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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37)화 (37/107)

맹판관요괴저택 (3)

화를 내던 당등이 고개를 돌려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속으로 당문의 뻔뻔함을 욕하고 있던 연우혁은 움찔했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그런데 왜 그런 거냐?”

“!”

“여기 거지들을 도와줄 이유가 포두 네게는 없을 텐데.”

‘아. 다른 거였군.’

연우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판관한테 말하지 않고 개방의 분타에 와서 도와줬냐니, 그거야 당연히...

‘맹 판관이 보답 안 할 놈이니까 그렇지...’

연우혁이 보기에 맹 판관은 인색하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게다가 포두 알기를 길가의 돌멩이마냥 하찮게 알았다.

그런 놈이 자신의 부끄러운 문제를 해결했다고 제대로 보답해줄 리 없었다. 최악의 경우 자신의 치부를 들켰다고 되레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올라온 사건이라면 판관 말고도 다른 관리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차라리 나았지만 이런 일이라면...

차라리 개방의 거지들한테 말해줘서 피해 없이 원만하게 끝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나았다. 개방의 거지들이 난폭하고 국법을 무시하며 사는 놈들이라지만 보답은 확실히 했으니까.

물론 ‘판관한테 말해봤자 돈 안 돼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판관께서 하신 일이 옳지 않은 일이라, 녹을 먹는 관리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

“...!!”

당등은 깜짝 놀랐다.

설마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다. 당등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곧 죽을 놈이라 그런가? 대단하군!’

상단전이 열려서 단명할 놈이라 그런지 관리 특유의 탐욕이 없고 백성을 위한 사명감만이 번뜩였다. 저런 놈이 제대로 된 관리를 해야 하는데 고작 포두 자리에 있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정 분타주도 깜짝 놀랐다. 분타주는 당등보다 더 놀랐다.

“설... 설마, 자네, 판관 놈이 한 일들도 아는 건가?”

“그야 알겠지! 개방 거지 놈들이 요괴 시늉하는 것도 알았는데 판관 놈이 한 일도 모를까. 이 포두가 아주 신통하오.”

‘어. 모르는데.’

연우혁이 아는 건 판관이 워낙 탐관오리라 개방의 거지들이 요괴 시늉으로 현혹시키고 은자를 뺏어간 사건이지, 정확히 판관이 탐관오리로서 무슨 일들을 했는지까지는 몰랐다.

다행히 분타주는 알아서 설명을 해줬다.

“한경에서 판관 놈이 한 일을 아는 건 우리 개방의 동도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본적으로 탐관오리들은 거지들도 가리지 않고 탐학질을 해댔다.

찬물을 끼얹고 쪽박을 박살내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고, 거지들한테 시킨 더러운 일들의 삯을 깎아서 주거나 분타에 상납할 은 쪼가리를 강탈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포두 같은 관리는 할 수 없는, 판관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개방이 그런 걸로 원한을 품지는 않았다. 한경의 길거리를 쏘다니는 거지가 몇 명인데 그런 걸로 하나하나 원한을 품었다가는 끝이 없었다.

“에이...”

당등은 픽 웃었다.

“누가 들으면 개방이 도사들 모임인 줄 알겠소. 저번 사천에서는 개방의 거지 하나가 닭 뺏겼다고 양민을 때려죽였는데.”

“......”

연우혁은 나중에 꼭 분타주한테 ‘저는 당문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해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분타주는 화를 내지 않았다.

“개방의 거지가 십만인데 그들 중에 성정이 악한 자가 어찌 없겠습니까.”

“하긴 그 말도 맞군.”

이번에 한경의 개방 분타주를 분개하게 만든 일은 바로 판관의 친척이 저지른 일이었다.

한경의 가옥을 빠삭히 꿰뚫고, 집을 사고 팔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을 하는 이른바 가쾌(家儈)는 매우 이문이 남는 직업이었다.

한경처럼 큰 도시에서 집은 언제나 사고 팔렸고, 또 국법에 따라 집을 사고 팔 때는 가쾌의 수결도 반드시 들어가야 하니 이렇게 돈이 벌리는 직업도 찾기 힘들었다.

당연히 이런 일은 이상할 만큼 관리의 친족들이 자주 맡곤 했다.

거기까지는 분타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연우혁 기준에서는 저것도 좀 이상한 일이었지만, 무림 기준으로는 관리 친족한테 요직 맡기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가쾌 놈이 쳐죽일 놈이야!”

분타주는 이야기하다보니 새삼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으르렁댔다.

“가쾌란 놈이 있지도 않은 가짜 가옥을 양민들한테 팔아넘기다니!”

“!”

연우혁은 깜짝 놀랐다.

예상보다 훨씬 더 악행의 수준이 높았던 것이다.

가쾌는 관의 허락을 받고 거간꾼 노릇을 하는 만큼 거래가 이뤄지면 자기 수결도 관아에 바치는 문서에 적어 넣어야 했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가옥을 팔아넘긴 건 적당히 무마할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들통난다면 당연히 가쾌의 목도 같이 날아갔다.

가만히 있어도 꽤 버는 놈이 저렇게 욕심을 부리다니.

당등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의아해했다.

“겁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지?”

“판관 놈이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속은 걸 깨달은 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관아에 고발하려고 하자 판관이 누명을 뒤집어씌워서 입을 막아버린 거지요.”

분타주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몇 명은 옥사했고 다른 몇 명은 겁을 먹고 한경에서 야반도주했다. 다른 이들은 이제 속은 걸 알아도 감히 꺼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개방의 거지들이 아니었다면 분타주도 이 일의 내막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쳐죽일 놈입니다. 분타주 님.”

“알아줘서 고맙네. 자네 같은 포두가 있다니, 아직 세상의 도리가 다하지 않은 모양이야.”

“둘이 의기투합하는 건 좋은데 이번에는 내가 할 이야기가 있소.”

당등은 독을 먹은 것마냥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실은 지금 한경에 금의위 교위가 하나 와 있단 말이지.”

“......”

“......”

연우혁과 분타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금의위.

명색은 황제의 친위대였지만 실상은 개방이나 하오문을 능가하는 첩보 조직이었다. 역심을 품고 있는 자들을 찾아내야 하는 만큼 사방을 돌아다니며 풍문에 귀를 기울였고 그만큼 악명도 높았다.

금의위는 동창과 함께 무림의 겁 없는 이들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집단이었다.

“금의위 교위가 한경에는 대체 무슨 일로...?”

“난들 알겠냐? 뇌물을 받으러 왔는지, 한경에 먼 친척이 있는지, 아니면 관료 놈이 역모를 꾸몄던지, 금의위 놈들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 얼마나 비밀스러운 놈들인데. 한경에 교위가 있다는 것도 내가 지부 형님과 친해서 주워들었던 거다.”

꿀꺽 침을 삼킨 분타주가 침착을 되찾기 위해 호흡하며 말했다.

“아직 그리 걱정할 건 없습니다. 일개 교위 아닙니까.”

‘좀 위험한데.’

연우혁은 생각이 달랐다.

교위는 군관으로 따지면 그리 급이 높지 않은 신참이 맡는 직위였지만(물론 이 정도만 해도 비정규직인 포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신분이 높았다), 그 앞에 금의위가 붙는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대체로 관리의 힘은 그 지위가 높을수록 강해졌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바로 황제와 독대하는 관리였다.

황제와 독대할 수 있는 관리는 그 품계가 아무리 낮아도 고관대작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 어떤 말이 나와서 자신의 목을 날릴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금의위는 바로 그 황제와 독대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일개 교위라 하더라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대국 전역의 뛰어나고 야심찬 인재들이 우글거릴 텐데...

‘내가 경험했던 사건들에서도 능력이 없진 않았다.’

실제로 연우혁이 실패할 경우에 금의위들이 자주 나오지 않았던가.

-...해결에 실패하자 금의위 역사들이 관련자들을 전부 잡아가서 처형했다...

-...해결이 늦어지자 금의위 역사들이 관련자들을 전부 잡아가서 처형했다...

-...해결이 미흡하자 금의위 역사들이 관련자들을 전부 잡아가서 처형했다...

‘음. 아니다. 능력이 없는 걸지도.’

생각해보니 다 데려다가 처형하는 건 개나 소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사실 아직 걱정할 건 없긴 하오. 금의위 교위가 일개 판관 놈 저택 은자 사라진 것까지 관심 가질 가능성은 적으니. 그런데...”

당등이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했다.

“...이번에 판관 놈 저택에 요괴가 자꾸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크게 퍼졌잖나.”

“그게 왜 크게 퍼졌습니까?”

분타주는 당등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개방이 판관의 저택에 과감하게 침입할 수 있었던 건 판관이 나름 체면을 신경 쓰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판관은 요괴가 나온다고 대놓고 알리는 대신 자기 집안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만큼 판관도 소문을 내고 싶지 않아했다.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오.”

“......”

연우혁은 당등을 경악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 당문의 무인은 자신이 판관의 뺨을 냅다 올려붙여서 관아에 소문이 퍼진 걸 슬쩍 넘어가고 있었다. 대낮에 보는 눈 많은 자리에서 판관에게 실토하게 했으니 소문이 안 퍼질 수가 없었다.

“이 소문이 퍼지면 교위 놈이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거지. 놈이 관심을 가지면 요괴는 물론이고 은자 빼온 것도 꼬리를 밟힐 수 있지 않소. 하필 왜 은자는 지금 훔쳐가지고.”

“끄응.”

분타주는 당등의 지적에 괴로운 소리를 냈다. 일이 복잡하게 꼬인 것이다.

“아직 들키진 않았으니 벌써 겁을 먹을 건 없소. 금의위 교위 놈이 한가하진 않을 테니 어지간하면 안 건드리겠지.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 때 생각합시다. 이렇게 엮인 것도 인연이니 우리가 도와드리리다.”

“고맙습니다. 대협.”

당등의 말에 멍하니 듣던 연우혁이 멈칫했다.

‘...왜 우리?’

그 때 밖에서 거지 한 명이 기침 소리를 내고는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분타주 님. 대화를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웬 포쾌 놈 하나가 포두 나으리를 계속해서 찾는데, 어떻게 할까요?”

“?”

연우혁은 의아해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고묘 밖으로 나왔다. 놀랍게도 연우혁을 찾고 있던 건 사 포두, 아니 사 포쾌였다.

“무슨 일이지?”

사 포쾌는 많이 뛰어다녀서 행색이 엉망인 것과는 별개로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포두님. 당장 한경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뭐?”

“금, 금의위가 포두님을 찾고 있습니다! 아는 하인 놈한테 먼저 들어서 이렇게 달려온 겁니다. 아마 내일이면 부름이 올 겁니다. 오늘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

연우혁도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침착을 되찾고 다시 물어보았다.

“금의위가 날 죄인으로 붙잡는다고 하던가?”

“그것까진 못 들었습니다.”

“그러면 추궁하려고 부르는 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어...”

사 포쾌는 뒤늦게 부름이 꼭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연 포두는 딱히 뒷돈이나 뇌물을 받은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알려줘서 고맙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