?’

보통 취옥단을 하나 먹으면 십 년 내공을 쌓을 수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약의 내공을 온전히 흡수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영약을 먹는다 하더라도 그 내공을 온전히 흡수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부는 날숨을 따라 자연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몸속으로 들어가 선천진기로 화했다.

상승의 심법은 이런 낭비와 소모를 줄이고 영약의 내공을 최대한 단전에 쌓았기에 상승의 심법이라고 불렸지만, 연 포쾌가 익힌 심법은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든 하급 심법.

그런데 지금 연 포쾌는 영약의 내공을 한 줌도 흘리지 않고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마치 노회한 고수가 내공을 운기하는 것처럼 정확하고 자연스러웠다.

‘상단전이 열린 것 때문인가?’

연 포쾌가 상단전이 열려서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지혜를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공에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

운기를 끝낸 연우혁은 눈을 뜨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팽주성은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가. 달라진 게 느껴지나?”

“...예!”

연우혁은 단전에 충만한 내공을 느끼며 외쳤다.

몸은 오랫동안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피곤하고 땀으로 푹 젖어 있었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지금 권법을 펼치면 아까와는 다른 일격이 뻗어져 나올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팽 대협!”

내공이 충만해서 그런지 팽주성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같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 일어서게. 내공이 갑자기 생겼을 때는 바로 몸을 움직여야 적응되네.”

“윽. 지금 몸에 힘이 안 들어갑니다만.”

“그건 몸이 거짓말을 하는 걸세. 하하. 연 포쾌. 범인들이 거짓말하는 건 잘 알아차리면서 몸이 거짓말을 하는 건 못 알아채는군?”

“......”

팽주성이 나무로 만든 도(刀)를 들고 재촉하자, 연우혁은 방금 느꼈던 감사의 마음이 좀 줄어들었다.

*   *   *

연우혁을 다섯 번 땅바닥에서 뒹굴게 만들고 난 다음에야 팽주성은 호탕하게 웃으며 땀을 씻으러 떠났다.

그에 비해 연우혁은 지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냥 드러누워서 팔다리에 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취옥단도 받았겠다 연우혁은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드러누운 채라서 별로 효과는 없을지언정.

팽주희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내가 알기로 위국보법은 딱히 특별한 구석이 없는 보법인데, 연 포쾌가 쓰는 위국보법은 조금 달라보이는군. 뭘 한 거지?”

아까 팽주성이 휘두르는 도에 맞서서 간신히 피하던 포쾌의 움직임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좌나 우, 혹은 뒤로 빠지는 움직임은 평범했지만 앞으로 전진할 때는 상승무공다운 쾌속함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쾌나 관졸들한테 뿌리는 위국보법으로 보여줄 움직임이 아니었다.

“아. 고 대협한테 받은 백사보법입니다.”

연우혁이 고송에게 받은 백사편법에는 내가기공은 따로 없었지만 보법은 있었다. 당연히 위국보법보다는 훨씬 괜찮은 보법이었다.

문제는 이 보법이 매우 공격적이라는 점이었다. 채찍을 휘두르는 초식과 함께 끝까지 전진해서 숨통을 끊으라는 원래 주인의 뜻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고송이야 실력이 되는 고수니까 저런 보법을 써도 됐지만 연우혁 같은 하수가 저런 보법을 썼다가는 목이 여러 개여도 부족할 터.

그래도 없는 처지에 저런 보법이라도 아까워서 연우혁은 전진할 때는 백사보법을, 나머지 상황에서는 위국보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섞었다.

“그러니까 지금 두 보법을 섞었다?”

“예. 역시 많이 이상합니까?”

“......”

팽주희는 진심으로 놀랐다.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무인이 이런 묘기를 보여줄 줄이야.

흔히 고담(古談)에서야 무공 하나 익히지 않은 학사가 머릿속으로 높은 경지를 이뤄 논검으로 고수를 쓰러뜨린다지만, 무공을 좀 익혀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허황된지 알았다.

직접 땀 흘려 익히지 않고 상상만으로 해결이 된다면 무림인들이 그 고생을 무엇하러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 이 포쾌가 보여준 모습은 그런 허황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공을 얼마 익히지도 않은 무인이 머릿속으로만 무공을 조합해 새 무공을 만들어 내다니.

“상단전이 열려서 가능한 건가. 진심으로 부럽군.”

“저, 팽 소저. 상단전이 열리면 보통 단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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