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월루 살인사건 (3)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봐라! 어서!”
“그, 그러니까 그게...”
하녀는 충격적인 일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든 털어놓았다.
먼저 시비가 붙은 건 오종곤과 혁숭월이었다.
평소에 셋이 친하다고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였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알력이 있었다.
통판 어르신의 친척인 두종, 그리고 한경에서 비단을 취급하는 포목상의 아들인 오종곤. 이 둘은 친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통판의 힘이 필요할지 모르는 게 상인인 만큼 오종곤은 종종 자신의 은자를 꺼내가며 두종을 대접했다.
그에 비해 군관인 혁숭월은 미묘하게 거리감이 있었다. 원래 문관들은 군관을 비웃고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강했는데, 두종 또한 숨기려고 해도 은연중에 티가 났다.
두종과 친한 오종곤 또한 그랬다. 상인 입장에서도 거칠고 못 배워먹은 군관은 별로 어울리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알력이 있는 셋이 어울리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셋이 서로에게 원하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관직에 연줄을 원했고, 누군가는 은자를 원했으며, 누군가는 여차할 때 칼을 휘둘러 줄 병졸들을 원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언제든지 계기만 생기면 터져나갈 수 있는 법.
그 계기는 바로 하북팽가의 팽주성이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대인어른! 하북팽가의 팽 대협께서 화희를 꼭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아주 푹 빠지셔서...
-허!
생각치도 못한 하북팽가의 젊은 놈이 기녀를 데리고 가자 술에 취한 셋은 놀라워하면서도 불쾌해했다.
그 불쾌함은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기녀의 춤과 악공의 연주를 들어도 더 부글거리기만 했다.
미간이 찌푸려진 두종의 눈치를 본 오종곤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혁 형은 군관이시면서 저런 야인 놈을 그냥 내버려두실 겁니까?
-뭐라?
-군관이시잖습니까! 기루 밖에는 부하가 다섯이나 있고 말입니다. 저깟 야인 놈은 대번에 혼쭐을 내주셔야죠. 저번에 그렇게 화희한테 절절히 연정을 고백하셨으면서!
그 말에 혁숭월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같은 무림인이어도 하북팽가 출신의 무림인은 결코 야인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명문가와 맞먹는 권세를 갖고 있었다.
부천호 따위가 덤벼들었다가는 단번에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상대였고, 그건 오종곤도 알고 있었다.
그런 놈이 저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네놈이 날 모욕하려는 것이냐? 네놈이 먼저 들어 가봐라! 어디 네놈이 사내대장부인가 보겠다!
-흥! 저는 화희한테 그렇게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 그래서 그런가? 네놈이 저번에 읊은 시는 기억나냐? 대구(對句)도 틀렸고 자도 틀린 시였다. 그깟 시를 읊어놓은 주제에 어디서 잘난 척이냐! 그러니 비단도 못 팔아먹고 빌빌대고 있는 거겠지!
-어허. 혁 형.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두종은 혁숭월을 말렸지만, 그 표정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저번에 오종곤이 읊었던 시는 두종이 지어줬던 시였던 것이다.
-종곤 아우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시니 너무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부(武夫)들이 난폭하고 법도를 모른다고 떠들어도 뭐라고 못 할 겁니다.
두종의 비꼼은 혁숭월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혁숭월은 참으려고 했다. 두종은 한경 통판의 먼 친척이었으니까.
그러나 옆에서 거드는 오종곤이 기어코 혁숭월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혁 형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저번에도 은자가 없어서 제가 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은자는 대체 언제 갚아주실 겁니까? 길가의 거지도 이렇게 돈을 안 갚진 않습니다.
-이 개자식이 무인이 필요할 때는 굽신거리며 내 힘을 빌리더니 이제 와서 망신을 줘?!
폭발한 혁숭월은 오종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넘어진 오종곤이 악 소리를 지르자 두종이 깜짝 놀라 부지깽이로 혁숭월을 찔렀다.
-이 자식이!
혁숭월은 발목에 숨겨놨던 단도를 뽑아들어 오종곤을 푹 찔렀다. 기겁한 두종은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악사들과 기녀들이 사방으로 달려가는 탓에 혁숭월은 두종을 바로 잡지 못했다.
-군호(軍戶)는 당장 달려와라! 기생오라비 놈이 날 죽이려고 했다!
혁숭월은 기루 밖의 부하들을 불러 두종을 반드시 죽이려고 했다. 이미 한 번 피를 본 탓에 눈이 벌게져있었다.
그러나 두종도 만만치 않았다. 하필이면 두종이 기루에 데리고 온 손님들 중에 통판을 만나러 온 무림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 * *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팽주성은 지금 긴박한 상황도 잊고 연우혁을 보며 외쳤다.
옛날에 한 재상이 복숭아 두 개로 무인 세 명을 죽였는데, 지금 이 포쾌는 말 한 마디로 무인 세 명을 죽음에 빠뜨린 것이다.
“이걸 예측하고 나한테 말을 전하라고 한 거군! 도를 쓰지 않고 팽가의 이름을 전하라고 한 게 그래서였나!”
“...아닙니다!”
연우혁은 기겁해서 부정했다. 뭔 미친 개소리를 하고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감히 어떻게 하북팽가의 이름을 그리 멋대로 이용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다!”
“아니. 이용해도 되네!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일에 이용된다면 영광일세!”
“대인...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뒤에 있던 기녀가 눈물 어린 목소리로 연우혁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교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듯이 포쾌를 쳐다보았다.
정말 말 한 마디로 셋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환장하겠군.’
연우혁은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물론 하북팽가나 하오문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지금 말 한 마디로 셋을 죽였다고 오해를 받는 건 그 위험성이 너무 높았다.
지금 연우혁은 한낱 포쾌 아닌가.
나중에 소문이라도 잘못 퍼져서 두종이나 혁숭월의 친족에게 원한이라도 사면...
“그만해라!”
다행히 팽주희가 있었다. 연우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냉정하게 판단을 내려줄 사람이었다.
“연 포쾌의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이런 소문이 퍼지면 얼마나 곤란하겠나!”
“아... 아아! 그렇군!”
팽주성은 알았다는 듯이 발을 굴렀다.
“다들. 오늘 일은 비밀을 지키게! 만약 오늘 일이 누설된다면 팽가의 이름을 걸고 그 자를 죽이겠네.”
이교와 하녀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팽가 남매는 연우혁을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눈빛을 보냈다.
연우혁이 해준 일은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의미심장한 눈빛이었다.
‘...정말 돌아버리겠군!’
연우혁은 해명에 나서려고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래에서 우지끈 박살나는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팽주성과 팽주희는 바로 도(刀)를 뽑아들고 달려 나갔다.
“팽 대협. 그쪽은 계단이 아닌...?”
연우혁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둘은 기루 이층의 바닥을 박살낸 뒤 아래로 낙하했다. 적의 허를 찌르기 위한 노련한 움직임이었다.
“...연 포쾌는 계단으로!”
이교의 외침에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 * *
쌍비홍검(雙飛紅劍) 담온과 쌍비청검(雙飛靑劍) 담기는 무림에서 제법 유명한, 정사지간을 오가는 고수 형제였다.
이류 말입 정도 되는 무위도 무위였지만, 둘의 합격술이 특히 뛰어난 덕분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어찌나 합격술이 뛰어났는지 일류 고수 하나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꺾었을 정도였다.
물론 아무리 무위가 뛰어나고 합격술이 뛰어나도 그것만으로 무림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당장 이 두 형제도 통판에게 청탁할 것이 있어 한경에 와있지 않은가.
통판의 먼 친척을 만나 어렵게 부탁을 하고, 없는 살림에 은자를 꺼내 기루까지 대접해줬는데...
“빌어먹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일단 등을 떼지 마라!”
둘은 달려드는 군관과 병졸을 베어서 쓰러뜨렸다. 그걸 본 혁숭월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보통 고수가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저 자를 죽여요! 저 자를 죽이란 말입니다! 절 죽이려고 했습니다!”
“알겠소!”
두종이 외치자 담온은 검을 뻗었다. 쾌속한 검법이 붉은 선을 그리며 혁숭월의 몸을 푹 찔렀다. 혁숭월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퉷!
그걸 본 두종은 후다닥 달려들어 침을 뱉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혁숭월이 놓친 검을 붙잡아 휘둘렀다.
“이 하찮은 무부 놈이 어디서! 어디서!”
“진, 진정하십시오. 공자님!”
“이 자식이 감히!”
안 그래도 피 때문에 단단히 독기가 오른 두종이 자신을 말리려 드는 하인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인이 쓰러지자 담온과 담기 두 형제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지금 뭐하는 거요!? 하인을 베다니!”
“나, 나를 치려고 했다고!”
“치긴 뭘... 일단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게 좋겠소. 정신 차리시오!”
두 무림인 형제의 기세가 살벌해 두종은 성질을 내려다가도 압도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이 자리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게 없었다. 한동안은 한경을 빠져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 순간 위에서 팽가의 남매가 떨어졌다. 담온과 담기는 예상 외의 습격에 혼비백산해서 두종을 붙잡고 온몸을 앞으로 날렸다.
‘크윽...!’
“두 공자. 달리시오! 빠져나가야 하오!”
“너희들은 두 공자를 데리고 빠져나가라!”
두 무림인 형제는 두종의 하인들에게 외쳤다. 노회한 둘과 달리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두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떤 놈이 날 공격한 거냐! 어떤 놈이냐고!”
“하북팽가의 팽주성이다. 감히 대낮에 기루에서 사람을 죽이다니. 당장 무기를 버리지 않으면 베겠다!”
“팽주희다. 마찬가지다.”
“...가자!! 도망가자!!”
두종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인들과 함께 기루 문으로 달려 나갔다. 팽주성은 쫓으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두 무림인 형제가 길을 막은 것이다.
“쌍비홍검?!”
“맞소. 팽가의 젊은 호랑이가 이름을 알아주다니 영광이오.”
“지금 누굴 비호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인가!”
팽주성이 고함을 지르자 둘은 살짝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 얼마 어울리지 않아도 두종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것 같았던 것이다.
“두 공자를 쫓고 싶으면 우릴 꺾어야 할 거요.”
“연 포쾌. 우리가 상대할 테니 취봉과 함께 두종 놈을 쫓아가게.”
“알겠습니다. 팽 소저. 참고로 저 분들이 펼치는 진법은 칠성(七星)의 방위를 쓰고 있습니다. 천추(天樞) 쪽이 생문입니다! 그럼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
“......”
두 무림인 형제는 기절할 듯이 놀라서 포쾌의 뒷모습을 황망하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