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1화 (1/116)

그런 어느 날 밤

서장: 그런 어느 날 밤 One of These Nights – 이글스 (1975)

내가 존 M. 윌슨 박사의 연락을 받고 보스턴 교외에 있는 그의 집에 도착한 것은 2022년 겨울의 어느 밤이었다.

나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윌슨 박사와 비슷한 이들, 그러니까 은퇴 이후 할 일은 없고 할 말은 많은 노학자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그런 이들의 집이란, 대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오래된 종이와 양장본 표지의 내음으로써 집주인의 이력과 성향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헌데 이 집은 어딘가 느낌이 다르단 말이죠. 찾아뵐 때마다 새삼스레 느끼는 것입니다만.”

“뭐, 그야 이 노인네 경력이 여간 희한한 게 아니니까 그러겠지.”

그사이 윌슨 박사는 부쩍 초췌해져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그가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초췌해졌다는 것이지, 지금도 동년배 노인에 비하면 무척 정정한 축에 들었다.

“손님 방을 치워두었네. 내 집 감상은 미뤄두고 얼른 짐이나 놓고 오게. 위스키부터 따고 시작해야지.”

한두 번 찾아온 게 아닌지라 마치 내 집인 것처럼 익숙하게 계단을 올랐다.

윌슨 박사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노인네의 희한한 경력’을 방증하는, 팔십여 년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즐비하였다.

사십줄에 접어들 때까지 공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느닷없이 전역하고는 만학의 길을 걸어 마침내 고고학자로 대성한 이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학위를 따자마자 자기 전공 분야의 기존 연구를 거의 모두 뒤엎은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예순 가까운 나이에 중세 그린란드사를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한 윌슨 박사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이 때문에 교수직은 얻지 못했지만, 윌슨 본인은 딱히 개의치 않는 듯했다.

윌슨의 업적이란 대개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린란드 최남단, ‘동녘정착지Eystribygd’가 있던 피요르드 어딘가에 윌슨이 우뚝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것처럼, ‘저기 저곳입니다’ 하고 짚는다. 그러면 그가 짚는 곳에서 늘 그렇듯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간혹 그에게 비결을 묻는 이들도 있었는데, 윌슨은 그저 ‘그때 살았던 사람의 눈으로 보면 된다’라는 참 성의 없는 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허나 비결이 무엇이든 그것이 퍽 용하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가 사실 미국인 ‘존 윌슨’이 아니라 중세 바이킹 ‘욘 빌햘름손’이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노인네 숨 넘어가겠네.”

“네, 네, 내려갑니다.”

아래층에서 윌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잡념에서 깨어나 황급히 짐을 풀고는 거실로 향했다.

벽난로 불과 오래된 전등은 거실 벽면을 빙 두르는 책장을 그 특유의 낭만적인 색채로 물들이고 있었다.

벽난로를 마주보는 쪽에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푹신한 소파가 둘, 그리고 그 수에 맞추어 준비된 술잔 둘.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깡 하는 유리잔 건배 소리와 더불어 막 향 좋은 위스키를 목으로 넘기던 차, 돌아오는 윌슨 박사의 답변에 나는 그만 콜록이고야 말았다.

“이맘쯤이면 얼추 짐작해야 하지 않나? 죽어가는 노인네가 평생 품고 살던 이야기를 유언 대신해 풀어놓을 심산이라는 걸 말이야.”

“쿨럭! 예? 아니, 정정하신 분께서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얼마 전에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네. 이제 몇 달 안 남았어. 죽기 전에 내가 반평생 품고 산 비밀을 누군가에게는 들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불렀네.”

노학자의 표정은 태연자약할 따름이었다. 담담히 자신의 예정된 죽음을 말하는 노인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내 입을 가로막으며 윌슨은 티슈 한 장을 뽑아 건내주었다.

“그러니까 얼른 입가부터 닦게. 내가 이제부터 누설할 군사기밀이 한두 건이 아닌데, 벌써부터 그리 경악하면 쓰나.”

오랜 벗 내지는, 어떤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게 될 동지를 대하는 그런 말투로 윌슨은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그 궁금함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초인이거나 아니면 인간의 탈을 쓴 기계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나는 위로의 말은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작정하고, 윌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역하기 전 내 마지막 임지가 12우주경보전대, 그러니까 툴레Thule 기지였다는 얘기는 내 한두 번쯤 했을 걸세.”

공군 중령으로 명예전역하기까지 대략 20년의 군생활. 그동안 윌슨은 냉전의 최전선은 다 돌다시피 했더랬다. 남베트남의 캄란, 한국의 오산, 서독의 람슈타인, 그리고 그린란드 최북단의 툴레까지.

“하지만 사실 나는 편제상으로만 12전대 소속이었고, 실제로는 국방부 직속이었다네. 툴레에서 동쪽으로 백오십 마일 정도 떨어진 캠프 센추리Camp Century에서 진행되는 연구를 감독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지.”

“캠프 센추리라고요?”

“얼음벌레 계획Project Iceworm*이라고, 1960년대에 잠시 진행되었던 극비 프로젝트가 있었네. 그린란드의 빙상을 굴착해서 그 아래에 중거리미사일 발사 기지를 세우는 계획이었지. 캠프 센추리는 얼음벌레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적으로 지어진 곳이었고.

1967년에 얼음벌레 계획이 중단되면서 캠프 센추리도 그대로 방기되었다는 게, 덴마크 정부에 대한 우리 국방부와 국무부의 공식 입장이라네. 허나 실제로는 그 이후로도 연구 주제가 바뀌었을 뿐 기지 자체는 1983년까지 쭉 이어서 쓰였다네. 한 번 가져다 놓은 원자로며 온갖 설비를 그대로 얼음 아래 두고 떠나긴 영 아까운 노릇이었으니.

이야기가 옆으로 새었군. 내가 캠프 센추리에 있을 무렵, 그곳에서는 막 시간여행 기술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네.”

“시간여행이라니, 그 무슨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까?”

“말이야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나름 현실적인 목표를 잡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어. 딱 10분 뒤의 미래에서 사진 한 장을 전송받는 게 목표였거든. 민간인들이라면 고작 그 정도를 어디 쓰느냐 묻겠지만, 탄도탄 방어에 있어서는 그 정도도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네. 발사징후를 빨리 탐지할수록 요격 가능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니까.

연구는 그럭저럭 잘 진척되고 있었어. 캠프 센추리의 연구진은 극궤도 상의 군사위성, 정확히는 30초 후 미래의 위성으로부터 데이터를 전송받는 데 성공했다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지.

기껏 연결한 미래와의 ‘통로’는, 송수신되는 데이터의 크기가 커질수록 불안정해졌네. 단순한 신호 정도는 미래에서 받아볼 수 있었지만, 그 이상, 그러니까 처음 목표로 했던 위성사진 전송 같은 것은 언감생심이었네.

그러던 차에 레이건 행정부가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했네. 그 잘난 ‘스타워즈’ 계획에 국방연구 예산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부족할 판이었지.

그 다음은 자네 말마따나 공상과학 영화처럼 진행되었네.”

대충 짐작은 갔다. 얼른 성과를 내라며 연구진의 숨통을 조여오는 유·무언의 압박. 그 압박 속에서 무리하게 진행되는 실험, 그리고 불의의 사고까지.

“설마 그러면 박사님께서 거기 휘말리신 건가요?”

“바로 그렇다네. 얼른 성과를 내려는 욕심에 연구진은 무리하게 실험의 규모를 키웠고, 그 바람에 얼음 동굴 안에 설치된 원자로에 과부하가 걸렸던 듯하네. 곧 굉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운이 좋은 축이었네. 내 상관과 부하들, 그리고 기지의 과학자들까지 모두 몰살을 당했지만, 나는 정통으로 장치의 폭발에 휘말려서 먼 미래 대신 먼 과거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직업상의 이유로 열린 마음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나는, 박사의 이 언뜻 허황된 이야기가 광증이나 노망의 산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를 미친 늙은이 보듯 보고 있지 않은 걸 보니 적잖이 안도가 되는군그래.”

“어지간해선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박사님께서 정말로 중세 그린란드를 두 눈으로 보고 오셨다면 많은 게 설명되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자네 말대로일세. 내가 동녘정착지를 훤히 들여다보듯 발굴할 수 있던 것은, 정말로 그곳에 북구인들이 아직 살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었지. 브라타흘리드, 가르다르, 헤르욜프스네스... 모두 내가 직접 겪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네.

폭발에 휘말린 내가 눈을 뜬 것은, 그린란드 남쪽 끄트머리 근처였네. 과학자들이 하필 캠프 센추리에 터를 잡은 이유가 지구 자기장 어쩌고 때문이었다고 했던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자북의 위치가 몇백 년 사이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나는 이누이트인들 대신 중세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에게 가장 먼저 구조될 수 있었네.

그들 이야기에 따르면, 한밤중에 웬 천둥소리와 밝은 불빛이 나서 금방 나를 찾을 수 있었다더군. 그때가 1402년 여름...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한두 세대쯤 남았을 무렵이었지.”

이야기가 길어지고 술병이 가벼워질수록 나는 윌슨 박사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내가 맡은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제하고 듣더라도 여간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삶은 나날이 가혹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바이킹이었지. 완고함과 끈질김, 그리고 제멋대로 구는 기질까지, 그 조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네. 쇠락의 징조는 완연했지만, 그들은 언제고 이 모든 게 지나가리라는 것처럼 끈질기게 견뎌내고 있었어.”

“그리고 박사님께서는 졸지에 그들 사이에 떨어지게 되셨고요. 중세 유럽에서 살아가는 게 썩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린란드 같은 곳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윌슨의 눈빛은 어느새, 우리 앞에서 따뜻하게 타오르는 벽난로나 슬슬 비어가는 위스키 병이 아니라 소빙기의 초입, 그 위태로운 벼랑 끝에 선 중세 그린란드의 동녘정착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였다.

“내 입으로 말하긴 무엇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지. 그러지 않고서야 브루클린의 코흘리개 고아가 콜로라도 스프링스 – 공군사관학교 말일세 – 에 발을 들여놓고, 또 극비 국방연구사업을 감독하는 그런 직책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덕분에 나는 ‘이방인 욘’으로서 동녘정착지에서의 삶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었네. 바다코끼리 사냥이나 뱃일, 목초 농사 등등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대신 나는 그 무렵 그린란드에 정말 부족했던 인재, 그러니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몇 안 되는 사람이었거든.

그린란드의 마지막 주교 알프는 내가 도착하기 한참 전에 죽었네. 그 무렵 노르웨이와 그린란드를 오가던 배편도 거의 끊겼고. 동녘정착지 전체를 통틀어 열여섯 곳이나 되었던 교회 중 열두 곳에는 성직자가 없는 형편에, 하나씩 있는 베네딕트회 수녀원과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도 다 늙은 몇몇 사람들이 겨우 지키고 있을 뿐이었지.

그런 판에 사칙연산은 물론이고, 번듯한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까지 지니고 있는 내가 나타났으니 어땠겠는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팅Thing*에까지 초대받게 되었네.”

“꽤 괜찮게 지내신 듯하군요.”

“그랬지. 허나 그래서 더 문제였어. 아까 시간여행 실험에 대해 말한 것 기억하나? 분명 미래와의 연결은 일시적이어야 했네. 대충 몇 달 지내다 보면 언제고 1983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해가 바뀌고 또 바뀔 때까지도 내 주변의 그린란드는 그대로 15세기 초의 그린란드로 남아 있었다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지. 미래와의 연결은 미래와 교신하는 데이터의 양이 늘어날수록 불안정해졌네. 그렇다면 과거와의 연결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미래인인 내가 주변과 상호작용을 활발하게 하면 할수록 그만큼 빨리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가설을 세웠네.”

“하지만 박사님께서 계시던 곳은 그린란드였지 않습니까. 르네상스가 막 시작하던 이탈리아도 아니고, 막 백년전쟁을 벌이던 프랑스나 잉글랜드도 아니었지요. 유럽의 최변방에서 뭔가 주변에 영향을 미치기란 어려우셨을 텐데요.”

“맞아. 그게 문제였지. 허나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에 그런 것까지 바랄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런데 마침 그 무렵, 나는 시그리드 그 아이를 맡게 되었네.”

“시그리드라고요?”

“그래. 시그리드 비요른스도티르, 비요른의 딸 시그리드. 역사에 기록이 남은 마지막 그린란드 바이킹.”

그 이름이 나오자, 마치 감정의 둑이 하나쯤 터진 듯 윌슨 박사의 표정이 흐려졌다 밝아지기를 거듭했다. 술잔을 두어 번쯤 비운 뒤에야 이야기는 겨우 이어질 수 있었다. 딱 그쯤 술병이 다 비워졌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몇 잔은 더 들이켜야 했으리라.

나는 제꺽 일어나 캐비닛을 열고 새 술병을 꺼내왔다. 박사가 가장 각별히 아끼는 위스키가 무엇인지 정도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시그리드의 부모는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상선을 탔다가 돌아오지 못했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하필 그때 아이슬란드에 흑사병이 돌았기 때문이었지.

시그리드의 아버지 비요른과 어머니 솔베이그 모두 나와 교분이 있었어. 더구나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홑몸이기까지 했고. 내가 맡지 않았더라면 아마 파울 신부나 수녀원의 노파들이 대신 맡아주어야 했을 텐데, 그것보다야 낫지 않았겠나? 그렇게 엉겁결에 나는 시그리드의 양부 비슷한 무언가가 되었다네.

시그리드는 참 특별한 아이였어... 겨울 안개처럼 모든 것이 흐리고 칙칙한 몰락 직전의 그린란드였지만, 시그리드에게서는 도통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느낌이 났다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아이는 항상 세상을 궁금하게 여겼네. 얼마나 쉴새없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던지...

언제부턴가 나는 시그리드에게, 그 아이가 알아서 쓸 데도 없고, 어쩌면 알아서 득은커녕 해만 될 법한 그런 이야기까지 해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네. 바다 건너 아메리카의 지리라던가, 태양계의 구성, 만유인력 같은 것 말이야. 그리고 시그리드는 또 그걸 하나도 빠짐 없이 머릿속에 집어넣곤 했네.

심지어 주교 대리였던 에인드리디 그 깐깐한 노인네를 어떻게 꼬드겼는지, 책 한 권을 얻어와서는 양피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그걸 공책으로 쓰고 있더군.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내가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절반, 소일거리라는 생각 절반으로 시그리드의 스승 노릇을 하게 되었네.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단단히 준 뒤, 아예 작정하고 내가 아는 미래의 모든 지식을 가르쳐 주었지.”

일전에 윌슨 본인의 입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소싯적 그가 있으나마나한 위탁가정 대신 도서관에 들어가, 더 넓은 세상을 막연히 꿈꾸며 손에 잡히는 책은 모두 빨아들이듯 읽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버릇이 군생활 때까지도 이어졌다는 것을. 그는 마치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까치처럼,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 나타나면 우선 파고드는 그런 지식욕을 팔순 나이까지도 잃지 않았다.

그러니 더 넓은 세상을 궁금히 여기는 어린 시그리드에게 존 윌슨 중령은 최고의 스승이자 벗이었을 것이다.

허나 슬그머니 윌슨의 입가에 서리던 미소는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움푹 파인 주름진 눈가에 잠시 서렸던 아련함은 어느새 비통함으로 바뀌었다.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고야 말았다는 깨달음은, 슬프게도 너무 늦게야 내게 찾아왔네.”

“못할 짓이라뇨?”

“생각해보게... 내가 그린란드의 운명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그 영특한 아이가 정말 몰랐을까? 내가 그 아이에게 가르쳐준 미래의 모든 지식 중, 이 그린란드에서 제대로 쓰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시그리드 그 아이에게 지식은 저주나 다름없었어. 바다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 그들의 조상이 뒤로하고 떠나온 유럽 대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훤히 알면서도, 그린란드에 갇힌 시그리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지.”

“그래서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든 내 잘못을 만회할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지. 마침 그 무렵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고.”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윌슨의 표정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도리어 회한이 비통함 위에 덤으로 쌓이는 듯했다.

“때는 1406년이었네. 토르스테인 올라프손이라는, 유력한 집안 출신의 아이슬란드 젊은이가 있었는데, 노르웨이에서 돌아오던 길에 폭풍을 만나 그린란드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지. 토르스테인은 상선 여럿을 거느릴 만큼 부유한 상인이었는데, 1402년에 아이슬란드를 덮친 흑사병에 아내를 잃고 나이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홀아비 신세가 되었다네.

물론 그 무렵 아이슬란드는 물론이요 유럽 그 어디든 삶이 썩 순탄하지는 못했을 테지만, 적어도 멸망이 확정된 그린란드보다는 아등바등 삶이 이어지는 아이슬란드가 낫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계획이라 하기도 민망한 생각을 내었어. 만약 시그리드가 홀아비인 토르스테인과 결혼하게 된다면, 곧 멸망할 그린란드를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네.”

“시그리드 본인은 무어라 하던가요?”

윌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듣지 못했어.”

“예?”

“나는 시그리드를 내 앞에 앉혀두고, 그린란드의 정해진 미래와 시그리드 혼자라도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두 털어놓았네. 시그리드 그 아이는 제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하지만 시그리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하필 그때 그 일이 벌어졌네. 일순 귀가 멍멍해지고, 눈은 흐려지고, 발은 어째 땅속으로 꺼지는 듯하고... 급히 시그리드에게 작별인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지. 미래로 돌아갈 날을 앞당기려던 내 계획이, 가장 적절치 못한 때에 이루어지게 된 거야.

그리고 그렇게, 나는 거짓말처럼 1983년의 캠프 센추리, 아니, 그 폐허로 돌아왔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툴레 기지에서 급파된 구조대의 랜턴 불빛이 무너진 동굴 곳곳을 비추고 있었지.

펜타곤에서 진상조사를 위해 날아온 이들은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럭저럭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네. 프로젝트는 실패했으며, 그 유일한 생존자인 나는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환각을 본 것이라고.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물증이 없었어. 관련 자료 태반은 캠프 센추리와 함께 얼음 속에 묻혔고, 그나마 남은 진실의 조각은 펜타곤이라는 관료제의 미궁 속으로 사라졌네.”

그럭저럭 견문이 넓다 자부하는 나조차, 윌슨 박사가 말한 시간여행 실험이나 그와 비슷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윌슨의 말마따나, 1983년 캠프 센추리의 진상은 산산조각난 채로 반영구보존 비밀기록물의 바다에 깊이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험의 전모를 이해하는 사람은 모두 북극의 얼음 속에 묻혔으니, 캠프 센추리에서 벌어진 일이 지닌 가치를 알아볼 사람도, 그것을 과학계든 언론에든 알릴 사람도 사라진 셈이었다.

“시그리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았나요?”

“자네 말대로, 다행히도 시그리드의 운명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네.

훗날 나는 시그리드 비요른스도티르가 1408년 9월 16일에 토르스테인 올라프손과 흐발세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이듬해에 주교 대행 에인드리디가 토르스테인과 시그리드의 결혼을 증명하는 문서를 발급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중세 그린란드에 대해 남은 마지막 기록이라네.

그렇게 시그리드는 그린란드의 마지막 바이킹으로 기록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지. 추정컨대 시그리드는 1410년 토르스테인이 아이슬란드로 돌아갔을 때 그와 함께 그린란드를 떠났을 거야. 그리고 적어도 그린란드에 남은 저의 이웃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삶을 살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실 수 없으셨군요. 어떻게든 시그리드와 그린란드의 운명에 대해 온전한 진상을 밝혀내고 싶으셨고...”

“잘 맞추었네. 나는 알아야만 했어. 시간여행 실험에 대한 내 가설이 옳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것이 참이었다면 내가 수십 년을 기다리는 일 없이 무사히 1983년으로 돌아올 수 있던 것은 시그리드 덕분이기도 하지 않겠나? 그리고 죄책감...

그래서 나는 전역을 신청하고는, 늦깎이 고고학도의 길을 걷게 되었네. 중세 그린란드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어떻게든 동녘정착지의 최후에 관한 진실을 밝혀내고 싶었어. 그렇게라도 하면, 시그리드 비요른스도티르라는 아이와 그 아이가 사랑했던 그린란드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내 양심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네.”

“그리고 성공을 거두셨고요. 말 그대로 역사책을 새로 쓰시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그린란드 멸망의 진상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지. 그리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사이 나는 늙었고... 이제는 정말로 바짝 다가온 죽음과 직면하게 되었지.”

목이 타는 것인지, 아니면 설움이 피워올린 심화(心火)를 다스리기 위함인지, 윌슨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사이 나는 짧은 고민을 마쳤다. 이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였다.

“어쩌면... 이건 그냥 가설입니다만, 박사님께서 보고 오신 그린란드는 우리가 지금 있는 이 현실의 과거에 있던 그린란드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박사님처럼 박학하신 분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시그리드 아니었습니까. 그린란드가 곧 멸망하니 너라도 살 길을 찾으라는 말을 들은 바이킹이라면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시간여행도 가능한 판국에, 평행우주라고 불가능하겠습니까? 어쩌면 박사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시그리드는 다른 세계의 시그리드였고, 그 시그리드는 박사님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해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으면야 좋겠지만... 설령 미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들 그 아이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제가 이래 봬도 사학도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어쩌면, 박사님께서 이 세계의 1983년으로 돌아오신 뒤, 저쪽 그린란드의 1406년에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지도 모릅니다...”

아직 밤은 꽤 남아 있었고, 내가 가슴 속에 감춰두었던, 그러나 이제 풀어놓기로 작정한 이야기는 많고도 많았다...

--- *** ---

* 존 윌슨John Wilson이라는 이름을 비튼 것. ‘윌슨’은 ‘윌리엄의 아들’에서 유래한 성이고, ‘윌리엄’은 다시 독일어 ‘빌헬름’, 고대 북구어 ‘빌햘므르Vilhjalmr’ 등에 상응합니다.

* 캠프 센추리는 실제로는 – 적어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에 따르면 - 1959년부터 1966년까지만 운영되었습니다. ‘얼음벌레 계획Project Iceworm’은 작중 서술대로 그린란드의 빙상 아래에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으며, 이동식 원자로로 전력을 공급받는 총 길이 3km 규모의 기지가 빙상 아래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 빙하의 이동 속도는 훨씬 빨랐고, 굴착한 통로가 완전히 붕괴하기까지 불과 수 년이면 충분하다는 계측 결과가 나오면서 결국 얼음벌레 계획은 취소되고 캠프 센추리는 폐쇄됩니다.

*팅Thing은 고대 게르만인들부터 내려오는 전통 의사결정기구로, 바이킹들이 북대서양에 진출할 무렵에는 자유민들의 입법부 겸 사법부로서 기능했습니다. 그린란드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담으로,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 섬을 침공한 이후로 고대 영어에도 ‘thing’이 유입되었고, 의미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영단어 thing이 되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