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심장을 어떻게 고칠까 (5)
5. 부서진 심장을 어떻게 고칠까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5)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접견을 청한 시그리드를 만나본 요가일라는, 그룬발트의 소녀와 지금 저의 눈앞에 있는 소녀 사이의 차이에 놀랐다.
세상이 마냥 아름다우리라 믿는, 귀족 소녀에게나 어울릴 동심 사이로 군주에게 어울리는 결연한 의지가 싹트고 있었다.
그 묘한 공존에, 요가일라는 이질감과 더불어, 이제는 가질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미지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에게는 폴란드의 운명이 걸려 있었고, 눈앞의 마녀(추정)는 그 어른스러움과 아이스러움의 정도와 무관하게 폴란드의 운명에 부담이 될 몸이었다.
“그래,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 무엇인가?”
이제는 제법 저의 것처럼 익숙해진 기사단장의 의자에 앉아, 요가일라는 시그리드를 맞이했다.
“폐하께서는 제가 사악한 주술이든 암흑의 마법이든, 무언가 그릇된 방도를 부리는 데 있어 폐하께서는 인지한 바도, 동의한 바도 없었다. 그러한 증언을 바라고 계시겠지요?
그 증언, 기꺼이 하겠습니다. 증인으로 이 주변의 모든 성직자들, 그리고 이곳 마리엔부르크에 체류하고 있는 그 어떤 귀족이나 국왕을 불러주셔도 좋아요.”
법률적 조언을 위해 요가일라 곁에 머물던 파벨 브워드코비치 교수가 저의 주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시그리드가 행한 놀라운 일들이 흑마법으로 ‘밝혀진다’ 한들 – 이단심문관들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¹ - 지금 제의한 것과 같은 그러한 증언을, 그것도 지금 마리엔부르크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모여 있는 지체 높은 이들 앞에서 하게 된다면, 튜튼 기사단이 암만 용을 써도 요가일라까지 싸잡아 흑마법 혐의를 씌울 명분은 많이 사라지는 셈이었다.
“그 대가로 원하는 것이 있으렷다.”
“예, 폐하.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제가 이렇게 전장을 누비게 된 데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 계셨겠지요? 저는 제 고향 그린란드를 부흥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가 청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폐하가 새로 얻으시게 된 봉신들의 영지에 있는 마을에서, 마을당 딱 한 가구씩만 개척민을 뽑아 단치히 시로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그 권리를 보장하는, 폐하의 인장이 찍힌 칙서를 제게 주십시오.”
기묘한 제안. 그러나 요가일라의 귀에 먼저 걸린 것은 ‘폐하의 인장이 찍힌 칙서’ 대목이었다.
마녀 혐의자에게 그러한 칙서를 넘겨주는 것은 위험부담이 작지 않았다. 자칫하면 흑마법의 제물로 사람을 넘겼다는 혐의까지 씌워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단에게 가장 강경한 수도사조차 그러한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무릇 이단심문이란 혐의자에게 가장 많은 혐의를 가져다 붙이는 데서 시작하는 법이었다.
요가일라와 브워드코비치 교수가 동시에 난색을 표하려던 차, 시그리드의 제안이 이어졌다.
“폐하께서 저희 그린란드 연대에 급여를 지급해 주시면서 그 증서까지 내주신다면, 저희는 기꺼이 폴란드를 떠나겠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저희 곁에 측근 한 분을 붙여주십시오. 폐하께서 제가 내건 조건을 이행하셨다는 것을 가는 길에 제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국경에서 저는 폐하의 인장이 찍힌 증서를 그대로 폐하의 측근께 반납하겠습니다. 이상이 제가 드리고자 하는 제안입니다.”
처음 기사단이 동쪽으로 왔을 때 그들을 따라 각지 도시에 자리잡은 독일인들은, 어지간히 현지인들에게 밉보이지 않고서야 선뜻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허나 농촌이라면 사정이 조금 달랐다.
계약을 이행하는 구색만 맞춘다면, 그러니까 그럭저럭 규모가 있어 한두 가구쯤 빠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영지에서, 가장 생계가 어려운 집안을 골라 등 떠미는 정도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저 북쪽 리보니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요가일라조차 잘 알지 못하는 판에 시그리드가 알 턱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근방에서 폴란드 국경까지 적당히 일백여 가구²쯤 추려서 보내면 될 터.
그러므로 요가일라는 기묘한 제안이 나오게 된 경위를 굳이 따져묻는 대신, 자신의 구미에 딱 맞는 대가를 받아내는 데 만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그리드와 달리, 이 노회하면서 그만큼 세상에 닳은 군주에게, 주어진 현실 그 이상을 상상할 여력은 없었으므로.
요가일라가 임시 알현실로 쓰고 있는 기사단 본부의 한 홀에 온갖 귀한 사람들이 모였다. 파벨 브워드코비치와 더불어 자문차 들렀다가 성직자 대표로 이 공증에 참여하게 된 그니에즈노 대주교,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 기사단의 동맹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이곳 마리엔부르크까지 요가일라와 동행하게 된 포메라니아 공작 카시미르 5세.
그리고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의 국왕인 에릭까지.
신 앞에, 또 자신의 명예와 폴란드 왕관의 명예에 걸고 시그리드는 자신이 요가일라에게 말했던 그대로의 맹세를 읊었다.
요가일라를 필두로, 왕과 영주들 또한 자신이 그러한 증언을 들었으며 시그리드에게 그러한 증언을 얻어내기 위한 어떠한 위압도 없었음을 저들의 인장으로써 보증하였다.
그렇게 거래는 완료되고, 시그리드가 막 저의 용병단 숙소로 돌아가려는 차.
익숙한 인영이 발목을 잡았다. 그 옛날 코펜하겐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평범한 복장에 망토까지 차려입은 에릭이었다.
“재밌는 거래를 했더구나.”
“그건 또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이번에는 요가일라 폐하의 방을 터셨나 보죠?”
가시 돋친 시그리드의 비꼬는 말을 그저 웃어넘기는 에릭이었다.
“솔직히 너 말고 국왕과 빨래터 아낙네를 똑같이 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마녀로 몰렸음에도 그렇게 떳떳하게 국왕 상대로 흥정을 하다니.
허나 결론을 알고 있으면 과정을 도출하기는 쉬운 법이지. 나는 네가 결코 맨입으로 그런 증언을 했으리라 믿지 않았거든. 그 다음이야 간단한 산수 문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황금을 뿌릴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에릭은 그러고는 제법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결국 내 손을 내치고 이렇게 떠나가려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너를 위한 자리를 항상 마련해 놓을 것이다.”
“알고 있어요. 적어도 한동안 우리는 서로 이용하는 그런 사이가 되겠지요. 그게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과연 영특하단 말이지.”
‘결론을 알면 과정을 도출하기는 쉽다’는 말은 비단 요가일라와 시그리드 사이의 거래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었다.
에릭은 어떻게든 시그리드를, 그리고 그 머릿속의 지식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러므로 에릭은 시그리드가 마리엔부르크를 떠나 무엇을 하든 그린란드 회사를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시그리드를 제게 끌어들일 미끼이자 - 시그리드가 그와 함께하게 된다면 – 덴마크 왕국의 앞날을 부흥시킬 열쇠가 될 테니.
그러나 시그리드가 에릭의 집착을 이용하듯, 에릭도 시그리드의 꿈을 이용할 것이다. 검은 책에 담긴 지식의 단면을 들춰본 에릭은, 앞으로 시그리드가 펼칠 활약이 정말로 마녀의 수작이나 헛소문이 아니라 미래의 지식에서 힘입은 것임을 알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시그리드 곁에 밀정을 붙이지 않아도, 어디를 가든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시그리드의 행보는 쉽게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녕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을까. 그런 아쉬움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저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그걸 위해 이 세상을 불태우고 싶지는 않아요.”
“나도 세상을 모두 불태우고 싶지는 않다. 잿더미의 군주가 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뭐, 어쨌든 너는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아직 덴마크 왕국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지금 당장은 우리 모두 할 일이 각각 많을 테니, 이렇게 고별하는 수밖에.
나는 네 앞에 언제고 장작더미가 쌓이기를 기다리마. 너를 화형대에서 구해줄 힘을 마련해놓고 있을 테니.”
그 작별인사와 함께, 에릭은 내성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외성 쪽으로 가는 시그리드와 서로 등을 돌린 채.
점점 발소리가 멀어지고, 시그리드의 가슴에 안도감이 깃들 무렵, 시그리드는 문득 그 누구도 자신이 개척민을 딱 한 가구씩만 모집하려는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에릭도, 요가일라도 모를 것이다. 시그리드가 마리엔부르크 아랫마을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를 거닐며 무엇을 듣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기근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흉년이었겠지만, 이미 비축된 양곡은 작년 흉년에 소진되었고, 올해 농사는 전쟁통에 다들 망치게 되었다.
그나마 풍요로운 마리엔부르크 인근의 사정이 그렇다면, 다른 곳은 어떨까.
그리고 그렇게, 굶어죽는 일만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의 귀에, 이웃 마을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 저들의 정든 고향을 떠난 가족이 있다는 소문이 들어간다면 어찌 될까.
속절없이 굶어죽어야 했을 이들은 단치히로 몰려들 것이다. 아직은 사람을 더 투입하는 만큼 양식 – 물개 고기와 말린 생선 – 을 더 산출해낼 여력이 되는 그린란드로, 막일꾼 하나가 아쉬운 아이슬란드로 향하게 될 것이다. 희망을 품은 채, 언제고 빈란드로 가게 될 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그렇게 입이 줄어든 만큼 남은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기근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시그리드는 곧 백송고리 용병단 전원을 소집하고, 보헤미아 용병들에게도 긴히 전할 이야기가 있음을 알렸다³.
그들의 단장이 뭔가 골치아픈 일에 휘말렸음을 눈치껏 알고 있던 용병단원들은 저들 딴에는 경청하는 자세로 식탁을 임시 단상으로 삼은 시그리드를 바라보았다.
용병단원들이 모두 모이고, 곳곳에 얀 지슈카를 포함해 보헤미아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본 시그리드는 목청 한 번 다듬고서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들 중 눈치 빠르신 분이나 귀 밝으신 분들은 다 들어 아시겠지만, 지난 그룬발트 전투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큰 공을 세우는 바람에 사소한 문제가 생겼답니다.”
“그, 마녀 고발 말씀이십니까?”
뒷줄의 누군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네, 맞아요. 제게 마녀 혐의가 씌워질 예정이고, 이미 눈에 불을 켜고 저를 고발하려는 분들이 유럽 곳곳에 있다는군요.
이 자리에서 고백하겠습니다. 제가 총을 만들고 전상자를 구호한 것은, 저 스스로 짜낸 지혜로서 고안한 게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정말 악마와 계약한 마녀란 말인가? 혹시 백송고리 리프가 변장한 악마였던 것은 아닐까? 성급하게 단정한 몇몇은 벌써 성호를 그으려는지 손끝이 절반쯤 이마에 다가갔다.
“제가 살던 그린란드에는 현자 한 분이 은거하고 계셨어요. 그분께 받은 지혜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대학의 교수도, 고명한 성직자도 아니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 유럽 땅에서 그 지식을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랍니다. 오해의 소지가 안 생기는 게 이상하겠지요.”
시그리드의 말이 잠시 멎기 무섭게, 스베인의 큼직한 덩치가 많은 용병단원의 눈앞을 가렸다.
“이는 나, 라그나르의 아들 스베인도 사실이라 증언하는 바요.”
이어서 처음부터 시그리드를 따랐던 그린란드 사람들도 하나둘씩 일어났다.
“이바르의 아들 콜그림도 함께 증언합니다.”
“토르할의 아들 군나르, 마찬가지요.”
“다들 감사합니다.”
시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이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면서 보헤미아 사람들을 위해 똑같은 말을 독일어로 옮겨 전했다.
막 이야기 한 단락을 마칠 무렵, 전직 여관 주인 헤니히가 손을 들었다.
“우리 단원들은 모두 단장 그대가 행한 놀라운 일을 곁에서 보았소. 그런 놀라운 사연이 있었다 한들 믿지 않는 게 바보겠지.
그렇지만 마녀 혐의는 지식의 힘으로 벗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들었소. 대학 교수나 대중 강론으로 명성을 얻은 수도사들도 종종 이단으로 낙인찍힌다고 하던데. 결국은 어딘가 강력한 후원자, 신의도 있고 세력도 있는 그런 이를 찾아야 할 것이오.
헌데 내가 견식이 넓은 건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 보통 세력 있는 사람치고 신의까지 갖추고 있긴 어렵더란 말이지.”
“맞아요. 하지만 저는 어떤 권세에 기대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돌파할 겁니다. 꿈을 꾸고 있지만 현실로 그 꿈을 옮길 힘이 없는 이들을, 그런 힘이 생길 때까지 끌어모을 거에요. 처음부터 그러려고 이 땅에 발을 디딘 것이고, 그러려고 여러분들이 들고 있는 그 총을 만든 겁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용병단원들 사이에서 술렁대는 목소리가 조금씩 일어났다.
“여러분 앞에서 인정하겠습니다. 고된 길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온 유럽의 군주들과 교회 전체까지 상대해야 할 수도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여러분 일생일대의 모험, 온 세상을 뒤흔들고, 종국에는 더 좋게 바꾸어나가는 모험이 될 것이라고 약조드릴 수 있습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라는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배제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
그 생각에 가슴 한 편이 두근거리는 것은, 비단 바이킹의 혈통을 물려받은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한참 심사숙고하던 헤니히가 다시금 입을 열자, 더욱 크게 술렁이던 좌중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좋소. 그렇다면 나, 뤼베크 사람 헤니히는 끝까지 단장과 함께 하겠소.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내 원한을 풀 수 없었을 테지.
단장의 지식이 지닌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단장이 그 힘을 지혜롭게 쓸 것이라고, 그 옛날 고틀란드를 기사단이 짓밟을 때처럼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선한 자들을 짓밟는 데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믿소.”
그러자 이번에는 헤니히 곁에 있던 한스도 벌떡 일어났다.
“몇몇 몰지각한 이들에게는 아직도 불량배라 불리지만 엄연히 용병단 병장인 저 한스도 헤니히 보급관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귀부인의 명예를 지키는 기사처럼 저 한스 역시...”
“이놈아, 눈치 챙겨라. 그런 흰소리 할 때냐.”
헤니히가 언짢게 말하니, 한스는 습관처럼 저의 뒤통수로 날아들 손바닥을 예상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에 막 무거워지던 분위기 가운데 미약한 웃음이 퍼졌다.
한스는 예상했던 충격이 닥치지 않자,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를 펴고, 아까보다는 덜 당당하지만 훨씬 진솔하게 말했다.
“그, 흠흠. 저는 코펜하겐 돌아가도 할 일이 딱히 없는데, 단장님 따라다니면 재밌는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태어나서 길거리에서 죽을 줄만 알았던 놈이 상상할 수 있던 것을 한참 뛰어넘는 그런 일 말이죠. 그러니 저도 계속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이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구는 조심스레, 누구는 벌떡. 누구는 남들이 다 일어난 뒤에야 못 이기고서.
그리고 개중에는 시그리드와 함께하겠노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저는 집에 노모가 계십니다. 원래 급여만 받는대로 단장님께 말씀드리고 슬쩍 빠지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고백하는 거지만, 저는 사실 아내 몰래 뛰쳐나왔습니다. 도박 빚 갚을 생각으로요...”
“미안합니다, 단장님. 저는 아무래도 그만한 용기를 못 내겠습니다.”
얼추 절반쯤 되는 사람들. 그러나 시그리드는 여기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여기서 헤어지고자 하는 분들께는 퇴직금이라고, 급여를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일을 해주셨으면 해요.”
“그게 무엇입니까?”
“저와 폴란드 국왕 폐하는 약조를 했습니다. 돌아가시는 길에 그 약조를 폐하께서 지키시는지 확인해 주시고, 만약 실수나 고의로 누락된 마을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대신 소식을 전해주셨으면 해요.
바다 건너의 땅. 모든 것이 풍요롭고, 새로운 시작을 원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땅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곧 단치히와 다른 항구들을 오가게 될, 그런 이들을 태울 배들에 대해서도요.”
그사이 조금은 쌓인, 단장과 전우들을 향한 정을 혹여 배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달래기에,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여러분께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저는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하지요.”
불량배와 한량들이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진중한 고민에 빠져드는 사이 시그리드는 객관 앞 마당으로 나왔다.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때였다.
“미안하구나. 아직 도적 노릇할 때 버릇이 다 사라지질 않아서. 그리고 고맙다.”
요가일라를 만나러 가는 길에 시그리드는 지슈카를 만나, 자신이 왕에게 제의코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지슈카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린란드 연대 전체가 확실히 급여를 받게 되었으니, 이는 보헤미아 사람들에게는 그들 용병들을 항상 괴롭히는 문제, 즉 일이 끝난 뒤에 입을 싹 씻는 고용주 문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했다.
“저야말로 고마운 걸요. 만약 지슈카 아저씨께서 제 물음에 답을 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이런 과감한 계획도 세우지 못했을 거에요.”
“내가? 물음에 답을? 아, 그래, 기억 난다. 이것 참.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그런 걸 다 깜빡하고.”
“뭘, 아직 젊으신 걸요.”
검은 책의 ‘얀 지슈카’ 항목에는, 그의 굵직한 행적을 짤막하게 정리한 문장과 낱말 여러 개가 적혀 있었다.
얀 지슈카, 후스 전쟁의 영웅. 그리고 욘만큼이나 말 많던 시그리드는, 욘에게서 후스 전쟁에 대해 들었을 때 그 이름의 기원에 대해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프라하의 얀 후스Jan Hus 교수님. 그분이시라면 기꺼이 제가 무고하다는 걸 밝혀주실 거에요.”
일전에 시그리드는 지나가듯 후스 교수에 대해 물었고, 지슈카는 그런 훌륭한 분이 – 교회와 영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안타깝지만 – 프라하에 계신다고 답했던 것이다.
“그러면 보헤미아로 가겠구나. 좋다. 우리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동무가 있으면 좋지.”
그런 호의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던 시그리드는 깜짝 놀랐다.
“그, 괜찮으시겠어요? 제게는 마녀 혐의가...”
“어차피 너희에게도 길잡이는 필요할 것 아니냐? 무장한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가는데 도중에 시비를 걸 영주도 간혹 있을 테고.
이 얀 지슈카, 진실을 진실로 여기고 약속을 약속으로 여기는 것을 신조로 삼은 사람이다. 나는 네 말을 믿고, 또 내 눈으로 본 것을 믿는다. 만약 네가 부린 그 재주가 정말 마법이라면, 그렇다면 세상에는 유익한 마법도 있는 것이겠지.”
사람 좋게 껄껄 웃는 지슈카. 그 웃음은 시그리드에게도 옮아, 그만 지슈카를 꽉 포옹하게 되고야 말았다.
한편, 시그리드와 절반으로 줄어든 용병단이 그렇게 지슈카의 보헤미아 용병들과 함께 떠나간 뒤, 마리엔부르크에서의 평화협상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무기한 중지된 상태로 피사 공의회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떤 유능한 법률가가 있어, 기사단국의 지위 변경에 관한 협정이 어떤 식으로든 교황과 황제의 인가를 받거나, 적어도 받는 구색이라도 맞춰야 함을 강변했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가 제때 수완 좋은 외교관을 보내, 기사단과 요가일라, 비타우타스 사이를 중재했기 때문일까? 그 또한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아직 학명은커녕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병원균에게 있었다⁴.
원래대로라면 1408년 발생해 모스크바 주변의 모든 도시와 마을을 맹렬히 휩쓸던 중, 킵차크 칸국 망기트 부의 수장 에디구가 의도치 않게 약탈과 방화로써 방역을 실시하여 사라졌을 역병은, 시그리드가 1년 일찍 폴란드-리투아니아와 기사단국의 전쟁을 촉발하면서 엉뚱한 쪽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리보니아 인근까지 접근해 기사단국에게 함께 리투아니아군을 상대하자는 에디구의 제안을 전달한 망기트 부의 사절단은 박대만을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처음 리보니아로 향했을 때에 비해 돌아갈 때는 부쩍 사람이 줄어 있었다.
1408년 가을의 기근, 그리고 뒤이은 1409년의 전쟁으로 일손까지 부족해져 먹을 것이 완전히 동나자, 발트해 인근의 농민들은 굶주린 배를 채울 무언가를 찾아 숲과 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중 몇몇은 타타르인들이 숙영했던 숲으로 들어갔다가, 불청객 벼룩과 함께 돌아왔다.
그 벼룩은 그룬발트의 참사 소식을 듣고 황급히 마리엔부르크로 향하던 기사단원들에게 달라붙었다.
마리엔부르크 근교에서 검은 죽음으로 추정되는 병이 보고되자, 요가일라는 즉시 모든 용병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거나 지급을 약속하는 증서를 발급토록 하고는, 저의 남은 군대를 해산하고 즉시 크라쿠프로 돌아갔다.
그러나 전근대의 행정이 대개 그렇듯, 독일 서부부터 헝가리까지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수많은 용병들에게 급여를 주는 일은 그만큼 고되고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마침내 고대하던 급여를 받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흩어지는 용병들의 그림자 속에서, 부활한 흑사병은 생명을 거두는 낫을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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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근세의 이단심문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이미 교회는 이단에 맞서기 위한 이단심문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11세기부터 시작해 점차 서유럽 각지에서 출현하기 시작한 이단 – 카타리파, 발도파 등 – 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었지요. 이후 이단심문은 점차 누적되어가는 교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회 내의 목소리와, 그러한 목소리에 편승하려는 이들까지 싸잡아 단죄하는 수단이 되어갔습니다. 이렇게 억눌린 개혁의 요구는, 결국 15세기부터 조금씩 밖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2. 통념과 달리 이 무렵 일반적인 농민 – 농노와 자유민을 막론하고 – 가정은 그렇게까지 구성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는 기근과 질병을 뚫고 생존한 아동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컨대 비교적 통계가 많이 남아 있는 프랑스의 한 농촌의 경우, 1325년경 농민 가구당 (살아 있는) 아이의 수가 평균 2.8명이었는데, 첫 번째 흑사병 대유행 직후에는 1.9명으로 줄어들었고, 1400년경에는 1.4명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부부당 최소 2명의 아이를 성년까지 성공적으로 양육하여, 인구의 순증가가 재개될 수 있게 된 시기는 대략 15세기 중반경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중세 말기의 각종 사회모순과 혼란이 흑사병 자체보다도 더 큰 위협이었음을 방증하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중세 말의 위기’지요.)
3. 백년전쟁을 전후해 유럽의 전쟁이 규모를 키워가면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거대 용병단들은, 소소한 강도짓부터 아비뇽 교황 ‘삥뜯기’ - 전설적인 용병 존 호크우드의 업적(?)입니다 – 까지 외적으로는 온갖 ‘깽판’을 다 치고 다녔지만, 그에 비해 이상할 만큼 내분에 대한 기록은 적습니다.
구성원들의 질이 썩 좋다고만은 못할 중세 용병단들이 비교적 저들 내부에서는 큰 다툼 없이 운영될 수 있던 까닭 중 하나로, 많은 용병단 내에 원시적인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체제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술한 존 호크우드도 병장급 이상이 참여한 선거를 통해 용병단장으로 선출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작중의 시그리드가 백송고리 용병단원 하나하나의 의중을 묻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4. 14세기 중반의 제2차 대유행 이후로도 흑사병은 구대륙 각지에 토착화된 형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중국 운남성에서 제3차 흑사병 대유행이 일어나 중국과 인도 양측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유럽에서 기록된 마지막 흑사병 대유행은 1815년 이탈리아 남부에서 일어났고, 기록이 미비하여 확실치는 않지만 그 이후로도 러시아에는 토착병으로 한동안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4세기 중반 이후 토착화된 흑사병은 거의 매년 유럽 각지에서 의심 사례가 보고되었지만, 대부분은 전염성과 치명률이 현저히 떨어져 면역이 취약한 계층만이 위험에 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략 12~16년 주기로 유럽 내에서 비교적 치명률이 높은 변종이 출현하곤 했지요. 면역자의 수가 슬슬 줄어들만 하면 다시금 창궐하는 흑사병에, 점점 유럽인들도 (전근대 한계 내에서) 방역 대책을 마련하고 격리나 소각을 통한 소독 등 대책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세 말의 위기에 비견되는 17세기의 위기 때처럼, 전반적으로 영양상태가 불량해지고 사회적으로도 혼란을 겪는 시기에는 번번이 큰 인명피해를 낳는 흑사병 유행이 벌어지곤 했지요.
작중 묘사되는 1408년의 러시아 흑사병 유행은, 비교적 전염성은 높고 (당시 기록은 과장을 섞어, 건강한 사람이 한 명이면 감염자는 10~20명이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치명률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축에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디구의 러시아 정벌이 의도치 않은 방역 효과를 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정말로 모스크바 한 곳만 빼고 그 주변에서 이 흑사병 유행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