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두 연우혁 (3)
자신보다 아래 배분인 당등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청허진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내가 신선이 아닌데 어떻게 사람을 살릴 수 있겠나? 술법이라는 것은 자네 생각처럼 편리한 일이 아닐세.”
“으윽.”
당등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도가의 진전을 이은 문파는 여럿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무당의 도사들은 가장 그 색이 뚜렷한 이들이었다.
이 도사들은 늙으면 늙을수록 말을 더 복잡하고 알쏭달쏭하게 해대는 습관이 있어 듣는 사람의 복장을 터지게 만들었다.
당등이 생각하기에 혈교나 마교의 무인들이 무당의 도사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이런 점 때문인 것 같았다.
검을 섞기 전에 복장이 터지는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청허진인 님... 약속하셨잖습니까. 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독하게 손을 썼습니다.”
‘와. 진짜 뻔뻔하시군.’
연우혁은 자기편인데도 순간 감탄할 뻔했다.
누가 봐도 즐기면서 손을 썼는데!
“진정하십시오. 당 대협. 전 괜찮습니다.”
연우혁은 일단 당등을 달랬다. 상대가 당등보다 강한데다가 배분까지 높은 이상, 저렇게 나오면 이쪽에서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괜히 힘을 쓰기보다는 공손한 모습이라도 갖추는 게 맞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무당의 도사가 하는 말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 하더라도 믿지 않겠습니다.”
“만약 그런다면 자네가 믿음직한 도사들을 잃는 것뿐이지. 내게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런 개...”
연우혁은 황급히 당등의 소매를 당겼다.
청허진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는 삼시충(三尸蟲)에 대해 아는가?”
“진인께서 틈만 나면 떠드시는데 모르겠습니까?”
“알지만 진정 아는 건 다른 의미일세. 삼시충이란...”
도사의 느긋한 목소리가 설명을 시작하자 당등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귀를 막았다.
삼시충이란 도교에서 나오는 벌레로, 각자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에 머무르며 사람의 욕망을 관장하고 상제에게 죄악을 고해바치는 벌레였다.
그러므로 당등 또한 화를 가라앉히고 악업을 줄이며 선업을 쌓아야 진정한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제발 그만하십시오. 아니, 선업을 쌓아야 무공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대체 무슨 허튼 소리입니까? 그러면 마교의 고수는 어떻게 나오고 혈교의 고수는 어떻게 나온답니까?”
“그래서 지금 마교가 천하를 지배하는가? 혈교가 천하를 지배하는가?”
참다못한 당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청허진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내가 자네에게 약속한 건 저 젊은 포두를 만나보겠다는 거였네. 그리고 사실, 자네가 이 일을 해결해주지 않았어도 만나봤을 걸세. 인연이 닿은 적이 있기 때문이지.”
“그러면 왜 저한테 이런 중재를 맡기신 겁니까?”
“선업을 쌓으면 좋지 않나.”
당등의 입 속에서 빠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나왔다.
“잘 해결했네. 이제 이야기할 수 있게 잠깐 나가주겠나?”
“예. 예. 앞으로 저한테 어떤 부탁도 하지 마십시오!”
당등이 쓰러진 곽선을 데리고 나가자 갑자기 안이 조용해졌다. 청허진인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처럼 남아있었다.
“인연이 닿은 적이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겠군.”
“아. 예.”
“담풍호를 말하는 걸세. 그는 한 때 무당의 제자였지.”
“!”
삼절객의 이름이 나오자 연우혁은 깜짝 놀랐다.
하긴 생각해보니 삼절객은 술법을 쓸 줄도 모르면서 술법이나 영기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보통 출신은 아니라는 게 짐작이 갔다.
“처음 들었습니다. 그게 왜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자네는 천 리 밖의 일은 해결할 줄 알면서 당연한 걸 묻는군그래. 본인이 알리고 싶지 않아하고, 무당도 알리고 싶지 않아하니 그렇겠지?”
‘음. 당등 대협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군.’
연우혁은 빠르게 당등이 그리워졌다. 그냥 이야기하기 싫다고 하면 되지 뭘 저렇게 짜증나게 말한단 말인가.
“미안한 말이지만 담풍호가 해결해주지 못했던 것처럼 나 또한 상단전이 열린 걸 해결해 줄 방법은 없네.”
“으음.”
연우혁은 침음성을 흘렸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 들어서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청허진인 정도 되는 도사가 저런 식으로 말할 줄이야.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 무공의 경지를 올려서 조화를 맞추는 걸세. 자네는 초절정의 경지가 어떤 경지인지 아는가?”
“아직 일류라고 칭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경지를 알겠습니까?”
“초절정의 경지는 상단전을 여는 경지일세.”
“!”
일류의 경지까지는 하단전에 내공을 쌓아 무공을 익히고, 절정의 경지부터는 중단전에 내공을 쌓아 육체를 뜻에 걸맞게 바꿔나가며, 마지막으로는 상단전을 두드려 초절정의 경지에 도전한다.
“혹시 술법 중에 이기어검과 비슷한 술법을 본 적이 있나?”
“아. 있습니다.”
연우혁은 학사가 쏘아 보내던 검을 떠올렸다. 청허진인은 잘 됐다는 듯이 설명했다.
“이해가 쉽겠군.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 술법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어검을 쓸 줄 아는 건 상단전을 열었기 때문일세. 즉, 바꿔 말하자면 하단전과 중단전이 그 정도로 받쳐줘야...”
“...상단전을 열고도 몸이 버틸 수 있다는 거군요. 제가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글쎄. 쉽지는 않겠지. 작금 무림에 그런 고수는 다섯도 되지 않을 테니.”
“......”
“그런 알 수 없는 일을 이야기하는 건 그만두세나. 내가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한 건 담풍호와 인연이 있어서 뿐만이 아니니. 자네는 상단전이 열린 사람이 왜 금세 죽는지 아는가?”
“음, 상단전이 열린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에는 선천진기까지 낭비해서 기력이 쇠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맞네. 정확히 보았군.”
나름 신통력을 계속 써왔던 만큼 연우혁도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었다.
신통력을 잘못 쓰면 순식간에 생기가 빨려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자네가 아직 생생한 것은 자네가 신통력을 매우 잘 통제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기가 충만하기 때문일세.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벌써 피골이 상접했을 걸세.”
영안은 신통력 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이고 기운의 소모가 적은 능력이었다.
그리고 연우혁은 영기가 매우 충만한 자질을 갖고 있었다. 무림의 신맥이나 지체와 같은 극히 드문 자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덕분에 연우혁은 상단전이 열린 사람치고는 매우 무사히 버티고 있었던 거였다.
“놀, 놀랐습니다. 저는 제게 쌓인 영기 때문에 상단전이 열리고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연우혁은 놀랐다. 솔직히 영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왜 이렇게 무식하게 많이 쌓아놨나’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세. 영기가 충만할수록 온갖 신통력이 생기고, 이런 신통력은 통제가 어려워지니 말일세. 다른 신통력들이 모두 영안처럼 온순하게 주인의 말을 듣는 건 아니네.”
“......”
상단전이 열렸는데 영기가 적으면 순식간에 고갈되어서 죽는다.
상단전이 열렸는데 영기가 많으면 버티다가 죽는다.
기본적으로 상단전이 열린 이상 빠르냐 늦냐의 차이지 험난한 삶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네가 시간을 벌고 싶다면 이런 신통력들이 멋대로 찾아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다스려야 하네. 그리고 그걸 가르쳐주고 싶어서 이렇게 부른 거기도 하고.”
“...!”
청허진인의 말에 연우혁은 놀랐다.
설마 싶었는데 정말로 가르쳐줄 줄이야.
“하지만 지금 가르쳐주시려고 하는 건 무당의 비전 아닙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제가 배워도 되는 겁니까? 훗날 무당의 다른 분들께서 알면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이런 걸 익히는 사람이 자네 말고 또 있겠나. 상관없네.”
‘상관있는 것 같은데...’
연우혁은 뭘 배우든 간에 무당 도사 앞에서는 최대한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자네는 가장 어려운 첫 단계를 해냈다고 볼 수 있네.”
“예? 어떤 걸 말씀하시는...”
“선업을 쌓아 영기를 정순하게 만드는 것!”
청허진인이 지금 가르쳐주는 현청벽사신공(玄靑辟邪神功)은 사실 신공이란 이름이 붙은 것치고는 그리 인기 있는 심법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 심법은 내공을 쌓는 심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단전이 열린 사람에게 신통력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였다. 신기가 있는 사람이 강제로 귀신을 보듯, 상단전이 열린 사람은 강제로 신통력을 쓰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강한 의지와 선한 영기를 갖고 있다면 스스로 신통력을 밀어내며 술법으로 승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그게 바로 현청벽사신공이었다. 온몸의 기운을 외부의 삿된 침입이 없도록 굳건하게 갖추는 심법. 그리고 이 심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선업으로 쌓은 영기가 필요했다.
“자네는 포두로 일하면서도 한 점 악업도 쌓지 않았네. 언제나 백성들을 아끼며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줬지. 그 행동이 이런 결과로 나타난 걸세.”
“감, 감사합니다.”
연우혁은 자신이 했던 온갖 사파스러운 짓들은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문제를 해결해서 얻은 영기들이라 저런 평가를 받는 모양이었다.
“무당의 도사들도 자네처럼 선업을 쌓지 못하네. 분명 어렸을 때부터 진심 어린 선업을 쌓아왔겠지...”
청허진인의 목소리에서는 존중이 느껴졌다. 연우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범인들은 세상의 도(道)가 무슨 의미냐고 말하지만 어떤가? 자네가 선업을 쌓지 않았다면 이 심법을 어떻게 익힐 수 있었겠는가?”
“실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흥에 겨운 청허진인은 선업과 악업, 내단과 수행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무림에서 존중 받을 의인을 만난 게 기뻤던 것이다.
연우혁이 현청벽사신공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건 한 시진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
그로부터 삼일 후.
당등은 곽선의 저택에서 청허진인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가셨나?”
“예.”
“잘 꺼졌군. 빌어먹을 늙은이. 뭘 배우긴 했나?”
“완전히 해결은 하지 못하더라도 목숨을 늘릴 방법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말에 당등의 이마에 잡힌 주름이 풀렸다.
“흥. 다행이군. 자꾸 요설만 내뱉었으면 용서하지 않았을 거다.”
‘면전에서는 딱히 별 짓 못하시지 않았나?’
“호풍환우하는 건 배웠느냐?”
“사실 술법으로 바람과 비를 불러오는 건...”
당등은 연우혁 앞에 암기를 던졌다. 연우혁은 재빨리 본론만 대답했다.
“심법과 함께 술법도 배웠습니다.”
무림의 무공이 내공을 익히면서 외공도 같이 익히듯, 영기를 다스리는 것도 단순히 심법으로 끝나지 않고 술법도 필요한 법이었다. 힘을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힘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나중에 한 번 보마. 따라와라. 갈 곳이 있으니까.”
연우혁은 눈치를 보며 당등의 뒤를 쫓았다.
사실 삼일 동안 청허진인과 함께 무공을 수련한 만큼 바깥 일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포쾌들이 찾아오지 않은 걸 보니 별 일 없긴 했겠지만 그래도 포두 자리란 게 중간관리직인 만큼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무당의 심법은 난해하기로 이름이 높다. 이번에 한 번 배운 것으로 될 것 같으냐?”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하! 패기가 좋구나. 나중에 무릎 꿇고 무당의 도사를 소개해달라고 하지나 말거라.”
당등의 말에 연우혁은 살짝 머쓱해졌다.
현청벽사신공은 첫날에 이미 다 깨우치고 그 다음 날부터는 술법 연습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분위기가 좀 그랬던 것이다.
“아마 난해하다고 소문이 난 건 무당의 심법이란 게 도가의 향기가 짙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은 반쯤 진심이었다.
연우혁이 다른 무당의 무공을 보진 못했지만, 무당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당등 같은 마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짐작 가능했다.
자기 자신의 삿된 기운을 털어내고 자신 안의 우주(宇宙)와 하나 되겠다는 도사들의 사고방식은 평범한 범인이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연우혁도 운 좋게 쌓은 영기가 선해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입문부터 십 년은 걸릴 뻔했다.
“악취가 짙겠지 무슨. 문 열어라!”
목적지에 도착한 당등이 정문 앞에서 고함을 지르자, 문지기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연우혁이 본 한경의 저택들 중 손꼽힐 만큼 화려하고 부유한 저택이 있었다. 깜짝 놀란 연우혁이 물었다.
“여긴 어딥니까?”
“네 상관 집도 모르느냐? 금 통판 놈 집이다.”
연우혁은 금세 누군지 떠올렸다. 이번에 창천표국의 사주를 맡았던 한경의 관리 중 하나였다.
‘아. 그 개방한테 부탁했던...’
죄인을 가두고 처벌하는 판관보다 세수를 걷는 통판이 더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저택을 보니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그냥 기본적으로 한경의 고관들은 매우 부유했다.
‘이 자식들은 대체 얼마나 챙기는 거지?’
연우혁이 경악해하는 사이 당등은 익숙한 듯 걸어서 금 통판이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그리고는 연우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금 통판. 저 녀석이 바로 그 녀석이오. 통판의 체면을 위해 국주를 도와준 놈이지.”
“...??”
그랬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