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65)화 (65/107)

청강은 흐른다 (3)

“그런데 저 하찮은 도사 놈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차렸지?”

동창에서 나온 무인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저 장 도사는 원래 동창의 번자가 아니라, 한경의 지부를 현혹하던 놈을 동창 무인이 발견하고 협박해서 포섭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어지간해서는 저 도사 놈 뒤에 누군가 있다는 짐작을 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한경의 관리들은 장 도사 뒤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연우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은 이미 적당한 핑계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동창 앞에서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금의위보다 더 악랄하고 집요한 자들 아닌가.

동창 무인이 칭찬을 해줬으면 ‘맞습니다’라고 해야지 ‘사실 아닙니다’라고 했다가는 방금 강 속으로 가라앉은 장 도사 꼴이 나는 것이다.

“누각선에 찾아온 것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각선에?”

“예. 오늘은 한경의 관리들이 주연을 벌이는 날입니다. 장 도사가 지부 어르신의 총애를 받는다지만 그 또한 눈치가 있고 교활한 자. 누각선까지 찾아와서 신통력을 보여주면 한경의 관리들이 원한을 깊게 품을 겁니다. 그런 위험을 굳이 무릅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

가면을 쓴 동창 무인은 젊은 포두의 식견에 감탄했다.

금의위 놈들이 외부인, 그것도 한낱 포두를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길래 대체 어느 정도인가 했는데 소문이 헛소문이 아닌 모양이었다.

동창의 당두들 중에서도 저렇게 지혜로운 자는 없었다.

“훌륭하구나!”

“부족한 재주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내가 장 도사를 왜 부리고 있었는지는 짐작가나?”

“...이 누각선 때문입니까?”

연우혁은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군선을 개조한 뒤 청강 위에서 연회를 벌이고 있었으니, 연우혁의 상식으로 이건 거열형 감이었다.

그러나 동창 무인은 연우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각선이라니?”

“군선을 멋대로 개조했으니...”

“아아! 그 소리였구나.”

뒤늦게 말뜻을 이해한 동창 무인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은으로 된 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웃음소리였다.

“그런 사소한 죄 때문에 이러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농이 제법이군.”

‘사소한가?’

연우혁은 동창 무인의 사고방식에 살짝 당황했다.

군선을 몰래 갖고 와서 연회에 쓸 누각선으로 개조하는 게 사소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러면 한경의 관리들 중 누군가 탐학질이 과해서 조정에 보고가 올라갔습니까?”

“그만. 아무리 좋은 농이라 하더라도 한 번이면 족하구나.”

동창 무인은 그만하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동창이 관심을 가지려면 역모나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는 되어야 했다. 혹은 환관들이 아주 크게 이득을 볼 수 있거나.

한경의 관리들이 군선을 훔쳐서 누각선으로 만들던 팔아서 은자로 바꾸던, 조정에 바쳐야 할 세수를 몰래 빼돌리던 그건 동창이 알 바 아닌...

“아니. 마지막은 좀 심했군. 마지막은 잊도록 하거라.”

“......”

“여하튼 요지는 이해했겠지. 포두?”

“예.”

동창 무인은 연우혁이 떨떠름해하는 걸 느꼈는지 웃음을 터뜨리며 설명했다.

“충성스럽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렇구나. 마음 같아서는 저기 들어가서 지부부터 나졸까지 모조리 붙잡아 국문하고 싶겠지?”

“예? 아닙니다.”

연우혁은 황당했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동창 놈들 날로 먹는구나’정도의 평범한 감상이었는데...

“하지만 여기 지부를 붙잡아서 처형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 다음에 앉을 놈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군선을 개조해서 주연을 벌일 텐데. 다음 놈도, 그 다음 놈도.”

“이해했습니다.”

“그래. 이 누각선에서 사직을 신경 쓰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다. 포두. 하지만 그게 어디겠느냐? 둘이라도 있는 게 사직의 홍복이지.”

“?”

연우혁은 순간 ‘왜 둘이지?’하고 멈칫했다가 뒤늦게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아닌데.’

“여하튼 포두. 도사 놈이 사라졌으니 내 일을 도와줘야겠구나.”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동창을 돕게 되다니, 대대손손 영광일 겁니다.”

“아첨까지? 포두. 난 아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연우혁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대답했다. 원래 진짜 아첨꾼은 한 번 들켜도 당당하게 초식을 출수하는 법이었다.

“아첨이라니, 저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동창 무인은 깔깔 웃었다.

“알겠다. 그러면 그런 걸로 하자꾸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혈교 때문이다. 혈교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혈교 무리들도 널 알고 있을 테니.”

“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혈교 무리가 절 알고 있다는 게 뭡니까?!”

연우혁은 진심으로 놀랐다.

설마 그 광산에서 혈옥갑(血玉鉀)을 훔친 게 들킨 것일까?

“저번에 광산에서 교위를 도왔지 않나. 장계가 올라갔으니 포두 네 이름도 알고 있겠지.”

“교위면 모를까 한낱 포두인 저를 말입니까?”

“장계 내용을 못 봤나보구나?”

장계 내용이 어땠는지 묻고 싶었지만 동창 무인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최근 한경 관리들 중에 혈교도가 있다는 신빙성 높은 첩보를 받았다.”

“장 도사...”

“그 놈은 그냥 요술을 조금 부릴 줄 아는 사이비 도사지 혈교도는 아니다. 꽤 지위가 높은 관리일 텐데, 어느 놈인지 확인하려고 이렇게 배에 올라온 거다.”

“!”

한경의 정관 중 혈교도가 있다는 말은 확실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당장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게 혈교도였으니까.

차라리 이해타산에 맞춰 움직이는 탐관오리들이 나았지 혈교도는 예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떻게 관리 중에 혈교도가?”

“지부도 도사를 좋아하는데 관리라고 혈교도를 좋아하지 말란 법은 없겠지?”

‘하긴 맞는 말이군.’

아까 본 장 도사의 모습은 판관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도사로 전직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들 정도였다. 가짜인 게 들키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점만 빼면 도사가 어지간한 관리보다 권세가 더 높을 것 같았다.

비슷한 과정으로 혈교가 관리를 꼬드겼다면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혈교도를 찾는 겁니까?”

연우혁은 의아해졌다.

혈교도만큼 자기 신분을 숨기는데 철저한 이들도 없었다. 장 도사는 기껏해야 요술 한두개 쓸 줄 아는 삼류 도사였는데 어떻게 혈교도를 찾는단 말인가.

“도사에게 산약(散藥, 가루로 된 약)을 줬다. 관리들이 신통력으로 정신이 빠진 사이에 술에 탈 수 있도록.”

“놀랍습니다! 동창에서 만든 겁니까?”

놀라운 일이었다.

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혈교도를 잡아낼 수 있다니. 연우혁은 내공에 반응하는 고(蠱) 같은 건가 싶었다.

“동창에서? 동창에서 만들었다고 할 수는 있겠구나.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약은 아닌데.”

동창 무인은 종이로 싸인 산약을 꺼냈다. 연우혁은 영안으로 그 약을 확인했다.

약은 놀랍게도 독약이었다.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시면 쓰러지거나 앓을 정도는 됐다.

“...이, 이거 독 아닙니까?”

“약재에도 능한가보구나! 맞아. 독이다.”

“???”

연우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독을 술에 타는 게 어떻게 혈교도를 찾아낼 수 있는 겁니까?”

“혈교도가 마시면 자신이 들켰다고 생각해서 다른 반응을 보이겠지.”

“그럼 다른 관리들은 어떻게 독을 처리합니까?”

“앓은 다음에 의원을 찾아가면 되겠지.”

‘미친놈이었군.’

동창의 계획을 이해한 연우혁은 경악했다.

그러니까 관리들한테 모두 독을 먹여서 반응하는 놈은 혈교도고 아닌 놈은 어쩔 수 없다니.

이게 말인지 아닌지 구분이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걸 타기에는 힘들어졌지. 고민이 되는구나.”

“꼭 독을 먹이지 않으셔도 반응이라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혈교도가 놀랄 법한 소란만 일으켜주십시오.”

“소란으로?”

동창 무인은 그게 되나 싶었다.

수많은 관리들이 취해서 지껄이는 와중에 소란 하나로 반응을 잡아낼 수 있단 말인가?

독으로도 안 될 가능성이 있는데...

“예. 절 믿어주십시오.”

“그래, 한 번 재주를 보자꾸나! 혈교도가 놀랄 법한 습격이면 될까?”

“충분합니다. 동창 무인이 왔다거나...”

“좋다. 좋아.”

동창 무인은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연우혁은 문득 상대의 경지가 궁금해서 영안을 열어 집중했다.

만약 혈교도가 무공을 익혔거나 무공을 익힌 동료를 데리고 있을 경우, 연우혁 혼자서 다 상대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여기 이렇게 혼자 왔으니 분명 무공의 고수일 터. 어느 정도의 수준일...

“?”

놀랍게도 안개라도 두른 것처럼 속마음이나 무공을 읽을 수가 없었다. 연우혁은 그 안개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깨달았다.

‘저 구슬은...?’

쌍룡신주(雙龍神珠). 동창 무인이 품속에 갖고 있는 보물이었다. 같은 보물 주제에 어떤 보물인지 곧바로 실토한 혈옥갑과 달리, 쌍룡신주는 이름을 제외한 어떤 사실도 연우혁에게 알려주지 않으려 했다.

주인을 신통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보물이라니.

‘아무리 동창이 부유하다 하더라도 일개 환관이 갖고 있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위가 높거나 뒷배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연우혁은 조금 더 허리를 깊게 굽히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지?”

“대인의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두(檔頭)다. 하지만 주 공공이라고 부르도록.”

‘당두였구나!’

“예. 주 공공!”

생각보다 높은 지위에 연우혁은 방금 했던 생각대로 허리를 깊게 굽혔다. 주 공공은 뛰어난 포두에게 받는 인사가 썩 괜찮았는지 흡족해했다.

***

“금의위다!!! 금의위다!!!”

주 공공은 번자들을 시켜 금의위가 온 것마냥 나룻배 위에서 소리치게 만들었다.

과연 효과는 썩 괜찮았다. 방금까지 술을 마시던 관리들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객실 안에서 뛰쳐나왔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관모를 거꾸로 뒤집어 쓴 자들도 보였다.

“금의위가 왔다! 금의위가 왔다!”

“탐관오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나룻배 위에서 목청 좋게 떠들던 번자들은 관리들이 충격에서 벗어나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자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관리들은 웬 잡놈들한테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강물 아래로 욕설을 토해냈다.

“감히 어느 놈들이 금의위를 사칭해!”

“잡히면 목을 칠 줄 알아라!”

“하여간 금의위 놈들은!”

주 공공은 금의위를 욕하는 관리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게 참으로 한심한 놈들이었다.

‘너무 빨리 끝나버렸군.’

소란이 생각보다 빠르게 잦아들자 주 공공은 입술을 깨물었다.

안 그래도 관리들이 많고 혼란스러운데 이렇게 빨리 끝나면 혈교도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일각 정도 지나 포두가 뱃머리로 다가오자, 주 공공은 크게 기대하지 않으며 물었다.

“찾았나?”

“예. 동지(同知) 어른이 혈교도 같습니다만.”

“?!”

주 공공은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생각보다 높은 지위에 놀랐고, 다른 한 번은 정말로 이런 상황에서 혈교도로 의심되는 사람을 찾아온 포두에게 놀랐다.

“그 말이 사실이렷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좋아! 그러면 동지 놈을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구나.”

동창은 혈교도라 하더라도 곧바로 잡을 생각이 없었다.

동지가 왜 혈교에 빠져들었고, 혈교는 또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확인한 다음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동지 놈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지켜보도록 해라. 그럴 수 있겠느냐?”

“동지 어른께서는 누각선이 멈추고 강가에 자리 잡으면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관리를 죽이고 자신과 손을 잡은 혈교도로 바꿔칠 생각이십니다. 이걸 대비하기 위해서는 하류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배를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 배는 어부들이 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혈교도들이 타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또, 다음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

주 공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히 진상을 미리 예측하는 포두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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