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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바이킹-8화 (8/116)

험한 물 위의 다리 (2)

2. 험한 물 위의 다리 Bridge Over Troubled Water (2)

척박한 아이슬란드에서 나는 것이라면, 고작해야 근해에서 잡히는 생선과 양모로 자아내는 바드말이 끝이었다. 조금의 사치라도 부리고 싶다면 교역에 의존해야 하는 판이었는데, 그나마 다행히 바드말은 그럭저럭 값을 받을 수 있는 교역품이었다.

약 백오십 년 전, 오랜 다툼에 지친 아이슬란드 자유국의 추장들이 노르웨이 왕과 복속의 조약을 맺을 때의 일이었다. 노르웨이 왕은 이제는 추장이 아닌 귀족이라 불리게 될 가문들을 위해 매년 여섯 척의 무역선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 뒤로 노르웨이의 상권은 한자 동맹의 손에 넘어갔고, 아이슬란드의 모든 무역은 한자 동맹의 후원을 받은 노르웨이의 베르겐 상인들이 그대로 차지하게 되었다.

약삭빠른 상인들은 아이슬란드 귀족들이 아이슬란드 내 이권의 파수꾼 역할을 하게끔 만들고자 했고, 그렇게 서로 이익이 되는 거래가 시작되었다. 여섯 척 공무역선과 베르겐 상인들이 가외로 띄우는 사무역선은 모두 귀족들 소유의 항구에서만 거래했고, 대신 귀족들은 노르웨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오는 상인들을 모두 막아주었다.

“... 하지만 오십여 년 전부터는 그게 바뀌었단다. 국왕의 배는 한 해 여섯 척에서 점점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두 해에 한 척, 세 해에 한 척꼴로 오게 되었지.

이 척박한 땅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교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약조를 먼저 어긴 것은 국왕이다. 국왕이 먼저 의무를 등한시했는데 우리는 대놓고 충성을 거두는 대신 알아서 활로를 찾으려 하고 있으니 이것이 신의 아니면 무엇이겠니?”

흥분을 가라앉힌 비그푸스 총독이 말했다.

스칼홀트 성당 앞 대장간에서 대치하던 총독의 부하들과 주교의 수하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눈치 보던 스베인과 그린란드 사람들 사이에 시그리드가 끼어들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 이야기하자고 한 지도 벌써 삼십 분쯤은 지났다.

스칼홀트 주교 욘의 아들로, 그의 명을 받아 부하들을 거느리고 왔던 페투르는 영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에야, 힘으로 찍어누를 수 없으니 부득불 대장간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었지만, 반 시간 내내 비그푸스가 저의 이야기만 하고, 저 순진해 보이는 소녀는 연신 추임새 넣으며 비그푸스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을 보니 어째 저도 질 수 없다는 느낌이 막 들었던 것이다.

“다른 길이라! 그냥 잉글랜드 놈들에게 빌붙는다고 당당히 말씀하시지요! 총독이라는 분께서 국왕과의 약조를 저버리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아니면 이미 잉글랜드에 충성심을 팔아넘기셨습니까?”

“뭐라고? 네놈 말 다 했느냐? 이 애송이가...”

“시그리드라고 했더냐? 여기 이 총독의 말은 들을 것 없다. 잉글랜드 놈들이 어디 정말로 물건만 팔러 오겠느냐? 보나마나 무역은 핑계고, 그나마 우리가 연명하게끔 해주는 바다의 생선을 싹쓸이하러 오겠지!”

“자, 자. 진정하시고요. 그런데 그것과 우리네 나침반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관계가 있고말고! 우리 주교 예하께서는 이 나침반이라는 물건의 내력을 수소문하신 끝에 그 정체를 알아내셨다. 네가 이 나침반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것은 거짓이고, 실제로는 잉글랜드 사람에게 제조법을 전수받은 것이겠지! 너희 그린란드 사람들은 잉글랜드의 앞잡이로서 이곳에 왔고. 그렇지 않으냐?”

‘검은 책에서 읽은 비법으로 벼락의 힘을 빌려 나침반을 만들었다’라고 밝힌다면 바로 마녀 소리를 들을 것이라는 점은 시그리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욘은 영국인의 후예기도 했다.)

더구나 저 말투로 미루어보건대 나침반의 진짜 출처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비그푸스 총독과 그 뒤의 사람들, 오지 않는 노르웨이 배를 기다리는 대신 새 활로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견제할 빌미가 필요했을 뿐이었고, 시그리드의 나침반은 딱 좋은 부싯깃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요?”

“그러니 죄를 실토하거라. 너 같은 소녀야 이런 일에 멋모르고 끌려들어왔을 테니, 죄가 있다 한들 얼마나 무겁겠느냐? 너희 우두머리 하나만 책임을 지면 될 터.”

명목상 그들 사절단의 수장은 할바르의 아들 파울 신부였다. 동녘정착지에서 보낼 수 있는 사람 중 가장 그럴듯한 자격을 지닌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제야 하필 파울 신부가 주교를 만나러 간 사이에 이들이 들이닥친 게 그저 불운의 소산이 아님을 깨닫는 두 사람이었다.

“흥, 죄는 무슨 죄! 주교와 소위 명문가 사람들끼리 뭔가 수상쩍은 공모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고작 이 바늘쪼가리 하나를 가지고 없는 죄를 만들려 하다니 참 궁색하군그래. 나와 내 부하들이 때맞춰 온 이상 이 사람들을 끌고 갈 수는 없을 게다.”

비그푸스 총독이 가슴을 툭툭 치며 호언했다.

머릿수로 따지면 총독이 끌고 온 이들이 조금 더 많았다. 거기에 스베인의 무리까지 합하면 서른이 넘었다. 이만하면 인구 삼만에 불과한 아이슬란드에서는 나름 큰 규모였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총독 나리께서 이들 그린란드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치신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방금 전의 흥분을 조금은 가라앉힌 페투르가 냉정한 말투로 딱 잘라 협박했다.

“라그나르의 아들 스베인. 비요른의 딸 시그리드. 잘 들으시오.

지금 당장 총독과 함께 스칼홀트를 떠난다면 추격하지는 않겠소. 그러나 잊지 마시오. 사흘. 사흘 안으로 스칼홀트에 출두해 죄를 자백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스베인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교회의 사람을, 그것도 성직자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 허나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오.”

파울을 고문해서라도 저들이 원하는 바를 쥐어짜낼 수밖에 없다는 말일 테다.

“아이슬란드의 유력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옛 약조에 충실할 뿐이오. 그리고 이 섬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모든 배편은 그런 집안들의 손에 있지.

물론 여기 계시는 우리의 총독 나리께서는, 어쩌면 어딘가 후미진 피요르드에 영국 배 한 척쯤 감춰주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배를 타고서 도망친다면 그대들의 혐의만 입증하는 셈 아니겠소?”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페투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그리드에 대한 일말의 연민인지, 혹은 보다 죄악에 가까운 다른 이유에서인지, 한 번 시그리드를 돌아보기는 했으나, 딱 그뿐이었다.

“너희 사정은 딱하게 되었지만, 여기 스칼홀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구나. 우선은 물러나는 게 좋겠다.”

정황이 이러하니 비그푸스 총독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린란드 사람들은 몇 달간 그들이 머물던 스칼홀트를 떠나야 했다.

총독이라는 거창한 직함에 비하면 누추하지만, 동녘정착지의 여느 집에 비하면 궁궐과도 같은 비그푸스의 저택longhouse은 레이캬비크 외곽에 있었다.

“토르스테인 그놈은 코빼기도 안 비추는군. 하기야, 우리가 벌어놓은 바드말이 어디 다른 데 가진 않을 테니까. 한바탕 폭풍 지나간 다음에 주섬주섬 챙겨가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스베인이 툴툴거렸다.

“너무 그 사람을 미워하진 마세요. 집안이 집안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섭섭함 가득 묻어나는 말투로 시그리드가 답했다.

처음 비그푸스네 집에 닿았을 때, 스베인은 알팅그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해보는 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허나 그 알팅그의 힘이 예전 같지 않기도 하거니와, 당장 거기서 목소리 낼 사람은 죄다 저쪽 편, 그러니까 노르웨이 사람들과 인연이 깊고도 깊은 유력자들밖에 없다는 비그푸스의 답을 듣고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토르스테인의 아버지 올라프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테다. 어떻게든 그들이 살아온 방식을 바꿔야만 하는 그린란드 사람들과는 달리, 토르스테인은 지금껏 자신이 나고 자란 그 삶의 굴레를 벗어던질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가 그린란드 사람들 편에 서지 않는다 하여 탓할 수 있을까. (섭섭하긴 많이 섭섭했지만서도.)

“그럼 이제 어쩌지? 사흘, 사흘이라... 그 책에서 뭔가 도움을 구할 수는 없을까? 벼락을 또 불러내서 스칼홀트의 교회를 때려부순다든가.”

시그리드의 검은 책은 콜그림의 재판이 열린 그날 팅에 참석한 이들만 아는 비밀이었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그 책 안에 무언가 엄청난 것이 적혀있다고들 수군대곤 했는데, 이는 스베인을 따라 넓은 세상으로 나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파울 신부와 스베인처럼, 시그리드가 검은 책을 뒤적거리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이들은, 함부로 책을 만지기는커녕 가까이 가는 것조차 은연중 두려워할 정도였다.

허나 다행히도 지금은 주변에 그런 호들갑 떠는 사람도, 또 비밀을 누설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매서운 바닷바람이 피요르드를 오르내리는 소리가 바깥에 나돌 뿐.

“이 책에는 무슨 대단한 마법이 담겨 있는 게 아니에요.”

“마법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엄청난 지식이 담겨 있는 건 맞잖냐. 더구나 지금 우리에게 믿을 구석은 그 책뿐이기도 하고.”

비그푸스는 우선 저의 모든 연줄과 언변을 동원해 사흘 안으로 저의 편을 모아보겠다 했지만, 저 자신도 딱히 확신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야속하긴 하다. 아니, 노르웨이 왕이 약속을 어긴다면 당연히 다른 데 알아봐야지, 참.”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솔직히 주변사정을 주워듣다 보니 오히려 비그푸스보다 귀족과 교회 사람들의 주장이 조금 더 일리가 있지 않은가 내심 느끼는 스베인이었다.

비그푸스와 그의 수하들은 그런 논리를 내세워 여기저기 설득하고 다녔지만, 귀족과 교회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 즉 잉글랜드 사람들이 교역을 빌미로 저들의 그 잘난 코그 배들을 이끌고 들어와 주변 어장을 모조리 쓸어가면 아이슬란드는 그대로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비하면 힘이 많이 달렸다.

더구나 잉글랜드는 양모가 많이 나는 땅. 같은 양모로 만든 바드말을 팔아서는 이익을 올릴 수 없으니 훈제한 생선으로 값을 치르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그만큼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식량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우리 그린란드 사정이 속 편한 점도 있다. 다들 얼어죽을 위기에 처하니까 어떻게든 변해보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잖냐. 여기 아이슬란드는 딱 아슬아슬하게 굶어죽기 직전, 거기에 간당간당하게 걸쳐 있으니 뭔가를 바꿔보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나는 거겠지.”

스베인은 문자와는 별 연이 없는 우락부락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눈치가 예리했다. 이는 파울 신부도 – 싫은 기색 역력히 내면서 –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들은 시그리드 머릿속에도 뭔가 번개가 번뜩하는 듯하였다.

“바꿀 엄두가 안 난다... 그렇지요!”

“뭐가?”

“바꿀 엄두가 안 나는 건, 결국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 아니겠어요?”

욘은 그렇게 말했다.

왜 ‘중세인’들은 변화를 두려워했을까? 실제로 그들에게 변화라는 것은 두려워할 만한 무언가였기 때문일 테다.

지금의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근해 어장의 생선이 부족할 것을 두려워하지만, 아이슬란드 연안의 대구는 먼 훗날 대구 전쟁Cod War*이 벌어질 때까지도 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 방법은 없고, 다만 죽음과 굶주림만을 너무나 잘, 너무나 가까이서 접할 뿐.

미지로 가득한 세상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지식은 불완전했고, 그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는 길 또한 험난했다. 그 혼란을 다스리는 방법, 그들이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오늘 아침까지 명을 붙일 수 있도록 해주었던 익숙한 질서. 그들의 부모와 부모의 부모들이 따랐던 그 옛 질서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한 번 질서가 흔들리면, 항상 한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사회는 금방 어딘가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교훈을 잊을 만할 때면, 전쟁과 역병이 찾아와 이를 상기시켜주곤 했다.

그러므로 변화라는 것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한 기회주의자 몇몇, 그리고 전혀 그럴 의도 없이 딴짓을 했던 몇몇의 손발이 엉키고, 뜻하지 않은 결과에 또 뜻하지 않을 결과가 꼬리를 물었기에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욘은 미래에서 왔다고 했지... 아! 그렇다면 훗날의 승리자들의 비법을 욘은 다 알고 있었겠구나!”

얼추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는지, 스베인이 손뼉을 쳤다.

“좋다. 그러면 얼른 그 책을 펴서 읽어보려무나. 내가 밖에서 망을 볼 테니.”

시그리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문이 다시 열렸다.

“오, 뭔가 수가 나온 게로구나.”

“네, 비그푸스 총독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뭘 하게?”

“잉글랜드 사람과 공모한 혐의를 받게 되었다면, 꼭 그 잉글랜드 사람과의 공모를 해보아야 덜 억울하지 않겠어요?”

아이슬란드는 잉글랜드 전체에 필적할 만큼 거대한 섬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의 수는 다 합쳐도 런던 한 곳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의 혹은 아예 없는 피요르드가 허다했고, 개중에는 정말 꽁꽁 숨겨놓은 듯한 후미진 곳도 꽤 있었다.

마치 전능하신 하느님과 상인들의 수호성인 성 호모보누스Homobonus의 가호가 깃든 듯한 이 피요르드에서, 잉글랜드인 밀수업자 리처드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신이 종종 거래를 하는 비그푸스 총독의 아랫사람과 함께 이 후미진 피요르드에 찾아온 소녀는 지극히 괴이쩍은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였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 어, 반갑습니다. 브리스톨 사람 리처드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명백히 영어는 영어였으므로, 리처드는 살짝 경계하면서도 약간은 반가운 마음으로 이 기묘한 손님을 맞이하였다.

더구나 그의 상식으로 판단하기에, 소녀가 그린란드라는 먼 땅에서 홑몸으로 올 정도라면 귀한 집 여식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딱 보아도 기이한 용모에, 더욱 기이한 동반자들까지. 그가 지금껏 본 사람 중 가장 덩치가 큰 장사와, 이름은 몰라도 어지간한 배 몇 채는 살 수 있을 것만 같이 고귀한 자태를 자랑하는 흰매.

그러므로 리처드는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저게 타고 오신 배인가요?”

피요르드 한 구석에 떠 있는 배는, 시그리드에게 익숙한 크노르의 형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것이 아마 말로만 들었던 코그Cog 선일 테다.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 기준으로 딱히 모자랄 것 없었다는 토르스테인의 크노르보다도 훨씬 컸지만, 그럼에도 어째 욘이 묘사하던 대항해시대의 범선들보다는 영 작고 못미더워 보였다.

“네, 맞습니다. 배를 보는 눈이 뛰어나시군요.”

“그리고 저 배에 한가득 교역품을 싣고 오셨을 테고요.”

“알맞은 계절이 돌아오는 대로 브리스톨로 돌아갈 심산입니다. 이렇게 오간 것도 벌써 서너 번은 되었지요.”

“하지만 그때 저 배의 선창에는 딱히 뭔가가 실려 있지 않겠지요. 싣고 오신 교역품은 모두 먹거리로 바꿨을 것이고, 그 먹거리는 지금은 먼바다에서 한창 조업 중일 동업자분들 입으로 들어가 있을 테니까요.”

시그리드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말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리처드는 처음에는 귀를 의심하고, 다음에는 시그리드의 영어 솜씨를 의심하고, 종국에는 말을 버벅이게 되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구를 잡으러 오신 것 아닌가요?

사람들 눈을 피해서 – 아니, 어쩌면 여기 주변 사람들을 싹 매수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 잠시 입항할 때를 빼면 이 배와 함께 아이슬란드로 온 어선들은 계속 바다 위에 머물고 있을 것 같은데요. 저지대 사람들이 개발한 새 방법을 이용해서 갑판 위에서 곧장 염장을 하면서요.

그리고 그렇게 들여온 대구는 헐Hull, 런던, 칼레, 그리고 더 남쪽까지 비싸게 팔려나갈 테고요.”

지금쯤 훈제 청어를 독점하고자 한자 동맹은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고, 포르투갈인들은 원양어선의 선창에 그대로 교역품을 싣고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나아가고 있을 터였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면, 이곳 아이슬란드에 닿은 잉글랜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상인이고, 대구는 사순절 먹거리로만 다루지 따로 잡거나 팔지는 않습니다.”

“잘 들으세요. 저는 그린란드를 대표해서 덴마크 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이왕 가는 길에 청원 하나쯤은 더 할 수도 있겠지요?

예컨대, 아이슬란드의 모든 어업권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위임한다던가요.”

소녀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허황되리만치 굉장한 이야기였다.

날씨는 늘 그렇듯 사람의 관절까지 스며드는 음습한 추위로 가득했지만, 그 와중에도 땀 한 방울이 리처드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특정한 사람들이라 하시면... 잉글랜드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소녀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호의를 베풀 리도, 그리고 소녀의 말 한 마디로 그런 기적이 이루어질 리도 없음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아는 리처드였으나, 저도 모르게 깊은 마음 속 희망이 툭 튀어나왔다.

“잉글랜드 사람들. 아이슬란드 사람들, 그린란드 사람들, 바스크 사람들... 그들 모두를 이르는 말이지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올 수도, 투자할 수도 있는 동업자들의 모임company.”

시그리드가 ‘동인도회사처럼요’라고 첨언하려다가 시대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입을 제때 닫았음을 꿈에도 모르는 리처드였다.

“그, 그런 게 가능하긴 하겠습니까?”

“불가능할 것도 없지요? 지금 잉글랜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두고 막 아이슬란드 곳곳에서 난리가 벌어지려는 참인데, 뭔가 거한 사업 제의를 하기에 이만한 때도 없지 않겠어요?”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업 제의가 열리는 곳이 스칼홀트, 그것도 아이슬란드의 유력자들로 가득 찬 성당임을 알았더라면 재고를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은 저의 미래를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주교 욘의 아들 페투르가 경고한 날, 스칼홀트에 그린란드 사람들로부터의 소식이 닿았다. 자신들이 잉글랜드 밀수꾼들뿐 아니라 소중한 어장을 훼손하는 무리들과도 공모하였음을 이실직고하고자 한다던가.

이미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하고서 스칼홀트 주변에 머물던 유력자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어, 그린란드 사람들과 함께 나타난 잉글랜드 상인을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 *** ---

* 15세기 초 잉글랜드인들의 아이슬란드 유입은 한때 북대서양을 지배하다시피 했던 스칸디나비아 해양세력의 몰락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였습니다. 당시 칼마르 동맹은 일개 용병단 출신 해적이던 급양형제단Vitalienbrueder조차 상대하지 못해 잉글랜드 국왕의 도움을 빌려야 할 정도로 해군력이 무너져 있었지요.

이런 상황이었기에 아이슬란드 내에서는 노르웨이 대신 새로운 교역 상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때마침 나타난 잉글랜드 상인들은 좋은 기회로 인식되었습니다. 반면 칼마르 동맹의 군주 에릭 입장에서는, 아무리 변방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자신의 영토인 아이슬란드가 영향권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환영할 수 없었지요.

아이슬란드 토박이로 당시 총독직을 맡고 있던 비그푸스 이바르손은 독단적으로 영국인들을 받아들이고 교역을 허용하였으나, 이것이 문제가 되어 해임당합니다. 비그푸스의 비호와 그 후임 아르니 주교의 무능으로 인해 1410년대 중반에 이르면 영국인들은 아이슬란드에 거점을 마련하게 되었고, 아이슬란드 내에 상당한 친영 여론도 형성됩니다.

그 결과 15세기 초반에 걸쳐 아이슬란드는 친영파와 친노르웨이파로 갈려 유혈사태와 테러가 이어지는 갈등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칼마르 동맹과 잉글랜드 양측이 여기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갈등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여기에 질린 몇몇 사람들은 아예 알팅그에서 노르웨이든 잉글랜드든 모든 외국인을 추방하자는 안건을 제의하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칼마르 동맹이 먼저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아이슬란드 상권은 한동안 영국 상인들에게 넘어가고, 20세기 후반까지 영국 어선들은 아이슬란드 해역을 자유자재로 오가게 됩니다.

* 유럽 본토로부터 고립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아이슬란드의 기독교 신앙은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도입 초창기에 제멋대로 알팅그에서 교리를 해석하던 것은 약과고, 성직자들의 순결 의무를 ‘법적인’ 결혼만 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풀이해 평신도처럼 가정을 꾸리고 당당하게 자녀들에게 상속 문서를 남기기도 했지요.

* 원 역사의 토르스테인 올라프손은 친영파와 친노르웨이파 갈등 사이에서 후자에 섰고, 모든 영국인을 추방할 것을 청원하는 탄원서를 국왕 에릭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 대구 전쟁Cod War은 1958년부터 1976년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영국-아이슬란드 간의 어업분쟁이었습니다. 15세기 초반부터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조업하기 시작한 영국 어선들은 20세기까지도 제집 드나들듯 아이슬란드 해역을 드나들었는데, 2차대전 이후 국제법이 정비되면서 이를 제한할 근거가 생기자 아이슬란드가 곧장 이를 내세워 영국 어선의 조업을 막아서고 나선 것이지요. 영국 입장에선 단순한 경제적 분쟁이었지만, 산업이 미비하던 아이슬란드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이 분쟁에 아이슬란드는 자국의 가용한 모든 해군력 – 경비정 6척 – 을 동원했고, 영국 군함의 호위를 받는 영국 어선에 경고사격을 하는 등 강경하게 나섬으로써 마침내 영국의 양보를 받아냅니다. 물론 여기에는 소련 잠수함의 대서양 침투를 막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협조가 필요했던 미국의 은밀한 도움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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