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표국의 사람들 (4)
공 총관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뭘 알아왔다는 건가?”
“예?”
젊은 포두는 갑자기 왜 이러시냐는 듯이 총관을 쳐다보았다.
“개방의 거지들이 어느 관리한테 사주를 받았는지 궁금하셨던 거 아닙니까?”
“그, 그랬지... 그랬는데. 개방 놈들이 대답을 해줬나?”
“예.”
“...?????”
공 총관은 혹시 연우혁이 갖고 있는 신통력 중에 섭혼술이라도 있나 싶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그 꼬장꼬장한 거지 놈들을 설득했단 말인가.
“아,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앉게. 어느 관리가 사주를 한 건가?”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
사실 연우혁도 반신반의하면서 찾아간 거였지만, 한경의 정 분타주는 놀랄 만큼 연우혁을 환영했다.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네. 정말 다행일세. 걱정을 많이 했거든. 독혼수 대협도 걱정 많이 했네.
-하하. 농도 참 잘하십니다! 하하하!
-농, 농담이 아니었네만... 하여간 무슨 일로 왔나?
-그, 다름이 아니라. 좀 죄송스러운 부탁일수도 있습니다. 불편하시면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최근에 방가전장에서...
-야! 방가전장과 관련된 일 다 찾아서 갖고 들어와라!
-...!
분타주는 바로 찾아서 알려줬다.
개방의 거지들한테 사주한 관리는 바로 한경의 금 통판(通判)이었다.
통판은 판관과 비슷한 품계를 갖고 있는 한경의 정관(正官). 판관보다 실권은 떨어져도 품계는 살짝 더 높은 만큼, 나름 신경 써야 할 관리였다.
“아니, 금 통판이?”
“왜 그러십니까?”
“놀랐네. 이런 식으로 사주할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거든.”
모든 관리들이 다 청탁할 게 있다고 개방 거지를 시키지는 않았다. 부탁의 방법은 다양했으니까.
“사실 그 이유도 들어왔습니다.”
“...아니, 개방이 그것도 말해줬나?”
“예.”
공 총관은 진짜 섭혼술을 썼나 고민하며 경청할 준비를 했다.
금 통판이 원하는 부탁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경의 방가전장이 본인이 원하는 표국, 그러니까 창천표국에게 일을 맡겨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일하던 정강표국을 밀어내고 말이다.
“허, 금 통판이 창천표국과 무슨 사이길래?!”
“그것도 물어봤습니다.”
“......”
“창천표국의 총표두가 금 통판의 친족이라는군요.”
“이런.”
공 총관은 바로 이해가 가서 혀를 찼다.
이런 청탁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예외가 있는 법. 자기 친족의 부탁이라면 체면 때문에라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원래 표국끼리 이런 식으로 경쟁해도 되는 겁니까?”
“당연히 안 되네. 표사들이 거친 무림인들이라 해도 마땅한 도리는 있는 법이니. 하지만 정강표국과 창천표국 사이는 조금 예외일세. 왜냐하면...”
“아. 둘 사이에 해묵은 원한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개방이 말해줬나?”
“예.”
공 총관은 앞으로 개방 거지들이 입 무겁다는 말은 조금 회의적으로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강표국의 국주와 창천표국의 국주는 원래 같은 문파에서 수학한 무림인이었는데, 그 때부터 둘은 치열하게 절차탁마했더랬다.
그 다툼은 강호에 출도한 뒤로도 끝나지 않아 계속해서 원한이 사이에 누적되었고...
...심지어 서로 표국을 차린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이미 몇 번 충돌이 있었던 만큼 저 두 표국 사이의 다툼은 도리고 법도고 말할 게 없었던 것이다.
“저렇게 싸우면 이제 누가 옳고 그른지는 의미가 없어지네. 다른 문파들도 나처럼 생각할 테니. 하여간 연 포두. 정말 고맙네. 이렇게까지 잘 해줄 줄은 몰랐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함세.”
“아닙니다. 일이 잘 풀려서 저도 기쁩니다.”
“...혹시 개방 거지들을 무력으로 협박한 건 아니겠지?”
“어르신!”
“농, 농담일세.”
하지만 영안으로 보니 공 총관은 매우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 * *
“포두님께서 돌아오셨다!!”
“?”
구역의 안가에 도착한 연우혁은 사 포쾌가 고함을 지르자 의아해했다.
그러자 포쾌들이 일제히 뛰쳐나오더니 부복했다.
“공을 세우고 돌아오신 걸 경축드립니다!!”
“...당장 들어가지 않으면 처벌하겠다.”
“?!”
포쾌들은 연우혁이 왜 저러나 싶어 어리둥절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지나가던 한경 사람들은 이미 포쾌들의 외침을 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이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잘 됐습니다. 연 포두님!”
“포두님께서 안 보이시길래, 설마 다른 곳에 가신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포두님께서 오래 계셔야...!”
“하하. 하하하.”
안가로 들어가 재빨리 정문을 닫은 연우혁은 포쾌들을 보며 심법을 운기했다. 그러자 수치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대체 방금 소동은 뭐냐?”
“그, 그게 말입니다.”
사 포쾌는 자기가 실수를 했나 싶어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금의위가 포두님의 활약에 엄청나게 만족을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닙니까?”
“그걸 어디서 들었지?”
연우혁은 포쾌들의 말에 더 놀랐다.
개방이나 하오문도 아니고 일개 포쾌들이 저 멀리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지부 어르신께서 서한을 받고 크게 만족하셨다고, 관아에 소문이 돌아서...”
“저희가 뭔가 잘못 안 겁니까?”
‘아니.’
연우혁은 하 교위의 빠른 일처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한경의 지부 어르신한테 서신까지 보내다니.
하긴 부탁을 하고 포두를 데리고 간 것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알려줘야 지부 어르신의 체면도 섰다.
확실히 생각보다 포쾌들도 소문을 잘 주워들었다. 개방이나 하오문보다 그 넓이는 좁아도 몇몇 소문들은 더 빨리 듣는 것 같기도 했다.
“잘못 안 건 아니다. 운이 좋아서 공을 세웠다.”
“경축드...”
“저희가 은조각을 좀 모았습니다! 대접해드리고 싶...”
“그냥 제 객잔으로 오십시오!”
연우혁은 손을 뻗어 지저귀는 포쾌들의 말을 막았다.
“축하는 고맙다. 하지만 놓치고 있는 게 있군.”
“그게 무엇입니까?”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 으스대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관리로서 사는 건 참으로 어렵고 고달픈 일이었다. 그리고 포두로서 사는 건 더더욱 어렵고 고달픈 일이었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공을 세우고 그걸 드러내야 했지만, 동시에 공을 세우고 드러내서는 안 됐다. 다른 관리들의 시기와 질시를 받아서 짓밟힐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지부 어르신이 좋게 봐준 건 의외의 소득이었지만, 괜히 다른 관리들이 견제하기 시작하면 본전도 못 찾았다. 지부 어르신이라는 확실한 줄을 잡는 게 아니라면 으스대서는 안 됐다.
게다가 하 교위는 얼마 전에 판관 한 명을 곤장 치고 가지 않았던가. 그 원한이 불똥처럼 연우혁에게 튈 수도 있었다.
“과, 과연...”
“탄복했습니다. 포두님.”
“축하는 고맙다. 이렇게 받으니 기쁘군. 없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뭐가 있었지?”
연우혁은 밀린 일들이 있으면 빠르게 처리할 요량으로 물었다.
밖에서 일하고 왔다 하더라도 안의 일이 처리 안 되어있으면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게 냉혹한 한경 관리 사회였다.
그 질문에 오 포쾌는 자신이 갖고 온 명주(銘酒)를 슬쩍 다시 행낭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축하로 꺼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좀도둑 놈 하나를 잡았습니다. 생각보다 멍청한 놈이라 금세 따라잡히더군요.”
“잘했다.”
“연 포두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게 무슨 상ㄱ... 아니다. 다른 건?”
“부역(賦役)을 맡은 놈들이 나오지 않아서 확인해봤는데 몇 년은 된 폐가더군요. 보고했더니 저희 잘못이 아닌데 책임을 물으셔서...”
한경에서는 치수나 성곽 보수 같은 일에 백성들을 불러서 부역을 시키곤 했다.
물론 이런 부역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어떤 자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려서 부를 수 없었지만 어떤 자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척 하고 부역을 회피하곤 했다.
이런 이들을 찾아서 데리고 오는 것도 포쾌들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애초에 한경을 떠나버린 건지 그냥 장부를 속이고 다른 곳에 있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곤란했겠군. 어느 곳이지?”
“한경 남쪽으로 십오 리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하왕촌인데 웬 폐가들이 어찌나 많은지...”
“한 번 더 찾아가서 촌장의 집을 뒤져라. 숨겨놓은 호패가 나올 거다. 촌장이 마을 사람들을 부려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다.”
“...????”
포쾌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지만 연우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사건들을 확인했다.
몇 개 안 되게 남아있던 사건들이 순식간에 앉은 자리에서 해결되었다.
주루에서 사라진 장신구는 바깥의 여물통에서 발견되었고(양 포쾌는 기절할 뻔했다), 갑자기 밤에 으스스하게 나타나는 인화(燐火)는 썩은 나무를 치우자 벌레가 붙을 곳이 없어서 사라졌다(막 포쾌는 섣불리 부적을 산 자신을 욕했다).
이 정도면 관리들이 와서 시비를 걸어도 책잡힐 건 없겠다 싶자 손님이 방문했다.
놀랍게도 제갈세가의 무인이었다.
“아니, 대협!”
제갈규를 알아본 연우혁이 반갑게 인사했다. 제갈규는 생각보다 연우혁이 반갑게 인사해서 당황했는지 멋쩍어하다가 인사했다.
“으... 으음. 반갑네.”
“이렇게 뵙게 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그... 그렇군. 그, 팽 형한테 들었는데, 나도 편하게 호형호제해도 좋네.”
“알겠습니다. 형님!”
“그, 그래. 연 아우.”
제갈규는 확실히 넉살이 좋지 못했다. 연우혁을 나름 인정하는 만큼 편하게 대하려고 해도, 그리 친하지 않아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그걸 본 오 포쾌가 재빨리 술을 꺼내려고 하자 연우혁은 손짓했다. 오 포쾌는 재빨리 술을 집어넣고 물러났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음. 별 건 아닌데...”
‘별 거겠군.’
이제까지 ‘별 거 아니다’라고 말한 무림인들 중 정말로 별 거 아니었던 사람은 드물었다. 연우혁은 무림인의 체면을 배려해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사실, 내가 부탁을 받았네.”
“무슨 부탁이십니까?”
“...비무에 참가해달라고.”
“아하.”
보통 무림에서 비무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지만, 제갈세가의 무인한테 참가해달라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당연히 제갈세가 무인한테 ‘비무에 나와라, 네 세가 이름을 걸고 내 명성을 높여보겠다!’식으로 시비를 거는 무인은 없을 테고...
아마 비무에 참가한 쪽 중 하나가 자기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제갈세가의 젊은 고수를 초대한 것이리라.
이런 일은 무림에서 종종 일어났다. 서로 다툼이 일어났다고 대뜸 생사결을 벌이면 그건 사파지 정파가 아닌 것이다.
정파라면 나름 서로의 체면을 존중해가며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그 중 많이 쓰이는 방식이 바로 이런 비무였다.
패자가 승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체면과 실리의 적절한 조화.
물론 이것도 이겨야 유리했다. 괜히 저쪽에서 젊은 고수를 불러온 게 아니었다.
“혹시 상대가 형님보다 강합니까?”
“그건... 그건 아니야. 하지만 자네의 지혜가 필요하네. 도와주겠나?”
“혹시 제가 비무에 참가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이지.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제갈규의 단호한 대답에 연우혁은 안심했다.
비무에 참가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원한을 쌓는 거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조언 몇 마디 하고 빚을 지워놓는 건 수지 맞는 장사였다.
“제가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의 지혜야말로 무림 제일...”
“내 지혜는 연 아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네.”
“!?”
연우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괜히 ‘야 연 포두가 제갈세가보다 머리 좋다더라’ 소문이라도 나면 말 그대로 머리가 잘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듣는 사람은 없었다.
‘이 사람, 왜 이래?’
영안으로 보니 매우 심란해보였다. 하긴 자존심 센 오대세가의 무인이 자기 머리가 부족하다고 인정할 정도면 보통 정신 상태는 아닐 터였다.
“형님. 솔직하게 털어놔주십시오. 저희 둘이 머리를 맞대면 어느 문제든 해결하지 못하겠습니까?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연우혁은 자신이 해결했던 사건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날로 먹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제갈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날 초청한 자들은 상대를 이기고 싶어서 초청한 걸세. 대신 나가달라고 말일세.”
“예. 그렇겠지요?”
“그 상대들도 제법 뛰어난 고수를 초청했네.”
“하지만 아까, 상대가 형님보다 강하진 않으시다고...”
“그랬지.”
제갈규는 마지막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상대는 당문의 당령 소저일세.”
“......”
연우혁은 지부 어르신이 불렀다고 해야 좋을지, 금의위 교위가 불렀다고 해야 좋을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