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7화 (7/116)

험한 물 위의 다리 (1)

2. 험한 물 위의 다리 Bridge Over Troubled Water - 사이먼 앤 가펑클 (1971)

멕시코 만류는 플로리다를 지날 무렵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중 동쪽 갈래인 북대서양 해류는 그대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노르웨이 앞바다까지 향한다.

덕분에 유럽은 같은 위도대보다 비교적 온난한 기후를 누릴 수 있으며, 아이슬란드 인근으로 남하하는 한류와 북대서양 해류가 만나 형성하는 조경수역은 농경이 어려운 아이슬란드인들의 식량을 책임지는 훌륭한 어장이 되어준다.

그리고 가끔, 멋모르고 무작정 북동쪽으로 향하는 열대성 저기압에게도 매우 좋은 에너지 공급원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때 올라프의 아들 토르스테인에게 속하였던 전직 크노르로 하여금, 새침하게 선수만 빼꼼 수면 위로 내민 채 레이캬비크 앞바다에 착저하게 만든 지난밤의 허리케인*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 시그리드야. 네 그 검은 책에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다는 얘기는 없냐?”

‘검은 책’ 대목에서 목소리 낮추는 것을 잊지 않고 스베인이 물었다.

“가라앉은 배를 도로 끌어올리는 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네요. 욘 아저씨는 해군이 아니라 공군이어서요.”

“공군이 뭐냐?”

어쩌다 욘이 떠벌이가 되었는지 내심 깨우치며, 시그리드는 제 입술을 탁 쳤다. 아마 욘도, 딱히 떠벌거리고 싶어 떠벌거린 게 아니라, 막막한 상황 앞에서 절로 탄식이 나오다 보니 할 말 안 할 말 못 가리게 되었던 것일 테다.

“그런 게 있어요.”

원래 역사보다 3년 일찍, 그리고 조금 더 이상한 승객들을 태운 채 동녘정착지를 떠난 토르스테인의 항해에는 운이 따르는 듯했다.

출항 직후부터 순풍이 꾸준히 불어왔고, 간혹 바다안개가 자욱하게 일 때면 나침반의 힘으로 안개낀 해역을 뚫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작 엿새 만에 일행은 아이슬란드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토르스테인이 돌아왔다는 데 감격한 그의 사촌동생 크리스틴 – 베르겐 사람과 결혼해 레이캬비크에 살고 있었다 - 은 큼직한 연회를 열어주었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환영 연회에서 동녘정착지에서는 꿈도 못 꿀 만큼 많은 술과 치즈, 버터*를 먹고 다들 들떴다. 시그리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막 해가 저물 무렵, 갑자기 날씨가 궂어지고 풍랑이 일어났다.

‘어차피 하지가 지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한 두세 시간만 지나면 도로 해가 뜰 겁니다. 다들 여독이 심할 테니, 우선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짐을 내리십시다들.’

다들 토르스테인의 말에 따라 내심 기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매정한 폭풍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토르스테인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너희가 매우 센 폭풍에 되우 당한 것이라고 첨언이라도 하듯, 폭풍은 레이캬비크 항 일대를 덩달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갔다.

처참한 광경에 그저 모두가 할 말을 잊고 항만만 하릴없이 바라볼 따름.

이 요지경 인간사를 한참 구경하던 리프는 혼란을 틈타 곳간으로 들어가는 생쥐라도 보았는지 어딘가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제 아내 지참금으로 샀다가 유증받은* 배가 한 척 더 있긴 합니다. 그 배를 타면...”

토르스테인의 말에 모두가 희망을 품었다.

“아이고. 어르신! 큰일입니다! 큰일!”

토르스테인네 집안 허드렛일 하는 아랫사람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저기 저 멀리 해변에 반쯤 박살난 채 옆으로 누워 있는 배가 바로 아내의 지참금으로 마련한 그 배라는 비보를 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결국에는 다 같이 망연자실하여 헛웃음만 흘릴 뿐.

“하, 기껏 준비한 예물도 죄다 가라앉았고요. 거 참.”

“신부님, 왕을 만나러 갈 때 꼭 예물을 들고 가야 하는 것이오? 그 사람 부자라면서.”

“꼭 들고 갈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여왕 폐하든 국왕 폐하시든* 우리 동녘정착지의 – 솔직히 인정합시다 – 보잘것없는 예물에는 큰 감흥을 못 받으셨을 테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예물이 없으면 알현 절차는 거의 무기한으로 연기되기 십상입니다. 어지간히 귀한 예물이 아니고서야 대개는 도중에 적당히 처분되기 마련이고, 그 처분되는 몫은 그대로 궁정 사람들에게 돌아가거든요.

그러니 예물과 같은 효험을 얻기 위해서는... 쉽게 말해 돈이 꽤 많이 들 겁니다. 우리가 쓰는 바드말 옷감 따위가 아닌, 진짜 금화로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가 엄연히 그린란드를 대표해서 온 사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아니, 어렵겠구나.”

시그리드가 뭔가 말하려다가 단념하고는 말꼬리를 잘랐다.

세상 끄트머리의 아무 값어치 없는 땅 그린란드. 그린란드 대표라는 자격의 무게도 그만큼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설령 시그리드가 당당하게 로스킬데의 궁정 앞에서 그린란드의 자주독립을 선포하더라도, 궁정에서는 그저 으쓱하고 말 것이다.

“다른 배는 없나요?”

마구 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던 토르스테인에게 시그리드가 물었다.

“있기야 하지요. 있기는. 하지만 고작해야 근해를 돌아다니는 게 전부인 고기잡이배로는 덴마크는커녕 페로까지도 못 갑니다.

애초에 아이슬란드에도 크노르는 몇 척 없어요. 이를 어쩐다...”

한때 그들 북녘 사람들은 이곳 바다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아스라이 옛이야기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무가 가득한 그들의 고향 땅의 선공船工들은, 옛날의 붉은머리 에이릭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국왕을 위해 배를 만들었다. 그 배는 먼바다를 거침없이 나아가는 배가 아니라, 돈이 흐르는 길목, 발트 해와 북해 연안만을 다니는 그런 배였다. 그리고 그 재주마저도 남쪽 사람들에게 따라잡힌 지 오래였다.

그러니 배를 만들 목재가 부족한 것은 그린란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아이슬란드로서도 속절없이 시대의 야속함을 한탄할 뿐이었다.

“일단은 이 손해를 어떻게 메울지부터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우리도 사라진 예물을 대신할 뭔가를 준비해야 할 테니까요.”

“허나 무얼 어떻게 준비한다는 말입니까? 남은 게 없는데.”

“다행히 아직 우리에겐 팔 만한 상품이 하나 남아 있지요.”

“아, 나침반! 그렇지!”

토르스테인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이곳 아이슬란드의 유력한 집안 자제답게, 금방 머릿속으로 계산이 이루어졌다.

“아버지께 문안인사를 다녀오는 길에 장사 밑천을 빌려오도록 하지요. 헌데 그 나침반이라는 것, 번개가 쳐야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건 어렵지 않아요. 그땐 동녘정착지에 철광이 없어서 그랬던 거고, 여기서는 벼락을 맞은 자철석만 찾으면 되거든요.”

사람이 벼락을 불러내는 그 엄청난 광경을 보고서, 나침반이라는 기물에 대해 뭔가 엄청난 환상을 품었던 토르스테인은 자기 안의 뭔가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허나 지금은 그런 치기어린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가만 있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고, 시그리드와 그린란드 사람들 역시 어쨌든 아이슬란드에 닿긴 했다는 데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나쁜 일과 좋은 일이 번갈아 벌어졌다.

먼저 나쁜 소식. 폭풍의 피해는 생각보다도 더 심했다. 멀쩡히 남은 서너 척 배의 주인들 – 대개는 토르스테인과 마찬가지로, 종종 베르겐을 오가는 유력한 집안 사람들 - 은 터무니없는 뱃삯을 불렀다.

다음으로는 좋은 소식. 아이슬란드 전체를 통틀어 수위를 다투는 큰 마을 스칼홀트Skalholt의 성당 아랫마을을 관리하는 아르니 부주교는 ‘물렁한 아르니*’라고도 불릴 만큼 이름난 무골호인이라, 어디서 굴러들어온 기이한 소녀가 아이슬란드 사람 대부분은 듣도보도 못한 기물을 만들어 팔겠다 하자 곧이곧대로 승낙을 해주었다.

스칼홀트에는 아이슬란드에 몇 안 되는 대장간이 있었다. 항상 목재는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의 대장장이들은 가능한 한 불순물 없는 철광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자철석이 어디 있는지 묻기에 이만한 사람들도 없었다.

다시 좋은 일. 나침반 장사는 아주 잘 이루어졌다. 시그리드는 자본주의의 나라 사람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이답게 박리다매 전략을 들고 나왔는데, 먹고살 길이 고기잡이밖에 남지 않아 한 집 건너 하나꼴로 뱃일이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지금의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는 크게 환영할 일이었다.

당초에 이 나침반이라는 기물을 독점해 비싸게 팔고자 했던 토르스테인으로서는 영 아쉬운 일이었지만, 당장 입은 손해를 빠르게 만회할 수단은 이것뿐이라는 시그리드와 파울의 설득에 마음이 동하고야 말았다.

자석만 마련되어 있다면야 새로 자침을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 겨울이 오기 전에 장사 준비가 끝나고, 대장간 옆에 임시로 차린 가게의 문을 열자마자 그곳에는 바드말 옷감의 산이 쌓였다.

다시 나쁜 일. 그러던 와중에 어느 아는체하는 수사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이 놀라운 물건은 북쪽뿐 아니라 남쪽도 항상 가리키는구나! 우리 극북Ultima Thule에서 남쪽이라면, 세상의 중심 예루살렘뿐! 그러므로 이 나침반이라는 물건은 필시 우리의 영혼에도 이로운 물건일 테다. 예루살렘을 한마음으로 가리키는 물건에 어찌 그런 효험이 없겠는가?’

그리하여 수도사와 목동들도 이 나침반을 구하러 스칼홀트로 몰려들게 되었다. 한창 오르던 매출이 더욱 솟구쳐오르는 계기가 되기는 하였으나, 오해를 받기에도 딱 좋았다.

파울 신부가 아침부터 스칼홀트 주교, 노르웨이 사람 욘에게 불려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스베인네 패거리와 시그리드만 남아, 스칼홀트 성당 앞 가게를 지키던 차였다.

“슬슬 뱃삯도 다 마련된 것 같고, 이제 올겨울만 지나면 떠날 수 있겠다. 그렇지?”

‘예루살렘’ 소동도 거의 끝나가고, 매출은 점점 떨어져 갔다. 나침반의 인기가 하락했다기보다는, 아이슬란드 내에 나침반을 살 만한 사람들이 모두 다 사버렸기 때문일 테다. 물론 장사가 끝물이라는 소식은 시그리드와 그린란드 사람들에게는 반길 만한 이야기였지만.

“네, 그렇지요. 폭풍으로 부서졌던 배들도 다들 고쳐졌다고 하니까요.”

성당의 종이 울려, 또 하루의 고단한 일상이 끝났음을 알렸다. 해가 거의 뜨지 않는 이 무렵에는 저 종탑만이 스칼홀트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 지표가 되어주었다.

“덴마크라. 어떤 곳일지 기대되는구나. 이 아이슬란드보다도 더 사람이 많고 흥성하단 말이지? 상상도 안 되는걸.”

덩치가 빙산과 필적하는 서른 즈음 사내가 짓기에는 너무나 순수한 표정이었다.

“그러게요.”

욘의 세계사 강의 때문인지, 아니면 리프를 선물로 받은 날 스노리 노인이 해준 이야기 때문인지, 시그리드 눈에는 조금 다른 것들이 보였다.

인구가 동녘정착지의 스무 배에 달하는 아이슬란드. 그러나 그린란드에서 굶주림이 그러하듯, 아이슬란드에는 죽음이 흔했다. 여건으로 따지면 동녘정착지와 비교가 어려울 만큼 생존에 유리함에도.

아니, 반대일 것이다. 오히려 사람이 살 만하기 때문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참아야 하는 자와 참지 않아도 되는 자의 차이가 더 벌어져 있는 것이리라.

검은 죽음은 사람 셋 중 하나의 목숨을 앗아갔다. 노르웨이와의 교역은 끊어져, 사치품뿐 아니라 이 척박한 땅의 삶에 필요한 물자마저도 부족해졌다.

바다는 거칠어졌고, 가장 숙련된 뱃사공도 안개 자욱한 바다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일이 늘어만 갔다.

나침반이 그토록 많이 팔려나간 건,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설령 아이슬란드 육지가 보이지 않는 먼바다로 나갈 일 없는 이들일지라도,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는 무언가 의지할 게 필요했을 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시그리드가 간혹 느끼곤 했던 이질감, 나침반 사러 온 아이슬란드 뱃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는 그 미묘한 긴장이 다 설명되지 않았다.

스베인의 목소리가 시그리드 머릿속 생각의 흐름을 끊고 들어왔다.

“그나저나 조금 아깝기는 하다. 기껏 마련한 이 많은 바드말을 죄다 뱃삯으로 줘야 한다니.”

토르스테인이 아버지 올라프의 힘을 빌어 어떻게든 협상을 해보려 했지만, 멀쩡한 크노르를 꽉 쥐고 있는 다른 귀족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사람 적은 이 아이슬란드에서, 시그리드 일행의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사정 급한 사람에게 많이 뜯어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파울 신부가 근래 스칼홀트와 북쪽 홀라르Holar 두 주교들 사이를 부쩍 자주 오가는 것도 어떻게든 뱃삯을 깎아보려는 뜻에서였다. 그런 차에 갑자기 나침반을 두고 이단 소리 듣기 좋은 소문이 나도니 어마 뜨거라 하며 주교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뭐, 덴마크에서는 또 살 길을 따로 알아봐야겠죠. 혹시 아나요, 정말로 우리 리프 덕에 곧장 여왕님 눈에 띌 지도.”

옆에서 이름 모를 고기를 뜯어먹던 리프가 제 이름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들곤 푸드득 지붕 위로 올라섰다.

“그래서 말인데... 실은 나랑 콜그림 둘이서 일전에 술 한 잔 걸치러 갔다가 술집 어두운 구석에서 묘한 얘기를 들었다.”

느닷없이 스베인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묘한 얘기요?”

“쉿! 누가 들을라.

누가 콜그림을 어설프게 벗겨먹으려고 하길래, 역으로 그놈 가죽을 벗길 것처럼 내가 겁을 주었걸랑. 그랬더니 아 글쎄, 우리네 말투가 다른 걸 듣고* 우리가 잉글랜드 사람인 줄 착각했다는 것 아니냐. 조금 더 겁을 주니까 술술 불더라고.

여기 아이슬란드 말이다. 겉보기엔 아이슬란드 사람들과 노르웨이 사람들만 오가는 것 같지만서도 실제로는 엉뚱한 동네 사람들이 제법 오가는 모양이더라. 한 십 년 전에 헤르욜프스네스에 들렸다는 바스크 사람들은 여기는 거의 이삼 년에 한 번씩 오고, 잉글랜드 사람들은 아예 철마다 고기잡이도 하고 물건도 팔러 찾아온다는데.*”

바스크와 잉글랜드가 각각 어디 있는지, 시그리드의 머릿속에 금방 그려졌다.

이 무렵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원양어업, 훗날 뜻하지 않게 대항해시대의 초석이 되는 시대의 변화가 벌써 아이슬란드까지 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몰래 할 얘기가 되나요?”

“그게 법이라더라. 아이슬란드의 모든 교역은 베르겐 상인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아이슬란드로 들어가는 모든 유럽의 물자는 그 베르겐이랑 친하다는 한자인지 한스인지 하는 상인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던데.

그리고 아이슬란드를 꽉 쥐고 있는 저 잘난 체하는 놈들 – 혈통으로 따지자면 우리랑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 은 베르겐 상인들하고만 교역하고 다른 곳은 틀어막는 조건으로 꽤 섭섭잖은 벌이를 하는 모양이더라. 우리 토르스테인네 집안도 별반 다를 건 없고. 뭐, 지금 우리에게 그리 중하진 않은 얘기다.

한 번 그쪽으로도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 듣자하니 코그Cog인가 뭔가 하는 그 잉글랜드 배는 우리네 크노르랑 다르게 풍랑에도 가라앉지 않는다더라. 나는 너를 도와 죗값 갚기로 한 사람이니, 네 뜻에 따르마.”

솔깃한 이야기였다. 문득 시그리드 머릿속에, 이 기회에 아예 빈란드를 오갈 배를 구할 인연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크노르는 난바다 헤치고 다니기엔 미덥잖을 뿐더러 너무 작았으니까.

그 생각에 열중한 나머지, 시그리드는 잉글랜드 사람들의 존재가 던지는 또 다른 함의를 한 발짝 늦게 떠올리고야 말았다.

“잠깐만요. 풍랑에 가라앉지 않는다고요?”

“어. 브리스톨인가 어딘가 하는 남쪽 항구에서 여기까지 곧장 오간다는데.”

검은 책 어딘가에도 적혀 있을 욘의 세계사 강의.

나침반의 기원은 중국이었고, 몽골 칸들의 시대에 이슬람 세계를 거쳐 지중해로 유입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이미 나침반은 유럽 대부분에 퍼져 있고, 그 경로의 가장 끝인 북유럽만 예외였을지도 모른다.

나침반을 가진 잉글랜드인. 그 잉글랜드인들의 도항을 막는 노르웨이 왕의 법. 그 법 아래에서 이득을 누리는 베르겐 상인들과 그와 결탁한 귀족들...

갑자기 시그리드 머릿속에서, 말로만 듣던 정치적 갈등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소박한 나침반 장사가, 양쪽 중 어느 하나의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것이라는 사실도.

“이거 어째 느낌이 좋지 않은데요...”

이방인 욘이 종종 입에 올리던, ‘별들의 전쟁’이라는 ‘영화’에 나왔다는 말을 끝내 하고야 마는 시그리드였다.

그러기 무섭게, 리프가 지붕에서 뛰쳐올라 하늘을 맴돌았다.

그러고는 시그리드 팔에 내려와 시끄럽게 울었다.

“시그리드야. 뭔가 수상하다.”

스베인도 저의 도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들아! 연장들 챙겨라!”

쇠붙이가 귀한 그린란드에서 연장이란 곧 무기요. 무기란 곧 연장이었다.

곧 콜그림 이하 여덟 사람이 모두 시그리드 앞에 섰다.

어두운 겨울 하늘 아래로, 스칼홀트 교회 쪽에서 무장한 일군의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왕 폐하와 그분의 신의 있는 시민들의 이름으로, 너희 간사한 무리를 정죄하러 왔다!”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끼던 마을 사람들은 우르르 옆으로 비키든 집안으로 도망치든 하고, 가게 옆 대장간 사람들도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뒷문으로 향했다.

“나는 브라타흘리드 농장의 주인, 라그나르의 아들 스베인이다! 간사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스베인이 저쪽 사람들 외침을 묻어버릴 만큼 우렁차게 물었다.

허나 저쪽도 거친 아이슬란드에서의 삶을 견뎌내며 오늘까지 살아남은 사내들이었다.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듯한 응답이 돌아왔다.

“너희 무리가 오래된 약속, 노르웨이 왕과 우리 아이슬란드의 약조를 어긴 범법자들과 모종의 접촉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너희가 정녕 떳떳하다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라! 그렇지 않다면 당당히 죄의 대가를 받아라!”

“하나, 둘, 셋.... 열넷. 얼추 상대는 할 만하겠구만. 저쪽 교회 안에 들어가 있을 파울 그 샌님이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 뭐, 교회의 신이 알아서 잘 지켜주겠지.”

그러나 스베인도 사람을 상대로, 그것도 무리지은 전사들 상대로 싸워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긴장을 허세로 덮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그리드, 너는 여차하면 그대로 도망쳐라. 일단은 내가 나서서 교섭이라도 해 볼테니.”

그래놓고는 외치기를,

“무죄의 증거는 신의 가호로써 입증하겠다! 자, 와 보거라!”

하였다. 신의 가호로 입증하는 무죄란, 결국 한판 싸워보겠다는 뜻.

자신이 모르는 새 ‘교섭’의 뜻이 바뀌었는가 의심하는 시그리드에게, 스베인은 ‘이렇게 강하게 나가야 저놈들도 좀 쫄아서 얘기가 통하지 않겠니’라는, 하등 신뢰 안 가는 대답을 했다.

결과적으로 스베인의 이 의심스러운 협상 기술의 효과는 과학적 검증을 피해가게 되었다.

때맞추어 북서쪽, 레이캬비크 쪽 길을 따라 또 다른 무리 하나가 우르르 몰려오더니, 외치는 것이었다.

“이런, 늦지 않아 다행이로군! 여왕 폐하와 그분의 선량한 백성들의 이름으로, 너희 신의 모르는 족속이야말로 멈추어라!”

“그러는 너희는 누구냐?”

레이캬비크 쪽 무리 가운데서 사람 좋게 생긴 배불뚝이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이바르의 아들 비그푸스 총독hirdstjori이시다, 이 잡것들아!”

“아니, 나리께서 여긴 웬일이십니까? 저희는 노르웨이 사람 욘 주교 예하의 명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총독은 나인데 너희가 무슨 왕명이니 국법이니 논하느냐?”

“그러는 총독이시야말로 무슨 권한으로 이곳 스칼홀트에 관여하십니까?”

자신이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바깥 세상의 이치가 눈앞에 펼쳐져 혼란을 이기지 못한 스베인이 물었다.

“저기, 시그리드야. 혹시 덴마크의 여왕이라는 사람이 둘인 거냐? 왜 똑같이 여왕 운운하는데 둘이 싸우려는 거지?”

그러나 시그리드로서도 어리둥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래도 바깥 세상의 복잡괴기함은 자신이 예상하던 것 이상인 모양이었다.

--- *** ---

* 실제로 지금도 종종 허리케인이 난류의 힘을 빌어 아이슬란드 근해까지 북상하곤 합니다. 기네스 북에 오른 기록으로는, 1966년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페이스Faith가 카리브해에서 방향을 틀어, 그대로 노르웨이 서해안을 관통하고 북위 83도 지점까지 북상한 사례가 있습니다.

* 중세 아이슬란드 관례법상, 신부의 지참금은 신부 소유였습니다. 따라서 어지간한 결혼에는 지참금 명세서를 겸하는 계약서가 (이론상) 함께 작성되곤 했지요.

* 작중 시점 칼마르 동맹의 공식 군주는 포메른의 에릭이지만, 실질적 군주는 마르그레테입니다. 이는 동맹에 지나치게 엮이는 것을 꺼린 스웨덴과 노르웨이 귀족들이 마르그레테가 덴마크뿐 아니라 자국의 왕위까지 공식으로 계승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고대와 중세 북구 식문화에서 유제품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중세 그린란드에도 최후의 순간까지 어떻게든 소를 키우려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지요. 완전히 적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얼추 한국인이 쌀을 생각하는 것처럼 유제품에 집착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 중세 북유럽에서 주로 쓰였던 제철의 원료는 소철(沼鐵, bog iron)이었습니다. 물에 용해된 철을 산화시키는 철세균이 늪지대에 서식하며 만들어내는 소철은, 빙하 지형 특성상 늪과 호수가 많은 북유럽에서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 아르니 올라프손 주교는 실존인물로, 왕실과 연줄이 깊이 닿은 유력가문 출신입니다. 아이슬란드 총독을 겸한 최초의 주교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람됨이 도저히 ‘아니오’를 못하는 성품이라, 이런저런 자선사업에 재정을 헤프게 쓰는 바람에 1420년 주교좌 재정을 파탄낸 책임을 지고 물러납니다. 아이슬란드의 연대기에는 그의 별명이 ‘온후한 아르니Arni the Mild’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아이슬란드에 영국인들이 최초로 방문한 것은 공식적으로는 1412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밀무역 형태로 非한자동맹 출신 상인들과의 교역이 이루어졌던 흔적이 아이슬란드의 많은 피요르드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리처드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영국 상인이 기록상 최초로 아이슬란드를 방문한 후, 바로 이듬해인 1413년에 영국 어선과 상선 30척이 우르르 몰려오기도 했지요. 1412년의 방문이 진짜 첫 번째 방문이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기민한 움직임이라 하겠습니다.

영국인들의 등장은 그 전까지 한자동맹과 결탁한 베르겐 상인들이 전담하던 아이슬란드 대외교역을 흔들어놓았고, 가뜩이나 흑사병과 기후변화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아이슬란드는 한동안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서유럽 원양어업의 발전과 겹쳐, 이 갈등은 ‘최초의 대구 전쟁Cod war’이라고도 불리는 노르웨이 대 영국의 알력으로 비화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장에서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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