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판관요괴저택 (7)
“네, 네 놈이...?”
기서 하씨세가의 무인들을 이끌고 온 하등명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마부를 쳐다보았다.
평소 그렇게 충성스럽던 놈이 옥벽을 훔친 범인이었다니.
그보다 더 믿기 힘든 건 갑자기 포두만 보고서 죄를 자백했다는 점이었다. 다른 문파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마부 놈을 보며 물었다.
“어이, 마부 놈아. 네놈이 훔치고 우리한테 뒤집어씌운 건 나중에 추궁한다 치고. 왜 갑자기 옥벽을 꺼낸 거냐? 겁을 먹었으면 진작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걸 누가 모른다더냐? 왜 갑자기 불었는지 말하라니까.”
“말해라.”
하등명은 검을 뽑아서 마부 앞에 찍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 중 가장 분노하고 있는 건 믿던 자에게 배신당한 하등명이었다.
충성스럽고 행동거지가 싹싹해서 입의 혀처럼 생각했더니 감히 도둑질을 하다니.
마부는 엎드린 채 벌벌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그러니 말입니다, 저, 저 포두님을 보는 순간 다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미쳤나봅니다. 이 물건만 있으면 팔자를 고치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마부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적원방에서 나온 우두머리, 철두산군(鐵頭山君) 마자추는 분노보다는 호기심이 들어 계속 캐물었다.
“포두 놈이 왜?”
“저, 저 포두님께서는 눈길만 던져도 죄 지은 사람을 찾아냅니다. 백 리 밖에 있는 범인도 말만 들어도 맞히는 분이십니다.”
“...?”
“???”
자리에 있던 무림인들은 의아해했다.
세 문파 모두 한경 밖에서 온 만큼 최근 소문이 자자한 포두에 대한 이야기에는 어두웠다. 게다가 문파에서 나름 대접 받는 무인들인 만큼 포두에 대한 이야기에 더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런 소문들은 하인이나 짐꾼, 마부들한테 가장 빨리 퍼지기 마련인 것이다.
“포두가 그럴 수가 있나?”
“사실입니다. 이 연 포두님께서는 한경의 으뜸가는 명포두십니다! 제 조모께서 잃어버리신 불상도...”
연우혁을 안내해주던 하인이 발끈해서 외쳤다. 여기 저택의 하인까지 저렇게 나오자 자리에 있던 무림인들은 더더욱 신기해했다.
적원방의 마자추는 연우혁을 보며 물었다.
“이봐. 포두. 저 마부 놈이 옥벽을 훔친 걸 알고 있었나?”
“예.”
연우혁은 입맛이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이제 여기서 모른다고 해봤자 이득을 볼 게 없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허세일 겁니다. 우리도 못 찾았잖습니까.”
“조용히 해라. 어떻게?”
마자추의 질문에 연우혁은 역으로 물었다.
“대협께서는 왜 옥벽을 못 찾으셨습니까?”
“그야... 진검보 놈들이 급하게 돌려봤는지, 한 놈은 누구한테 줬다는데 막상 그 놈한테 물어보니 다른 놈한테 줬다고 하고... 그러니까 저 놈들이 잃어버려놓고 시치미를 뗀다고 생각했지.”
“적원방의 무인들은 옥벽을 주고 받은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그렇지.”
“아닐 겁니다.”
“어, 어떻게 알았지?”
마자추는 놀랐다.
적원방의 무인들도, 진검보의 무인들도 옥벽을 주고 받은 순서를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대협께서 철전 하나 빌려주십시오.”
“여기 있다.”
연우혁은 마자추에게 철전을 받은 다음 하등명한테 걸어갔다. 그리고는 공손히 손을 내밀어 물건을 바쳤다.
“이러면 철전이 어디 갔습니까?”
“하등명한테 갔겠지.”
“아닙니다. 제 손에 있습니다.”
연우혁은 방금 받은 철전을 흔들었다. 하등명한테 준 건 그냥 아무것도 안 든 쌈지였다.
“다른 걸 준 거냐?”
“예.”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내 철전이나 돌려줘라.”
“실은 이게 마부가 꾸민 속임수입니다.”
“!”
세 문파의 무인들은 홀린 듯이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옥벽을 주고받은 사람들만 기억하다보니 옮긴 사람은 의심하기 쉽지 않지요. 보십시오. 여기 마부가 하 대협에게 옥벽을 받아서 마 대협에게 가져다주겠다고 합니다. 하 대협은 옥벽이 마 대협한테 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마부는 그저 마 대협에게 적당한 핑계를 대며 아무 물건이나 바쳤을 겁니다.”
연우혁은 철전을 마자추한테 주는 척을 하며 숨겼다.
“여기서 바로 숨기면 쉽게 들통납니다. 마부는 옥벽을 마 대협이 아니라 단 대협한테 바칩니다. 단 대협이 보고 나면 마 대협한테 바치겠다고 들고 나갑니다. 그러면 이제 단 대협은 하 대협한테서 자신한테, 자신한테서 마 대협한테 옥벽이 갔다고 기억하게 됩니다.”
마자추는 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골똘히 몰두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마부는 마 대협에게 하 대협이 갖다 줬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마 대협이 다 보면 단 대협한테 갖다주겠다고 말하며 들고 나갔겠지요. 그러면 이제 마 대협은 하 대협한테서 자신한테, 자신한테서 단 대협한테 옥벽이 갔다고 기억하게 됩니다.”
“설마 그 옥벽은 단종혁이 아니라 다른 무인한테 주나?!”
“그렇습니다. 또 이제 다른 무인한테 주면서 다 보고 나면 마 대협에게 전해야 한다고 하고... 이런 식으로 몇 번 거듭하게 되면 서로의 기억은 다 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저택에 초청받은 지 오래 되지 않아 어수선하고 서로가 머무르는 방도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으니 더 쉬웠겠지요.”
“기막힌 수법이다, 기막힌 수법이야!”
마자추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쳤다.
아까 분노한 것도 잊어버릴 만큼 마부의 수법이 대담하고 교묘했던 것이다.
무인들이 뒤에서 옥벽을 전해주는지 지켜보는데 그걸 대담하게 주는 시늉만 하고 거짓말을 하다니.
“하씨세가의 이름으로 사과드리겠소.”
“당연히 사과해야지!”
적원방의 마자추도, 진검보의 단종혁도 못마땅하다는 듯이 하씨세가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자기 사람 하나 관리하지 못하고 이 소란을 만들었으니 좋게 반응해줄 수가 없었다.
하등명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됐다. 고개 들어라.”
“!?”
마자추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하자 주변에 있던 무림인들은 깜짝 놀랐다.
분명 성질이 괄괄하고 난폭한 마자추가 가장 앞서서 보상을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던 것이다.
“왜, 누구의 목이라도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냐? 착각이다. 여기 문객으로 온 것도 있고, 하씨세가의 이름이 있는데 괜히 핍박해서 좋을 것도 없지. 앞으로 계속 강호에서 맞닥뜨리게 될 텐데 말이야.”
“마, 마 대협...”
“그리고 포두의 재주를 보니까 끓던 화도 풀리는군. 마부 놈이 이런 짓을 했을 줄 누가 알았겠냐? 무림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일은 처음 본다. 앞으로 십 년은 술자리에서 이야기가 부족하진 않겠군그래.”
마자추의 말에 부하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본 단종혁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하씨세가와의 관계도 있는 만큼 그리 크게 충돌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 대협이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 또한 오늘 일을 잊도록 하겠소.”
“하등명, 오늘 우리한테 빚 하나씩 진 거다.”
“그렇게 따지면 저 포두한테 가장 크게 졌겠군.”
“하하! 그 말도 맞다.”
팽팽하게 살기를 드러내던 무림인들은 기세를 죽이고 서로 화해했다.
결국 이 문제를 좋게 해결해준 건 포두의 재주라는 걸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재주 하나로 세 문파의 다툼을 해결했으니, 실로 명포두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뭘 하기에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오!”
맹 판관이 절뚝거리며 나왔다. 곤장을 맞은 게 다 낫지 않았음에도 나올 만큼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판관 어르신.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다 해결되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시... 아니, 저 놈이 왜!”
“판관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연우혁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물론 속마음은 달랐다.
‘젠장. 최악이군.’
소란은 못 만들고 판관과는 마주치고. 오늘 운수가 매우 사나웠다.
“네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판관 어르신. 녹을 받는 사람으로서 일이 생겼는데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어르신. 연 포두 덕분에 좋게 해결됐습니다.”
하등명은 둘의 관계를 모르는 만큼 연우혁을 변호해줬다.
물론 안 그래도 연우혁을 질시하는 맹 판관 성격에는 불에 기름을 붓는 일이었다.
“감히 포두 새끼가 허락도 없이 내 저택에 발을 디뎌? 목숨이 무섭지 않은 것이냐? 내 말 한 마디면 네놈은 포두 자리에서 쫓겨나갈 수 있다!”
‘파직된 놈이 뭐라는 거야.’
연우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애절하게 외쳤다.
“판관 어르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닥쳐라! 지금 당장...”
“아니, 이보시오!”
마자추가 분노한 얼굴로 으르렁댔다. 그 기세에 맹 판관이 겁에 질려서 한 걸음 물러났다. 당문의 미친 무인이 기억에 떠올랐던 것이다.
“아무리 판관 어른의 집이라지만 우리 적원방의 체면을 무시하는 거요? 지금 분명 이 포두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줬다고 했잖소. 이리 핍박하는 건 무슨 뜻이오?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거요?”
“...!”
연우혁을 들볶던 판관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놀랍게도 적원방은 물론이고 진검보의 무인들까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판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포두 새끼는 귀신이라도 부리는지 죽지도 않고 잡놈들을 홀리고 있구나!’
대체 그 짧은 사이에 문객으로 부른 무림인 놈들을 어떻게 홀린 건지 믿기지가 않았다. 맹 판관은 이를 악물었다.
판관의 권세와 이름으로 초대한 놈들이긴 했지만, 저 정도 되는 문파들은 하인처럼 부릴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체면을 세워주고 존중을 해줘야 했다.
게다가 아직 못 잡아 죽인 살수 놈들도 있지 않은가.
“...미안하게 됐소. 저 포두 놈이 주제를 모르고 건방진 놈이라 화를 냈군. 썩 꺼져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판관은 마지막으로 연우혁에게 화를 내더니 휘적휘적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무림인들은 일제히 불만을 터뜨렸다.
“저런 무례한 자 같으니. 하여간 관리란 놈들은 모두 다 똑같습니다.”
“대체 뭘 했길래 저러나?”
연우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옆에 있는 저택의 하인이 종달새처럼 지저귀었다.
“어르신께서는 포두님의 명성을 질투하십니다! 정말 너무한 분이십니다. 포두님께서는 충성을 다해 어르신을 섬기시는데!”
하인은 연우혁이 목숨을 걸고 당문의 미친 무인한테서 판관을 구한 일부터 시작해서 충성을 바친 일들을 재잘댔다.
“아...”
“알겠군.”
그러자 자리에 있던 무림인들은 일제히 연우혁을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미친 당문 무인한테서 상관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더 묻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무능한 상관과 충성스럽고 유능한 부하의 일이 꼭 관에만 있지는 않는 것이다.
“뭐라 해줄 말이 없네그려.”
“아닙니다. 자네는 왜 판관 어르신을 헐뜯나? 입조심하게!”
연우혁은 가식을 떨었다. 그 모습에 무림인들은 더더욱 안타까워했다.
저런 청년이 웬 돼지 새끼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니.
“그럼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협들을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래. 연 포두. 자네의 무운을 빌지.”
저택을 떠나는 포두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마자추는 아까 빌려준 철전을 못 돌려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헉...!”
“왜 그러냐?”
“아, 아까 저 포두가 문제를 해결하면 할아비라고 부르겠다고 했었는데...”
부하의 말에 마자추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네 할아버지는 앞으로 저 포두다.”
“대... 대주님! 살려주십시오!”
* * *
‘젠장.’
칭송을 받으면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연우혁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오늘 목표로 한 건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심지어 판관하고 마주치기까지 했다. 연우혁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걸 알았으니 뭔 짓을 할지 몰랐다.
“...???”
연우혁은 적조와 부하가 기다리고 있던 장소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둘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기에 연우혁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갔다.
‘들어갔나? 아니, 소란이 없었으니 들어갈 수는 없었을 테고. 도망쳤나? 도망칠 이유가 없을 텐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고민하던 연우혁에게 정답은 다음 날 아침에 찾아왔다.
“포두님!! 포두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아니, 큰일이 아니라 경사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달려온 사 포쾌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눈빛과 목소리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판관 어르신께서 어젯밤에 급사(急死)하셨답니다!!!”
“...?!”
‘언제 들어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