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10화 (10/116)

험한 물 위의 다리 (4)

2. 험한 물 위의 다리 (4)

그들의 고향 앞바다에서 끝없이 잡힐 줄만 알았던 고래가 점차 드문드문해지자, 고래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바스크인들은 점차 멀리, 그리고 더 멀리 퍼져나갔다.

그들이 고향에서 쓰던 방식, 해변 곳곳에 감시탑을 세우고 고래가 모습을 드러내면 득달같이 그곳으로 모여드는 그 방식은 먼 바다에 맞게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바스크 사람 프란치스코가 잉글랜드 어선들을 따라와 아이슬란드 근해를 정탐하던 까닭이었다. 아마 그 옛날 – 시그리드는 그때 너무 어려서 잘 기억하지 못했다 – 헤르욜프스네스에 들렸다는 바스크 배도 비슷한 임무를 띠고 찾아왔을 것이다.

“우리는 갑니다, 오크니Orkney 섬, 잉글랜드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곳으로요, 우리들 대장 만나러.*”

여전히 문법이 너무 괴상하여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바스크 사람 프란치스코가 설명했다.

“오크니 섬을 들린 다음에는 확실히 코펜하겐으로 가는 것 맞지요?”

시그리드가 재차 확인했다. 한 번 당한 바가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말투가 사나워졌다.

“네. 오크니 섬에는 고래잡이들 많습니다. 잡은 고래, 기름 짜내고 팝니다. 너무 야박합니다, 한자 도시 사람들은. 그래서 플랑드르 아니면 덴마크 쪽에 팝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날카로워진 어조에 시그리드가 홀로 놀라는 사이,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듣지 못한 프란치스코는 그저 설명을 이어갈 뿐이었다.

“우리 대장 미콜라스, 여러 나라 말 잘 합니다. 그분 만나서 얘기하시지요.”

며칠 후, 시그리드와 그린란드 사람들은 아이슬란드를 떠났다.

비그푸스 총독에게 자신의 계획, 먼저 동녘정착지에 잉글랜드 어선들을 받고, 그곳의 번영을 명분삼아 아이슬란드의 여론도 바꾼다는 그 발상을 감사 및 작별인사와 함께 전한 뒤였다.

처음 아이슬란드에 닿았을 때, 레이캬비크 항에 들어서며 느꼈던 설렘과 기대는, 섬을 뒤로하고 떠나는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들이 아이슬란드로 건너올 때 타고 온 토르스테인의 크노르보다 훨씬 큰 고기잡이배. 그러나 거기에 감탄하는 대신, 시그리드는 그저 뱃전에 기대 멀어져가는 아이슬란드의 피요르드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니?”

스칼홀트에서 겪은 충격에서 조금은 벗어난 파울 신부가 다가와 물었다.

“그간 벌어졌던 일들을 되새기고 있었어요.”

“썩 밝은 표정은 아니로구나.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벗어나지 않았니? 그... 광기로부터 말이다.”

파울 신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큰 손해를 본 것도, 엄청난 실패를 겪은 것도 아니었으니.

몇 개월을 아이슬란드에 머물러야 하기는 했지만, 나침반 장사로 그럭저럭 소득도 얻었고, 우여곡절 끝에 아이슬란드를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다.

“그래요. 하지만...”

“하지만?”

“그 모든 일을 우리는 그저 겪었을 뿐이었잖아요. 우리가 이끄는 게 아니라.”

미래의 지식은 그 자체로는 그저 미래의 지식일 뿐.

나침반이라는, 알고 보니 그렇게까지 미래에 속하지도 않았던 기물이 몰고 올 파장도 예측하지 못했고, 그 파란이 들이닥칠 때 이를 넘어설 수 있는 힘도 지니지 못했다.

대항해시대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원양어업의 발전을 거론하며, 그에 동참하여 큰 이익을 얻을 것을 역설했지만, 그 어떤 논변으로도 이미 완고하게 자리잡은 사람들 마음속 생각의 틀은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린란드보다는 번화하다지만 그래본들 유럽의 변방에 불과한 아이슬란드. 그곳에서조차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여다니는 것이 그린란드의 힘 전부였다. 하물며 스칸디나비아 삼국을 아우르는 로스킬데 궁정에서는 어떨까.

그날 밤,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위에서 얕은 잠이 든 시그리드는 마르그레테 여왕 앞에 서는 꿈을 꾸었다.

가르다르의 성당을 몇십 곱절쯤 키운 듯한 그 차갑고 비정한 전당에서, 시그리드의 상상이 멋대로 그려낸 여왕은 준엄하게 명령했다.

‘네가 만일 정녕 너희 그린란드를 살려내고 싶다면, 너와 함께 온 이교도들을 네 손으로 불태워라. 그리하면 너의 꿈을 이루어주겠다.’

스베인과 콜그림은 체념하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느새 그들 발밑에는 화형을 위한 장작이 가득 쌓였고, 시그리드 저의 손에는 횃불이 쥐여져 있었다.

시그리드는 제 손의 횃불을 버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풀 수 없는 쇠사슬로 손과 횃불이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새 장면은 바뀌어, 역시 저의 두 눈으로 본 적 없는 빈란드.

푸른 들판 위에 개척지가 세워지고, 번듯한 교회와 항구가 자리를 잡는다. 이 시대 어디에도 없을, 미래의 문물이 도시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곳 어디에도 시그리드가 기억하는 그린란드 사람들의 얼굴은 없었다.

이방인 욘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날랜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를 솥에 삶는다더라.’

시그리드가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며, 꿈에든 생시에든 고민하고 고심하는 사이에도 바스크 고기잡이배는 북해 바다를 가르며 남쪽으로 향했다.

오크니 제도의 중심지 커크월Kirkwall에 닻을 내린 뒤, 시그리드와 스베인, 파울 세 사람은 프란치스코의 안내를 받아 항구 근처의 한 술집 겸 여관으로 향했다.

“프란체스코에게 이야기는 들었소. 기푸즈코아 사람 미콜라스요.”

바닷바람 오래 맞은 흔적이 한눈에 들어오는 반백의 뱃사람이, 유창한 북방어Norse*를 구사하며 시그리드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파울이나 스베인이 우두머리일 것이라 여길 줄 알았는데, 제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본 시그리드는 깜짝 놀랐다.

“나는 상식 대신 경험을 믿소. 내가 신뢰하는 아랫사람이 그린란드에서 온 사절단이라는 이들의 우두머리가 흰매를 데리고 다니는 은발 소녀라고 전해온다면, 그리고 실제로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면, 정말로 그 은발 소녀가 우두머리인 게지.”

“열린 마음이라. 요즘 세상에는 드문 가치로군요.”

아이슬란드 유력자들의 닫힌 마음 탓에 고초를 치렀던 파울 신부가 뼈 있는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우리는 변변한 뒷배도 없이 무턱대고 고향 앞바다를 떠나 온 세상을 떠도는 뱃사람들이오. 상식은 우리 같은 이들에겐 사치라오. 믿을 건 눈앞의 현상과 선창에 실린 재물뿐이니.

더구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오? 교황은 둘에, 동쪽 나라를 떠나 방랑하는 황제의 발걸음은 런던까지 닿고, 덴마크의 치마 입은 왕은 세 나라의 임금 노릇을 하는 그런 미친 세상이오*. 그러니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를 무작정 참으로 믿었다간 제 앞가림도 못하게 될 수밖에.”

그린란드 사람들이 시그리드가 팅에서 펼쳐보인 이방인 욘의 지도를 참이라 믿기로 한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 설명이었다.

“그러면 옛이야기 말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군요.”

시그리드가 의자에 앉으며 운을 떼었다.

앞서 프란치스코 앞에서 했던 이야기. 그린란드 일대에서의 대구 조업으로 시작해 아이슬란드로, 나중에는 빈란드로 뻗어나가는 그 웅대한 계획을 설명하는 내내, 아이슬란드에서 한 번 데인 바 있던 시그리드는 미콜라스의 눈치를 간간이 살폈다.

다행히 앞서 자신이 공언했던 것처럼, 줄곧 경청하는 눈치였기에 시그리드는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 그렇게 해서 빈란드부터 아이슬란드까지, 북쪽 바다 전체를 아우르는 거지요.”

“그리고 그 거창한 계획을 위한 후원을 구하려 바다를 건너려다 아이슬란드에서 그 소란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고.”

“네, 그렇지요.”

“덴마크로 가는 배편을 구한다는 것도 그 때문이오? 치맛바람 왕을 만나서 후원을 청하려고?”

“... 일단은요.”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느라 바쁜지, 시그리드의 대답에 회의 가득한 것을 미콜라스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좋소. 어차피 곧 이 주변 해역에서 활동하는 고래잡이 배들을 모은 뒤 덴마크로 우리네 소득을 처분하러 갈 심산이었소. 한자 동맹 놈들이 하도 우리를 벗겨먹기도 하거니와, 아직도 함부르크 주변에는 해적들이 날뛰고 있거든.

이왕 가는 길에 사람 열 명쯤 못 태워줄 것도 없지 않겠소?”

미콜라스가 제 앞에 놓인 맥주를 들이키며 말했다.

“우리 시그리드가 제의한 계획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인내심으로 따지면 세 사람 중 가장 부족한 스베인이 대뜸 물었다.

“그린란드가 어디 붙어 있는 섬인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소. 그리고 그린란드 사람들이 그곳에서 더 서쪽으로 갔을 때 나오는 땅을 종종 입에 올리곤 한다는 것도.

그런 먼 곳까지 나아가려면, 결국 필요한 것은 세 가지겠지. 배, 사람, 그리고 황금. 이 정도는 아마 그대들도 비슷하게 떠올렸을 것이오.

처음에 프란치스코가 따라다니던 그 잉글랜드 사람에게 회사 이야기를 꺼낸 것도 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테고, 프란치스코 녀석의 제안에 순순히 응해 나를 만나러 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오. 그렇지 않소?

배는 걱정 마시오. 장담컨대 배를 만드는 재주는 우리 기푸즈코아나 비스카야 사람들이 세상 그 어디에 비해도 뒤떨어지지 않으니.

대신 다른 두 가지 마련하는 걸 걱정하도록 하시오.”

“황금과 사람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사실 이 세 가지는 서로 돌고 도는 사이요. 바다의 무한한 재보를 얻어낼 사람과 배만 있다면 언제든 황금은 마련할 수 있고, 반대로 황금만 충분하면 어떤 항구에 들리든 쓸 만한 배와 사람을 언제든 구할 수 있거든.

그러니 권력자들의 황금이든, 우리 사는 이 땅에 넘쳐나는 불우한 사람들이든,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모아 오시오. 그쪽이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는 기꺼이 배를 대어드리겠소.

정말로 그린란드와 그 서쪽에 고래와 대구가 무한히 있다면, 못 갈 것도 없지 않겠소? 그리고 어차피 가는 길, 빈 선창에 사람 가득 채워서 가는 것도 못할 일은 아니지.”

단, 황금과 사람 중 무엇이 되었든, 저 대양 건너편에 있다는 그 빈란드라는 땅까지 가서 전초기지를 세우기에 충분할 만큼은 구해와야 할 게요.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 미콜라스는 모든 연줄과 재산을 동원해서 기푸즈코아의 영주와 원로들을 설득하겠소.

저 바다 건너까지 건너갈 수 있는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없을 기회, 저 강력한 국왕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 잡아야 할 기회라고 말이오.”

미콜라스로서는 잃을 게 없는 거래였다. 덴마크까지 배편을 마련해주는 약간의 호의 외에는 미리 지불해야 하는 대가도 딱히 없었고, 그린란드 땅의 존재를 아는 입장에서 그 너머에 있다는 미지의 땅의 존재를 추측하는 것도 그렇게까지 큰 비약은 아니었던 것이다.

적어도, 시그리드가 헤아린 미콜라스의 속내는 그러했다.

그러므로 저를 돌아보는 파울과 스베인 두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시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울은 ‘설마 여기서도 날 납치하려 들겠니’라는 블랙 유머를 곁들이고는 마을 성당에 인사를 드리러 가고, 교회와 연 없는 스베인과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술판에 뛰어들었다.

거친 뱃사람들이 뭍에 올라, 할 일 없이 여관에 죽치고 있다면, 그들이 할 일이야 뻔했던 것이다.

시그리드야 그런 자리에 별 감흥도, 관심도 없었으므로, 리프와 함께 밖에 나와 겨울의 석양이라는, 아직도 영 익숙하지 않은 자연현상을 – 그린란드나 아이슬란드에서 겨울이란 대개 태양과 연이 없는 계절이었다 – 감상하고 있었다.

“생각이 많은 모양이로군그래.”

뒤에서 살짝 혀 꼬인 목소리가 났다. 스베인과 대작하더니, 결국 먼저 거나하게 취한 미콜라스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저 잘나신 한자 도시 상인들이나 영주들과는 다르게 신용 없는 사람들에게도 투자를 감행해야 할 때가 많지. 성공할 공산이 큰 사람들이면 대개 번듯한 쪽으로 가지, 우리처럼 뭣도 없는 놈들에게 협업을 제의하러 오진 않으니까.

그래서 인심 쓴다 생각하고, 뭐 몇 가지 얘기나 더 해주려고 한다. 이왕 함께 돈벌이 계획한 것, 서로 다 잘 되면 좋을 테니 말이야.”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격정이 치밀어오르는지, 미콜라스의 어조가 횡설수설에 가까워졌다.

“저 스베인인가 하는 그 친구랑 술 마시다 보니 꽤 마음에 들기도 했고... 또, 결코- 결코 네가, 엉? 내 딸내미같아서 하는 얘긴 아냐. 전혀 안 닮았어. 그 할미같이 허여멀건한 머리털이며, 푸르딩딩한 눈이며, 멀쩡히 살아 숨쉬는 것 하며...”

여관이 있는 언덕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 그곳에 미콜라스가 먼저 털썩 주저앉자, 시그리드도 조심스레 그 옆에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사이 조금은 격정을 가라앉혔는지, 약간 더 차분해진 말투로 미콜라스가 말을 이었다.

“먼바다에서는 실로 경이로운 현상들을 많이 보게 되지. 나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크라켄이라 부르는 바다짐승도 본 적이 있단다. 사람들 떠드는 것처럼 거대한 고래나 떠다니는 섬이 아니고, 그냥 허우대만 큰 오징어지만.*

한 이삼 년에 한 번씩 우리는 고향에 돌아간단다. 그렇게 돌아가서는, 우리가 보고 겪은 놀라운 일들을 침 튀겨가며 떠들지. 교회부터 술집까지,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는 아이들의 수가 늘지도, 줄지도 않았기를 바라면서 집의 문턱을 밟을 때까지 ”

“그리고 다들 허풍선이 취급을 하겠지요.”

“아가씨, 순진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군그래. 맞아. 열에 아홉은 그렇지. 심지어 아이들조차 ‘저 아저씨 또 시작이다’ 하는 눈빛을 은연중에 품는다고.

헌데 말이야, 간혹 열에 하나쯤은 그런 얘기를 정말 귀담아 듣는 이들이 있거든. 마음이 가난하든, 몸이 가난하든, 어느 한쪽으로든 허기와 갈망에 휩싸인 사람들이지.

나는 그런 사람들의 눈빛이 어떤지 잘 알고 있어. 너희들 그린란드 사람들과 같은 눈빛이지. 그런 이들은 대개, 우리가 귀한 휴식을 마치고 다시 선창가로 향할 때 조용히 우리 뒤를 따라와, 선원이 되기를 청하곤 하고.”

어쩌면 선뜻 시그리드와 그린란드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그저 손해볼 것 없다는 계산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배만 타고 산 사람이야. 바다는 잘 알지만, 뭍이라면 고작 내가 나고 자란 기푸즈코아 바닷가와 몇몇 항구가 내 아는 전부지.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내 눈에 띄는 사람들, 새로운 삶을 꿈꾸든, 새로운 삶에 내몰리든 하는 사람들이 비단 바닷가에만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

미콜라스의 조언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시그리드는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황금보다는 사람을 구하려 노력하는 쪽이 더 타산이 맞을 것이란 말씀이시군요.”

“무식한 뱃사람이 뭘 얼마나 알까. 그냥 아무 말이나 막 던져보는 거지. 히끅! 중요한 건,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은, 바다의 약속을 믿는다는 거지. 바다에서 뭘 원하든, 어떤 삶을 바라든, 배불뚝이 상인들이나 은행가들과는 다르게, 끝까지 신의를 지킨다고. 뭐, 바다를 벗어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여관 안쪽에서 바스크 뱃사람 여럿이 우르르 몰려나와, 아무리 들어도 이질적인 그네들 말로 저들 우두머리를 부른 것은 그때였다.

그러나 미콜라스가 벌떡 일어나 저의 동포들 사이로 사라진 뒤에도, 그가 남긴 취중진담의 울림은 – 술냄새와 더불어 – 시그리드 곁에 계속 남아 있었다.

북해 일대에서 고래를 잡던 배들이 하나둘씩 커크월 앞바다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미콜라스의 장담대로, 해를 넘길 무렵에는 코펜하겐으로 향할 수 있을 듯했다.

그 무렵 시그리드는 스베인에게서 제 한 몸 지키는 법 – 도끼로든, 단검이로든 – 을 막 배우고 있었다.

스베인은 북녘사냥터를 오가며 스크렐링 무리와도 몇 번 싸워본 적이 있었고, 동녘정착지에서는 가장 싸움에 능하다 자처하고 있었다. 그린란드 바깥 세상의 거대함을 깨달은 지금은 조금 겸손해졌지만, 어쨌든 이 남는 시간을 살리고자 하는 시그리드에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막싸움 재주 스승이 되어주었다.

좌우지간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데, 문득 머릿속에 묘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커크월은 그렇게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종종 에딘버러나 헐Hull을 오가는 상선들이 들리곤 했다. (커크월은 동녘정착지 전체를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컸지만, 어느새 바깥 세상에서 해넘이를 하게 된 시그리드의 눈은 꽤 높아져 있었다.)

마침 엊그제 에딘버러에서 스코틀랜드 상선 한 척이 입항했다고 들었던 듯했다.

어느새 시그리드 모습에 익숙해진 커크월 사람들은 백송고리 한 마리와 은발 소녀 하나가 부둣가를 지나가든 말든, 평소의 그 무뚝뚝함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렇게 상인들을 찾은 시그리드는, 그간 아이슬란드에서 벌어들인 바드말을 처분해 얻은 잉글랜드 은화 몇 페니를 내밀고 양피지 한 장을 사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북해 곳곳에 퍼져 있던 미콜라스의 포경선들이 하나둘씩 오크니로 모여들면서, 시그리드네 사람들이 머무는 여관은 점차 바스크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북적이는 식당을 지나 시그리드는 저의 좁은 독방 – 미콜라스의 배려였다 – 으로 돌아왔다.

창문을 열고 그린란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겨울철 햇빛을 맞으며, 시그리드는 저의 짐 깊숙한 곳에서 검은 책을 꺼냈다.

미콜라스의 말이 맞았다.

시그리드가 바라는 것은, 그저 후원을 받아 빈란드에서 살길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그린란드 사람들이 그들 자신으로 남은 채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만약 시그리드가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미래의 지식만을 흥정의 수단으로 삼아 후원을 얻는다면, 결국 그린란드든 빈란드든 그 운명은 시그리드 자신의 손이 아닌, 유럽 땅의 권세에 맡겨지는 셈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고작 열 명에 불과한 그린란드 사람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을 벗어날 수 없던 것처럼. 유럽의 가장자리 동녘정착지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남겨진 그린란드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 운명에 처하리라.

‘황금, 아니면 사람.’

그러므로 사람을 먼저 모아야 했다.

그린란드 사람들이 그랬듯, 바스크 사람들이 그랬듯. 아이슬란드에서도 삶이 가장 고단한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열렬히 나침반에 호응했듯.

마음을 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가장 먼저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밖에 없는 이들을 모아야 했다.

모으고 또 모아 그들의 힘을 하나로 뭉쳐야 했다. 유럽의 그 누구도 함부로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그들을 흩어버리려는 이들에 맞서 뜻을 세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오만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생각에 기꺼이 귀를 열 수 있는 겸손을.

강대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을.

굶주린 자들에게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서 고개를 돌려 더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약소한 자들에게는 낯선 이들에게 저들의 운명을 걸 수 있는 신뢰를.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시그리드는 검은 코덱스를 펼친다.

가르다르의 비탈에서 밤하늘 수놓는 오로라를 바라보던 푸른 눈은 어느새 순수함을 조금 잃었다.

그리고 그 닳아 없어진 자리에는, 얼핏 그 전과 같지만 어딘가 굳세어지고 거칠어진 빛이 차오른다.

펼쳐진 책장 사이에서, 마침내 익숙하지만 단순한 그림 한 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그리드는 그 그림을 뼈대로 삼고, 자신이 기억하는 욘의 가르침과 과학적 원리로써 살을 붙인다.

양피지 위에서 펜은 노닐고, 마침내 설계도 한 장이 그려진다.

욘은 그것을 이렇게 부를 테다.

라이플Rifle이라고.

--- *** ---

* 스코틀랜드 북동쪽에 위치한 오크니 제도는 8세기 말부터 바이킹들의 영국 제도 침공 전초기지로 쓰였고, 그 영향으로 노르웨이 국왕의 봉신인 오크니 추장령jarldom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나 1468년 내홍에 시달리던 칼마르 동맹의 크리스티안 1세가 딸 마르그레트의 지참금을 내지 못하면서 국혼 상대였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3세에 의해 제도 전체가 압류당하고, 스코틀랜드령을 거쳐 영국령이 됩니다. 근대사 및 군사사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의 군항 스캐퍼 플로Scapa Flow가 바로 이곳 오크니 제도에 위치해 있지요.

* 아이슬란드의 북구어Old Norse가 오래된 형태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중세 말부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언어는 점차 분화를 거치며 상이해지게 됩니다. 여기에는 한자 동맹의 상권 장악, 칼마르 동맹 형성에 따른 덴마크어 – 저지독일어의 영향을 점차 깊게 받고 있던 - 유입 등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단, 작중 시점에서는 아직 그러한 언어의 분화가 막 시작하려는 참이기에, 제한적인 소통은 가능했을 것으로 상정했습니다.

* ‘두 교황’은 아비뇽 유수의 영향으로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합법적으로 선출된 교황이 존재했던 서방교회 대분열 - 이후 1409년에는 셋까지 늘어납니다 – 을, ‘방랑하는 동쪽 땅의 황제’는 동로마 최후의 명군으로 평가받는 마누일 2세가 어떻게든 지원을 받기 위해 런던까지 방문했던 일을 각각 지칭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실제로 당대 중세 후기 사람들의 세계관이 흔들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요. ‘치마 입은 왕’은 마르그레테 여왕의 반대파들이 그를 비방하며 퍼뜨린 표현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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