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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101화 (101/107)

백성의 믿음직스러운 친구 동창 (7)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귀창괴걸은 호흡을 되돌리며 온몸의 세맥에 내기를 불어넣었다. 방금까지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었던 만큼 전신의 근골이 뻣뻣하게 굳고 내공의 순환이 느려진 것이다.

“귀창괴걸 봉홍. 네놈의 악행은 말하기도 지치는군. 대가를 치러라!”

“하. 사파 놈들끼리 죽였는데 별 참견을 다 하는군!”

봉홍은 한손으로는 장법을 펼치며 다른 한손으로는 단창을 꺼내들어 휘둘렀다. 무전대변(無前大變)이란 초식이었다.

이미 귀창괴걸의 난해한 창법에 대해 알고 있었던 장등원은 맞서 상대하는 대신 보법을 펼쳐 거리를 벌렸다.

“합(合)!”

외침과 함께 종남의 무인들이 모이며 검진을 펼쳤다. 귀창괴걸은 장법을 날리며 검진이 완성되기 전에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종남의 무인들이 한 발 빨랐다.

이를 뿌득 갈며 봉홍은 욕설을 내뱉었다.

“정파 놈들이 비겁한 짓은 더 잘 하는구나!”

“당신 같은 마두와 무엇하러 일대일로 겨뤄주겠소?”

순간 봉홍은 교활하게 눈빛을 빛내며 외쳤다.

사파의 마두는 언제나 한 수가 있는 법이었다.

“혈랑마도야, 뭐하냐! 도와라!”

외침과 함께 우지끈 대들보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위에서 혈랑마도 사관현이 튀어나왔다.

여기 있는 마두들이 다 시체 사이에 숨었다지만, 유일하게 혈랑마도는 위에 있는 비좁은 공간에 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고집에 마두들은 욕설을 내뱉었지만 이게 지금은 기사회생의 한 수가 되었다.

한 번 발동된 진법은 밖에서 흔들어야지 안에서 흔들면 안 되는 것이다.

혈랑마도는 살기 넘치는 함성을 지르며 도(刀)를 뽑아들었다. 절정 직전의 경지인 만큼 도신에서 미세하게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일어난 마두의 기습에 장등원은 짧은 순간 갈등했다.

진법을 풀고 맞서야 하는가, 아니면 진법을 유지한 채 싸워야 하는가?

다행히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푹!

혈랑마도의 목에 비도 한 자루가 꽂히더니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그 모습에 연우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쪽에서 꼼지락대던 놈을 굳이 잡지 않고 모르는 척 기다렸었는데, 덕분에 크게 이득을 본 것이다.

저 정도 되는 고수 상대로 일합에 처리하다니.

상대가 안일하게 방심해서 덤벼들지 않았다면 훨씬 걸렸을 터였다.

‘그보다... 내공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진 것 아닌가?’

내공이란 것은 단전에 많이 쌓는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쌓은 내공을 전신 세맥에 뻗어서 초식을 유려하게 펼치지 않으면 내공이 많아도 화중지병(畵中之餠)이었다.

그런 점에서 내공이 혼탁하거나 잡스러운 기운이 많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혈도를 타고 흐르는 내공의 움직임이 더디고 느린 것이다.

특히 연우혁 같은 경우에는 영안이 있어서 자신의 상태를 꽤 예리하게 관조하는 게 가능했다. 분명 평소보다 내공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진 것 같았다.

‘설마 범망공의 힘인가!’

짐작가는 건 저번에 받아 온 범망공밖에 없었다. 그래도 받아 온 만큼 하해불택신공으로 쌓은 내공을 범망공으로 운용해 본 것이다.

그렇게 내공이 혼탁하지 않아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멀쩡한 내공이라 하더라도 그 순도를 더욱 높일수록 위력은 올라간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심법이다. 왜 냉수사가 찾아 헤맸는지 알 것 같기도...’

“이... 이 놈...!”

귀창괴걸은 핏발 선 눈으로 연우혁을 노려보았다.

무인보다는 관인(官人) 같아 보이길래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내버려뒀었는데 저 놈이 혈랑마도를 일격에 격살한 것이다.

“네놈이 감히...!”

“고맙소, 진충비도!”

장등원은 검을 내질렀다. 귀창괴걸은 그 초식에 만만찮게 곤란함을 느꼈다.

귀창괴걸 본인의 초식도 난해했지만 청불검 놈의 검초도 마찬가지로 난해했다. 몇몇 문파들은 종남의 무공이 불가와 도가가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고 비웃었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더 지독하고 숨이 막혔다.

황량취몽(黃粱炊夢)에서 범성불이(凡聖不二)로 이어지는 검초라니. 게다가 놈의 뒤에는 검진을 이루고 기세를 불어넣는 다른 종남 무인들이 있었다.

“합!”

고함과 함께 검진이 다시 한 번 칼날 같은 기세를 만들어내자 귀창괴걸은 손아귀가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방금 청불검의 검에는 검진의 기세가 실려 있었다.

“...잠깐!”

“수작 부리지 마시오. 귀창괴걸. 이름이 아깝소.”

장등원은 냉정하게 살기를 쏘아 보냈다. 그걸 본 연우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구파일방의 무림인들은 실로 가차 없군.’

오대세가 무림인들은 직계면 모를까 어느 정도 좀 세속적인 면모가 느껴지는데, 구파일방의 무림인들은 상대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문파 내에서 정종무공을 수련했기에 가능한 집중력이었다.

“이번 일의 전모를 알고 싶지 않느냐!”

귀창괴걸은 크게 외쳤다. 이대로 검진과 맞서 싸우면 크게 다칠 게 뻔했기에 외치는 것이었다.

믿는 구석도 있었다.

놈들은 홍목대사와 관련되어서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홍목대사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을 잘 해줬고 덕분에 사찰로 찾아오는 관리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종남파 입장에서는 홍목대사가 대체 뭐하던 놈이고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번 일의 전모?”

“그렇다. 여기서 내가 죽으면 너희 놈들은 홍목대사의 비밀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장등원은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부탁의 눈빛이었다.

그 뜻을 이해한 연우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 마두들이 도망치다 지쳐서 적당한 놈을 골라 홍목대사로 위장한 것 아닌가? 그 세가 커지니 근처 사파 문파들에게도 협력하라고 요구했겠지. 여기 황수장의 무인들을 죽인 건 홍목대사가 너희 말을 듣지 않고 따로 독립하려고 해서겠고.”

“...!”

“화산파가 한 짓으로 위장하려고 했지만 금의위 무인들이 오는 걸 보고 부하 놈들이 도망친 거 아니냐? 뭘 대단한 비밀인 것마냥 그러는지 모르겠군.”

귀창괴걸은 아까 귀식대법을 한 자신을 찾아냈을 때보다 더 경악했다.

저 놈은 대체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안단 말인가?

“무... 무슨... 설마 흑교서 놈이 나불댄 거냐??”

“?”

연우혁은 멈칫했다.

전혀 모르는 무림인의 별호가 나왔던 것이다.

무슨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연우혁은 고개를 저으며 거짓말을 하는 척을 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흑교서 놈이 맞군...! 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교활한 쥐새끼...!”

귀창괴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등원의 검이 요혈을 노렸다. 치명상은 피했으나 허리가 깊게 베인 귀창괴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풀썩 무릎을 꿇었다.

“진충비도라고 했나...?”

귀창괴걸은 상처를 움켜쥐고 으르렁대듯 외쳤다.

“마두 놈들을 쓸어버리고 싶으면 흑교서란 놈을 기억해둬라. 놈은 마두를 도와 온갖 악독한 책략은 다 짜내는 놈이니까!”

그 말과 함께 귀창괴걸은 단창을 단단히 붙잡았다.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였다.

“잠깐!”

연우혁이 귀창괴걸을 불렀다.

“...뭐냐?”

“흑교서에게 복수해주길 원한다면 좀 더 자세히 말해보시오. 어떤 자요?”

“놈은... 흑염방 소속이지만 사실상 소속된 문파가 없다고 봐도 좋다. 온갖 곳들을 들쑤시며 대가를 받고 책략을 짜주지.”

“과연. 약점 같은 건 없소? 특징은?”

“놈의 무공은...”

귀창괴걸은 고통을 참으면서 흑교서에 대해 아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연우혁은 흥미로워하며 들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렇군. 더 말할 것 있소?”

“없다...”

“그러면 하려던 거 하시오.”

“......”

귀창괴걸은 붙잡은 단창을 한 번 보더니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저 진충비도란 놈이 이번 일을 거의 망친 셈 아닌가.

숨어 있는 마두들을 찾아낸 건 물론이고 그 전말까지 전부 밝혔으니.

갑자기 분노가 치솟은 귀창괴걸은 일갈했다.

“네놈이 감히 이 귀창괴걸을...!”

서걱!

마두가 마지막 발악을 하기 전 장등원이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귀창괴걸의 목이 위로 솟구쳤다.

“고맙소.”

“음. 진충비도... 마두에게 정보를 얻어내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자극하는 건 위험하오. 놈들의 동귀어진 수법은 위험할 수 있으니 말이오.”

“으음. 그렇군. 딱히 지나치게 자극하진 않았소만.”

“......”

* * *

정 교위는 눈치를 보며 환관들에게 다가갔다.

황수장의 일은 마무리되었고, 홍목대사의 진상도 밝힌 만큼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었다.

하지만 정 교위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일에서 금의위의 활약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활약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발목 잡지 않았다는 말이나 들으면 다행이었다.

이제 곧 서로 장계를 위로 올릴 텐데, 뒷일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지간해야 서로 다른 장계를 올리고 억지를 부리지 이 정도로 진상이 명확한 일은 억지를 부리기도 힘들었다. 몇 명만 대면해도 진상이 쉽게 드러났다.

바로 역공을 당할 일로 억지를 부릴 만큼 정 교위는 멍청하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환관들과 타협하는 것이었다.

동창이 장계를 올릴 때 정 교위의 체면을 어느 정도 배려해주면, 정 교위 또한 금의위로 돌아가서 무탈하리라.

“어떻게 생각하지?”

“자네 정신 나갔나?”

허 중관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정 교위를 쳐다보았다. 늙은 환관의 싸늘한 눈빛에 정 교위는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쪽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듣고 있네. 계속 말해보게. 동창의 일을 계속 훼방 놓고 몰래 뒤따라간 주제에 죄인도 놓친 자들이 무슨 변명을 할지 궁금하군.”

굴욕감에 가슴이 타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정 교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도와준다면 나 또한 도와주겠다.”

“호.”

허 중관은 흥미롭다는 시선을 던졌다. 과연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있던 간에 금의위 교위로서 협력하겠다 이 말인가?”

“...그렇다.”

이런 약조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중에 동창과 금의위가 부딪쳤을 때 동창의 첩자 노릇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걸 알 텐데도 저러는 걸 보니 이번 일에서 저지른 실수가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금의위 교위가 혈판장(血判狀)을 쓰는 걸 보고 싶긴 한데, 아직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네.”

“또 뭐냐?”

정 교위는 짜증을 냈다.

장계에 언급해주는 조건으로 혈판장을 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동창에게 이득인 거래였다. 교위 본인이 급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또 뭘 더 달란 것인가?

“허허. 짜증내지 말게. 난 금의위 무인이 아니니까. 자꾸 기분 나쁘게 굴면 혈판장이고 뭐고 다 없던 이야기가 될 걸세.”

“...미안하다.”

“문제는 공공께서 그런 거래를 받아들이실지, 안 받아들이실지지.”

“무슨... 그쪽은 무조건 이득 아닌가!”

“그건 자네 생각이고. 공공께서는 의외로 이런 거래는 관심이 없으시네.”

허 중관이 보기에 주 공공은 이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일단 금의위 첩자가 굳이 더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번 장계에서 금의위에게 어느 정도 몫을 챙겨주게 되면 저 젊은 판관의 몫이 조금 줄어들게 될 것 아닌가.

“내가 직접 말해보도록 하지!”

“어엇. 안 그러는 게 좋을 텐데...”

성큼성큼 걸어가는 정 교위의 뒷모습을 보며 허 중관은 미소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 교위는 가마 앞에 접근하자마자 환관들한테 제압당하고 얼굴을 흙바닥에 처박아야 했다. 제안은 당연히 거절당했다.

“......”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정 교위가 부들부들 떨며 돌아오자 허 중관은 쯧쯧거렸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나.”

“...알겠다. 없던 일로 하지.”

“아니. 방법은 있네.”

“?!”

사람을 갖고 노는 허 중관의 모습에 정 교위는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무슨...?”

“저기 저 젊은 판관이 보이나?”

“보인다.”

허 중관이 연우혁을 가리키자, 정 교위는 떨떠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운 좋게 금의위의 일을 거들어서 출세한 포두 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번 일이 끝나자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리 아니꼬운 놈이라 하더라도 능력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소문이 좀 덜 과장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저 젊은 판관을 설득해보게. 그럼 공공께서도 허락해주실지 모르지.”

“날 놀리나!”

정 교위는 벌컥 화를 내더니 돌아서려고 했다. 허 중관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하게.”

“...왜 저 놈을 설득하는 게 허락이 된다는 거냐?”

허 중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를 갈던 정 교위는 뚜벅뚜벅 젊은 판관에게 걸어가서 뭐라고 말을 걸었다.

-필요한 게 있나?

젊은 판관은 미친놈 보듯이 교위를 쳐다보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허 중관은 박장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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