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25화 (25/116)

보헤미아 광시곡 (2)

6. 보헤미아 광시곡Bohemian Rhapsody (2)

수십 년 전, 세상이 지금보다는 멀쩡했던 시절, 유능한 군주였던 룩셈부르크의 카를¹은 보헤미아를 자신의 기반으로 삼아 위대한 황제 카를 4세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는 프라하를 자신의 제국의 중심, 동쪽의 파리로 키워내고자 작심하였고, 그의 치세 동안 블타바 강 양안에 위치한 프라하는 실로 화려하고도 부유한 도시로 자라났다.

그리고 보헤미아인들은 누가 카를을 위대한 황제로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들 자신, 보헤미아 사람들이었다. 왕관의 도시 프라하 사람들은 특히 그러한 자긍심을 더욱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에게 명백한 사실은 다른 한쪽에게는 허황된 망상일 뿐. 지난 몇 년간 프라하의 보헤미아인들과 독일인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다.

보헤미아인의 적들은, 이곳 보헤미아에 대해 온갖 비방을 퍼부었다. 발도파Waldensian 이단들의 거점이라는 둥, 독일인을 해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을 것이라는 둥.

그러나 후스는 독일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은, 다 함께 사랑해도 모자랄 세상에 증오가 판치는 것은, 오직 교회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므로.

그러므로 후스와 그를 추종하는 보헤미아 사람들은, 처음 피사 공의회 소식을 들었을 때 환호했다. 점점 주님의 교회보다는 주님의 채찍을 기다리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까워지는 오늘날의 보편교회가 마침내 올바른 길로 돌아갈 조짐이 보인다 여겼던 것이다.

후스와 추종자들이 이단자 위클리프를 따른다는 비방이 피사로부터 처음 들려왔을 때도 후스는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오히려 더욱 열의에 불타올랐다.

위대한 학자 존 위클리프는 비록 몇몇 부분에서는 오류를 범하기는 했지만,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데 있어 실로 귀중한 통찰과 지혜를 보여주었다. 다만 교회의 몇몇 타락한 이들이 저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 면벌부 판매, 성직 매매 등등 - 위클리프에게 부당한 비난을 퍼부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후스 자신이 공의회에 출두하여 저의 이단 혐의가 거짓임을 소명한다면, 교회 개혁과 복원을 위해 모인 지혜로운 추기경들은 그간의 오해를 풀고 보헤미아인들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을 지니고 있었노라 인정할 것이었다².

후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이단이 아니었고, 이 모든 것은 진실과 거짓을 뒤섞이게 만든 주범, 교회의 타락에서 말미암은 크나큰 오해일 뿐이었다.

그 오해를 종식시키고자 피사 공의회에 출두하려던 차였으니, 그 오해에 부채질을 할 만한 일에 손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속사정을 후스는 눈앞의 기묘한 소녀가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말로 가능한 한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다.

“... 그러므로 만일 그대에게 제기된 이단이나 이교 혐의에 조금이나마 진실이 있다면, 결코 털끝만큼이라도 그대를 변호해줄 수 없소이다.”

첫인상이 워낙 해괴했던지라 – 대체 소의 고름을 어디에 쓴다는 말인가? - 잠시 이 시그리드가 정말 마녀일 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던 후스였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그런 의심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저의 말에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간혹 순박하게 들리면서도 제법 예리한 질문을 하는 시그리드와 대화하면 할수록, 이 소녀가 악마의 술법을 운운하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현혹시킬 만한 악인일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를 이곳으로 안내해준 얀 지슈카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솔직히 인정하자면) 저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잠깐 얘기나 나누고 가려 했던 것이, 어느새 반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사이 그들이 조용히 얘기 나누고자 올라와 있던 여관 2층의 다락방에는 기울어가는 태양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자, 그러니 말씀해 보시구려. 설령 그대가 명백한 이단을 범했다 하더라도, 변호만을 거절할 뿐 따로 어딘가에 발설하거나 하지 않을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소. 그러니 바라건대 그대도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해 주시오.”

“네, 맹세하겠습니다.”

“그대가 지금까지 행해온 바에, 정말로 저 독일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삿된 점이 하나라도 있소이까?”

후스가 정중하면서도 냉정한 말투를 견지하며 물었다.

아마 없을 것이다. 자신과 대학의 다른 학자와 후배들처럼 중상모략의 희생자에 불과할 터.

그리고 곧 시그리드는 하나둘씩 자신의 행적을 되짚어 후스에게 설명했다.

저들이 ‘악마의 불꽃’이라 부르는 것은 그저 신형 화포일 뿐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물약’은 그저 도수 높은 술일 뿐이었으며, 코에 소의 고름을 넣는 것은 소싯적 천연두를 앓은 사람이 다시는 앓지 않는 원리를 응용하는 것뿐이라고.

“허나 그런 지식을 어디서 얻었다는 말이오?

나와 뜻을 함께 하는 대학 사람들은 더 많은 지식을 찾아 저 옥스퍼드 대학까지도 사람을 보내 책을 모아오곤 했지만, ‘경이로운 박사(로저 베이컨)’의 저작에도, 심지어 동방 이교도 학자들의 저작 중에도 그러한 지식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소.”

시그리드는 앞서 했던 맹세를 두고 한참 고민하는 듯했다.

“몇 년 전 그린란드에 이방인 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에게서 배웠습니다.”

부디 놀라지 말라는 첨언과 함께 시그리드는 그 ‘미래’에서 왔다는 자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후스는 그 말도 믿어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욘이라는 학자가 있었다는 것까지만.

수백 년 전, 극북Ultima Thule 땅에 히베르니아(아일랜드) 수도사들이 도착해 수도원을 여럿 세웠다는 것은 교회 역사를 세밀하게 읽은 사람이라면 간혹 아는 사실이었다.

개중에는 유럽 본토에서는 로마 붕괴 후의 혼란 와중에 실전된 지식의 파편을 간직한 채, 더더욱 변방으로 은거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이방인 욘이라는 자가 그러한 무리의 말예라면 많은 것이 설명되었다.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것은, 왜 그런 허무맹랑한 말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을지였다.

“그러면 그 욘이라는 이는 어떤 수도회의 사람이었소? 누구를 스승으로 섬겼고? 설마 파문당해서 쫓겨난 이단 분파 사람은 아니었을 테고.”

그런데 후스의 날카로운 질문이 어째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에, 그게...”

욘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언제고 딱 한 번, 자신이 미래에서 다녔던 교회는 파울과 에인드리디가 지키는 그런 교회가 아니었다고 밝히면서 종교개혁과 개신교 이야기를 했을 때가 전부였다.

허나 맹세는 맹세였다. 시그리드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엄정한 정의로 따진다면 이단은 맞을 거에요. 아마.”

“뭐라고?”

“그, 그렇지만 그게 엄청 중요한 건 아니지 않을까요? 제가 이곳 보헤미아로 온 까닭 중에, 그렇게 이단으로 몰린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서 이왕 오해와 탄압 속에서 살 것 다른 대륙으로 떠나자고 제안하려고 온 것도 있거든요. 마녀 혐의 벗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요.”

사람들이 이단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까닭은, 나와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단끼리 모여서 다른 데 가서 산다고 하면 반대하기는커녕 도리어 쌍수 들어 환영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그리드는 생각했지만-

“터무니 없는 소리로군. 더 듣고 싶지도, 한 사람의 사제로서 들어서도 안 될 말이오³. 내 맹세한 대로 그대가 말한 바를 발설치는 않겠지만, 그뿐이외다.”

이교도나 이단자들이 지닌 지식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당장 유럽의 대학들 중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의 이교도들과 아비켄나Avicenna(이븐 시나) 같은 금세 이교도들의 저작 없이 교과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그리드가 딴에는 변명을 한다고 추가적으로 밝힌 진실이야말로, 어떻게든 피사 공의회에서 자신의 이단 혐의를 벗으려 작정하고 있던 후스가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도저히 더 앉아 있을 수 없구려. 지슈카 선생께는 미안하게 되었소.”

시그리드의 솔직함에 돌아오는 보답은, 그간 자신의 이야기에 경청해주었던 이가 그 냉정한 한 마디와 함께 드르륵 의자를 뒤로 밀며 계단으로 사라지는 모습뿐이었다.

한때 아름다웠던 프라하 시는 혼란 속에서 조금씩 – 그러나 확실하게 - 영락하고 있었다.

검은 죽음이 휩쓸고 간 상처는 아직도 뒷골목 곳곳에 흉하게 방치된 폐가로서 남아 있었다. 그 폐가에 몰래 들어와 사는 농노들은, 막일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 저들의 누추한 거처를 고칠 여력이 없었다.

보헤미아인들과 독일인들의 갈등 끝에 프라하 대학의 독일인들이 모두 라이프치히 등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리면서, 교수와 학생, 그리고 그들에게 생계를 의존하던 하숙집 주인과 상인 등 거의 2만 명에 달하는 독일인들이 프라하를 떠났다.

그로 인해 더욱 생계가 어려워진 구시가지의 독일인들은 더욱 가열차게 보헤미아인들을 탓했고, 보헤미아인들은 반대로 저들이야말로 타락한 주제에 자신들을 이단이라 몰아세우는 독일인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어리석은 국왕 벤첼 4세는 그 혼란을 수습할 재주도, 힘도 없었다. 이미 보헤미아 왕국의 대세는 귀족들을 움직여 저를 벤첼의 후계자로 확정지은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에게 넘어간 지 오래였으므로.

프라하 대주교 즈비네크의 지시에 따라 군사들은 대학가를 급습해 이단자 위클리프의 저작을 몰수했다. 그러나 무엇이 위클리프의 글이고 무엇이 그것을 보헤미아 말로 번역한 후스의 저작인지 군사들이 가려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어나 보헤미아어로 된 책은 모조리 꺼내 공터란 공터마다 겹겹이 쌓아올리고서는 불을 질렀다.

매캐한 연기기둥 주변에서는 항의하는 학생들과 군인들 사이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간혹 젊은 혈기에 돌이나 오물을 던진 학생들과 그들을 고성 지르며 쫒는 군인들의 고성이 골목을 메웠다⁴.

“교황보다는 후스! 교황보다는 후스!”

후스는 한 번도 자신이 이단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건만, 어느새 보헤미아인 군중 사이에서는 그런 구호가 나돌고 있었다.

“닥쳐라, 너 이단아!”

“이단은 무슨! 너희 독일 놈들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의 개돼지 아니냐?”

후스는 대중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본 목적이라 여겼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제자들은 보헤미아 민중의 언어로 활발한 강연을 펼쳤고, 그 말을 글로 옮긴 책을 펴냈다.

그리고 쉬운 보헤미아 말로 진행되는 강연을 몇 번 들은 것이 전부인 보헤미아 사람들은, 후스를 따르는 자신들이야말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 그나마 올바른 길을 걷는 축에 든다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뭐라고? 그런 너희 보헤미아 놈들이야말로 악마와 흘레붙는 더러운 무리 아니더냐?”

“에라이, 말로는 안 되겠구만! 오늘 네놈을 지옥불에 떨어뜨려주마!”

대학가뿐 아니라 모든 골목에서 사람들은 주먹질을 하고, 욕설을 주고받고, 뒹굴다 죽었다. 차디찬 겨울철 블타바 강물에는 도시의 오물뿐 아니라 사람의 시체도 떠내려갔다.

“곧 검은 죽음이 프라하에 닥칠 것이라더라! 이게 다 네놈들에게 내리는 징벌 아니겠느냐!”

“무슨 헛소리냐? 너희 보헤미아 놈들에게 내리는 천벌이지!”

혼란 속에서는 헛소문도 빠르게 퍼지기 마련이었다.

“보헤미아 놈들이 하얀 마녀를 데려왔다! 마녀가 블타바 강물에 독을 풀어서 우리 독일인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더라!”

“독일 놈들이 우리 보헤미아 처녀를 무슨 하얀 마녀인지 뭔지로 몰아 죽이려고 한다더라! 가만 내버려 둘 쏘냐?”

독일계 교수진들이 모두 떠나면서 텅텅 빈 대학 교정 안쪽, 교수들이 폭동으로부터의 피난처로 삼고 있는 강의동에 겨우 돌아오기까지 후스 또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얀 지슈카가 급히 용병 수십을 보내 주변을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신의 이름을 각각 다른 수식어를 붙여 연호하는 두 패의 군중 사이에서 변을 당했을 터였다.

“얼른 이 폭동이 종식되어야 할 텐데, 큰일이로군요.”

“장담컨대 곧 끝날 겁니다. 이미 사태의 주범인 대주교와 그 무리들은 도시를 떠난 지 오래라더군요.”

“헛소문과 오해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다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대부분 후스의 동료거나 후학인 보헤미아인 교수들은, 이 폭동이 끝나는 대로 후스가 피사 공의회에 직접 출두하고자 국왕의 허락을 받으러 갈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옥스퍼드냐 볼로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평생 이 나라 저 나라의 대학 안에서만 보내왔던 학자들은 그것만으로도 이 혼란이 그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후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독일인 교수들이 모두 떠난 지금, 후스는 프라하 대학에서 가장 저명한 교수였다. 그들 모두의 스승이자 이 모임의 우두머리 격인 후스가, 바깥에 나갔다 돌아온 이후로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니 슬그머니 걱정하는 이도 나올 법했다.

“괜찮네. 조금 신경쓰이는 일이 있을 뿐이야.”

“그... 혹시 소문이 사실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학생 하나가 그러는데, 그룬발트의 하얀 마녀가 유숙한다던 여관 쪽에서 선생님을 본 사람이 있다고...”

얼마 전 막 강사 자리를 얻은 (비교적) 젊은 후학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사람아. 지금 그런 헛소문 따위를 논할 때인가?”

다행히도 후스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동지인 예로님⁵이 제지하고 나선 덕에, 후스는 저의 고민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시그리드 리프트라사. 세상에 조금 닳은 듯하면서도, 어쩌면 세상의 그 어떤 풍파에도 꺾이지 않을 듯한 순진함을 간직한 소녀.

시그리드는 분명 이단이었다. 이단을 정죄하지 않고 도리어 포용한다는, 그리고 그런 이단들만을 모아 다른 어딘가에 이단들의 지상천국을 세우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나 또한 부당하게 이단으로 몰린 몸이다. 과연 내게 함부로 누군가를 이단으로 몰아갈 권한이 있는가? 애시당초 죄악 가득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이단으로 몰아갈 권한이 주어질 수 있는가? 그러한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런 권한은 교회에 있었다.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보편교회. 지난 천 년간 무지와 죄악으로부터 숱한 사람을 건져낸 교회. 그리고 지금은 분열과 물욕 속에 타락하여 또 다른 죄악의 온상이 되어버린 교회.

만약 교회에 그러한 권한이 없다면, 권한을 되찾기 위해 어떤 개혁을 해야 하는가? 아니, 그러한 개혁이 과연 가능할까? 개혁이 불가능하다면 무엇으로 교회의 권위를 대신해야 하는가?

막 머리가 아파지려는 찰나, 시그리드를 어떤 이유로든 변호하게 된다면 자신이 무엇을 논거로 삼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고민 속에서 곁가지로 튀어나온 생각. 허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훨씬 무거운 질문보다는 이쪽에 천착하는 쪽이 더 마음이 편했으므로, 후스는 의도적으로 이쪽에 마음을 집중했다.

“혹시 의학대학 쪽으로 가실 일 있는 분 계시오?”

주변을 둘러보며 물으니, 저쪽 구석에서 등잔불에 의지해 두꺼운 책을 중얼대며 읽고 있던 강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쪽에서 제 종질이 조수로 일하고 있는데, 어딜 갔다가 프라하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하필 돌아온다는 날이 오늘이라, 정말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차 다녀올 심산이긴 했습니다만...”

“가는 길에 그쪽 교수에게 뭐 하나 물어봐 주시겠소이까? 소의 고름으로 천연두를 막는 방법이 정말로 어디 의서에 기록되어 있는지 말이오.”

“예? 소의 고름으로요? 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반 시간쯤이나 지났을까, 폭동이 교정 안쪽에 미쳤는지 확인하고선 곧장 바깥으로 나갔던 그 강사가 사색이 되어,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소의 고름에 대한 답변을 들으려 몸을 일으킨 후스도, 그보다 훨씬 심각한 용건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큰일입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다들 일어나 강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흑사병, 그게 군중 사이의 뜬소문인 줄로 알았는데... 진짜라고 합니다!”

흑사병은 쉽게 꺼내도 괜찮은 말도, 쉽게 꺼낼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곧 모두가 술렁대기 시작했다.

“조용히! 차근차근 말해 보시오. 어디에서 발병하였다고 하오? 어디로 옮겨가고 있고?”

“도저히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워낙 도처에서 동시다발로 발병하고 있는지라...”

폴란드 왕 요가일라는 보헤미아 전역에서 용병을 모아들였다.

그리고 프라하에 거주할 만큼 유복한 시민이 용병 노릇을 할 리 만무했다.

의대 교수들이 오늘 비보를 접하고서 급히 폭동을 뚫고 수소문한 바에 따르면, 분명한 점은 딱 하나뿐이었다.

“이미 프라하는 포위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모레, 어쩌면 글피께 당도할지도 모릅니다...”

“맙소사.”

그래도 종종 역병 돌 때 몸을 피하곤 하는 시골 별장은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몇몇 유복한 교수들은 몰래 떠올리고, 누구는 저들끼리 수군대고, 누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훌쩍였다.

그리고 후스로 말하자면,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흑사병. 그 종말의 기수 앞에서 인간은 한낱 무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나마 실효성이 입증된 유일한 대책은 딱 하나, 40일quarantine의 격리였다. 죽을 사람은 그 운명 앞에 던져놓고, 산 자들은 애써 문을 걸어 잠그고서 낫을 든 죽음이 그들 문 앞을 비켜 지나가길 기도하는 일.

그 매정함과는 별개로, 격리는 가장 시행하기 어려운 대책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었다가는, 그대로 병이 성안으로 들어오고 죽음이 날뛰기 마련이었으므로.

혹자는 그렇게 불완전한 격리일지라도 유의미하게 사망자가 줄어든다 주장하고, 혹자는 흑사병의 원인은 공기 중의 독기miasma이므로 격리는 무의미하다 말하곤 했다. 하지만 잘게 간 에메랄드나 사혈법bloodletting, 네 가지 식초와 꿀을 넣은 연고에 비하면 그나마 효과가 있거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방도는 격리뿐이었다.

“후스 교수님, 이대로라면 곧 성문이 폐쇄될 것입니다. 피사 공의회에 때를 맞추어 출두하시려면, 얼른 빠져나가셔야...”

“이 공포와 혼란의 때를 맞이해, 프라하 사람들을 버려두고 나 홀로 빠져나가라는 말인가?”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후스의 이성은 ‘그렇다’라고 답하고 있었다. 그는 어쨌든 이단 혐의를 벗기 위해 피사로 가야만 했다.

흑사병으로 얼마나 많은 프라하 시민들이 죽어나가든, 그것은 신학과 철학을 조금 안다 자부할 뿐인 자신이 관여할 바도 아니요, 손써볼 방도도 없는 일이었다.

... 과연 그런가? 양심의 조그만 목소리가 가슴 한편에서 울리는 듯했다.

어쩌면 다른 병처럼 흑사병도 인간의 지혜로써 막아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가능성이 먼 곳도 아니요, 바로 성문 바깥에 있음을 너는 알지 않느냐, 농부의 아들 얀 후스야. 정녕 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 가능성을 버리고자 하느냐?’

‘그 아이는 이단자다. 마녀일지도 모른다.’

또 이성이 항변한다.

‘마녀의 술법으로만 살려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죽게 내버려두어도 괜찮다는 말이냐? 이단의 술수로 사람을 구해내는 것과,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그 술수를 그대로 묻어버리는 것, 무엇이 더 큰 죄악이겠느냐?’

마음이라는 전장에서 두 목소리가 논쟁을 벌이던 차. 바깥에서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사병 소식에 더욱 크게 번진 폭동이 마침내 이 대학의 교정까지 미친 것일까?

교수와 강사들이 모두 놀라 창문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눈에, 뜻밖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잇, 이놈들, 비켜라! 네놈들 모두를 위한 일이란 말이다!”

“나는 트로츠노브의 얀 지슈카요! 우리 앞을 가로막지 마시오! 우리의 명예에 맹세코 잘못을 범하려 온 것은 아니외다!”

일군의 거친 사내들 – 아마 용병인 듯했다 – 이 대학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석양에 붉게 물든 머리 휘날리며 소녀 하나가 뛰쳐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후스 교수님! 후스 교수님! 도와주세요! 제발요!”

후스는 저도 모르는 사이 벌떡 일어나, 강의동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시그리드는 곧장 그 앞으로 달려와, 자칫 후스에게 부딪힐 뻔하다가 겨우 멈추었다. 그러나 시그리드는 딱히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시그리드가 후스의 팔을 붙잡으며 호소했다.

“교수님! 흑사병을 막을 수 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른 어떤 치료법보다 더 가망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딱히 의식하지도 않는 사이, 평소 습관대로 눈앞의 상대를 뜯어보고 그 마음을 짐작하게 되는 후스의 두 눈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직접 제가 해본 적은 없고, 정말 성공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어요. 최악의 경우에는 인명은 인명대로 상하고, 헛수고는 헛수고대로 하겠지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교수님, 일이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잘 되면 모든 공을 교수님께 드릴게요. 제발 도와주세요...”

자신의 것과 비슷한, 어쩌면 소녀 딴에는 더 무거울지도 모르는 고뇌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 고향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도시. 도움을 구하러 찾아왔건만 끝내 등을 돌린 도시를 구하기 위해 그런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가? 그것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그런 고뇌 끝에 이곳까지 달려왔을 것임을, 후스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제야 후스는 자신이 시그리드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시선이 자신의 마음속 한구석을 찌르는 듯해, 후스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들어오시게들. 논의해야 할 것이 많겠군.”

저의 얼굴에 스친 부끄러움을 시그리드가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후스는 이방인과 용병들을 강의동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 *** ---

1. 중세 이후 중앙유럽의 역사는 독일인들을 빼놓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특히 체코처럼 독일권과 교류가 활발했을 뿐더러, 스스로 체코인에 가깝다고 인식하는 독일계 체코인과 뚜렷한 별도의 정체성을 간직한 독일인 모두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존재했던 경우는 더욱 복잡하지요.

그러나 가독성을 고려하여, 작중에서는 이들을 지칭할 때 모두 독일식 인명으로 통일하고자 합니다. (즉 카렐Karel 대신 카를Karl, 지크문트Zikmund 대신 지기스문트Sigismund, 바츨라프Vaclav 대신 벤첼Wenzel로 표기하려 합니다.)

카를 4세는 상술한 두 유형의 독일인 중 전자에 속할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는 체코 내에서는 명군으로 칭송받고 있지요. 하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는 가문의 이익을 위해 제국을 약화시켰기에 썩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합니다.

2. 뛰어난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얀 후스는, 안타깝게도 훌륭한 정치인은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감각의 결여는 결국 그를 파멸로 몰고 갔고, 그의 죽음은 후스 전쟁의 발단이 됩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학 끝에 프라하 대학에서 학위를 딴 후스는, 곧 당시 유럽 전역의 대학에서 호응을 얻고 있던 존 위클리프의 사상을 접하게 됩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던 위클리프는, 이미 당시부터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던 교회의 도덕성 문제를 지적하며, 교회 자체의 개혁을 역설했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신학/철학 사조를 내세우기도 했지요.

후스는 이런 위클리프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주변에 널리 퍼뜨렸습니다. 달변가였던 후스는 곧 대주교의 허락을 받아 자신만의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곧 많은 추종자들을 얻게 됩니다. 후스 본인은 자신이 위클리프의 지나치게 과격한 점은 배격하고, 그 주장 중 올바른 부분만을 뽑아 널리 퍼뜨리고 있다고 여겼지만, 당시 교회뿐 아니라 점점 효력을 다해가는 중세 질서 자체에 회의를 가지고 새로운 사상에 열광하곤 하던 보헤미아인들은 후스의 주장에 점차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지요.

결국 후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이 되어버렸고, 작중 등장하는 ‘교황보다는 후스’라는 구호가 그 열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등장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후스 본인이, 보헤미아가 이단의 산실이라는 ‘중상모략’에 대처하고자 벌였던 모든 노력은, 본인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화형당하고 온 보헤미아는 수십 년간 전쟁에 휘말리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지요.

3. 17세기까지 프라하 대학의 모든 교수는 사제 서품을 받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아직 신학과 철학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시절 학문의 길에 나섰던 후스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4. 원 역사에서도 피사 공의회를 즈음해 이런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멋모르고 피사 공의회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가 뒤늦게 공의회 찬성파로 갈아탄 즈비넥 대주교는, 자신의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위클리프파 탄압에 앞장서야 하는 입장이었지요. 결국 그는 지금껏 (멋모르고) 후스와 그 일파의 위클리프 신학 연구활동과 대중강연을 지지하던 입장을 철회했고, 대신 강경한 탄압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 분서 소동으로 촉발된 폭동으로 인해 즈비넥 대주교는 한동안 프라하를 벗어나 도피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5. 프라하의 예로님Jeronym Prazsky / Hieronymus Pragensis은 작중 언급된 것처럼 후스의 추종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후스와 그 동지들의 후원을 받아, 직접 옥스퍼드까지 가서 위클리프의 저작들을 들고 프라하로 돌아오기도 했지요. 이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후스가 구금당해 이단 혐의로 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른 후스파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로님은 콘스탄츠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후스와 마찬가지로 고문과 재판 끝에 화형당하게 되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