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43)화 (43/107)

은광산 실종 사건 (4)

“윽.”

연우혁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영안을 켜놓은 덕분에 연우혁은 자신의 육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탈혼비도는 강 노인의 장담대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단전과 경맥을 쥐어짜는 무공이었고, 그 탓에 온몸의 내공이 순간적으로 텅 비어버렸다.

털썩!

“괜찮나?!”

이 학사는 뒤늦게 놀라서 연우혁을 부축했다.

일개 포두가 옥면살검 같은 일류 고수를 일격에 죽인 사실에 놀라워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순리(順理)가 아닌 역리(逆理)에 가까운 무공을 쓴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상대가 방심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저렇게 일격에 숨통을 끊을 수 있겠는가.

“내공이...”

“쉬고 있게! 어차피 다 끝났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 교위가 총관에게 달려들었다.

혈귀도 잃어버리고 옥면살검까지 죽어버리자 총관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보ㅁ... 컥!”

금의위는 증인을 만들겠다고 생포 같은 걸 하지 않았다. 상대를 내버려봤자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만큼 하 교위는 가차 없이 숨통을 끊어버렸다.

“죽었나?!”

“죽었네.”

하 교위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환약을 하나 꺼내서 입에 던져 넣었다. 옥면살검과의 격전이 생각보다 격렬한 만큼 내상이 조금 있었다.

“연 포두는?”

“쓰러졌네. 탈진한 것 같아. 그런 위력의 초식을 보였으니 당연한 일이지.”

“정말 놀라운 재능이군.”

하 교위는 쓰러진 포두를 보며 말했다.

아직 일류도 되지 않는 무인이 저런 능력을 발휘하다니.

물론 일반적인 무공은 아니었다. 저렇게 한 번 쓰는 것만으로도 탈진하는 초식은 일반적으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 초식으로 옥면살검을 죽인 건 타고난 무재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무공을 사사받지도 못했을 텐데 이 정도 무공이라면...

“무공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못했을 텐데.”

“이 포두야 독견지명(獨見之明) 아닌가. 그 총명함이라면 이해가 가지. 그런데 좀 사파스럽게 싸우긴 하더군.”

하 교위는 친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전이 열린, 비범한 지혜를 가진 이 포두는 금의위 교위인 본인도 쉬이 예상하기 힘든 능력을 갖고 있었다.

좀 사파스럽게 싸우긴 했지만.

“이 정도 공이라면 장계에 연 포두의 이름을 써서 올려야겠군.”

“장계에?”

이 학사는 뜻밖이라는 듯이 하 교위를 쳐다보았다.

금의위도 조직인 만큼 체면이 있었다. 교위가 해결하면 해결했지 그 옆 이름에 포두 따위가 들어간 걸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용에 한 줄 언급이나 해주면 잘 대접해준 것이었다.

“위에서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건 내가 알 바 아닐세.”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하 교위의 모습에 학사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자네답군. 나도 같이 장계를 써주겠네. 나까지 이름을 넣으면 쉽게 무시하진 못하겠지.”

“고맙군.”

하 교위는 환약을 꺼내서 이 학사에게 내밀었다.

“난 괜찮네만?”

“연 포두를 먹이란 소리였네.”

*   *   *

‘내공이 조금 늘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연우혁은 내공이 늘어난 감각에 의아해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관아 건물들이 보였다. 다행히 제대로 해결이 된 모양이었다.

“이보게.”

“엇, 일어나셨습니까?”

뛰어가던 하인이 연우혁을 보고 놀라워했다.

“지금 밖의 상황이 어떻게 됐지?”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병사들이 몰려와서 다 뒤지고 있습니다. 웬 잡놈들이 턱밑에서 놀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런.”

하인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 관병들이 광산을 샅샅이 뒤져서 은이란 은은 다 끌어낸 뒤 관아도 마저 뒤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혈교 놈들이 남긴 흔적이 있나 조사하는 것이리라.

‘이번 일에 혈교 놈들이 관련되었을 줄이야.’

연우혁은 앉아서 하인이 가져온 죽을 한 술 떴다.

생각해보니 이번 일은 운이 좋았다. 혈교가 관련되었는데도 별다른 부상 없이 쉽게 끝낸 것 아닌가. 자칫하면 혈교의 무리들과 마주칠 수도 있었다.

새로 배운 무공들도 제대로 시험해봤고...

‘옥면살검 놈이 방심한 건 설마 내가 챙긴 혈옥갑 때문인가?’

그 때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놈은 분명 보물이 있던 자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갔다. 애지중지하던 보물을 누가 훔쳐갔는데 당황하지 않을 무인은 없었으니까.

“대협! 감사합니다!”

“!”

연우혁은 죽을 먹다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본 꼬마가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낯이 익어서 누군가 했더니 광산 안에서 본 현령의 아들이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닙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 분께서 그 간악한 마두 무리들을 쓸어버리셨다고요!”

“저보다 두 분께서 더 애쓰셨는데...”

현령의 아들은 연우혁 앞에 앉더니 어떻게 들어왔는지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다.

적당히 대답해주던 연우혁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현령 나으리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아버님께서는...”

꼬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관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의 책임을 진다고 하셨습니다.”

‘저런.’

낭인 무리들이야 전부 다 죽었으니 더 잡을 게 없다지만, 현령은 현령대로 책임을 져야 했다.

관직을 맡은 사람이 사사로운 정 때문에 일을 그르쳤으니 무조건 중형이었다.

‘중형이면 어떻게 죽냐의 차이인데.’

현령의 아들을 보니 체념한 표정이었다. 아직 어린데도 저런 표정을 짓는 건 관리의 자식으로서 제대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약간 안쓰러워진 연우혁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손짓했다.

“...잠깐 이리 와보십시오.”

“예?”

“현령 나으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하는 걸 잘 들으십시오.”

현령의 자식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여가며 포두의 말에 집중했다.

*   *   *

하 교위와 이 학사는 원래 현령이 앉아야 하는 자리에 앉아 관무를 대신 보고 있었다. 옆에는 병사들이 관아를 뒤져서 갖고 나온 서류들이 차곡차곡 쌓인 채였다.

끌려 나온 현령은 산발이 된 머리로 고개를 푹 숙였다.

“현령은 들으시오. 현령은 무도한 무리가 광산을 점령하고 법도를 어지럽히는데도 막지 못했소. 이것이 첫 번째 죄요. 심지어 사사로운 정 때문에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죄요.”

“부끄럽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현령은 포기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중죄를 몇 개나 저질렀으니 이미 죽음은 각오한 뒤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장계에 기지를 발휘해 현 상황을 알린 공이 있고, 만약 무리해서 저항했다가는 인근의 다른 백성들이 참화를 입었을 수도 있었다는 상황을 참작하겠소.”

“...???”

현령은 예상과 다른 말에 귀를 의심했다.

금의위가 벌을 물으면 물었지 이런 상황에서 공을 참작하거나 챙겨주진 않았다. 현령이 금의위 쪽 파벌에 뇌물을 바친 사람도 아니었는데...

“파직에 처하니 관인(官印)을 내려놓고 물러나시오. 추가로 조칙이 내려오기 전까지 자택을 떠나지 마시오.”

“감, 감사합니다!”

현령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중형에 처해야 했다면 아마 현령 정도는 금의위가 즉석에서 처벌까지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금의위의 권위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지 않고 파직에서 끝냈다는 건 아마 보고가 올라가도 파직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현령은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걸어 나왔다.

“아버님!”

“그, 그래.”

관아를 나와 저택으로 돌아간 현령은 달려오는 자식을 보고 황망한 표정으로 반겼다.

하인들은 현령이 무사히 풀려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연신 눈을 깜박였다.

“주, 주인어른.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아주 풀려나신 겁니까?”

“파직에서 끝날 것 같은데... 나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대협의 말이 맞았습니다!”

“?”

아들의 말에 현령은 당황스러워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대협께서 아버님이 세운 공을 교위님께 바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대협이 누구...”

하인이 옆에서 속삭였다.

“그, 광산에 같이 온 포두를 말하는 거 같습니다.”

“포두?! 난 낭인인 줄 알았...”

“낭인 아닙니다!”

현령의 아들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이 충격받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현령은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실수했구나. 목숨을 구해준 은인 앞에서 무슨 무례한 소리를. 병사들의 이야기만 듣고 착각한 것 같다.”

사실 채찍과 독과 암기로 적을 제압한 건 맞았지만 현령은 자기가 뭔가 착각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광산 안이 워낙 혼란스러웠던 만큼 병사들이 낭인과 포두를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포두가... 공을 적어주며 바치라고 했다고?”

“네!”

현령은 믿기 힘들었다.

포두가 그런 영리한 꾀를 생각해낸 게 매우 놀라웠다. 아무리 금의위 교위와 같이 일을 했다고 하지만 저런 꾀는 아무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금의위의 위세가 얼마나 칼날 같던가. 괜히 잘못 수작을 부렸다가는 자기도 휘말릴 수 있는데 아무 상관도 없는 현령을 위해 꾀를 짜내준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대협께서는 아버님이 억울하단 걸 아신 거죠!”

“...!!”

현령은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이런 이유만으로 남을 도와주는 호인이 있단 말인가?

*   *   *

“현령의 아들에게는 자네가 말해줬겠군.”

“죄송합니다.”

연우혁은 놀라지 않았다. 영안으로 본 하 교위가 딱히 분노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할 건 없다. 실제로 거짓말은 없었으니. 궁금한 건 왜 현령의 목숨을 구해줬는지다.”

“음. 죽을 정도의 죄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하 교위는 멈칫했다.

뇌물이나 먼 친척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저런 이유가 나올 줄이야?

“자네는 정말 금의위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절대 교위는 안 시켜줄 거면서 저런 소리를 하는 하 교위의 모습에 연우혁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참. 장계에 자네 이름을 넣었네.”

“감사합니다.”

연우혁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마 한 줄로 ‘포두가 협조했다’정도 들어갔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예 빼버리는 판관 놈도 있었는데 이 정도만 해줘도 감지덕지였다.

탁-

하 교위는 연우혁 앞에 무공서 하나를 던졌다. 그걸 본 연우혁은 의아해했다.

“이게 뭡니까?”

“이번 일에서 세운 공을 내 나름대로 보상하는 거다. 금의위의 무공이지.”

“...!!!”

연우혁은 깜짝 놀라서 무공서의 이름을 읽었다.

-위국권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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