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40)화 (40/107)

은광산 실종 사건 (1)

자리에 있던 학사와 교위 모두 말문이 막혀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저런 대답을 낸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교위가 친우에게 물었다.

“신통력이라는 게 저런 것도 가능한 건가?”

“아, 아니... 당연히 아니네. 자네도 알지 않나.”

조정에서 일하는 학사나 금의위에서 일하는 교위는 신통력에 대해 접할 일이 많은 만큼 터무니없는 환상이나 착각을 하지 않았다.

신통력은 어디까지나 술법이나 무공처럼 제한된 능력이었고 한계가 명확했다.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 마을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어느 누가 은을 빼돌려서 밀수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이유를 들어보겠다. 설명해봐라.”

교위는 반신반의하는 기분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만약 이 포두가 한경에서 해낸 일들을 알지 않았다면 어디서 허튼 소리냐면서 호되게 화를 냈을지도 몰랐다.

“먼저 겉으로 봤을 때 인부들이 문제없이 오고 간다는 건 광산 자체는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간 역사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건...”

“누군가 광산 안에서 외부인을 확인하고 제거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 그 정도는 나나 이 학사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령이 협박받았다? 이런 곳의 일은 보통 현령이 주도한다.”

교위의 말에 학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대환국은 땅덩이가 넓어 구석진 곳의 현령은 왕처럼 행세해도 들키기가 쉽지 않았다. 핑계를 대고 자신의 뒷주머니를 차는 건 제법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예. 옳게 보셨습니다.”

연우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한두번 해본 게 아닌 만큼 이제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것에도 관록이 붙은 기분이었다.

이 사건은 사파 무림인들이 광산을 점령한 사건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현령의 가족을 인질로 붙잡고 협박해 거짓 장계를 보내게 만들었다는 것 정도.

원래는 그 장계에 적힌 내용의 허점을 하나하나 확인해서 이상한 걸 확인해야 했지만, 이렇게 현장에 온 이상 별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핑계를 대는 대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현령이 한 일이라면 사고가 거듭 일어난다고 장계를 올리지 않았을 겁니다. 사고가 일어난다고 하면 외부에서 확인하러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저라면 다른 핑계를 댔을 겁니다.”

“과, 과연 그렇군!”

학사는 놓쳤던 부분을 듣고 감탄했다.

확실히 듣고 보니 그랬다. 괜히 수상쩍은 핑계를 대서 의심을 살 이유가 없었다. 교위도 생각지 못한 지적에 만족스러워했다.

“과연. 이해했다. 이 특이한 장계는 현령이 보내는 암어(暗語)라는 건가. 잠깐, 현령이 협박당하고 있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흑도 무리가 범인이라는 건 어떻게 짐작했나?”

“그건 제 직감입니다. 세상 천지에 이런 무도한 짓들을 저지르는 건 대체로 무림인 놈들 아닙니까?”

연우혁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가서 확인하면 알게 될 텐데 이 정도는 그냥 우겨도 됐다.

“......”

교위는 이 무림인을 혐오하는 포두의 직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고민이 됐다.

*   *   *

옥면살검(玉面殺劍)이란 별호를 갖고 있는 동자홍은 부하들을 차갑게 노려보며 재촉했다.

“캐내는 은이 늘어나야지, 줄어들다니. 네놈들은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이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

동자홍 휘하의 부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엎드렸다. 이 때 괜한 변명을 하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낭인 놈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었다.

“동 대인! 지금 은자가 줄어든 건 인부 놈들이 꾀를 부려서입니다. 놈들이 꾀를 부리지 못하도록 겁을 더 확실하게 주면...”

푹!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옥면살검은 검을 뽑아 낭인의 목을 찔러버렸다. 낭인은 컥컥대며 쓰러졌다.

“알면 줄어들기 전에 했어야지, 네놈은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생색이나 낼 줄 아는구나.”

자리에 싸늘한 공포가 내려앉았다. 무림인들은 눈알만 데룩데룩 굴렸다.

이 주변에 광산을 점령한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목표한 만큼의 은을 모으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야 여럿 있었다.

얕은 곳의 광맥은 다 캤고, 협박을 받은 인부들이 서두르다가 사고를 치고, 새로 인부를 데리고 오면 괜히 사실이 새어나갈 수 있으니 있는 인원만을 데리고 쥐어짜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목표로 한 은이 너무 많아서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되지 않나?’

‘이미 모은 것만 해도 충분하다. 나누기만 하면 평생 먹고 살 텐데.’

원래 사파나 흑도의 무리라 하더라도 이렇게 멋대로 부하를 찔러 죽이고 베어 죽이면 그 조직이 제대로 유지되기 힘들었다.

당장 내일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도망이라도 쳐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옥면살검이 사파 무림에서 악명이 높은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여기 모인 무림인들이 도망치지 않는 건 탐욕 때문이었다.

옥면살검 밑에서 오랫동안 버티며 광산의 은이란 은은 다 긁어모으지 않았던가.

이걸 배분받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귀신이 될지 몰랐다. 이 은이 여기 무림인들을 버티게 해주는 이유였다.

옥면살검은 부하들의 눈빛에서 불만스러운 기색을 읽어냈다.

“불만이 있는 모양인데. 어디 말해 보거라. 자!”

“아, 아닙니다.”

“어서! 말하지 않으면 네놈의 밑부터 위까지 크게 구멍을 뚫어주겠다!”

겁에 질린 낭인은 눈치를 보며 내뱉었다.

“캐, 캐낸 은자가 많으니 이만 사라져도 좋지 않겠습니까. 현령은 자기가 한 일이 있으니 외부에 말하지 못할 겁니다... 너무 오래 머물렀다가 일이 틀어질까봐 겁이 납니다.”

“.....”

옥면살검은 부하의 말에 입술을 씰룩거렸다.

여기 있는 낭인 놈들은 옥면살검의 진짜 목적은 하나도 알지 못했다. 다 하나 같이 강도질이나 낭인질을 하다 옥면살검 밑에 모여든 놈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옥면살검이 섬기는 교(敎)의 장로께서는 이만한 은자로는 절대 만족하지 않았다. 제대로 포상을 받기 위해서는 은을 더 긁어 짜내야 했다.

‘죽일까?’

옥면살검의 눈빛에 살기가 일렁거렸다. 그걸 느낀 낭인이 발버둥쳤다.

낭인에게는 다행히, 옥면살검은 검을 다시 뽑지 않았다. 하루에 두 명이나 죽였다가는 부하 놈들의 사기가 괜히 무너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부하들의 불만이 쌓인 만큼 지금은 자제를 해둬야 했다.

쾅!

낭인을 옆으로 집어던진 옥면살검은 다른 부하들을 보며 외쳤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흑도라고 자처한단 말이더냐? 고작 그만해야 하는 이유가 들킬까봐라고? 그런 거라면 검을 내려놓고 돌아가서 농사나 짓지 그러냐!”

내공을 담은 외침에 무공의 경지가 낮은 무림인 몇몇은 벌벌 떨었다.

“난 네놈들처럼 겁 많은 구더기들은 처음 본다! 지금 캐낸 걸 가지고 사라지자고? 사라질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걸로 뭘 할 거냐. 밭뙈기 조금 사면 끝날 거다! 대장부로 태어났으면 백 칸이 넘는 가옥을 지어서 떵떵거릴 생각을 해야지! 네놈. 꺼지고 싶으면 지금 꺼져라! 지금 꺼지면 살려주겠다.”

“아, 아닙니다! 이 구더기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대인, 저희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옥면살검은 탐욕이 부하들에게 제대로 불을 질렀다는 걸 확신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의욕이 없던 놈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빨리 떠나고 싶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은을 긁어내라. 알겠느냐? 들키고 싶지 않다면 감시를 철저히 해라. 안 그래도 수상쩍은 놈들이 광산을 기웃대고 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인.”

옥면살검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귀 총관이 싱긋 웃었다. 여기서 유일하게 교 출신인 총관은 그나마 옥면살검의 신뢰를 받는 책사였다.

“자꾸 수상쩍은 놈들이 기웃대길래, 광산에 확실히 대책을 마련해놨습니다.”

“그나마 네 녀석이 내 심화를 달래주는구나. 말해봐라.”

총관은 자신 있는 태도로 광산 주변의 지도를 펼쳤다.

원래 여기의 은 광산은 입구가 여럿인데다가 그 거리도 상당한 만큼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잠채꾼들도 가끔씩 나타날 정도였다.

자꾸 허락 받지 않은 수상쩍은 놈들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광산의 특성 때문이 컸다.

“일, 이, 삼, 여기 입구들은 막아버렸습니다. 어차피 이쪽으로는 들어갈 일이 없으니 상관없을 겁니다. 사, 오. 여기 입구들은 합쳐버렸습니다. 무인들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들어갈 때마다 신원을 확인하고 있으니, 몰래 들어올 방법은 없습니다. 육 입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옆이니 같이 확인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여기 칠(七)은? 반대쪽이고 광산 아래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잖나.”

“역시 대인께서는 총명하십니다. 저도 이 입구의 중요성은 잘 압니다. 워낙 넓어서 막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인근에 진법을 펼쳐놨습니다.”

총관은 목소리를 낮췄다. 다른 낭인들이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굉겁혈망진(轟劫血網陳)입니다.”

“...!”

옥면살검은 이제까지 짜증을 터뜨린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만족스러워했다.

굉겁혈망진이라면 교에서도 제대로 성의를 보여준 셈이었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닌 옥면살검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대하는 게 분명했다.

“그게 정말이냐?”

“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훌륭하다. 훌륭해. 그래! 그 진법이라면 믿을 수 있지.”

옥면살검은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사 외부에서 귀찮은 놈들이 오더라도 한동안은 꼬리를 잡지 못할 게 분명했다.

*   *   *

“일단 마을에 들어가야 한다고 보네. 그리 수상하지 않을 걸세. 기남에 행상인과 보부상이 얼마나 많이 들리겠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위험하네. 역사가 몇 명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적들이 괜히 경계하고 있다면?”

교위와 학사는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다.

교위는 평소 하던대로 기남에 들어가 주변의 풍문을 확인하고 인부 중 하나의 신분을 얻은 뒤 위장해서 광산으로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현령이 협박을 받고 있든 아니든 광산 안에 증거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들어가서 확인한 다음 결정을 내려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학사는 좀 더 조심스러웠다. 어차피 들어갈 거면 기남에 들어가는 대신 바로 광산으로 직행해야 한다고 봤다. 괜히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적이 드물고 바로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여기 입구가 제격이었다.

“지금 이 인근은 진법이 펼쳐졌다는 보고를 받았네.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

“내가 뚫어보겠네.”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러나?”

교위는 진법에 뛰어드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겼다. 잘 준비된 진법은 공격 측에게 극도로 불리했던 것이다.

우회하면 그만인데 무엇하러 목숨을 건단 말인가?

“?”

이야기를 하던 교위는 문득 포두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진법!?’

깜짝 놀라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대는 순간 저 앞에서 포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법 해제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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