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102화 (102/107)

백성의 믿음직스러운 친구 동창 (8)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다!”

정 교위가 계속 씩씩대면서 쫓아오자 연우혁은 상대가 미친놈인가 싶었다.

“그냥 안 쫓아오면 좋겠는데. 대체 왜 쫓아오는 거지?”

저번에 신세를 진 하 교위면 모를까 연우혁은 눈앞의 금의위 무인과 별로 친분을 쌓고 싶지 않았다.

교만하고 성급한 성격이라 어떤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는데다가, 금의위 이름으로 공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연우혁을 언제든지 배신할 사람 아닌가.

금의위의 이름이 무섭긴 했지만 연우혁도 동창과 연분이 있는 만큼 굽신거릴 필요는 없었다.

“네놈이 납득을 해야 동창 놈들도 납득을 할 것 아니냐!”

“무슨...?”

연우혁은 교위한테 설명을 듣고 나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허 중관이 친절을 베푼 것이다.

‘아니. 그냥 재밌으셔서 한 걸 수도 있겠군.’

멀리서 낄낄 웃는 걸 보니 그냥 금의위 교위 놈을 괴롭히고 싶었던 걸 수도 있었다.

하여간 금의위 교위에게 빚을 얹혀두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분명 쓸 날이 오겠지만...

‘괜히 나대도 되나?’

연우혁은 고민했다.

허 중관이야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고 자신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걸 영안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이런 친절도 놀랍지 않았다.

그에 비해 주 공공은 갖고 있는 보물 때문에 영안이 통하지 않아 한층 더 조심스러웠다. 연우혁의 재주를 제법 높게 평가해주고 있긴 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했다.

괜히 금의위 놈의 공적을 장계에 언급해달라고 부탁했다가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연우혁만 손해였다.

‘괘씸죄라도 산다면...’

“네놈에게도 좋은 일이라니까!”

“아. 조용히 좀 해봐라. 고민 중이잖나.”

연우혁은 허 중관에게 찾아가 다시 물어보거나 주 공공에게 슬쩍 운을 띄워볼까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정 교위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눈앞의 판관 놈이 전혀 혹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건 정말...”

“조용히 좀 해보라니까.”

“네놈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잘 생각해봐라. 네놈은 모르겠지만, 곧 무림 놈들이 용봉지회를 연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분명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다!”

“??”

용봉지회.

정파 문파들이 여럿 모여 후기지수들의 무공을 겨루는 대회였다.

말로는 정파무림의 발전과 친목을 도모한다지만 원래 칼 든 무림인들이 그렇듯이 서로 모아 놓으면 싸움이 터지기 마련.

사파무림에서도 나름 용봉지회 비스무리한 걸 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정파무림에서 해도 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사파무림은 얼마나 그 정도가 심하겠는가.

“용봉지회가 열리는데 왜 네 도움이 필요하지?”

“크윽... 이건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극비에 가까운 정보니까. 아마 한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팔강산 쪽 평야에서 열릴 것 같다. 장로에게 들은 이야기니 거의 확실할 거다.”

“!”

연우혁은 깜짝 놀랐다.

용봉지회가 한경 근처에서 열린다니!

‘아니...’

물론 한경이 그만큼 번화한 대도시긴 했지만 관리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특히 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연우혁 입장에서는 두 배로 최악이었다.

한경 근처에 칼 든 무뢰배들이 수백, 수천 명 넘게 몰려온다는 소리 아닌가!

그 무뢰배들 중에 뒷배가 든든한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눈이 절로 질끈 감기는 일이었다.

“...안 돼! 절대 그럴 순 없다!”

“나도 동의한다. 무림인 놈들. 국법도 무시하고 칼을 휘두르는 것도 괘씸한데 저렇게 모여서 건방지게 위세를 자랑하다니.”

정 교위는 생각만 해도 괘씸했는지 이를 갈았다.

금의위로서 무림인들은 세상에 도움 되는 것 하나 없는 잡스러운 종자들이었다. 이들이 일으킨 사고만 생각해도 치가 떨렸다.

더욱 화가 나는 건 황족이나 조정의 고관들 중 이들의 편을 드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그놈의 고승이나 도사의 힘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세가 놈들의 돈을 얼마나 받아먹었다면 저렇게 편을 들어준단 말인가!

“잠깐. 그러면 이 부탁을 들어줄 경우 용봉지회 때 금의위의 힘을 빌려준단 건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도와주겠다.”

“아니. 그 정도론 안 되지.”

“뭐가 안 된다는 거냐!”

정 교위는 금의위의 칼을 우습게 보는 젊은 판관의 대답에 발끈했지만, 연우혁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연우혁에게 필요한 건 금의위의 칼이 아니었다. 무력은 어차피 아는 무림인들이 많았던 만큼 그들한테 빌려도 충분했다.

연우혁이 필요한 건 다른 거였다.

“용봉지회가 열리는 동안에는 금의위 무인들도 당연히 감시하고 있겠지? 필요한 정보를 같이 공유해줬으면 한다. 아무래도 한경에 앉아 있으면 한계가 있을 테니.”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런 정보를 계속 달라니! 그런 게 되려면 내가 네놈 옆에 붙어서 말해줘야 하는데, 그게 말이 된다고 보냐?”

“오. 좋은 생각이군.”

“?!”

연우혁이 동의하자 정 교위는 기겁했다.

“교위 정도면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지 않나? 판관의 협조를 받아 한경을 감시한다고 하고 옆에서 도와주면 되겠군.”

이미 포쾌로 살막의 조장이 있는 만큼 연우혁은 금의위 교위 한 명 정도 더 있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판관의 제안에 정 교위는 이를 악물고 고뇌했다. 여기서 그냥 포기하고 물러나기에는 잃을 게 너무 많았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가?”

“아니. 나도 생각보다 위험을 안고서 하는 제안이다. 내 입장을 생각해봐라. 공공께 금의위 교위의 공적을 챙겨주라고 말을 올려야 하는데, 너 같으면 어떻겠나?”

“으음.”

연우혁의 말에 정 교위는 바로 설득되었다.

확실히 교위 본인이 저 판관 놈이었어도 고민되었을 것이다. 기껏 잡은 동창의 연줄이 휙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좋다...! 도와주겠다. 대신 용봉지회가 끝나기 전까지만이다!”

“알겠다. 기다리고 있어라.”

젊은 판관은 주 공공의 가마로 걸어갔다. 정 교위는 초조한 눈빛으로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동창 환관들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생각해봤을 때 저 판관이 욕만 먹고 쫓겨날 수도...

“장계에 언급해주겠다고 하시는군. 잘 됐다.”

“......”

일다경도 안 지났을 법한 짧은 시간에 다시 돌아오자 정 교위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운이 좋군. 공공께서 이렇게 허락해주시다니. 기쁘지 않나?”

“으, 으음... 그렇... 그래. 잘 됐군...”

***

교위의 일이 끝나자 주 공공은 허 중관과 연우혁을 불렀다.

“다들 수고가 많았다. 비록 혈교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지.”

“공공께서 나서주신 덕분에 수많은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허 중관은 순간 자신이 말한 줄 알고 황당한 표정으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의 틀림도 없는 정확한 아부였다.

“금의위 교위가 부탁했다고 해서 걱정할 것 없다. 너희의 공적은 분명히 장계에 기록해 줄 테니.”

허 중관은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동창의 고관들 중에서 주 공공만큼 논공행상이 정확한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다른 부하들의 공을 탐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만큼 더더욱 그랬다.

“이번 홍목대사와 관련된 관리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도가 심한 자들은 경고를 줘야겠지.”

주 공공은 가마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속은 자들한테까지 엄하게 책임을 묻지는 않겠지만, 그 중에서 관의 재산까지 사용해 홍목대사한테 바친 자들은 문제가 있었다.

꼭 처벌하진 않더라도 약점을 잡고 있다고 경고를 해두는 게 나았다. 그래야 앞으로 허튼 짓을 하지 않을 테니.

“그러고 보니 두 자리에서 발견된 현령은 어떻게 한 건지 알아내지 못했군요.”

허 중관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마두 놈들이 하도 저항하는 바람에 놈들의 정확한 수법을 세세하게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법회에 자꾸 참가하던 현령이 관아에서도 발견되고 법회에서도 발견됐다는 증언에 어떻게 된 건지 의아했었는데...

“그건 직접 심문하면 알아볼 수 있겠지. 일을 마무리 지을 겸 가보자꾸나.”

“그러실 것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

허 중관은 젊은 판관이 입을 열자 기대와 감탄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알아낸 건가!”

“예.”

“......”

늙은 환관은 젊은 판관의 재주에만 집중한 나머지 눈앞의 상관의 기분이 탐탁찮다는 것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기하고 있던 간자들이 시간을 확인했다는데, 어떤 방식으로 확인했겠습니까?”

“음? 그렇군. 향을 태우는 건 부정확했을 테고...”

“이런 일일수록 더더욱 정확해야 했을 겁니다. 관아 근처에 있던 간자들은 종소리로 시간을 확인했을 겁니다.”

보통 성은 해시(亥時) 때 성문을 닫고 통행을 금지한다는 뜻으로 종을 스물여덟 번 울리고, 인시(寅時) 때 성문을 열고 통행을 허가한다는 뜻으로 종을 서른세번 울렸다.

“현령 입장에서는 종을 치는 자만 일찍 치라고 매수하면 되니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과연...!”

“별로 대단할 것 없는 꾀였구나.”

주 공공은 심드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현령한테 사람을 보내라. 감히 국법을 어기고 종지기를 매수해 몰래 법회에 참가하다니. 녹을 먹는 자로서 감히 용서할 수 없음이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허 중관은 생각보다 높은 처벌에 의아해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파직될 수 있었지만, 원래 관리들은 그 놈이 그 놈이라 주 공공께서는 약점만 잡아두고 실제로 자르는 일은 잘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의아해하던 허 중관은 연우혁과 눈이 마주쳤다. 놀랍게도 젊은 판관은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뭐지?’

연우혁은 헛기침을 했다. 주 공공의 생각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주 공공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금의위 교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곧 무림의 무인들이 용봉지회를 연다고 합니다.”

“알고 있다. 꽤 진척이 있다고 들었는데... 확정이 되었나보구나.”

“예. 한경 인근에서 열릴 것 같다고 합니다. 공공께서는 무림인들의 비무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영안이 통하지 않아도 연우혁은 주 공공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 공공이 느끼는 건 권태감이 분명했다.

다른 고관처럼 권력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재물에 집착하는 것도 아닌 사람이라면, 일 자체에 흥미를 가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우국충정으로 일을 하더라도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기란 쉽지 않은 법. 연우혁이 일을 빨리 끝낼 때마다 시큰둥한 기색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가 분명했다.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할 필요도 없는, 단순한 내막을 가진 사건이라니.

그 얼마나 시시하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라면 무림인들의 비무가 흥미로울 수 있었다. 온갖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다 벌어질 것 아닌가.

‘아, 아이고.’

허 중관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젊은 판관이 반은 맞게 짚었지만 반은 틀리게 짚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주 공공께서 느낀 건 권태감이 맞았다. 평소 자신의 지혜를 꺼낼 일이 드문 분인 만큼, 그럴 필요가 있는 사건을 좋아하셨던 것이다. 그게 빨리 끝났으니 시큰둥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무림인들의 비무는 역효과였다.

용봉지회라고 해봤자 결국에는 후기지수들의 대결이고, 명문보다는 그 외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더 많을 텐데, 황궁에서 온갖 고수들의 대결을 보며 무공을 배운 주 공공에게 성에 찰 리 없지 않은가.

허 중관은 언제 어떻게 저 젊은 판관을 도와줄까 고민하며 땅바닥을 노려보았다.

“나쁘지 않구나.”

“!?”

허 중관은 예상 밖의 대답에 당황했다.

“하긴, 무림인들이 그렇게 모이면 감시를 하긴 해야겠지...”

“공, 공공. 괜찮으시겠습니까? 천박한 무부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상관의 대답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에 천박한 무부들끼리 자기가 맞니 틀리니 하며 검으로 정답을 가리려고 하는 짓거리들을 싫어하는 주 공공 아니었던가.

물론 용봉지회가 열리면 감시는 보내야겠지만 그건 다른 환관들에게 맡겨도 되는 잡일이었다.

“비무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습니까...?”

“그리고 비무 말고 흥미로운 일들도 일어날 수 있겠고. 누군가 암습을 당해 죽는다거나 말이다.”

“과연.”

그제야 조금 납득이 되었는지 허 중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 중 누군가 암습을 당해 죽는다면 주 공공께서 흥미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 그건 좀...”

“걱정 말게. 꼭 죽으란 일은 없지 않나. 부상 정도만 당해도 꽤 흥미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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