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월루 살인사건 (2)
기루의 기녀와 비단 포목점의 둘째 아들. 통판의 먼 친척과 부천호의 군관.
이걸 듣는 순간 연우혁은 어떤 사건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기녀가 복수를 위해 세 명을 비수로 찔러 죽인 사건이었다.
술에 몽혼약을 타서 먹인 뒤 세 명을 찔러 죽이고, 겉으로는 연적 관계인 셋이 치정 때문에 서로 죽인 것으로 위장한 사건.
솔직히 연우혁은 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감탄했었다. 기녀의 얼굴도 몰랐지만 그 수법이 제법 대담했던 것이다.
말이 술에 몽혼약을 타는 거지, 기녀가 기루에서 손님을 죽이는 건 쉽지 않았다.
먼저 옷을 입혀주고 치장시켜주는 시비의 눈을 속이고 비수를 챙겨야 했다. 들키지 않게 깊숙이 감추는 데에 성공했다 치더라도 그 뒤에도 난관들은 여전했다.
청월루 같은 기루의 기녀는 손님을 대접하면서도 결코 단독으로 대면하지 않았다. 시를 읊을 때는 뒤에 악사들이 들어오고, 비파를 연주할 때는 무용수들이 들어왔다.
예인(藝人)의 우두머리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었으니 손님과 단독으로 대면한다 하더라도 절대 보는 눈이 적지 않았다.
악사들이 나가고 하인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를 노리려면 몽혼약이 언제 효과를 발휘할지 그 양을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화희란 기녀는 그걸 해낸 것이다.
‘아차.’
연우혁은 자신의 양쪽 어깨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혼자 생각에 잠겼다가는 팽가 남매가 연우혁을 벽에 파묻어버릴지도 몰랐다.
“기녀가 사랑에 빠졌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거동이 수상해지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심지어 청월루의 간판 기녀 아닙니까.”
“하긴 그렇지.”
“아니 어째서?”
팽주희와 팽주성의 반응은 차이가 심했다. 연우혁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럴듯하게 우기기만 하면 됐다.
“게다가 세 명한테 동시에 거동이 수상해진다니. 그러면 세 명한테 사랑에 빠졌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가능성 낮은 가정은 보통 다른 진실이 숨어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죽이려고 한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죽일 이유가 있나?”
팽주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포쾌의 두뇌는 감히 팽주성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걸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비약이 심한 것 같았다.
연정이 아니면 살의라니.
연우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내막을 다 아는 입장에서 한 번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런 식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중요한 건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확신을 전염시키는 것.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이유도 짐작이 갑니다. 하오문의 무림인들처럼 기루의 기녀들도 그 의리가 강합니다. 한 기녀가 아프면 다른 기녀들이 돌봐주고, 한 기녀가 험한 일을 당하면 다른 기녀들이 그 원통함을 풀어주지요. 오종곤은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입니다. 청월루에 올 정도라면 다른 기루도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겁니다. 원한 하나 정도야 충분히 쌓았겠지요.”
두 남매는 홀린 듯이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모든 일의 진상을 밝히는 포쾌의 모습은 마치 설법을 풀어가는 소림의 고승 같았다.
“두종이나 혁숭월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이 꽤 친분이 깊다는 게 공교롭지 않습니까.”
연우혁은 아픈 어깨를 슬며시 주무르며 말했다. 다른 둘의 눈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아까 취봉께서 손님들을 모셔온다고 했잖습니까. 친하지 않으면 그런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청월루 같은 기루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은자를 아끼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당연히 친분이 없는 손님들을 서로 같은 곳에 몰아넣지 않았다.
취봉이 확인을 위해 손님들을 불러온다는 건 셋이 친분이 깊다는 뜻이 됐다.
“...!”
“이러고 있을 게 아니군. 불러와서 확인해보자고!”
팽주성이 일어나자 연우혁이 당황했다.
“그 셋을 말입니까?”
“하하. 연 포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렇게 무모해보이나? 당연히 기녀 쪽일세.”
“셋을 곧 대접하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건 어렵지 않네. 기다리게 하면 그만이지.”
팽주성은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도(刀)를 툭툭 치더니 밖으로 나갔다. 연우혁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팽주희에게 물었다.
“하북팽가의 이름을 쓰겠다는 뜻이겠지요? 도를 휘두르겠다는 게 아니라?”
“그렇겠지. ...아니다. 도를 휘두를지도.”
“......”
연우혁은 빠르게 달려 나가 팽주성을 붙잡고 확인했다.
놀랍게도 팽주성은 도를 쓸 생각이었다.
“제발 말로 해결해주십시오.”
“하지만...”
“대협께서 기녀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하면 저쪽도 체면이 설 겁니다.”
“무공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제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전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알겠네. 알겠네. 자네가 하라는 대로 전하지.”
* * *
취봉 이교는 생각에 잠긴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열심히 준비를 하긴 했지만 과연 저 포쾌가 정말로 화희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는 반신반의 중이었다.
남녀의 연정은 살인이나 절도를 찾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물론 저 포쾌가 보기 드문 신통력이 있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직접 그 편린을 보기도 했고.
하지만 팽주성이나 다른 무림인들은 기본적으로 허풍이 좀 심했고, 심지어 그들이 허풍을 떨지 않았다 하더라도 포쾌 본인이 허풍을 떨었을 수도 있었다.
이교는 무림에 신통력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들 중 가짜가 칠 할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특유의 신비로움 때문에 허풍을 떠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저 포쾌도 그냥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었다.
일단 아첨하는 걸 보면 꽤 약은 구석이 있는 건 확실했으니 말이다.
‘화희는 왜 나한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거지?’
이교가 하오문의 무인으로서 기녀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위치긴 했지만, 이교는 기녀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화희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만약 화희가 정말로 도망치고 싶다면 이교는 눈감아 줄 수 있었다. 하오문에서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화희는 이교에게 말을 하는 대신 그 상대하고만 연심을 키워갔다. 아무리 연심이 무쇠도 녹인다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춘초명년녹(春草明年綠), 왕손귀불귀(王孫歸不歸)...”
“이교 님!”
“무슨 일이냐?”
이교가 중얼거리는 사이 복도 끝에서 하녀 한 명이 당황해하면서 달려왔다.
“말씀해주신 세 분 말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이냐?”
이교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셋이 친하기도 한데다가 이 주루의 점소이는 언변이 좋아서 한 자리에 모으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술에 취한 이들은 예상 밖의 행동을 저지르기 마련.
떠들다가 한 명이 괜히 성을 내며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그. 팽가에서 나오신 분이 화희를 데리고 갔습니다.”
“...누구지? 사내더냐, 여인이더냐?”
이교는 그나마 팽주희가 데리고 갔기를 살짝 기대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이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사내분이셨습...”
“가자!”
욕설을 내뱉고 이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팽주성은 둔한 소와 같은 무인이라 한 번 마음먹으면 무슨 짓을 할 지 몰랐다.
“셋은 어떻지?”
“불만이 좀 있는 것 같았지만, 아시잖습니까. 하북팽가의 이름은...”
“그렇겠지.”
전낭이 두둑한 셋이라지만 결국 실제로 가진 힘은 별로 없는 이들이었다. 기녀 하나 때문에 하북팽가의 후계자와 입씨름을 벌일 리 없었다.
원한이 생겨도 팽주성한테 생길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이교는 대체 팽주성이 화희를 왜 데리고 간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걱정이 됐다.
‘설마 자신이 길을 막을 테니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충동질하는 건 아니겠지?’
-흑. 흐흑.
“!”
이교는 비밀 복도 끝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내공을 일으키고 기척을 죽였다. 이교가 익힌 은현회혼공(隱現廻魂功)은 내공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인기척을 없애는 효능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귀를 기울이자 화희가 울면서 팽가 남매에게 말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래서 복수를 하려고 했었습니다...!
화희는 어렸던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기녀를 벌레 죽이듯 죽인 셋에게 복수하려고 했다고 토로했다. 그걸 들은 이교는 깜짝 놀랐다.
친구의 목적이 복수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걸 처음 보는 셋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대체 무슨 대화를 했길래 화희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단 말인가?
“연 포쾌의 말이 사실이었군.”
‘대체 저 포쾌가 무슨...?!’
“어떻게 거기까지 알아맞힌 거지?”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팽주성과 팽주희가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이교의 속마음은 더욱 더 혼란스러워지고 궁금함만 커져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어 들어가서 묻고 싶었지만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 * *
“음. 이런 이유라면 죽여도 될 것 같군.”
“확실히 이런 이유라면야...”
“?”
가만히 듣고 있던 연우혁은 살벌한 말에 당황했다.
팽주성은 그렇다 쳐도 팽주희까지?
“잘못 들었습니다?”
“예양이 지백을 위해 조양자를 죽이려 했고, 섭정도 엄중자를 위해 협루를 죽이려고 했잖나. 내가 보기에 이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일일세. 오히려 저 둘보다 훨씬 낫지. 연 포쾌도 못 들은 척 해주면 안 되나?”
“어...”
무림인들의 사고방식에 당황하던 연우혁은 빠르게 생각에 잠겼다.
기녀의 고백을 못 들은 척 숙소로 돌아간다면?
장점은 팽가 남매가 만족하고, 하오문 쪽에서는 불만을 가지더라도 팽가 남매한테 가질 것이고...
단점은 언젠가 사람 셋이 죽는 걸 막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우혁은 일말의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다.
생각해보니 한경에서 하루에 몇 명은 죽을 텐데 거기에 몇 명 추가된다고 뭐 달라지겠는가. 연우혁은 자기 앞에서 어떤 이유든 간에 사람이 죽으면 안 된다고 막아서는 정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저 셋이 하는 짓을 보니 기녀가 안 죽여도 언젠가 누군가 죽일 가능성이 높았다.
순간 연우혁은 영기가 상단전에 축적되는 것을 느꼈다. 전혀 기대치 못한 보상이었기에 연우혁은 놀랐다.
“?!”
“혹시 이 기녀한테 도움이 될 조언이라도 있나?”
“......”
팽주성의 질문은 놀라던 연우혁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런 조언이 어딨겠는가!
팽주희도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었다.
“담대하게 마음을 먹으라는 것 말고는 없지 않나...?”
“어허. 아까도 결국 연 포쾌가 맞았잖나. 네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조언이 나올 거다.”
‘들킬 것 같으면 하지 말라는 것밖에 없는데.’
일단 원한 관계가 있다는 점부터가 위험했다. 깊게 찾아보면 저 셋 때문에 죽은 기녀가 화희와 친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차라리 입 무거운 무림인을 몰래 고용한 다음 밤길에 습격시키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들키더라도 셋을 반드시 확실하게 죽이겠다는 기녀한테는 의미가 없는 조언이었다.
“그럼 나부터 조언하도록 하지. 내 생각에는, 일이 끝나는 순간 바로 자결하는 게 좋을 걸세. 괜히 관졸들에게 붙잡힐 필요 없지. 비단에 이유를 적고 당당하게 죽게.”
“......”
연우혁은 자신이 생각한 조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녀는 팽주성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는지 눈물을 닦으며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연 포쾌가 화희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죽일 것 같나?”
* * *
질문이 떨어지자 다른 셋의 시선이 포쾌에게 쏠렸다.
이교도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포쾌를 쳐다보았다. 저 포쾌가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포쾌는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가만히 있겠다고? 어째서인가?”
“그건...”
“이교 님! 이교 님! 손님이 죽었습니다!”
“?!!!”
계단 아래에서 달려오며 외치는 하녀의 목소리에 이교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저 포쾌는 설마 이것까지 예측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