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41)화 (41/107)

은광산 실종 사건 (2)

백악신이 깃든 청동 거울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던 학사도 마찬가지로 깜짝 놀랐다.

“진법을 해제했다고?!”

“예!”

금의위 교위는 그 말을 듣고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학사에게 명을 내렸다.

“확인해보게.”

“알, 알았네.”

이 학사는 침착하게 술법을 사용해 주변의 기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만약 누군가 진법을 펼쳤다면 인위적인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 자연의 기운과는 전혀 다른 위화감이 느껴져야 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와 달리 정말로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진법이 사라진 것이다.

“사, 사라졌다!”

“...!”

두 사람이 놀라워하는 사이 연우혁이 수풀을 헤치고 돌아왔다. 손에는 붉은색 혈철(血鐵)로 된 푯말이 들려 있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사이한 기운에 이 학사는 깜짝 놀랐다. 저런 기물을 사용한 진법이라면 그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억지를 부려서 밀고 들어갔었다가는 크게 다쳤을 것이다.

“고, 고맙네. 자네 덕분에 실수를 하지 않았군. 그런데 이 진법은 대체 어떻게 해제한 건가?”

“저는 상단전이 열린 덕분에 영안이 트였습니다.”

“아아...”

금의위 교위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학사는 바로 이해했다.

고서에 나오는 신통력 중에는 영안이 있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형태 없는 것들을 보는 이 능력은 매우 드문 능력이라 학사도 고서에서만 봤었는데...

이 포두가 가진 영기를 생각해보면 저런 보기 드문 능력을 갖고 있어도 놀랍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이런 술법 쪽에 재능이 탁월한 게 분명했다.

너무 탁월해서 단명할 운명을 타고났긴 했지만...

“그런 거였군. 그래서 남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사건들도 해결할 수 있었던 거였나.”

“하지만 그걸로 사건의 내막을 알 수는 없지 않나.”

“성인은 불출호지천하(不出戶知天下)에 불규유견천도(不闚牖見天道)지. 이 포두한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걸세.”

성인은 방문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알 수 있었다. 이 포두가 그런 성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건 확실했다.

정말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단서 몇 개만으로도 진상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교위는 이 학사의 말을 듣고서도 믿기 어려워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단서만으로 모든 진상을 알아맞힌단 말인가.

“원래 범인의 견식은 성인을 따라갈 수가 없네.”

“음. 정말 믿기 힘들군. 어떻게 저런 재주를.”

‘듣기 민망하군.’

연우혁 입장에서는 상당히 민망한 대화였다.

사건의 비밀을 알고서 먼저 지르는 만큼 ‘어떻게 그걸!’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허세가 필수적이었다.

만약 연우혁이 이런 식으로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면 교위나 학사는 그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당등이나 개방의 분타주, 하북팽가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실수 한 번에 목숨이 오가는 무림에서 위험한 걸 알면서도 그대로 사지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른 무림인들과 달리 연우혁은 뒷배도 없고 무공도 아직은 부족하지 않은가.

최소한 자기 자신이 상황을 최대한 안전하게 주도할 수는 있어야 했다.

‘교위는 일류 말입. 학사는 그보다 조금 못한 수준. 이 둘이면 충분히 안에 있는 놈들을 처리할 수 있다.’

밥만 먹고 무공만 연공하는 명문정파의 무림인들도 일류의 벽을 쉬이 뚫지 못하는데, 아무리 조정의 뛰어난 군관들 중에서 가려 뽑았다 하더라도 일개 교위가 일류 말입이라는 건 대단히 뛰어나단 증거였다.

아마 이 하 교위는 금의위 내에서도 꽤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자신감 있게 혼자 오지 못했다.

이 학사도 정확한 관직은 몰랐지만 쌓은 내공의 수준이 상당했다. 술법에 뛰어나고 이기(利器)까지 갖고 있는 만큼 든든한 전력이었다.

‘분명 옥면살검이었지? 부하 숫자가 어떨 때는 이십 명이었고 어떨 때는 열댓명이었고...’

옥면살검 정도가 일류고 나머지는 삼류가 대부분. 싸움이 붙어도 우두머리만 교위가 상대하고 나머지는 연우혁과 학사가 처리하면 됐다.

“들어가시죠.”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해서 부끄럽군. 자네가 나보다 낫다.”

“아닙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파른 길이 쭉 나타났다. 이 광산의 아래쪽으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 입구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바로 이해가 갔다.

길을 걸어가면서 이 학사는 연우혁에게 호감이 생겼는지 질문을 던졌다.

“술법은 배웠나?”

“연이 닿아서 하나 배운 게 있습니다. 남두성군(南斗星君)의 힘을 빌리는...”

“남두성군! 도술이로군.”

이 학사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침음성을 흘렸다.

어렸을 때부터 유학을 수학하고 조정에 입신한 학사들에게 도사들이란 쓸데없이 난잡한 술법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이었다.

“도술은 변덕스럽고 그 힘을 예측하기 힘드네. 언제는 힘을 빌려주다가도 언제는 주인의 목을 조르지. 괜히 도사들 중에 타락해서 사이한 요술에 빠져드는 이들이 나오는 게 아닐세.”

‘...아니 어쩌라고...’

연우혁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학사들이야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술법을 배운다지만 연우혁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도사들의 술법을 배운 것만으로도 솔직히 감지덕지였다.

“그에 비해 학사들은 조정의 명으로 귀신과 산신을 부리지.”

속으로 욕한 것과 별개로 연우혁은 관심 있게 들었다.

상대가 자기보다 뛰어난 술법 능력을 가진 만큼 얼마든지 배울 점이 있었던 것이다.

도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신선과 귀신의 힘을 빌린다지만 학사들은 조정의 이름으로 제사를 지냄으로서 각종 신선과 귀신을 굴복시켰다.

부릴 수 있는 이들은 제한되고 그 능력의 가짓수도 적어지지만 그 힘은 훨씬 안정적이고 단단했다.

당장 조정의 보물을 갖고 나온 이 학사가 도사들의 술법을 난잡하다고 비웃는 것도 이래서였다.

술법에는 마땅한 절차와 의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대뜸 우악스럽게 술법을 펼치니 얼마나 난잡해 보이겠는가.

“더 강한 술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어떤 수련이 필요합니까?”

“그건 자네도 이미 알고 있네. 내공을 쌓게나.”

학사는 하단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와 같은 학사들은 특수한 심법을 익혀서 이 내공에 영성(靈性)이 깃드네. 승려들이 익히는 불문무공에는 불성(佛性)이 깃들듯이 말일세.”

“어... 상단전의 영기로 사용하는 게 아닙니까?”

연우혁은 살짝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우혁 같은 경우에는 술법과 신통력은 넘쳐흐르는 상단전의 영기로, 무공은 쌓고 있는 하단전의 내공으로 펼치고 있었다.

이 두 과정은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마냥 자연스러웠기에 연우혁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다.

포두의 질문에 이 학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상단전을 열고 거기에 축기를 하겠나? 당연히 하단전에 쌓을 수밖에 없으니 그러는 거지. 자네처럼 상단전의 영기를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지. 왜냐하면...”

“단명하니까.”

“...자네는 왜 끼어드나. 좀 좋게 돌려서 말하려고 했는데.”

이 학사의 타박에 금의위 교위는 당황했다.

“미, 미안하다. 별 생각 없이 말했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자네가 이해해주게. 이 사람이 원래 목석 같은 사람이라...”

“예. 그런데 왼쪽에 숨겨진 길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바로 숨겨진 거처가 나올 것 같습니다.”

“허! 이 친구는 정말 포두가 아니라 조정으로 데려가서 관직을 시켜야 한다니까! 내가 꼭 위에 말을 올려야겠네.”

“아닙니다. 저는 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사 어르신의 일에 감히 제가 어떻게 말을 얹겠습니까? 부디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   *   *

광산 안쪽의 숨겨진 거처에는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먼저 인근 현령의 가족들이 여기 있었다.

혹시라도 현령이 낭인이나 무림인을 고용해 구출 작전을 펼칠까봐 옥면살검은 가장 깊숙한 거처에 가족들을 가둬놓은 것이다.

그리고 훔친 은도 여기 있었다.

꼭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꺼낸 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은이 여기 모여 있는 상태였다. 낭인들은 한시라도 빼서 나누고 싶어 했지만, 옥면살검은 교의 무인들이 와서 가져갈 때까지 은을 쌓아놓을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교에서 내려준 보물이 있었다.

반쪽짜리 보물이었지만 옥면살검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보물이었다. 완성만 되면 자신의 무공 경지를 한 단계 높여줄 보물이었던 것이다.

옥면살검은 이 일을 마치고 산더미 같은 은을 바침으로서 나머지 보물의 반쪽을 얻을 계획이었다.

집요하고 교활한 사파 무림인답게 옥면살검은 광산 깊숙한 곳에 은신처를 마련해놨음에도 불구하고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은신처 안을 복잡하게 꼬아놓고 기관진식을 설치하는 것도 모자라 배신을 대비해 어느 누구도 은신처 안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신투라 하더라도 무언가를 잘못 건드려 옥면살검한테 들킬 수밖에 없었다.

“기관 다 해제했습니다. 들어가는 길은 이쪽이고, 제 생각에 현령의 가족들을 가둬놨을 곳은 이쯤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있네. 연 어사!”

“포두입니다!”

이 학사는 어찌나 감탄했는지 관직까지 높여줬다. 포두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뛰어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백악신장. 여기 이 가족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학사가 청동 거울에 대고 말하자 그 안에서 연기와 함께 커다란 장수가 튀어나왔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산신은 겁에 떤 현령의 가족들을 확인하더니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이 은은 어떻게 합니까?”

연우혁은 산더미 같은 은을 보며 물었다. 이 은을 환단으로 바꾸면 얼마나 나올지 생각하니 목소리가 괜히 떨리는 기분이었다.

“이건 바로 옮길 수 없다. 현령의 가족만 빼돌린 다음 바로 군령을 내려서 토벌한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싸움 하나 없이 커다란 사건을 날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연우혁은 흐뭇해졌다. 역시 능력 있는 금의위 교위와 일을 하니 매우 편했다.

‘더 챙길 거 없나?’

연우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현령의 가족은 확인해서 꺼냈고, 은도 쌓여 있는 걸 확인했고...

원래 사건에서 기억나는 건 다 확인한 것 같았다. 연우혁은 낭인 놈들 잔돈푼이나 있으면 챙길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영안을 여는 순간 강한 사념을 담은 정보가 연우혁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혈옥갑(血玉鉀), 혈교의 신병이기, 지금은 기운이 다해서 잠들어있지만 다시금 인신공양과 핏값을 치르면 깨어날 수 있고...

‘혈교!?’

연우혁은 깜짝 놀랐다. 옥면살검이 은에 욕심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혈교의 수하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해결해서 나오기도 전에 끝나버렸던 건가? 아니, 혈교의 보물이 여기 있었나? 옥면살검 놈이 둔 건가?’

그러나 방금 놀란 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한 일이 일어났다.

혈옥갑이 갑자기 튀어 오르더니 연우혁이 반응할 수도 없이 양손에 착 달라붙어버린 것이다.

붉고 얇은 장갑은 연우혁의 영기를 쫙 빨아들이더니 투명한 색으로 변해 한 번 울고 그대로 손으로 파고들어버렸다.

“무슨 일 있나? 연 어사?”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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