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22)화 (22/107)

청월루 살인사건 (1)

“하오문의 무인하고도... 아는 사이셨습니까?”

“음. 원래 흔한 일은 아니지. 나도 우연하게 친해지게 됐네.”

팽주성의 말에 동생은 질린 듯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사실 하오문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여서 좋을 게 별로 없었다.

정파에 소속된 중소문파들도 하오문에 의뢰를 맡길 때에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비밀리에 맡기는데, 하물며 오대세가 출신의 팽주성이라면 더더욱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팽주성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

덕분에 졸지에 휘말리게 된 연우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속마음도 모르고 팽주성은 해맑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취봉은 여기 한경에서 제법 힘이 있네. 연 포쾌를 소개시켜준다면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오문의 사람 상대로 퍽이나 그렇겠군.”

팽주희는 혀를 쯧쯧 찼다.

물론 팽주성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연우혁처럼 영리한 사람이라면 포쾌에서 끝날 생각이 없을 테니 아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

관직을 얻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명성이나 능력도 중요했지만 인맥이나 가문이 훨씬 더 중요했다. 연우혁처럼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면 지원해 줄 사람이라도 구해야 했다.

문제는 하오문이 순수한 선의로 지원해 줄 문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겠다만은, 하오문처럼 손익에 철저한 이들도 드물었다. 괜히 잘못 엮였다가는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수가 생겼다.

“연 포쾌가 속거나 배신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동생의 말에 팽주성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럴 리 없지.”

“왜? 취봉이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인가?”

“아니. 연 포쾌처럼 똑똑한 사람이 속을 리가 없잖나. 앉아서 천 리를 보는데.”

“......”

“...감, 감사합니다.”

*   *   *

청월루는 호화로운 번루들이 성업하는 한경에서도 손꼽히는 기루 중 하나였다. 총 사층까지 되어 있는 이 기루는 하오문에서도 매우 신경을 쓰고 있는 수입원이었다.

평범한 주루도 한경 같은 도시에서는 은자가 쌓이는데, 여러 고관들이 방문하는 기루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기루의 기녀들은 단순히 외모뿐만이 아니라 시서화(詩書畵)에 능하고 악기와 가무의 달인이었다. 동시에 한경이나 대환국 전역에서 최근 일어난 일들을 파악해둬야 했으며 가끔은 조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품평할 줄 알아야 했다.

이 정도 되는 기녀들은 말 그대로 기루의 얼굴 역할을 했다. 주루는 점소이와 숙수와 악사와 전기수 등 여러 이들이 제 몫을 해줘야 그 인기가 유지됐지만 기루는 기녀 한 명의 명성으로 인기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러니 기루를 운영하는 상인들 입장에서도 이런 기녀들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저자세로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른 기루로 가버릴 수 있었으니, 이런 관리도 기루를 운영하는 상인의 몫이 됐다.

“화희는 청월루의 기녀들 중에서도 가장 명성 높은 기녀입니다.”

이교는 연우혁을 안쪽의 숨은 방으로 안내했다. 기녀와 손님이 대화하는 걸 엿볼 수 있는 방이었다.

연우혁은 속으로 놀랐다.

‘이런 곳도 있었나?’

괜히 하오문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었다. 은자는 은자대로 모으면서 별개로 정보를 긁어모으는 것이다.

이교는 연우혁이 놀랐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설명했다.

“원래 수상쩍은 손님을 감시하기 위한 곳이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하하.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청월루가 선량한 손님들을 엿볼 리 없지 않습니까.”

“......”

가끔은 완벽한 아부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지금 연우혁처럼 이미 지혜로 명성을 날린 사람의 경우, 완벽하게 아부를 해도 조롱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아차.’

취봉은 아픈 곳을 찔렸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화희 같은 기녀가 상사병에 걸렸다는 건 청월루 입장에서도 심히 걱정되는 일입니다.”

‘아내로 삼으면 되는 것 아닌가?’

가끔 거상이나 고관대작 중에는 기녀를 데리고 나와서 아내로 삼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기녀의 막대한 몸값을 기루에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거상이나 고관대작한테도 만만찮은 지불이었다.

게다가 데리고 오는 순간부터 세간의 인식에는 여색에 빠져 흥청망청 낭비하는 멍청이로 보일 테니...

오히려 더 많은 건 이제 기녀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하는 이들이었다. 기루에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열정적인 청년들이 이런 선택을 자주 했다.

‘아하.’

연우혁은 왜 불려왔는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기녀의 상사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기녀나 의원을 불러왔어도 되는 일이었다.

아마 하오문 쪽은 찾고 싶은 게 분명했다.

대체 어떤 호로잡놈이 기녀를 꼬드겨서 몰래 도망치려고 하는가?

“화희라는 분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교는 놀라움을 속으로 삼켰다. 이 포쾌의 영민함을 믿고 데리고 온 거지만,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하오문의 생각을 알아차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사랑에 빠진 걸 숨기는 기녀는 보통 그런 짓을 하는 편입니다.”

침착을 되찾은 이교는 기녀의 연인으로 의심 가는 상대 세 명을 설명했다. 다른 기녀나 시종의 증언으로 확실하게 좁힌 세 명이었다.

이 세 명을 대할 때만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오종곤.

한경에서 비단을 크게 취급하는 포목점의 둘째 아들이었다.

방탕하고 씀씀이가 컸지만 청월루의 기녀를 데리고 나올 만큼의 은자는 없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대번에 집안에서 다리를 부러뜨려 하천에 처박을 것이다.

“흠. 하지만 연심이란 가끔은 칼보다도 강력하지 않나?”

“......”

“......”

옆에서 끼어드는 팽주성에, 연우혁과 이교 모두 멈칫했다. 이교는 팽주희에게 부탁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만 참견해달라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팽주희는 못 본 척 무시했다.

팽주성의 어리석음을 이용해먹었다면 이것도 감당해야 할 노릇이었다.

두종.

한경의 통판 어르신과는 먼 친척으로 이 주변에서는 나름 반반한 얼굴과 뛰어난 시재로 유명했지만 그게 돈이 되진 않았다. 당연히 기녀를 데리고 나갈 돈은 없었다.

“얼굴이 잘생겼고 시에 뛰어나다면 기녀를 반하게 했을지도 모르겠군.”

팽주성의 고뇌 어린 추측에 팽주희가 물었다.

“방금은 오종곤 같다고 했잖나?”

“그랬지. 음. 연 포쾌는 누구일 거 같나?”

“아직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취봉. 남은 한 명은 누구지?”

혁숭월.

셋 중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서, 무려 부천호(천인장의 부관)의 관직을 갖고 있었다. 한경에서 군관은 일반 관직보다 덜 선호되긴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만 되어도 대단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둘은 마땅한 관직도 없지 않은가.

“하긴. 무림인들에게는 자유분방하고 야성적인 매력이 있어서 규중의 부녀자들도 취하게 만들 때가 있지. 군관은 무림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매력이 있을지도 모르네.”

“......”

어지간해서는 참으려던 팽주희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교는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저희가 알고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손님들을 모셔올 테니, 포쾌님께서 직접 보고 판단해주십시오.”

말과 함께 이교는 비밀방의 문을 열고 나갔다. 팽주성은 그제야 자세를 바로잡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일, 꼭 해야 하는 일인가?”

“이제와서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지? 네가 연 포쾌를 끌어들였잖나!”

“자세히 듣기 전에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일인 줄 알았지. 하지만 이건 좀... 그렇잖나.”

팽주성은 동생에게 항변했다.

취봉의 사람됨이 그리 악하지 않아 믿고 맡겼는데, 이건 사랑하는 두 남녀를 찢어놓는 일 아닌가.

“기루에 찾아와서 맺어진 인연에 뭘 그리 의미를 부여해? 만약 둘이 도망친다고 해서 잘 풀릴 것 같나? 아마 사내놈은 기녀가 질리면 갖다버린 뒤 자기 가문으로 돌아올걸.”

팽주희는 심드렁했다.

기녀와 젊은 청년의 사랑은 이야기나 시에서나 애틋하지 실제로는 처참하게 끝났다.

도망친 둘은 세파에 부딪치게 되고, 그러다보면 곱게 자란 청년은 따뜻한 저택이 그리워지기 마련.

하북팽가 인근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몇 번 본 적 있었다.

팽주희가 취봉을 신뢰하진 않았지만 이건 취봉이 맞았다. 기루의 기녀들은 콧대가 높다 하더라도 새장 속의 새라 감언이설에 쉽게 속아 넘어갔다.

지금이야 연정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 들어오지 않겠지만 나중에 열병이 나으면 분명히 감사해하리라.

가만히 있던 연우혁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잠깐. 팽 대협. 그럼 아까 이상한 소리를 하신 것도 일부러 일을 망치려고 하신 거였습니까?”

“내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 뭘 말하는 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연우혁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팽주희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연 포쾌. 자네를 후원해줄 사람이라면 내가 한경에서 찾아보겠네. 아직 아는 사람은 없지만...”

“관둬. 연 포쾌. 이건 그냥 해결해버리라고. 여기서 거절해봤자 하오문하고 안 좋은 감정만 남을 텐데.”

“연 포쾌는 사랑하는 남녀의 사이를 갈라놓는 걸로 이득을 얻을 만큼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연 포쾌는 불쌍한 기녀가 속아서 객사하는 걸 내버려둘 만큼 냉정한 사람도 아니지.”

두 남매가 치열하게 설전을 벌였다. 안 그래도 좁은 방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둘이 으르렁대자 공간이 더욱 작게 느껴졌다.

“음. 두 분.”

연우혁은 헛기침을 했다. 팽주성과 팽주희가 연우혁을 짓누르기라도 할 것처럼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무서웠다.

“제 말을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경청하겠네.”

“그, 사실 화희란 분은 상사병에 걸린 게 아닙니다.”

“그렇겠지. 그냥 정신이 나간 거니까.”

팽주희의 빈정거림에 팽주성이 노려보았다.

“상사병이 아니라면? 그냥 순수한 연심이란 말인가?”

‘이 사람, 연애담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연우혁은 팽주성의 취향에 의아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화희란 분이 아까 세 명을 만날 때만 태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그냥 그 세 명을 죽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

“......”

“손님 맞이하는 걸 구경할 시간에 화희란 분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니, 잠깐, 잠깐만. 설명 좀 듣자고.”

“맞네! 설명 좀 듣는다고 그 사이에 죽겠나?”

팽가 남매는 의와 도리를 내팽개치고 연우혁의 양쪽 팔을 붙잡았다. 어떻게 알아낸 건지 꼭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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