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17화 (17/116)

거칠게 태어나다 (3)

4. 거칠게 태어나다 Born To Be Wild (3)

백송고리 용병단의 천막 깊숙한 곳 궤짝에 감추어져 있는 검은 책 어딘가에는, 지금 시그리드의 앞에서 저의 ‘담대한’ 계획을 털어놓고 있는 얀 지슈카의 이름도 적혀 있을 것이었다.

후스파Hussite 농민들을 이끌고 신성로마제국 전체에 맞서며, 평생 불패의 기록을 남겼던 명장. 기사들의 시대가 끝나고, 화약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군사혁신의 주역*.

어딘가 익숙한 이름과 한쪽 눈을 가린 안대를 본 시그리드는 뒤늦게 그 이름을 떠올리곤, 저의 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한 얀 지슈카에게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이끄는 소박한 용병단은, 다른 보헤미아 용병들과 함께 스트제고미아 연대에 속해 있소. 용병들로만 이루어진 두 개 연대 – 그러니까 덴마크 ‘용병’ 연대들을 제외하면 –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지휘관이 미덥지 않단 말이지. 달레비체의 그니에보시라고, 그냥 연줄이 짱짱해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자요.*”

“그런데 그것과 저희 용병단이 무슨 관계인가요?”

“아가씨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그렇고, 이런 전쟁은 처음인 듯하구려. 용병들 사정에는 아마 밝지 못하실 게요.”

지슈카는 다른 이들처럼 시그리드를 업신여기는 언사를 내뱉는 대신, 저의 수염을 한 번 긁적이곤 설명을 이어갔다.

“어차피 협력해서 서로 얻을 게 있는 사이니까, 처음부터 주변 사정을 다 밝히고 시작하는 게 맞겠지. 들어보시오.”

이 무렵 유럽의 전쟁에서 용병은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전쟁의 꽃이라면, 용병들은 수수한 줄기와 이파리를 이루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그 줄기와 이파리 중에서 어디가 가장 선호되는 자리일까?

“용병들은 결국 전공을 세워서 돈벌이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니까, 맨 앞 아닐까요?”

“절반은 맞았소.

용병들 중에서도 특히 전공이 고픈 이들, 예컨대 돈보다는 명성을 원하는 귀족 집안 출신들이 이끄는 무리는 대개 맨 앞을 바라기 마련이오. 가장 많은 피를 흘리지만, 그만큼 가장 먼저, 혼전이 시작되기 전에 확실하게 공을 세울 수 있거든.

반면 진짜로 돈벌이를 위해 뛰어든 이들은 가운데 열, 한바탕 접전이 벌어진 뒤 승기를 굳힐 때 투입되는 그런 쪽을 더 선호한다오. 전쟁에서 진짜 돈은 급료보다는 몸값과 약탈로 벌어들이기 마련인데, 맨 앞에서 힘들게 싸우다 보면 포로를 잡거나 노략질을 할 여력은 남지 않을 테니 말이오.”

“그러면 맨 뒤는요?”

“당연한 얘기지만, 후열은 싸움에 가장 마지막에 뛰어들기 마련이고, 여차하면 그냥 뒤로 도망치기도 쉽소. 용병들도 이걸 알고, 우리네 고용주들도 알지. 그러므로 후열은 용병들이 가장 꺼리는 곳이오. 대개는 돈이나 명예를 얻으려고 목숨 걸고서 용병 노릇을 하는 건데, 후열에서는 목숨은 쉽게 건사할 수 있어도 다른 둘은 얻기 어려우니까.”

그제야 시그리드는, 처음 얀 지슈카가 말한 ‘용기 있게 후방에 머무는’ 계획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끼리 연대 하나를 새로 꾸린 다음 후방으로 빠지자는 말씀이시군요.”

“역시 말이 통하는구만! 맞소. 이 총이라는 무기는 우리가 후방으로 배치받는 데 완벽한 핑계가 되어줄 거요. 앞서 시연할 때 사람들이 그렇게들 떠들었잖소? 공성전에서나 쓸 만한 무기라고.

그런 무기라면야, 평야에서 회전을 벌일 때는 뒤로 빠져 있는게 맞겠지. 그리고 혹시나 적의 기습에 당하지 않도록 적당히 호위하는 병력도 붙어 있어야 할 테고.

내 아랫사람들 외에도 보헤미아 용병들 중에는 나와 함께하려는 이들이 꽤 있소. 이래 봬도 고향에서는 허명을 조금 얻은 몸이라서. 아가씨만 동의해준시다면, 바로 사람들을 모으도록 하겠소.”

“그런데 지슈카 선생님Meister*께서는 왜 굳이 뒤로 가시려는 건가요?”

“그런 사정이 있소. 나 한 사람이 전공을 얻자고 지금껏 나를 따라온 이들을 죽게 할 수는 없거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얀 지슈카라는 사내가 평생 지켜온 원칙이었다. 그것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헤미아 왕실과의 약속이든, 그 약속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숲 속의 도적으로 전락하였을 때 그의 부하로 들어온 보잘것없는 도적들과의 약속이든.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그저 평범한 도적으로 머물렀을 이들이, 자신으로 인해 보헤미아 국왕 바츨라프와 귀족들 사이의 갈등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지슈카는 그런 약속을, 모두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아가씨도 우리와 똑같은 상황 아니오?”

이토록 참한, 그리고 언뜻 귀족 집안 규수처럼 보이는 여인이 전장에 나올 이유라면, 뭔지는 몰라도 자신과 얼추 비슷한 처지, 그러니까 저의 뜻과 무관하게 집안의 의무나 여타 비슷한 사정으로 전장에 끌려나온 처지이리라 단정한 지슈카가 물었다.

“아닌데요.”

“우리는 전공 세우러 온 것 맞소. 어떻게든 이름을 떨쳐서 아무도 우리 시그리드, 아차, 단장님 하는 일에 함부로 간섭 못하게 하려는 거거든.”

스베인이 단순하면서도 알기 쉽게 요약해준, 백송고리 용병단의 상상도 못한 목적에 지슈카가 또 한 번 수염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그게 습관인 듯했다.)

시그리드는 주변에 혹시나 듣는 귀가 있을까 싶어 휘 둘러보았다. 다행히 다들 시그리드의 총기 시연에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던지라,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거나 하진 않았다.

“아까 목숨을 건사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이번 전쟁이 우리네 패배로 끝나리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승패야 전능하신 신께서 정해주실 일이지만, 싸움의 결과가 어찌 되든 적어도 우리네 용병들 목숨은 위험해질 거라고 판단하고 있소. 우리가 후방에 머문다면 그나마 목숨 건지기에 유리할 테고, 정 판세가 여의치 않다 싶으면 내뺄 수도 있겠지.”

어느새 궤짝까지 하나 가져다 놓고, 호기심에 가득 차서는 그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시그리드의 모습에, 평소 그리 수다스럽지는 않던 지슈카도 어느새 말이 길어지게 되었다.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 두 사람 모두 지재가 대단한 이들이오. 기사단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압도적인 머릿수로 단번에 밀어붙여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의 피해를 주는 것임을 알고 있지. 그리고 그만한 머릿수를 모아서 하나의 군대로 만드는,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고 있고.

하지만 머릿수로 밀어붙인다는 건, 그 머리의 일원인 우리들 용병 하나하나에게는 불길한 얘기일 수밖에 없소.

더구나 인간의 지혜와 재주에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오. 저쪽 기사단은 기사와 독일인 정착민들, 그리고 독일인 용병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반면 우리는 덴마크...”

“그린란드도 있소.”

“그린란드? 맙소사. 듣도보도 못한 곳이로군. 여하튼 그 그린란드부터, 덴마크, 보헤미아, 헝가리, 심지어 저 타타르 사람들까지*,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심지어 신앙도 다른 이들이 하나로 섞여 있소. 까딱 잘못하면 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지.

요지는, 설령 우리가 이기더라도 그 값이 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오. 모든 게 요가일라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야, 회전 한 번 제대로 치르지 않고 이대로 마리엔부르크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중간에 결국 우리의 비밀스러운 행군이 들통나고 기사단의 총 전력이 우리 앞에 나타날 공산이 더 크거든.”

그리고 그 승리의 대가는, 기사들보다는 용병들이 더 많이 부담하게 될 터였다. 기사들과 달리 용병들에게는 몸값을 대줄 탄탄한 집안도, 든든한 갑옷도, 부상을 치료해주고 간호해줄 종자와 몸종들도 없었으니까.

“나는 그린란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가씨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잘은 모르겠소.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가씨가 덴마크 연대를 벗어나 따로 살 길을 모색코자 한다면 우리 손을 잡는 게 최선일 것 같소.”

지슈카는 그렇게 저의 이야기를 마치고, 시그리드의 답변을 기다렸다.

시그리드는 지슈카의 이름을, 그리고 그가 이방인 욘의 과거에서 행했던 놀라운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그의 군사적 재능도.

그런 사람이 곧 닥쳐올 전투에 대해 경고했다면, 귀담아듣지 않는 쪽이 더 어리석을 테다.

하지만 앞서 스베인이 잘 요약해준 것처럼, 그냥 부하들 목숨만 간수하고 돌아가면 그만인 지슈카와 달리 백송고리 용병단은 어떻게든 이름을 떨쳐야 하는 처지였다. 로스킬데와 코펜하겐을 온통 들쑤신 것도 오직 그것 때문이지 않았던가.

“혹시 내일 확답을 드려도 될까요?”

“음, 뭔가 깊은 고민이 있는 모양이로군. 알겠소. 어차피 우리네 군대가 다 모이려면 아직 시일이 조금 남았으니까.”

지슈카가 사람 좋게 웃으며 일어났다.

그날 밤, 백송고리 용병단의 조촐한 막사 한 구석의 궤짝에서 검은 책을 꺼낸 시그리드는 희미한 등잔불에 의지해 얀 지슈카와 그의 행적 – ‘전쟁사’ 챕터에 쓰여 있었다 – 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몇 번 책장을 넘긴 끝에,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해가 막 뜨자마자 몇 개 연대가 더 도착했다. 그 지휘관 중 꽤나 귀한 사람이 있는지, 요가일라가 직접 맞이하러 나가느라 꽤 큰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허나 지슈카의 이름은 보헤미아 용병들 사이에서는 꽤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시그리드는 별 어려움 없이 저의 뜻을 전할 수 있었다.

곧 소식을 듣고 본인이 직접 나타난 지슈카가 확인차 물었다.

“후방에 머물되 전공은 전공대로 세워보자? 그게 정말 가능하겠소?”

시그리드가 내건 조건이 조건인지라, 재차 확인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싸움이 영 어렵게 풀린다면, 후방까지도 싸움이 닿게 되지 않겠어요? 그때가 되면 선생님께서 판단해주세요. 우리들의 힘이 전세의 향방을 결정할 마지막 균형추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요.

만약 우리가 뭘 해도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전세가 기울어 있다면, 그때는 우리라도 후퇴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께서 직접 우리 용병단까지 지휘하면서 전투를 이끌어주세요.”

“그리고 만약 내가 틀려서, 싸움이 후방까지 도달하지도 않고 끝나버린다면?”

“그때에 대비해서 두 번째 조건을 내건 거예요.”

도저히 싸움에서 전공을 세울 방도가 없을 듯할 때, 시그리드와 백송고리 용병단이 그래도 큰 공헌을 했다고 주변에 알릴 수 있는 길.

그러나 그 길의 이정표 노릇을 하는 것은, 아직 이 세상에는 소녀 하나의 머릿속과 책 한 권의 종이 위에만 적혀있는 지식이었으므로, 나름 견식 넓은 지슈카조차 시그리드의 제안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못할 것은 없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오.”

보헤미아 용병들 사이에 널리 퍼진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서, 보헤미아에서 용병들 따라 여기까지 온 주보상인들에게 시그리드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자, 그러면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먼저 악수를 청하는 시그리드였다.

제게 건네진, 언뜻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거친 삶의 흔적이 느껴지는 손을 꽉 잡은 지슈카가 첨언했다.

“단, 그 조건대로라면 나도 한 가지 역제안을 하겠소. 아가씨의 용병단을 내가 지휘하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소?”

“아, 좋은 생각이에요. 일제사격 시험을 보여드리면 되겠지요? 진드람 경께 가서 또 한 번 사격시험을 하겠노라고 허락을 받고 올게요.”

선뜻 고개 끄덕이며, 저의 팔뚝을 횃대로 삼은 백송고리처럼 휘 날아가듯 달려가는 시그리드였다.

그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얀 지슈카에게, 저의 앞날이 장차 저 소녀로 말미암아 재밌게 될 것임을, 그리고 그만큼 골치 아픈 일도 늘어날 것임을 직감했다.

그렇게 출발을 고작 이틀 앞두고, 폴란드-리투아니아군 진영에는 깃발 하나가 늘어났다.

용병 부대인 ‘그린란드 연대’의 가재 문양 깃발이었다. (가재는 지슈카네 집안의 문장紋章이었다.)

연대의 이름이 정해지는 데는, 전공이 필요한 백송고리 용병단을 위한 지슈카의 양보, 그리고 은발 소녀가 쥔 신형 화포에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소녀 자체에게는 궁금함을 느꼈던 요가일라의 사소한 호의가 있었다.

폴란드 왕실과 직계약한 용병들로만 이루어진 성 제르지 연대에서 차출된 장교 몇몇이 – 대개는 연대장인 얀 소콜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무능한 자들이었다 – 명목상의 지휘관이 되었으나, 실제 지휘권이 어디에 있는지는 연대의 이름과 깃발의 문양만으로도 명백하였다.

제법 설왕설래할 만한 일이었으나, 그린란드 연대가 편성된 지 이틀 뒤인 1409년 4월 3일을 기해 폴란드-리투아니아군 전체가 숙영지를 북상하기 시작했으므로, 사람들은 떠들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닷새의 행군 끝에 이 거대한 군세는 기사단국 영토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마을인 바드진을 지났다.

4월 11일, 마침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은 기사단의 첫 번째 거점인 라우텐부르크Lautenburg에 도달했다. 적의 숫자에 절망한 요새 방어군은 마리엔부르크로 급보를 보내기도 전에 항복했다.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지금.

“오늘 안으로 드레벤츠Drewenz 강을 건널 수 있을 게요.”

요가일라가 말 위에서 지도를 접어 곁의 시종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드레벤츠라.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강 하나만 지나면 이제 마리엔부르크까지는 아무런 방해물이 없을 텐데. 맞지 않소?”

곁에서 함께 말을 타고 행군하던 비타우타스가 물었다.

“그렇지. 아직 융잉엔의 울리히 그자는 우리가 멀리 서쪽, 비드고스치에서 쳐들어올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서 쿨름 방면을 지키고 있을 테니, 드레벤츠 강만 무사히 건너면 마리엔부르크까지 우리를 가로막을 것은 사람이든 지형이든 없을 게요.”

“부디 그러기를 기원해야겠군.”

굳이 ‘누구에게 기원하려 하느냐’ 물을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은 요가일라였다. 이미 신앙 그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비타우타스가 동방정교회를 따르든, 서방 보편교회(카톨릭)를 따르든, 아니면 아직도 몰래 번개신 페르쿠나스Perkunas를 믿든, 중요한 것은 교회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과 재물이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기독교와 이교. 평생 그 둘 사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이 진리를, 차마 생각으로 빚어내거나 입 밖에 낼 엄두는 내지 못했으나 가슴 한쪽으로는 알고 있었다.

당장 기사단만 해도 아직껏 요가일라의 개종이 거짓된 것이라며, 폴란드와의 전쟁 – 그리고 동방정교회를 믿는 리투아니아인들에 대한 약탈과 노예사냥 – 을 정당화하고 있지 않던가. 만약 기사단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곧 그 주장이 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기면 그만이었다. 드레벤츠 강을 넘어 마리엔부르크로 직행한다면, 이미 그들이 지나온 라우텐부르크 요새가 그러했듯 마리엔부르크 역시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나저나 내 함부로 무어라 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너무 사절을 많이 주고받는 건 아닌가 싶소. 그 사절들 중 첩자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소?*”

비타우타스가 화제를 돌렸다. 그들이 체르빈스크를 출발하기 전에도, 기사단과의 경계를 지난 엊그제도 양측은 계속 평화교섭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이 전쟁에서 정의가 승리하여 우리가 기사단을 굴복시킨다 할지라도, 서쪽의 황제와 교황들에게 이 승리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평화교섭은 거대한 위선이었다. 저들은 평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부득이하게’ 상대의 악덕과 배신으로 말미암아 전쟁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노라 나머지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잘 짜인 연극.

선뜻 중재에 나선 헝가리 왕 룩셈부르크의 지기스문트도, 그의 사절이 저의 진중에 방문할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며, 가여운 백성의 고통에 가슴 뜯으며 고통스러워하고, 평화의 회복을 기도하는 요가일라와 기사단장 울리히도, 그 거대한 위선을 위해 함께 뛰노는 배우였다.

‘따지고 보면 지난 이백 년간 우리를 괴롭혀온 신앙의 문제도 그런 류의 위선 아닌가?’

툭 튀어나온 불경스럽고도 두려운 생각에, 요가일라는 저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척후로 나섰던 기사 하나가 급히 반대편에서 달려온 것은 그때였다.

“폐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드레벤츠 강가에, 강 반대편에 기사단이 도착해 있습니다!”

“무어라? 그 수는 얼마나 되느냐? 누구의 깃발을 날리고 있고?”

“수효는 셀 수 없으며, 깃발 또한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기사단의 모든 전력이 다 그 자리에 모였습니다!”

“빌어먹을. 어찌하시겠소, 폐하?”

저의 사촌과 달리 왕관의 근엄함에 구애받지 않는 비타우타스가 상소리를 내뱉었다.

“저 강을 건너는 수밖에. 저들이 지키지 않는 쪽에서 강을 건너고, 그곳에서 저들을 맞이해 일전을 치뤄야 할 것이오.”

저들이 지키는 드레벤츠 강 방어선에 막혀 허송세월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적지를 침공한 입장인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이었다.

“여기서는 어렵겠고, 저 강은 서쪽으로 갈수록 불어날 테니, 답은 동쪽뿐이군.”

“그렇소.”

동에서 서로 흐르는 드레벤츠 강. 동쪽으로 갈수록 강폭과 유량은 줄어들지만, 문제는 강이 강인 채로 흐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룬발트Grunwald와 타넨베르크Tannenberg 사이. 그곳에 이르기 전까지는 강을 넘어야 하오.”

그 두 곳 사이에서 강은 북쪽으로 꺾였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호수와 습지가 많아, 건너려 해도 도저히 건널 수 없을 터였다.

만약 기사단이 먼저 그곳에 닿아 그 간극을 틀어막는다면, 일전을 치르지 않고는 더 나아갈 수 없을 터였다.

“그러면 지체할 것도 없겠군. 명령만 내려주시오, 폐하.”

“알겠소. 전령! 명을 전해라! 전군, 강행군으로 동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거대한 두 군대는 강을 따라 동쪽으로 경주하듯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강 주변의 모든 기사단 요새에는 이 상황에 대한 정보가, 그리고 기사단장 울리히가 직접 내린 명령이 전해진 뒤였다.

강가에 즐비한 요새의 눈길을 피해 도하할 만한 곳을 리투아니아 경기병들이 찾아내고, 봉화를 본 기사단 선발대가 그 지점 건너편을 선점하고, 끝내 단념한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이 더 동쪽으로 이동하는 일이 닷새간 반복되었다.

그렇게 두 군세는 차근차근 그룬발트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간 성채 하나, 마을 하나 공격하지 않고 행군에만 전념했으니, 분명 기사단보다 우리가 먼저 이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은 끝까지 북상하여 강을 넘어야 한다.”

4월 17일 아침, 각 연대의 지휘관들을 불러모은 요가일라가 회의의 운을 뗄 무렵.

“폐하! 기사단의 사절입니다!”

왕의 발언은 날아든 급보로 인해 끊어지고야 말았다.

“들라 하라.”

곧 흰 바탕에 검은 십자가 문양을 갑옷 위에 자랑스레 내보인 두 사람의 튜튼 기사가 나타났다. 일말의 겸손한 기색도 없이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 중 하나는, 칼 두 자루를 방석에 얹고서 다가오고 있었다.

“이 무슨 짓인가?”

요가일라가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 기사 하나가 우렁차게 답했다.

“폐하! 이 두 자루 검은, 바로 우리의 기사단장, 융잉엔의 울리히께서 폐하와 폐하의 형제 되시는 대공 전하께 전하는 선물입니다!*”

“선물이라?”

“그렇습니다! 기사단장께서는 지난 며칠간 폐하의 군대가 보인 움직임에 크게 실망하셨습니다. 기껏 결전을 위해 황제 폐하께서 보장하신 우리 기사단의 영지를 침범해놓고서, 정작 싸움은 회피하며 강을 끼고 숲을 따라 도망만 다니시니 이 무슨 일입니까?

그러므로 기사단장께서는, 혹 마땅한 무기가 없어서 싸움을 피하는 것은 아니신가 걱정하셨습니다. 이에 이러한 호의를 보이시는 바인즉, 폐하께서는 부디 정당한 싸움을 피하지 말고 거침없이 나아오십시오.”

요가일라가 벌떡 일어나, 두 자루 검을 집어들었다. 비타우타스 또한 결연한 표정으로 함께 일어났다.

“끝까지 너희 족속은 오만을 굽히지 않는구나! 좋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이 검을 받아들이겠다. 너희가 전투를 원한다면, 전투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두 자루 검을 땅에 내팽개쳤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두 기사는 말없이 인사만을 올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곧 말 달리는 소리와 함께, 두 기사가 외치는 소리가 평원을 울렸다.

“배교자 왕이 싸움에 응했다!”

처음에는, 정적만이 아침 안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곧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아니, 안개가 걷히는 것이 아니었다. 땅이 울려, 그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 수없이 많은 목소리가 하나로 뭉친 음율을 타고 전해지는 전율.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노라Christ ist erstanden!”

마침내 찢어진 안개의 장막. 그 너머로 기사단의 하얀 마갑과 하얀 갑옷,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검은 십자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압박을 이기지 못한 리투아니아 경기병 대열의 누군가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신은 위대하시다Allahu Akbar!”

“제기랄, 입 닫아! 여기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작고한 아버지를 대신해, 비타우타스 대공에 대한 저들 일족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장에 나선, 이제 갓 소년기를 벗은 타타르 기병이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 진실로 부활하셨다!”

곁의 누군가가, 딴에는 재치를 발휘해 정교회의 부활절 인삿말을 외쳤다. 혹시 누가 듣고 저들 모두를 이교도 타타르인이라 오해할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정 모르는 다른 이들이 듣기에, 그것은 공격의 신호나 다름없었다.

“주님의 뜻대로! 돌격!”

“돌격! 기사단 놈들을 죽여라!”

비타우타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투구를 썼다.

“영 무안하게 되었군. 허나 우리가 당초 짠 작전에서 별로 벗어나지도 않은 셈이지 않소? 다시 뵙겠소이다, 아우님 폐하.”

그러고서는, 자신의 시종들과 근위대를 거느리고 이미 돌격하기 시작한 경기병 대열 속으로 사라져갔다.

훗날 그룬발트 전투라 불리게 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과 튜튼 기사단의 결전은, 이렇게 리투아니아군의 선공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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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지슈카는 15세기 유럽을 뒤흔든 후스 전쟁의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후스파 봉기에 가담하기 전 그의 행적은 기록에 잘 남아 있지 않지요.

몰락한 하급귀족(제만Zeman) 집안 출신인 얀 지슈카는, 대략 1380년대 중반부터 용병 생활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무렵 집안의 가세가 결정적으로 기울어, 남아 있던 땅을 모두 처분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런 상황까지 몰린 하급귀족이 합법적으로 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알 수 없는 이유로 1406년경부터 그는 유력한 귀족 가문 로젠베르크(로즘베르크) 집안 및 그와 결탁한 인근 부데요비체 시와 척을 지고, 양측 기록에 도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실제로 지슈카는 이 시기 보헤미아에 창궐하던 도적들 여럿을 수하로 거느리고, 제법 유능한 용병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무능한 국왕 바츨라프 4세가 귀족들과 대립하며 혼란에 빠져 있던 보헤미아 왕국이었기에 일감이 부족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와 튜튼 기사단 사이에 전운이 감돌자, 지슈카는 국왕의 중재로 도적 혐의를 벗게 됩니다.

그 이후 그는 한동안 용병 생활을 계속하다가 1410년대 어느 시점에 궁정의 시종으로 취직하게 되는데, 이 무렵 보헤미아에서 큰 영향력을 얻고 있던 후스파에 몸을 담게 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제1차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을 계기로 후스파 반란이 벌어지자, 얀 지슈카는 후스파 중 급진파(타보르파) 세력의 지도자로 추대됩니다. 이후 그는 무력진압을 시도하는 새 국왕 지기스문트(지그몬드)에 맞서, 훈련받지 못한 농민들만을 데리고 몇 번이나 기사들을 물리칩니다. 지슈카가 화약무기와 전투마차를 이용한 전술로 기사들을 번번이 무찌르자, 마침내 교황 마르티노 5세는 후스파를 상대로 십자군을 선포합니다.

이미 봉기가 시작할 때부터 중년의 나이였던 지슈카는 결국 1424년 무패의 기록을 깨뜨리지 않은 채 사망하고, 그 이후로도 그가 이끌던 급진파는 여러 차례에 걸쳐 침공을 막아냅니다. 결국 1437년 마지막 급진파 세력이 항복하면서 후스 전쟁은 끝나지만, 지슈카와 그의 동료들이 이루어낸 군사혁신은 계속 이어져 기사들의 시대가 끝나는 한 가지 계기가 됩니다. 일례로 현대 영어의 권총pistol은 타보르파가 개량한 핸드캐논의 이름에서, 자주포howitzer는 타보르파가 사용하던 소형 화포의 명칭에서 따왔지요.

* 달레비체의 그니에보시는 실존인물로, 요가일라와 폴란드 여왕 야드비가 사이의 결혼에 극렬하게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야드비가와 요가일라 사이를 이간질하려 온갖 헛소문을 퍼뜨렸다가, 셰임(귀족의회)에 회부되어, 개 짖는 소리를 내며 ‘저는 거짓부렁 개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라고 외치는 굴욕적인 형벌을 받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15세기 초반까지 멀쩡히 궁중의 관료 겸 지휘관으로 활동했던 것을 보면, 나름대로 강력한 연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얀 지슈카가 그룬발트 전투에 참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작 그가 전투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투 직후 그가 본대와 함께 마리엔부르크 포위전에 참전하는 대신 후방의 요새를 지키는 일을 맡은 것을 고려하면, 그의 부대가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어 재편성이 필요했거나, 아니면 애초에 주변적인 역할만을 맡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제기해볼 수 있겠습니다.

* 영어 master/mister에 상응하는 독일어 Meister는 다른 언어의 비슷한 낱말과 마찬가지로 스승/지도자/우두머리 등을 뜻하는 라틴어 magister에서 유래했습니다. 한국어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존칭으로 쓰이기도 했지요. 주로 Herr(영어의 Sir나 Lord에 해당)라고 호칭하기에는 격이 떨어지는 자유민이나 하급귀족에게 쓰이는 존칭이었다고 합니다.

* 킵차크 칸국의 칸이었던 토크타미쉬는 1395년 최대의 숙적 티무르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리투아니아로 피신하게 됩니다. 리투아니아까지 끌어들여 복수전을 펼치려던 토크타미쉬의 계획은 끝내 실패하고 본인도 암살당하게 되는데, 이때 토크타미쉬를 따라왔던 킵차크 칸국의 튀르크계 유목민 상당수는 리투아니아에 눌러앉아 리투아니아 대공의 봉신이 됩니다. 이들을 립카Lipka 타타르인이라 부릅니다. (그 후예들은 현대까지도 이슬람 신앙을 유지한 채 폴란드-벨라루스-리투아니아 등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멸망할 때까지 이들은 충실한 봉신이자 뛰어난 경기병 전력으로서 복무하게 됩니다. 그룬발트 전투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비타우타스가 이끌던 리투아니아군에는 상당수의 타타르인이 섞여 있었습니다.

* 원 역사에서도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가 보내 양측 사이를 오가던 사절들은 ‘실수로’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가 체르빈스크 방면에서 비스툴라를 도하해 마리엔부르크로 직행하려 하고 있음을 기사단 측에 누설합니다.

비드고스치 방면으로부터의 양동작전에 속아넘어가 그쪽을 지키고 있던 기사단장 울리히 폰 융잉엔은 곧장 이동을 시작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진격을 시작한 1410년 7월 2일 드레벤츠 강변의 카우에르니크에 도착합니다. 그 이후의 전개는 작중에서와 비슷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 이 두 자루 검은 실제의 그룬발트 전투에서도, 먼저 강을 건너 유리한 입지를 차지한 기사단 측이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을 도발하고자 보낸 것입니다. 허나 도발은 도발대로 해놓고, 정작 전투에서는 기사단이 대패해 버리면서, 이 두 자루 검은 기사단의 의도와 달리 폴란드의 승리와 민족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유물로 남게 됩니다. 비록 실물은 19세기 폴란드인들의 독립운동 중 이를 진압하던 러시아 병사들이 약탈하여 사라졌지만, 그 이후로도 이 ‘그룬발트의 검’은 많은 문장과 훈장 도안 등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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