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월루 살인사건 (4)
“저... 저게... 대체 어떤... 뭐하는...”
나름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담온과 담기였지만 지금 일어난 일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합격술이란 것은 수준이 낮다면 그저 손발을 같이 맞추는 선에서 끝나지만 그 수준이 높아지면 사실상 진법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깊은 이치가 들어가기 마련.
당연히 두 형제의 합격술에도 진법이 응용되어 있었다. 북쪽의 일곱별을 따온 이 합격술은 요광(搖光) 쪽이 사문이고 천추(天樞) 쪽이 생문이라 이걸 들키는 순간 쉽게 무력화가 됐다.
하지만 이제까지 수많은 난전을 치르면서도 이걸 꿰뚫어보는 무림인은 만난 적이 없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혹시 포쾌로 위장한 제갈세가의 사람인가 싶었다.
“포, 포쾌가 말이 됩니까 형님? 방금 분명 포쾌라고...”
“정신 차려라!”
두 형제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서 커다란 두 도(刀)가 살벌하게 공간을 압박하며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 * *
원래라면 길을 막았을 무림인 형제가 발이 묶이자 연우혁은 손쉽게 이교와 같이 추격에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기루의 정문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사이 연우혁의 눈에 쓰러진 혁숭월과 군관들이 들어왔다.
“뭐하고 있습니까? 쫓으시지 않고!”
“...이교 님. 저들을 일단 돌보는 시늉이라도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두종은 제가 붙잡겠습니다!”
“!”
혁숭월 같은 놈을 살려야 한다는 말에 벌컥 화를 내려던 이교는 뒤늦게 이 포쾌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깨달았다.
지금 이 기루에는 방금 일어난 소란을 보는 눈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책임은 칼부림을 부린 혁숭월과 두종이 지겠지만, 세상의 일이란 건 꼭 이치에 맞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
혁숭월과 부하 군관들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중상이었지만 아직은 살아 있었다. 이들을 내팽개치면 훗날 청월루한테까지도 책임이 돌아올 수 있었다.
이건 이교가 먼저 떠올렸어야 하는 사실이었다. 분노 때문에 냉철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감사드립니다. 연 포쾌.”
이교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도 청월루의 입장을 떠올려서 외치는 건 보통 재주가 아니었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아닙니다. 두종은 제가 쫓겠습니다!”
‘다행이군.’
연우혁은 이교가 고집을 부리지 않자 안도했다. 화희와 관련된 일인 만큼 그냥 여기서 죽는 꼴을 보겠다고 할까 싶어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 혁숭월의 친족들이 찾아와서 난리를 피운다면 한낱 포쾌인 연우혁은 괜히 같이 말려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복수도 복수지만 일단 스스로의 처신부터 하고 봐야 하는 법.
연우혁은 안심하며 두종을 쫓았다. 어차피 하인들도 두종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들이었기에 별로 두렵지 않았다.
최근에 비싼 영약도 먹었겠다, 무공도 새로 익혔겠다...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는다.’
자기보다 확실히 약한 적과 싸우게 되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연우혁은 자신 있게 땅을 밟았다. 두종이 먼저 달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두 공자, 거기 서십시오! 멋대로 자택에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저, 포쾌 놈이 쫓아오잖냐! 막아라!”
“공, 공자님. 달리십시오! 달리셔야 합니다!”
“막지 못하겠으면 날 업고라도 뛰어라!”
“더 느려집니다요!”
하인들은 저 멀리서 거리를 좁히는 포쾌가 무공을 익혔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하인들이 막으려고 해봤자 얼마 막지도 못할 것이고, 또 그럴 의리도 없었다.
두종은 어찌할 줄을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궁하면 통한다고 놀랍게도 살 길이 나타났다. 두종은 자신이 아는 이름을 크게 외쳤다.
“야, 포두 놈아!! 포두 놈아!!!”
“?”
부하 포쾌와 함께 길을 지나가던 사 포두는 완전히 엉망이 된 두종의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평소 언제나 풍류 있는 모습으로 돌아다니던 귀공자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러고 있단 말인가?
“무슨... 일이시오?”
“저기 미친 포쾌 놈이 날 죽이려고 한다!”
“?!”
사 포두는 멀리서 달려오는 연우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거 오 포두 놈의 부하 아니더냐?”
“맞, 맞는 거 같습니다.”
“저 놈이 왜 두 공자를 죽이려고 하지?”
사 포두와 포쾌가 이야기하려고 하자 두종은 벌컥 화를 냈다. 피칠갑이 된 옷깃을 흔들며 말했다.
“지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냐? 놈을 죽여라!”
“알, 알겠습니다. 멈춰라!”
‘아니 뭔...?’
달려오던 연우혁은 속도를 늦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만약의 사태에는 사 포두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행히 두종과 하인들은 지쳤는지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 거센 숨을 내쉬기만 했다. 연우혁은 영안을 열고 확인부터 들어갔다.
‘저 포쾌는 무공을 안 익혔고. 사 포두는... 이류 초입 정도군.’
철편을 찬 자세에서 사 포두의 정보가 압축된 채로 연우혁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두통이 올라오기 전에 솜씨 좋게 끊은 연우혁은 다시 한 번 호흡을 회복하고 외쳤다.
“사 포두님! 두 공자님은 지금 기루의 군관을 죽이고 하인을 죽이고 도주하신 겁니다! 빨리 붙잡으셔야 합니다!”
“거짓말이다! 속지 마라!”
“......”
사 포두는 당혹스러움을 숨기고 연우혁을 쳐다보고 두종을 쳐다보았다. 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포두 놈아. 내가 네놈한테 해준 게 얼마인지 잊어버린 것이냐! 통판 어르신한테...”
“이놈! 포쾌 주제에 두 공자한테 감히!”
“아니... 사 포두님! 지금 진짜 위험한 선택을 하시는 겁니다!”
연우혁은 답답해서 외쳤다.
물론 사 포두와 첫만남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지금 두종의 편을 드는 건 자살행위였다.
두종이야 저택으로 돌아가서 한경을 빠져나가면 목숨을 부지하겠지만 사 포두는 그런 능력도 없을 것 아닌가.
기루에서 두종이 칼을 휘두르고 하인까지 벤 걸 한경의 유지들이 다 목격했는데, 이 정도면 통판 어르신의 먼 친척이 아니라 장남이어도 목이 날아갔다.
“닥쳐라!”
그러나 연우혁의 진심 어린 설득은 다른 효과를 불러온 모양이었다. 사 포두는 오해하고서 철편을 뽑아들었다.
“사 포두님! 두 공자의 옷을 보십시오! 보시면 알 겁니다!”
“...?”
사 포두는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두종을 쳐다보았다.
저번에 보여준 저 포쾌 놈의 신비한 능력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암기가 날아들었다. 저번에 백면신투의 비급을 찾으러 갔다가 주운 비검이었다. 짧은 단검이 쐑 날아가더니 방심한 사 포두의 어깨를 찔렀다.
“악!”
“죄송합니다. 사 포두님!”
연우혁은 동시에 채찍을 뽑아 들어서 보법을 밟으며 공격을 개시했다.
서로 이류의 경지지만 상대는 연우혁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데다가 독랄한 심성을 갖고 있었다. 선공을 뺏기면 위험했다.
게다가 이 주변은 그리 넓지 않고 좌판 같은 것들이 많아 편법의 위력이 반감했다.
“개자식이!”
사 포두는 고통을 참으며 철편을 뻗었다.
다른 포쾌와 달리 사 포두는 무관에서 정통으로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었다. 그 무공이 사 포두를 포두의 위치까지 오르게 만들어줬다.
채찍은 비교적 생소한 무기였지만 어떻게 상대하는지는 몇 번 연습해서 알고 있었다. 그 긴 거리와 순간적인 파괴력은 뛰어나더라도 딱 거기까지였다.
‘한 번 묶은 다음 거리를 좁힌다!’
‘철편을 타격해서 자세를 흐트러뜨린다!’
사 포두는 채찍을 묶기 위해, 연우혁은 채찍을 묶지 못하게 초식을 펼쳤다.
백사편법의 초식 중에서 가장 위력이 강맹한 초식은 첫 초식인 일룡일사(一龍一蛇).
철편을 충분히 타격할 수 있으리...
쩍!
내공을 머금은 백사격각편(白蛇隔角鞭)이 살벌하게 철편을 잘라버린 다음 사 포두의 다친 어깨를 한 번 더 크게 베었다. 그 잔혹한 수법에 옆에 있던 부하 포쾌는 자신도 모르게 곤봉을 떨어뜨렸다.
“힉!”
“...!”
연우혁은 생각보다 날카로운 채찍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편법도 편법이었지만 이 정도로 날카로울 줄은 몰랐다.
“크윽...”
쓰러진 사 포두를 보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연우혁은 근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 포두! 녹봉을 받는 사람이 사사로운 이득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자를 감싸다니. 하늘이 보고 있소!”
“대체 저게 무슨 일이야?”
“포두 놈이 죄 지은 놈을 빼돌리려고 했나 본데...”
다행히 주변의 사람들은 연우혁의 편을 들어줬다. 평소 철전을 내고 음식을 먹은 보람이 있었다. 무전취식을 하던 포두는 유전취식을 한 포쾌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묶어라!”
“예, 예...!”
사 포두의 부하 포쾌는 벌벌 떨면서 사 포두와 두종을 묶었다. 연우혁은 상대가 왜 저리 벌벌 떠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한테 불똥이 튈까봐 두려워하는 건가?’
* * *
두종과 혁숭월은 사이좋게 참형에 처해졌다. 정확히는 두종만 참형에 처해졌다. 부상이 심해진 혁숭월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절명한 것이다.
그러나 혁숭월은 죽기 직전에도 원한에 가득 차서 두종이 한 악행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증언했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흘러가자 두종은 하늘이 무너져도 도망갈 수가 없게 되었다. 통판 어르신은 도와주기는커녕 통판까지 같이 파직되었다.
팽주성과 팽주희는 이교의 초대를 받고 한경 외곽의 저택으로 향했다. 하오문이 갖고 있는 저택 중 하나였다. 정문 앞에 도착하자 하인들이 공손하게 둘을 안내했다.
“이번 일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됐네. 이런 일에 한몫 거들 수 있었던 건 무림인의 기쁨이지.”
팽주희는 모처럼 팽주성의 말에 동의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녀가 음식을 내오려고 하자 이교는 아직 아니라는 눈빛을 보냈다.
팽가 남매는 벌떡 일어나더니 상 위에서 술병 하나씩과 고기 요리가 담긴 그릇을 하나 고르더니 다시 앉았다. 이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연 포쾌도 곧 올 테니 같이 드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 때 새로 내오면 그만이지. 참. 담가 두 형제는 왜 그런 놈을 도와주고 있었나? 그게 궁금했는데.”
“청탁할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설득하고 있으니 나중에 알게 되면 말해드리겠습니다.”
팽주희는 발빠른 하오문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칼을 맞댄 지 얼마나 됐다고 쓸만한 무인이라고 포섭하려고 하다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이 낯설어서...”
“아니야. 아니야! 이번 일에 연 포쾌처럼 공을 세운 사람이 또 어디 있겠나.”
팽주성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때는 몰랐는데, 혁숭월을 일부러 살려서 두종을 확실히 죽인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감탄했네. 그게 그런 뜻일 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