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49)화 (49/107)

정강표국의 사람들 (6)

“드, 드디어 네 녀석이 귀신을 부려서 옛일을 알아내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냐?”

“...산채에 금덩어리가 있다면 당연히 그걸 보관해놓는 철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도적놈들이 득시글거리는 산채에 그냥 금덩어리를 보관할 리 없잖습니까.”

“아. 그렇겠군.”

사실 연우혁은 자신이 아는 사건인지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었지만 당등은 눈치채지 못했다.

하긴 금덩어리가 있으면 옆에 철궤도 있을 법했다. 아까도 느낀 것이었지만 이 포두의 말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방금 말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말이었는데 이 녀석이 내뱉자 괜히 꿰뚫어 본 기분이 들고...

“다른 놈팽이였다면 그냥 금덩어리를 챙겼을 거다. 사실, 그냥 챙겼다면 이렇게 사이가 꼬이지도 않았겠지. 나였다면 그냥 챙겼을 텐데... 여하튼 이 둘은 금덩어리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외쳤단다.”

-이 금덩어리는 산적 놈들이 주변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해서 만든 것이니, 우리가 갖지 않고 관에 돌려주겠소. 벼슬아치 놈들이 이 금덩어리를 양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지 감시하겠소!

‘와. 정말 아깝군.’

연우혁은 속으로 자신의 일처럼 괴로워했다.

아무리 협행이라고 하지만 그런 금덩어리를 그냥 양보하다니. 역시 협객은 보통 정신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이제 그 뒤에 터졌지. 원래 발견된 금덩이는 총 여섯 개였다. 정강표국 국주 놈이 세 개. 창천표국 국주 놈이 세 개. 이렇게 찾은 거지. 그런데 이걸 찾았을 때 아직 산채 곳곳에서 싸움이 한창이던 때라 둘은 금덩어리를 철궤에 넣고 잠근 다음에 다시 싸우러 갔다고 하더군.”

연우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등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당등은 이 젊은 포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계속해서 설명했다.

산채가 꽤 넓었던 데다가 두 국주가 있던 창고는 이미 산적 놈들을 다 죽인 곳이라, 둘은 안심하고 금덩어리를 철궤에 넣고 싸우러 갔다.

그리고 토벌이 완전히 끝난 뒤 돕기 위해 병사들을 끌고 온 군관 앞에서 철궤를 내밀며 선언했다.

-여기 도적놈들이 훔친 재물을 백성들에게 돌려주겠다! 이 금덩어리를 함부로 훔치거나 멋대로 쓰는 사람이 있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호기로운 선언에 자리에 있던 무림인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함성을 질렀다. 협객으로서 명성이 자자하게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금덩어리 다섯 개를 환전해서 백성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대협!

-뭐? 다섯 개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금덩어리는 여섯 개일 텐데?

-다, 다섯 개였습니다. 어디 앞이라고 감히 거짓을 고한단 말입니까?

“둘 다 각자 세 개씩 넣고 궤를 잠갔는데, 관에 가서 보니까 다섯 개가 된 거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느냐.”

서로 세 개씩을 넣었을 텐데 총 다섯 개가 되자, 두 국주는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강표국의 국주는 뒤늦게 넣은 창천표국의 국주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의심했고, 창천표국의 국주는 정강표국의 국주가 수작을 부린 뒤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의심은 점점 쌓이고 원한으로 변했다. 결국 이렇게 두 표국이 다툼을 하게 됐으니, 따지고 보면 금덩어리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보기에는 누가 수상한 것 같으냐? 난 아무래도 창천표국 국주가 수상하다. 뒤늦게 넣지 않았느냐?”

“의외로 관리들은 의심하지 않으시는군요?”

“그야 관리들은 털 만큼 털었거든.”

당등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 일이 터지고 나서 가장 많은 의심을 받은 건 역시 금덩어리를 맡은 관리들이었다.

군관부터 시작해서 관리들은 온갖 협박을 받고 탈탈 털렸지만, 놀랍게도 금덩어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간덩어리가 커도 그렇지, 이런 일에 낀 금덩어리를 날름 도둑질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맞, 맞습니다. 혹시 몰라서 철궤를 열 때도 다 같이 참석해서 열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관리 놈들 중 한 놈이 훔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창천표국 국주겠지. 자. 네 생각은 어떠냐?”

“아닙니다.”

“아니야!? 잠깐, 그럼 넌 누가 범인인 줄 짐작이 간다는 거냐?”

“예.”

“...!”

당등은 감탄의 눈빛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아직 정답을 듣지 않았지만 이 포두의 추측이 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 들은 것만으로 누가 범인인 줄 알아맞히다니.

“창천표국 국주가 훔쳤다면 그렇게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훔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두 개만 찾았다고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 그렇군. 확실히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면 대체 어느 놈이 훔친 거냐?”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관리도 아니고 국주도 아니라면 그 날 산채에 있던 무림인들 중 하나겠지요.”

“......”

당등은 연우혁의 추리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영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물론 그 자리에 다른 무림인들도 있었지만 가져가는 건 무리다. 그 의심은 이 이야기를 아는 다른 놈들도 해본 의심이란 말이다.”

당등은 왜 산채의 다른 무림인들이 가져갈 수 없었는지를 설명했다.

창고에서 금덩어리와 철궤를 발견한 둘은 혹시라도 살아남은 산적놈들이 몰래 금덩어리를 훔쳐서 도망가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고민 끝에 둘은 무림인다운 방식으로 해결했다.

창고의 빗장을 치고 정문을 단단히 막아버린 것이다.

“마지막에 남은 창천표국 국주는 문에는 빗장을 치고 다락에 난 구멍으로 나왔다고 하더군. 나중에 확인해보니 빗장도 건드린 놈이 없고, 다락의 먼지도 그대로였다고 했으니, 다른 무림인 놈들은 건드릴 수가 없지.”

“문을 잠근다고 못 훔치는 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선문답 같은 소리를... 네가 청허진인이냐?”

당등은 들고 있던 찻잔으로 탁자 위에 있던 철전을 탁 덮어버렸다.

“이렇게 있는 걸 어떻게 훔친다는 거냐?”

“저는 여기 찻잔에 손을 안 대고 철전을 훔칠 수 있습니다만.”

“!!”

당등은 깜짝 놀랐다.

믿기진 않았지만 이 포두의 신통력이라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한 번 해봐라.”

“이미 했습니다.”

“뭐? 정말?”

당등은 찻잔을 들어올렸다. 철전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무슨...”

그제야 연우혁이 철전을 집어서 자기 전낭에 집어넣었다.

“찻잔에는 손 안 댔습니다.”

“......”

당등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자 연우혁은 그만 말을 돌리고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로 대답하면 조금 어색할 것 같아 선문답을 던지며 분위기를 잡았는데, 아무래도 당문 사람들 상대로는 역효과인 것 같았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문을 잠가도 얼마든지 빈틈은 있다는 겁니다. 대협. 예를 들어, 처음에 금덩어리를 철궤에 넣을 때 창고에 다른 무림인들도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래. 주변을 호위하고 보초를 서던 놈들이 몇 명 더 있었다고 들었다.”

“그럼 얼마든지 훔칠 수 있었을 겁니다.”

당등은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마지막에 창천표국 국주가 여섯 개를 확인하고 철궤를 잠갔다. 훔치는 건 무리야.”

“대협. 제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혹시 정강표국 국주가 먼저 세 개를 넣을 때 그걸 대신 받아서 넣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

당등은 눈을 크게 떴다.

놀랍게도 포두가 지적하는 상황에 맞는 놈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있었지. 곽선이란 놈이 철궤 안의 먼지를 치우고 금 덩어리를 넣었다고 했다.”

“그 사람이 금 덩어리를 하나 훔친 겁니다. 견물생심 아닙니까.”

“마지막에 창천표국 국주가 여섯 개를 확인하고 철궤를 잠갔다니까?”

연우혁은 대답 대신 철전 하나를 반으로 쪼갰다.

그걸 본 당등은 벼락이 머리에 내려치는 듯한 깨달음을 받았다.

“그, 그렇구나!”

“복잡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 혼란스러운 자리에서 무슨 복잡한 계략을 펼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곽선이란 사람은 금덩어리가 워낙 울퉁불퉁하고 모양도 제각각이니, 하나를 반으로 쪼개 넣어도 눈치를 못 챌 거라고 생각한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를 소매에 넣고 남은 하나를 쪼개서 세 개를 맞췄겠지요. 창천표국 국주야 자기가 찾은 금덩이도 아니니 그냥 세 개인가보다, 하고 잠갔을 거고요.”

“이... 이런 쳐 죽일 놈... 잠깐, 그러면 관아의 벼슬아치 놈들은 왜 이걸 다섯 개라고 한 거냐?”

“아마 대장장이가 반으로 쪼개진 금덩이를 붙이지 않았겠습니까? 붙이면 딱 들어맞으니, 움직이는 도중에 쪼개졌겠거니 생각했을 겁니다.”

“이 놈들은 그걸 왜 말하지 않은 거냐!”

“아마 무림인들이 찾아와서 윽박지르는 탓에 겁을 먹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들 실수로 쪼갰다는 말을 하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를까 싶었던 거겠죠.”

“이런 빌어먹을...”

당등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두 국주가 그렇게 아웅다웅하던 모든 게 웬 잡놈 하나의 별 생각 없는 도둑질 때문이었다니.

연우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워낙 시일이 지나서 해결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곽선이란 자가 시치미를 떼면 어떡합니까?”

연우혁이 원래 사건을 해결할 때는 정답만 알아내면 끝이었지만, 실제 무림의 사건은 그걸 알아내도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 사건 같은 경우는 상대가 잡아떼면 답이 없는 것이다.

“응?”

“그러니까 곽선이란 자가 증거가 없다고 하면...”

연우혁의 말에 당등은 폭소를 터뜨렸다.

“너는 천 리 밖에서 일어난 일은 해결할 줄 알면서도 십 리 안에서 일어날 일은 모르는구나. 따라와라! 내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려주마.”

***

젊었을 적 강소일권이라는 거창한 별호로 불렸던 곽선은 무관을 차리고 나름 주변에서 존경 받는 유지로 살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무림인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반쯤 금분세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다가 관아와도 엮여 있는 만큼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당등은 그런 곽선을 설득하기 위해 혈도 열한 군데에 침을 꽂고 여섯 가지의 독을 몸구멍에 툭툭 집어넣었다.

“네놈이 금덩어리를 훔친 걸 알고 있다. 인정하겠느냐, 죽겠느냐?”

“그르르륵. 끄으윽. 끄으으윽.”

“인정하겠느냐, 죽겠느냐?”

“저, 당 대협. 죄송하지만 저 분께서는 지금 말을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걱정 마라. 저렇게 보여도 말은 할 수 있으니.”

곽선은 필사적으로 눈을 깜박였다. 누가 봐도 ‘인정하겠다’라는 뜻이 느껴졌다. 당등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봐라! 말하지 않느냐.”

“......”

연우혁은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정말 당문 사람들과는 그만 엮여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 때 갑자기 주변이 추워지더니 곽선의 방에 있던 등불들이 일제히 꺼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가 방 안으로 퍼져나갔다.

“왜 그 자를 괴롭히고 있는가?”

“청허진인 님 오셨습니까?”

당등은 곽선을 바닥에 던지고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 연우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여기 오는 길에 내가 하인을 보냈다. 금 도둑놈을 찾았다고.”

연우혁은 자신이 틀렸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당등에게 감동해야 할지, 기막혀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금 도둑놈이라니?”

“그러니까 들어보십시오. 이 놈이...”

당등은 연우혁이 설명해 준 내막을 일일이 털어놓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곽선은 눈만 데룩데룩 굴리며 기겁했다.

‘대체 어떻게...!?’

아무도 알 수 없는 내밀한 사정을 저렇게 정확히 맞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과연. 그런 거였나.”

“이 놈 때문에 두 국주가 그렇게 싸운 겁니다.”

“그럴 수도. 하지만 그 뒤로 둘이 계속해서 싸운 건 둘의 마음속에 분노와 질시가 있어서일세. 그런 게 없었다면 설령 금덩어리가 사라졌다 하더라도 이해했을 거야.”

“그런 게 없는 놈이 강호 천지에 어디 있답니까? 하여간 두 국주 놈을 화해시켜드렸으니, 이 젊은 놈을 좀 살려주십시오. 재주가 기막힌 놈입니다.”

당등은 대뜸 연우혁의 양 어깨를 붙잡더니 앞으로 떠밀었다.

“이번 일도 사실상 이 녀석이 알아낸 겁니다. 귀신을 부리는 것처럼 신통한 녀석입니다.”

“귀신을 부리는 건 자네 생각처럼 편리한 일이 아닐세.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게 귀신이고, 음과 양이 굽히고 피는 것이 귀신일세.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분리되어 사라지는데 귀신이라고 오래 전 일을 어떻게...”

“...영안도 있습니다.”

“영안이라는 것도 자네 생각처럼 편리한 신통력이 아닐세. 사물을 좀 더 자세히 보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이 젊은 포두가 내막을 맞힐 수 있는 건 자세히 본 걸 기반으로 깊이 생각할 수 있어서일세. 신통력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이라고 봐야 하겠지.”

“그냥 좀 살려주시면 안 됩니까?”

당등이 짜증을 내자 연우혁은 이 얼굴도 모르는 도사에게 호감이 갔다. 어쩌면 강호에서 사천당문을 제압할 수 있는 건 무당일지도 몰랐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