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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63)화 (63/107)

청강은 흐른다 (1)

그 후로 보름 정도는 별 일 없었다. 오 포쾌가 자신의 술을 어떤 잡놈이 훔쳐갔는지 찾아달라고 하소연한 것 말고는 대부분 사소한 일들이었다.

굳이 하나를 뽑자면 취옥산장에서 일어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밀실에서 벌어진 도난 사건이 조금 커다란 일이긴 했지만 연우혁은 가지도 않고 바로 범인을 찾았다. 산장에서 오 년 넘게 머무르고 있는 앉은뱅이 고수가 바로 범인이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나고 나자 연우혁에게 관졸 한 명이 찾아왔다.

“연 포두님. 지부 어르신께서 포두님을 부르셨습니다.”

“!”

연우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경의 관리들 중 지부 어른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지부, 그것도 한경의 지부쯤 되면 이 드넓은 도시의 수많은 대소사를 관리하고 관료들을 감독하며 멋대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막말로 위의 조정에서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나 마찬가지인 위치.

당연히 관직에 관심이 많은 연우혁에게는 절대적으로 잘 보여야 하는 상대였다. 지부 어른이 어떻게 장계를 올리느냐에 따라 연우혁이 제대로 된 관직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됐다.

‘이렇게 빨리?’

연우혁도 언젠가 지부 어른이 연우혁을 한 번쯤 부르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었다.

물론 일개 포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미친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연우혁이 세운 공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당장 지부 어른도 연우혁이 해결한 걸 듣고 흡족해했다고 했으니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었다.

“왜 그러십니까?”

“지부 어르신께서 날 불렀다.”

“이, 이런!”

연우혁이 왜 당황하나 궁금해하던 오 포쾌는 기겁해서 안색을 바꾸었다. 옆에 있던 적 포쾌가 물었다.

“지부 어르신이 부르시는 게 뭐가 잘못된 겁니까? 혹시 벌을 주려고 부르시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거였으면 이렇게 부르지도 않았겠지. 지부 어르신께서 아랫사람을 부를 때 아랫사람으로서는 마땅한 도리를 다해야 한다.”

오 포쾌의 말에 적 포쾌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포쾌의 일이란 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살수로서의 경력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게 뭡니까?”

“은자 말이다. 은자.”

“......”

적조는 어이가 없어서 오 포쾌를 한 대 칠까 싶었다. 그러나 오 포쾌는 진지했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제대로 된 성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지부 어르신께서 화를 내실지도 모르는데...”

오 포쾌는 매우 진지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떤 놈인지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어서도 물론 있겠지만, 그 아랫사람이 바치는 성의로 어떤 놈인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위아래도 없는 무례한 놈인지 아니면 기본적인 성질머리가 되는 놈인지?

“아니, 지부 어른이 재산만 놓고 보면 여기 연 포두님보다 훨씬 많을 텐데요? 근데도 은자를 내놓으라고 한단 말입니까?”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 재산을 어떻게 모았겠나? 한 놈 빼주고 두 놈 빼줬으면 지부 어른은 나보다도 거지였을 거다!”

“다들 진정해라.”

오 포쾌가 펄펄 뛰자 연우혁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이제 와서 없는 은자를 만들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긁어모을 수 있는 건 전부 다 무공이나 영약에 쏟아 붓고 평소 축재도 하지 않았으니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지부 어르신께서도 아마 내가 포두로 일한지 그리 길지 않고 공사에 바빴다는 걸 이해해주실 거다.”

“아니... 포두님. 모든 관리들이 다 포두님 같지는 않습니다.”

오 포쾌는 걱정되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적 포쾌도 슬슬 분위기를 느꼈는지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목숨을 걸고 도우러 가겠습니다.”

“...?”

밑도 끝도 없이 광오한 말에, 오 포쾌는 적 포쾌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새로 들어온 포쾌가 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관아가 네놈 안방이냐? 뭔 목숨을 걸고 들어가?’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 아니다. 그보다 순찰은 저기 사 포쾌하고 같이 도는 게 어떠냐?”

“오 포쾌님께서 같이 도신다고 하셨잖습니까?”

“갑자기 배가 아파서! 어이쿠. 저기 사 포쾌 온다!”

***

“이쪽으로!”

한경의 치소(治所)는 지부 어르신과 여러 정관들이 공사를 처리하는 관아(官衙)이자 동시에 그 위엄과 권세를 드러내는 곳이었다.

특히 지부 어르신이 머무는 정당(正堂)은 특히 더했는데, 한경의 여러 부유한 유력자들이 새로 부임한 지부를 위해 은과 금을 아낌없이 바친 덕분에 어지간한 번루보다 훨씬 위엄 있고 화려했다.

여기까지 올 일은 별로 없었던 연우혁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놈의 건물이...? 주루 차려도 되겠군.’

하오문한테 주면 기녀들 데려다가 한경의 은자를 싹 긁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문으로 들어가 다음 대문, 다다음 대문, 다다다음 대문을 지난 뒤 계단을 올라가 이층으로 간 뒤 다시 한 번 작은 문들을 여럿 돌파하고 그 다음에...

“생각보다 빨리 왔군.”

“지부 어르신을 뵙습니다!!”

연우혁은 커다란 외방 안의 상석에 자리 잡고 있는, 덩치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벼슬아치를 목격하자마자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느긋하게 반쯤 누운 것마냥 의자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나...?”

“만난 적은 없습니다만, 한경에 이렇게 비범한 풍채를 가진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들어오자마자 지부 어르신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하, 하하! 과연! 요즘 한경 제일의 명포두라고 불리는 게 헛소문은 아니었어! 이렇게 영특하다니!”

연우혁의 아첨에 자리에 있던 다른 관리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기껏해야 거리를 뛰어다닐 줄만 아는 거친 포두 놈이 이렇게 한 번에 지부 어른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첨을 하다니.

“내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 아는가?”

“가르침을 주십시오!”

“최근 한경에 불행한 일들이 많았네. 금의위에서 나온 교위는 사소한 오해로 맹 판관을 가혹하게 처벌했지. 아! 물론 금의위 교위가 잘못했다는 건 아닐세. 다만 좀 억울한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맹 판관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울화병으로 죽었겠는가?”

“지부 어르신. 감히 한 말씀을 올리자면, 맹 판관이 재물을 속이려고 요괴가 나타났다고 한경의 풍문을 어지럽힌 건 백 번 죽어도 모자랄 죄입니다.”

“알아. 알아. 물론 그랬겠지. 하지만 정말로 요괴를 봤을 수도 있지 않나.”

“맹 판관은 냉철하고 이치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요괴를 봤겠습니까?”

“나 원 참. 이 사람들, 무슨 말을 못하겠군.”

지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짧은 대화에서 연우혁은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한경의 관리들은 서로를 별로 안 좋아했다.

물론 맹 판관이 여러모로 적을 만드는 사람이긴 했지만, 지금 관리들이 일제히 물어뜯는 건 좀 더 실용적인 목적에서였다.

지부라는 일인자 앞에서 남을 짓밟아야 자신이 올라가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실은 지부의 성격이었다. 무골호인이란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서(당문의 모 무인이 말했었다) 궁금했었는데 확실히 성격이 부드럽고 원만한 편이었다.

“죄송합니다. 지부 어르신.”

“됐네. 됐어. 그래도 맹 판관은 죽어도 덜 억울했을 걸세. 여기 이렇게 충성스러운 부하가 한경의 일을 처리했으니. 맹 판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여기 연 포두는 대성통곡을 했다는군. 이런 부하가 또 어딨겠나?”

방금까지 맹 판관 욕을 하던 관리들이 아까보다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서로 경쟁하는 관리라면 모를까, 부려먹기 쉬운 포두가 저렇게 충성스러운 건 매우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연우혁은 자신이 관리들에게 점수를 땄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맞습니다. 어르신. 여기 연 포두는 맹 판관의 죽음을 듣자마자 저택으로 달려갔답니다. 한경의 다른 포두 놈들은 좀 본받아야 합니다.”

연우혁과 미리 친분을 다져둔 금 통판이 눈짓하며 말했다. 연우혁은 속으로 이런 인맥을 만들어 준 당등에게 깊이 감사했다.

‘당 대협. 감사합니다!’

“칭찬만 할 순 없지. 포두는 인색하면 안 돼. 인색한 사람이 포두를 하면 포쾌들이 여럿 도망치지. 자네는 이런 자리에 오면서 선물도 하나 갖고 오지 않았나?”

“!”

각오했던 화살이 날아오자 연우혁은 긴장했다. 바로 영안을 열고 상대부터 확인했다.

적대심이나 증오심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건 은자에 대한 탐욕과 받지 못한 못마땅함 정도.

그리고 상대의 신분은...

“궁 판관. 왜 그러나. 연 포두가 포두 자리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은자를 모았겠나? 연 포두. 신경 쓰지 말게. 사실 오늘 이렇게 부른 것도 요즘 소문이 자자한 포두의 얼굴도 보고 궁 판관도 소개해 주려고 부른 거야. 아무래도 맹 판관이 없는 만큼 한동안 궁 판관이 서쪽도 담당하게 될 테니까.”

한경처럼 넓은 곳은 판관 한 명이 모든 형사를 담당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맹 판관은 한경의 서쪽을, 궁 판관은 동쪽을 주로 맡아서 담당해왔었지만 맹 판관이 파직되고 죽은 이상 새 판관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궁 판관이 다 맡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마땅한 성의와 도리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르신.”

“아. 왜 그러나. 자네도 분명 연 포두가 뛰어나다고, 탐이 난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재주가 뛰어난 포두지요. 하지만 성의와 도리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마땅히 이런 자리에 오면서 바칠 건 바쳐야 한다, 이 말입니다.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서 법도를 안 지켜서야 되겠습니까?”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연우혁은 궁 판관의 집요한 탐욕에 경악했다. 심지어 다른 관료들도 질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한경의 관료들 중 청백리는 없다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은자에 미친 사람이 있었다. 그게 바로 궁 판관이었다.

보다 못한 금 통판이 도와주려고 나섰다.

“여기 연 포두도 정신이 없었겠지. 곧 기회가 되면 바칠 걸세.”

“맞습니다. 판관 어른. 제가 아직 서툴러 재물을 모을 줄 모릅니다.”

“하. 그 재주를 갖고 대체 어디에 쓰는 건가? 앉아보게.”

궁 판관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젊은 포두를 노려보며 탁탁 의자를 쳤다.

이렇게 많은 사건들을 문제 없이 해결했으면서도 재산 하나 모으지 못했다니. 우도할계(牛刀割鷄)도 정도가 있었다.

“그만, 그만! 오늘 그런 이야기 하려고 부른 게 아닐세.”

“죄송합니다. 어르신.”

궁 판관은 사과하면서도 연우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은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배워라, 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라리 맹 판관이 좀 더 나았을지도...’

맹 판관은 그냥 죽이면 됐는데 이 놈은 대체 뭐하는 놈인지 아찔할 지경이었다.

***

“아버지, 절 받으십시오!”

“아들아. 고맙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참도록 해라.”

잠깐 안뜰로 나온 사이 금 통판과 마주한 연우혁은 절부터 하려고 했다. 금 통판은 볼살을 푸르르 떨어대며 웃었다.

“지부 어르신께서 널 아주 좋게 본 모양이다.”

“궁 판관께서는...?”

“그 놈은 미친놈이다! 나도 청백리는 아니지만 그 놈은 대체 왜 안 잡혀가는지 모르겠다. 그 놈이 판관이 아니었으면 바로 파직당했을 거다.”

금 통판도 궁 판관의 집요함에는 질린 모양이었다.

지부 어른이 말리려고 해도 계속 돈, 돈 거리는 배짱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 놈이 은자가 필요할 때는 꽤 요긴한 놈이긴 하다만...”

“......”

연우혁은 궁 판관이 왜 파직당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금 통판은 자기가 한 말이 객쩍었는지 변명했다.

“많이 빌리진 않았다.”

“많이 빌리셨더라도 아버지께서 필요하신 거라면 어느 누가 모욕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제가 이 주먹으로 때려죽이겠습니다!”

“우하하하! 그래, 그래!”

둘이 신나게 떠드는 사이 하인이 달려와서 말했다.

“지부 어르신께서 누각선으로 출발하신답니다.”

“아. 그래. 그래. 따라가마.”

“배 말입니까? 지부 어르신께서 어디 가시기라도...”

“아니다. 아니야. 그냥 여흥이지.”

언제나 누각이나 주루에서 술을 마시다보면 색다른 위치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지기 마련.

그런 배에 기름 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저런 누각선이었다. 커다란 배 위에서 자리를 잡고 마시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는 것이다.

저 멀리서 강을 따라오는 거대한 누각선을 본 연우혁은 멈칫했다.

“저거 군선... 아닙니까?”

“군선을 지부 어르신께서 빌려서 개조하신 거지. 참 풍류가 있으시다니까.”

“그래도 됩니까?”

“안 되지만 알 게 뭐냐? 지부 어르신께서 하시겠다는데.”

“......”

연우혁은 이 사람들한테 아첨하다가 나중에 찾아온 금의위 교위한테 다 같이 죽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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