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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34)화 (34/107)

야공 강 노인 (2)

사실, 비급 하나로 무공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무림인이 겪을 수 있는 수천 가지도 넘는 상황에 대한 내공과 외공의 상세한 움직임을 어떻게 비급 하나에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괜히 상승무공에 비유나 철학이나 이치가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무공을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이 중요했다.

먼저 그 무공을 익히면서 얻은 깨달음으로 이끌어줘야 제자들이 헤매지 않고 빠르게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연우혁의 영안은 실로 놀라운 능력이었다.

비급의 정보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별다른 과정 없이 무공에 담긴 깊은 이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연우혁 본인은 그런 점에 새삼스럽게 전율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른 무인의 초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훔쳐낼 수 있는데 잘 정리된 비급이라면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이 무공은... 정말이지...’

연우혁은 방금 얻은 정보를 소화시키듯이 깊숙이 생각에 잠겼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 번에 들어와서 소화에도 조금 시간이 걸렸다.

강 노인이 말한 것처럼 이 무공은 어려운 무공이었고, 대단한 무공이었으며, 그리고...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

연우혁이 보기에도 지나치게 극단적인 무공이었던 것이다.

무공에 적힌 모든 운기와 행공의 과정이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집중되어 있었다.

비도를 빠르고 강하게 던지기 위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내공을 쥐어짜내듯이 모아서 천신(天神)을 느끼며, 외공에 사용되는 모든 근육을 하나로 일치시켜 지기(地祇)를 불러오며,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뜻을 한 점에 모아 인귀(人鬼)를 깃들게 한다...

멋지고 현학적인 비유긴 했지만 완전히 이해한 연우혁 입장에서 이 무공은 ‘모든 내공과 외공을 극한까지 쏟아 부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비도를 던져라’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내공과 외공을 극한까지 쏟아 붓는 것도 평범한 무공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인 만큼 대단한 무공은 맞긴 한데...

‘너무 위험하지 않나?’

“저,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오.”

강 노인은 벌써 질문을 하는 연우혁의 모습에 흐뭇해했다.

과연 제갈세가와 연이 있다는 소문이 돌 만큼 영리한 포두답게 벌써 어느 정도 이해를 한 모양이었다.

“이 무공은 그러니까, 온 힘을 다 짜내서 비도를 쏘아보내는 무공 아닙니까?”

“...맞습니다!! 허허, 이렇게 뛰어나실 줄은 몰랐는데...!”

강 노인은 깜짝 놀라서 동의했다.

후인으로 삼은 만큼 기대를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혹시 다른 초식들은 따로 있습니까?”

연우혁은 혹시 탈혼비도의 다른 초식들은 다른 비급에 적혀 있나 싶었다.

아무리 암기술이라 하더라도 극단적인 초식 하나만으로 구성된 무공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

당장 연우혁이 소문으로 들은 사천당문의 암기술만 해도 여러 초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암기들의 속도를 서로 다르게 해서 쏘아 보내거나, 암기 뒤에 암기를 겹쳐서 쏘아 보내거나, 처음 몇 개의 암기를 막아내면 다음 암기에는 특별한 살초가 숨어 있다거나...

“없습니다.”

그러나 강 노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없습니까?”

“암기술은 초식이 많을수록 약해지고 초식이 적을수록 지독해집니다.”

“하지만 무림을 돌아다니다보면 초식 하나로 끝내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올 수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초식 하나로 끝낼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드셔야 합니다.”

“......”

연우혁은 상대가 산전수전 겪은 무림의 종사(宗師)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외곬인 낙향한 무림인인지 헷갈렸다.

물론 초식 하나로 끝장낼 수 있도록 각오를 다진 채 상황을 만들라는 말도 일리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논리라면 무림의 모든 무공들은 초식 하나로만 구성되어 있으리라.

당장 극단적인 찌르기로 유명한 점창의 사일검법만 해도 여러 초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던가.

‘안정적인 무공을 원했는데...’

연우혁이 기대한 건 같은 암기술이라 하더라도 여러 상황에서 대응 가능한 안정적인 당문의 비도술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언제나 목숨 걸고 싸우는 사파 마두나 쓸 법한 지독한 초식 아닌가.

‘...이제와서 새삼스럽지만, 내가 익힌 무공들이 지나치게 좀 사파스럽지 않나?’

편법에 독이 묻은 병장기에 암기술에 권법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종무공을 깊숙이 익힌 무림인보다는 저잣거리 구르는 사파 느낌이 물씬 났다.

“아직 이해를 못하신 것 같은데, 좀 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아. 이해는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할 테니 틀린 부분이 있으면 말해주십시오.”

연우혁의 말에 강 노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 포두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그 짧은 사이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단 말인가?

하긴 아까 말한 걸 보면 이 무공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한 것...

“!!!!”

연우혁의 설명이 시작되자 긴가민가했던 강 노인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후인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서 기쁩니다.”

강 노인은 붉어진 눈시울을 닦으며 말했다.

예상 외의 성과였다.

그저 후인을 찾아서 가문의 무공과 평생의 심득을 물려 줄 생각이었는데, 저런 재능을 보니 자신이 사람을 제대로 골랐다는 확신이 들었다.

“노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무공을 수련해서 반드시 군림천하 하겠습니다.”

“...포두로 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차.’

연우혁은 생각 없이 너무 대충 말했다는 걸 깨닫고 말을 바꿨다.

“무공을 수련해서 반드시 명성을 날리겠습니다.”

“예. 허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실, 철갈방에서 만든 암기들도 좀 드리고 싶은데 다 두고 나와서...”

“...사실 그 암기들을 챙겨 갖고 나왔습니다.”

살짝 머쓱하긴 했지만 연우혁은 좋은 기회여서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포쾌들이 돈 되는 물건들을 찾을 때 당연히 안에 있는 쇳덩이들도 끌려 나왔던 것이다.

강 노인은 그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허허 웃으며 잘됐다고 손뼉을 쳤다.

“드리고 싶은 수전(袖箭)이 있었는데 잘 됐습니다.”

작은 통 안에 용수철 같은 기관들을 채워 넣고 그 힘으로 암기를 쏘아 보내는 수전은 무림의 강력한(그리고 비싼) 암기 중 하나였다.

그 위력은 당령이 쓴 걸 직접 봤었기에 연우혁도 잘 알았다. 준비만 잘 해놓으면 별다른 체력을 소모하지 않고 쉽게 상대를 사살할 수 있는 암기였다.

“수전은 그 안에 들어가는 화살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만들기 어려워집니다.”

한 발을 쏘아 보내는 단통수전(單筒袖箭)과 달리 쌍통수전(雙筒袖箭)이나 삼재수전(三才袖箭)만 되어도 만드는 데에 손이 많이 들어갔다.

그리고 강 노인이 철갈방에서 만들던 건 무려 구궁수전(九宮袖箭)이었다.

“이 녀석이 아주 뛰어난 물건이지요. 여기를 돌리면...”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통 안에서 튕겨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연우혁은 영안으로 그 안을 훑어보고 구조에 감동했다. 강 노인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인지 알 것 같았다.

가져다가 팔기만 해도 금으로 값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그냥 내주다니.

“아시겠습니까?”

“정말 대단한 암기입니다!”

“허허. 부끄럽습니다. 이 녀석이 연 포두님의 목숨을 구해준다면 기쁘겠습니다.”

“이걸 제가 받아도 될지...”

“이제는 나온지 한참 됐지만 저 또한 당문의 무인이었습니다. 당문의 무인은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그런가?’

연우혁은 강 노인을 보자 정말 당문의 무인이었나 살짝 의심이 갔다.

당문의 무인이었던 것치고는 사람이 너무 예의바르고 정상이지 않은가.

어쩌면 당문의 핏줄이 아니었기에 그런 걸지도...

쾅!

“강 노인이 여기 있나?”

‘감히 어떤 놈이?’

연우혁은 발끈해서 몸을 돌렸다. 이런 노인을 핍박하는 사파 놈들이 있다면 가진 무공과 (당문의 무인들을) 동원해서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들어온 건 놀랍게도 포쾌들이었다. 포쾌들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연우혁을 보고 당황해했다.

“아, 아니... 혹시 먼저 명령을 받으셨습니까?”

“무슨 소리냐? 무슨 일로 온 거지?”

“판관 나리께서 강 노인에게 아주 크게 화가 나셨습니다.”

“!”

포두나 포쾌들 입장에서 한경의 판관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경의 사법을 맡아 처리하는 만큼 다른 관리들에 비해 위세가 높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직접적인 건 이들에게 포두와 포쾌를 뽑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판관들은 정식으로 직첩(職牒)을 받은 정관(正官)이었고 파리 목숨인 포두나 포쾌하고는 비교하면 하늘과 땅 같은 차이였다.

판관 나리가 도심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라고 화를 내면 그 날로 포두들은 머리를 싸매고 골치를 앓아야 했다.

그런 판관이 강 노인을 잡아오라고 하다니.

“어째서?”

“대금을 받은 주제에 약속한 물건을 반 년이 넘게 주지 않았다고...”

“아니, 납치되셨잖나!”

“판관 나리께서는 그런 걸 모르십니다! 일단 모셔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희 목숨이 위험합니다.”

포쾌들은 연우혁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최근에 사 포두를 베어버리고 그 자리를 뺏었다는 소문 때문에 이렇게 공손하게 구는 거지, 아니었다면 저런 젊은 놈에게 굽신거릴 일도 없었다.

강 노인이 괜찮다는 듯이 다독였다.

“괜찮습니다. 제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 가서 해명하면 이해해주실 겁니다.”

“...혹시 모르니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연우혁은 자청해서 나섰다.

원래라면 같이 껴서 좋을 게 없었지만 강 노인에게는 받은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사천당문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 아닌가. 강 노인이 가서 곤장이라도 맞으면 판관은 물론이고 연우혁한테도 피바람이 불 수 있었다.

강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허허. 포두님께서는 포두 노릇을 하시기에는 지나치게 의기가 드높으십니다.”

“예??”

*   *   *

맹 판관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관청 형관(刑館)의 가운데에 앉아 강 노인을 잡으러 간 포쾌들을 기다렸다.

돈을 받아간 주제에 계속 물건을 내놓지 않고 사라졌다가 뒤늦게 돌아와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니.

“잡아왔습니다. 어르신!”

“늦지 않느냐! 이 구더기 놈들. 잠깐. 네놈은...”

“연우혁이라고 합니다! 판관 어르신의 일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어 이렇게 같이 왔습니다.”

괜찮은 아첨에 맹 판관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뇌물도 바치지 않고 지부 나리한테 잘 보여서 포두가 된 놈이라 괘씸했는데, 이렇게 보니 제법 눈치가 있기도 했다.

앞으로 처신만 잘 한다면...

“어르신! 제가 감히 한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

포쾌들은 깜짝 놀랐다. 맹 판관도 넓적한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감히 좋게 봐줬더니 기어오르다니?

“네가 감히...”

“만약 쓸모없는 말이라면 곤장을 치셔도 좋습니다! 한 말씀만 하게 해주십시오!”

“으, 으음.”

압박에도 불구하고 젊은 포두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맹 판관은 불쾌한 와중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뭐냐? 말해봐라.”

“죄송하오나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 귀를 가까이...”

포쾌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저 포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직감한 것이다. 성질 더러운 맹 판관 앞에서 저렇게 까불다니.

아니나다를까 이야기를 들은 맹 판관의 안색이 변했다.

“저 노인을 풀어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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