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64)화 (64/107)

청강은 흐른다 (2)

“자, 타러 가세!”

“지부 대인께서는 참으로 풍류를 아신다니까.”

“암. 한경에서 제일가는 풍류가시지!”

그러나 연우혁의 고민과 별개로 관인들은 신이 나서 누각선 위에 올라갔다.

어떠한 의문이나 고민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모습이었다.

“왜 그러나?”

금 통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 포두가 아까부터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런 멋진 배에 올라가서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우하하하! 그래, 그래! 사실 네가 일만 할 줄 아는 꽉 막힌 청백리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풍류도 즐길 줄 아는구나!”

‘풍류가 아니라 횡령이잖아...’

연우혁은 이를 꽉 물지 않기 위해 애써야했다.

***

솔직히 누각선은 멋지긴 했다. 연우혁은 목선 위에 오층으로 된 화려한 누각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

기술적인 난이도를 떠나서 발상 자체가 정말 노는 데에 미친놈이 아니라면 하기 쉬운 생각이 아니었다.

낮은 층에서는 비교적 지위가 낮은 관리들이, 높은 층에서는 지부 어르신과 그의 심복 정관들이.

원래 연우혁은 낮은 층은커녕 노잡이도 하기 힘든 위치였지만 이번에는 운 좋게 가장 높은 층에서 지부 어르신과 같이 대작할 수 있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무림인 놈들이 한경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꼴을 절대 볼 수 없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판관 어르신.”

그리고 하필이면 연우혁 옆에 앉은 건 궁 판관이었다. 궁 판관의 으르렁거리는 말에 연우혁은 일단 맞장구부터 쳤다.

“무림인 놈들은 칼이 있으면 칼을 믿고 가문이 있으면 가문을 믿어 돈을 바치지 않는다. 한 어르신께서는 훌륭한 분이지만 이런 놈들에게 너무 관대하지. 나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알겠나?”

“...예... 판관 어르신.”

배가 흔들려서 그러는지 눈앞의 미친 판관 때문인지 이상하게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궁 판관은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경의 법도는 지켜야 하는 법이야!”

“판관께서 대쪽 같은 건 누구나 알지. 하하. 저번에 당문의 무인이 결국 찾아와서 은자를 바친 건 우리 한경 관리들의 자랑이었네.”

“...?!”

그냥 대충 듣던 연우혁은 멈칫했다. 이건 정말로 신기했던 것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연우혁이었지만 이건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장 도사께서 오십니다!”

“?”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신분을 듣자 연우혁은 의아해했다. 궁 판관을 포함한 몇몇 관리들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누구십니까?”

“지부 대인께서 총애하는 도사지.”

한 마디로 물었는데 관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 도사를 헐뜯으며 욕하기 시작했다.

강호에서 고명한 도사나 승려는 언제나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존재였다.

수많은 부잣집 주인과 명문가의 안주인들이 고명한 도사와 승려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그 정도 되는 도사와 승려는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무당이나 소림에 찾아가 ‘내가 시주하겠으니 장문인께서 내 미래를 점쳐주시오’나 ‘내가 시주하겠으니 방장께서 덕담 좀 해주시오’하고 건방지게 지껄였다가는 무당산이나 숭산 어딘가에 묻힐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건 고관대작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실의 어른들도 때가 되면 찾아와서 공손하게 진언을 듣고 가는 곳에 자기 권세 믿고 행패를 부렸다가는 구족이 같이 사이좋게 죽을 수도 있었으니...

그런 부족한 수요를 노리고 열심히 활동하는 게 바로 강호의 떠돌이 도사들이었다.

그 중에는 아주 드물게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도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이비거나 좌도방문의 술법만을 조금 할 줄 아는 정도였다.

장 도사도 그런 부류에 들어갔다.

어느 날 홀연히 한경에 나타나서 지부 어르신의 저택을 기웃거리더니, 은근슬쩍 총애를 사고 있는 도사 놈.

다른 관리들이 싫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느 누가 상관이 이상한 도사 놈한테 홀리는 걸 좋아하겠는가.

“이해가 갑니다. 지부 어르신께서 이상한 도술에 홀리기라도 하면...”

“뭐?”

궁 판관은 연우혁의 말에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거 말고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도사 놈이 건방지니까! 목에 아주 힘을 꼿꼿하게 주고 다니지. 우릴 아랫사람처럼 보면서 말이야.”

“혹시 윗사람에게 마땅한 예의도 바치지 않았답니까?”

연우혁은 설마 싶었다. 그러나 관리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분개했다.

“역시 연 포두군. 바로 그런 놈일세.”

“......”

어이가 없었지만, 연우혁은 아까보다는 덜 충격 받았다. 하긴 아까보다는 좀 더 이해되는 이야기였다.

무림인들도 다른 세가 구역에서 활동하면 양해를 구하고 대가를 치르는데, 장 도사란 사람은 지부 어르신의 총애만 믿고 관리들한테 일절 친절을 베풀지 않는 모양이었다.

‘겁이 없군. 나였으면 절반 정도는 돌려줬다.’

객실의 문이 열리더니 장 도사가 들어왔다. 표정에는 현기(玄機)가 엿보이고 복색은 예스럽기 그지없었다. 몇몇 하인들은 이미 장 도사에게 깊이 빠져있는지 깊숙이 인사했다.

“도우께서는 강녕하셨습니까?”

“예, 예! 도사님!”

“도우께서는...”

장 도사는 관리들은 내버려두고 하인들을 하나씩 붙잡고 이런저런 말을 해주었다.

“도우께서 얼굴이 붉으신 건 화기(火氣)가 얼굴로 올라오셔서 그런 겁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이 부적이 찬 기운을 도와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도사는 잘 몰라도 진짜 사이비 같군.’

연우혁은 경악했다.

연우혁이 아는 도사가 기껏해봤자 청허진인 정도였지만 눈앞의 도사가 진짜 도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부적에 별 영기가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영 수상쩍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점잖은 척 해도 영안으로 본 마음 속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수상쩍은 요소들과 달리, 눈앞의 도사에게는 영기와 내공이 느껴졌다. 심법으로 내공을 쌓아 술법을 부리는 도사의 특징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이 속인 게 아니었군!’

도사가 탐욕스러웠지만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니.

하긴 모든 도사들이 다 청허진인처럼 득도한 것 같은 인물들은 아니었다. 괜히 무림에서 ‘요술’이라고 따로 부르며 술사라고 하겠는가. 도술의 특성상 까딱하면 타락하기 좋았다.

“지부 대인을 뵙습니다.”

“장 도사! 어서 오게, 어서 와!”

지부 어르신이 도사를 환영하며 떠들기 시작하자 관리들은 도사를 죽여버리거나 자기 귀를 막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흉흉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장 도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첨을 끝내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훌륭한 주연(酒宴)에 초대받은 만큼, 저도 지부 대인께 무언가를 보여드려야겠지요.”

장 도사가 손짓하자 도사의 시동 둘이 들어왔다. 각자 붉은 색, 푸른 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시동들은 자리를 돌아다니며 관리들에게 부적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연우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신통력이지.”

궁 판관은 이를 갈며 말했다.

저 장 도사란 놈은 꼭 이런 연회 자리에 초대받으면 자기 신통력을 보여주겠다고 온갖 잡귀를 불러댔는데, 그게 지부 대인한테는 매우 잘 통했다.

‘신통력은 아닌데?’

영안으로 상황을 보고 있던 연우혁은 다시 물었다.

“판관 어르신.”

“왜 자꾸 부르냐?”

“만약 제가 이 신통력을 막고 저 도사를 망신 준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너는 내 아들이다!”

“......”

오른팔이나 심복, 혹은 믿음직한 부하 정도를 예상했지만 훨씬 더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연우혁은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장 도사님!”

“?”

도사는 처음 보는 놈이 갑자기 자신을 부르며 일어나자 ‘저 놈은 뭐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진정 감탄했습니다!”

“도우께서 무엇을 말하시는지...?”

“도사님의 신통력 말입니다! 자. 보십시오!”

연우혁은 관리한테 나눠준 부적을 하나 뺏고 허공에 흔들었다. 백린을 발라놓은 부적이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흔들면 타오르는 부적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연우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도사의 시동을 붙잡았다. 푸른 옷을 입은 시동의 소매 속에는 산 채로 꿈틀대는 새가 한 마리 들어있었다.

“사방에서 불이 피어오르면 여기서 이렇게 새가 날아오르는 겁니다!”

“그, 그런 거였구나!”

금 통판이 무릎을 쳤다.

매번 갑자기 도깨비불이 피어오르면 살아있는 동물들이 하나씩 튀어나와서 변신하던데, 알고 보니 시동 놈한테 숨겨놓은 거였다.

갑자기 웬 미친 놈이 시작도 하기 전에 속임수를 다 까발려버리자 장 도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여기 새도! 쥐도! 정말 대단합니다! 감탄했습니다!”

“도, 도우께서 지금...”

“이거 보십시오. 이 비단을 흔들면 이렇게 색이 바뀝니다.”

영안으로 무장한 연우혁에게 장 도사가 준비한 가짜 신통력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핫핫핫핫핫핫!”

“진짜 신통력은 바로 연 포두일세그려!”

“더 해보게, 더!”

심지어 지부 어르신도 연우혁이 하나하나 다 까발리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뭔가, 장 도사! 이게 무슨 신통력인가! 어린애 속임수 아닌가! 심지어 연 포두한테 다 들켰구만!”

“죄, 죄송합니다. 지부 대인. 이건 사실 진짜 신통력이 아니라 일종의 여흥...”

“됐네. 됐어! 이 사람아. 들켰다고 그렇게 변명하다니. 신통력은 여기 이 연 포두가 진짜로군. 그만 떠들고 앉게!”

망신을 당한 장 도사는 연우혁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연우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사. 나도 먹고 살아야 한다.’

장 도사의 패인은 타협 불가능하게 챙겨먹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만약 유연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든지 연우혁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

술자리는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연우혁은 취기가 올라오는 걸 느끼며 난간에 섰다. 찬 저녁 바람이 정신을 일깨웠다.

장 도사가 비참하게 구석에 앉아 있는 동안 관리들은 연우혁에게 술을 부어주며 이제까지 장 도사가 보여줬던 신통력들을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었다. 연우혁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해치워댔다.

“이보시오!”

“?”

연우혁은 고개를 돌렸다. 망신당한 도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으시오?”

“도사께서 무슨 말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아오?”

‘별 거 없어 보이는데?’

지부 어르신 말고는 없는 사람인데, 방금 그 지부 어르신도 장 도사에게 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연우혁을 해코지하려고 해도 하기 힘들 것이다.

“누가 있으십니까?”

“흥. 말해봤자 뭐하겠소.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낫겠지. 여기입니다. 대인!”

장 도사가 외치자 갑자기 배 선두에서 한 사람이 날듯이 올라왔다. 연우혁은 깜짝 놀랐다.

“그쪽은 동창을 건드린 거요. 대인! 이 연 포두란 놈이 자기 재주만 믿고 제 일을 망쳤습니다!”

“일을 망쳤다고?”

“예!”

동창.

금의위와 같이 언급되는, 품계와 상관없이 관리들에게 두려움을 사는 조직의 이름이었다.

환관들로 이뤄진 이들은 강호를 암약하며 온갖 정보를 긁어모아 황제에게 바쳤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그 권세는 가히 날아가는 새를 손가락만으로도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동창의 무인은 그 악명과는 달리 평범했다. 허름한 평복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구.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 하나였다.

“일을 망칠 수가 있나? 그 속임수를 쓰면서 실수라도 했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그런 실수를 하겠습니까! 저 포두란 놈이 다 까발렸단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까발리지? 알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 그건 저 놈이 이상한 재주가 있나 봅니다. 다른 관리들이 그러더라고요.”

동창 무인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네가 한경의 연 포두냐? 금의위를 도와 기남의 일을 해결한?”

“...맞습니다.”

“!”

동창 무인은 가면 너머로도 놀라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렇게 재주 있는 놈이 여기 탈 줄 알았으면 네게 부탁할 거 그랬구나.”

“대인. 저 놈이 제 일을 망쳤다니까요? 일개 포두 놈이...”

“닥쳐라.”

동창 무인은 장 도사를 날려버렸다. 장 도사는 목선 밖으로 날아가 강 깊숙한 곳에 처박혔다. 생사에는 별 관심도 없는지 동창 무인은 연우혁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알겠군. 알겠어. 왜 일개 포두가 총애 받는 도사한테 시비를 걸었을까 했는데, 내가 뒤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나? 동창은 아니라도 누군가 뒤에서 도사를 조종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도발한 거로군! 그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재주가 뛰어나. 정말로 뛰어나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연우혁은 겸손의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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