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 광시곡 (5)
6. 보헤미아 광시곡Bohemian Rhapsody (5)
분노한 프라하 시민들이 성 비투스 대성당을 휩쓸었다는 이야기는 하루도 되지 않아 주변 전역에 퍼져나갔다.
그 소문을 퍼뜨리는 이들 중 상당수는 군중과 함께 대성당으로 밀고 들어갔던 이들이었으므로, 허풍과 격앙된 과장이 섞여 점차 소문은 거창해졌다.
누군가는, 시그리드 리프트라사가 타락한 교회의 앞잡이에게 정의로운 분노를 드러내니, 어디선가 하얀 새가 나타나 제르송을 들이받아 창문 너머로 밀쳐냈다고 하였다.
또한 얀 후스가 그 장 뭐라 하는 프랑스인을 꾸짖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고도 하였다.
아무래도 잃을 게 많은 부유한 시민들은 조금 더 절제된 형태의 이야기를 서로 전했는데, 그들 또한 대개는 후스와 시그리드의 편이었다. 비록 그 둘이 완전히 무고하지는 않더라도, 이 도시에서 행한 선량한 일은 보답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이처럼 모두들 자신의 말로 오늘의 대사건을 서술하느라 장 제르송 박사의 운명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정도 높이에서 던져졌으니 아마 죽지 않았겠느냐, 하는 정도였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프라하 시민들이 저들과 그 은인들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교회에 가운데손가락을 내밀었다는 사실이었으니까¹.
덕분에 시그리드는 겨우 폭도들 사이에 섞여 있던 저의 용병단원들을 진정시키곤, 그들을 한데 모아 아직 수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제르송을 데리고서 프라하를 몰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미안해요.”
“아니, 나야말로 고마워해야지.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프라하에서 한참 떨어진, 블타바 강 서안의 작은 숲. 장 제르송 박사는 강물에 몸을 담그고 겨우 오물을 씻어냈다. 그 말투가 한결 겸허해진 것이 시그리드와 스베인 귀에도 느껴졌다.
“암, 고마워해야지. 우리 시그리드 마음씨가 이리도 고운데, 이단이니 마녀니 몰아가기나 하고, 고약한 작자 같으니.”
그사이 인근 민가에서 수건과 옷가지를 마련해온 스베인이 툴툴대었다. 패잔병 몰골로 겨우 삼삼오오 프라하를 빠져나온 지기스문트의 헝가리 군사들에게서 옷을 빌리려 했지만, 그들 또한 땀이나 피, 오물 등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베인, 그만 하세요. 박사님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통역관님도 방금 그 얘기는 굳이 옮기실 필요 없어요.”
공의회와 교황, 그리고 보헤미아의 다음 국왕인 지기스문트의 권위만을 믿고 방심했다가 우르르 와해되어버린 – 설령 제 정신 차리고 있었더라도 분노한 군중을 막기엔 역부족이었겠지만 – 군사들 대신 제르송을 데리고 남들 눈 피해 프라하를 빠져나온 것은 시그리드의 백송고리 용병단이었다.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업고 온 사람이 군중의 몰매를 맞아 죽게 되면 그때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었으니, 제르송이 목숨 건진 것은 꼭 시그리드가 선량해서만은 아니었다.
“이제 어찌할 텐가?”
“우선은 국왕 폐하를 뵈러 가시지요. 오늘의 일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수습해볼 방도는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실낱같은 마지막 기회를 잡아보고자, 후스는 이미 비셰흐라트로 향해 국왕 벤첼을 접견코자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강 건너편에서 지슈카의 용병들이 나룻배 두어 척을 구해 건너오는 게 보였다. 밝은 달빛 덕에 이 밤중에도 큰 어려움 없이 강을 건널 수 있을 터였다.
“부디 벤첼 폐하께서는 이번 사안의 중대함을 알고 계시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군.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이 일이 있기 전부터 제르송은 파리 대학를 거쳐가는 후스의 추종자들과 몇 번쯤 언쟁을 벌인 바 있었다. 그리고 후스가 비록 이단자 위클리프만큼 철학과 신학에서 엄청난 지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도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는 달변의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².
후스 그자는 이단인 만큼이나 달변이니까, 설령 ‘백수idle 왕’일지라도 그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뭔가 대책을 세울 것이었다³.
“박사님께서 도와주실 수는 없을까요? 공의회에서 박사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하던데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시그리드가 물었다.
“나뿐 아니라 공의회의 온건한 사람들은, 후스라면 몰라도 너라면 그렇게 혐의가 무겁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내 목숨을 저 폭도들로부터 구해준 것도 사실이니, 내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노력해보겠다.
하지만 그 한계가 명백하리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일지라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진대, 하물며 혼란을 종식시킬 권위 자체가 걸려 있는 이번 사안이라면 오죽하겠느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기사단 사이의 분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서방 교회의 균열이 끝나고 마침내 다시금 교회가 올바르게 돌아가는 수순에 올랐음을 보이는 상징적 사건이 되어야 했다. 보헤미아의 이단 단죄와 시그리드 리프트라사의 마녀 혐의 검증은 그에 딸린 부차적인 사안일 뿐.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창문투척 사건은 큰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차적인 일에서부터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가 도전받는 셈이었으니.
“사정 모르는 자들에게, 오늘의 사건은 이 공의회의 권위가 고작 한 도시의 이단자들에게 정면으로 도전당할 만큼 미약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세상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날이 성큼 다가오는 최후의 심판 앞에서, 혼란을 종식시키고 올바른 신앙의 길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이 공의회가 그런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것을 제르송은 차마 묵과할 수 없었다.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아요.”
“이해했다니 다행이로구나.”
때맞추어 나룻배가 반대편 강안에 닿았고, 얀 지슈카가 마련해온 말과 마차가 길가에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으므로, 제르송은 시그리드가 저의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캐물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어둠을 뚫고 달려 비셰흐라트 성에 닿은 일행은, 분명 벤첼 국왕을 만나고 있어야 할 얀 후스가 대문 앞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엥? 교수님? 왜 여기 계세요? 벤첼 폐하는요?”
“... 사라졌네. 벤첼 폐하... 아니, 벤첼 그자는 진작에 도망쳤다네.”
시종장이 계속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끌기에, 결국 그답지 않은 협박까지 한 뒤에야 – 그의 추종자들과 동료 교수들이 겨우 달래고 있을 프라하 군중들을 언급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 진상을 들을 수 있던 후스였다.
그리고 그 진상이란, 바로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받고 찾아온 장 제르송이 분노한 군중과 하얀 마녀의 손에 의해 대성당에서 던져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벤첼이 나 몰라라 하고 달아났다는 사실이었다.
(국왕이 고작 반 년 사이에 저의 도성에서 두 번이나 달아나는 것도 아마 나름 희귀한 기록을 테다.)
“시종장이 마지못해 밝히기를, 여차하면 이미 후계자로 정해져 있는 헝가리의 지기스문트에게 양위하여 이 사태에 대응케 할 것이라 하였다더군.”
어차피 보헤미아의 실권은 지기스문트에게 있었으니, 벤첼 딴에는 그런 골치아픈 일을 꼴보기 싫은 이복동생에게 던지는 것이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기스문트는 황제로서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우리를 때려잡아야 하는 입장이고요.”
후스의 통역을 들은, 제르송은 자신이 그간 요약한 유럽의 정세를 단번에 이해한 시그리드의 총명함과, 그것을 한없이 가볍게 서술하는 방식 양쪽에 큰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그, 나라면 그런 표현은 쓰지 않았겠지만... 틀린 얘기도 아니로구나.”
지기스문트에게 있어 이번 피사 공의회는 실로 여러모로 중요했다. 공의회의 권위로 교회 분열을 끝마치고, 그 권위로 저는 황제로 올라서며, 동시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을 견제하는 것.
그런데 당연히 순조롭게 넘어가리라 예상했던 사소한 대목에서 발목을 잡히게 되었으니, 지기스문트가 프라하 시민들의 특이한 접객 방식에 대해 크나큰 불만을 표할 것은 명백하였다.
그리고 군주가 그 신민에게 품는 불만은, 다른 군주에게 품는 불만과 달리 재깍, 그것도 잔혹하게 터져나오기 마련.
“나는 공의회 이전부터 후스 그대가 이단자라 여겨 왔소. 하지만 이런 처지에 처하게 된 데 대해서는 동정을 금할 수 없구려. 미안하게 되었소.”
제르송이 한 사람의 학자로서 망연자실한 표정의 후스에게 위로를 건네었다.
“허나... 나머지 유럽이 다시금 혼란에 빠져드는 것보다는 그 일부인 보헤미아의 더 작은 일부 프라하가 불타는 것이 낫다고 보는 바요. 그나마 여기 시그리드 덕에 내가 목숨을 건졌으니, 그렇게까지 가혹한 처분이 내려지지는 않겠지.”
“말씀만이라도 고맙구려. 하... 이제 어찌해야 할지...”
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의 강론을 귀 기울여 들었고 저의 말에 따라 흑사병에도 맞섰던 프라하 시민들이,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빌려 나타난 조사관을 창밖으로 던져버렸으니, 공의회에 출두하여 저의 무고함을 호소할 길도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다.
한참 그렇게 한숨 내쉬며, 한쪽은 닥쳐올 혼란을, 다른 한쪽은 억울하게 이단으로 몰려 억압당할 저와 저의 동료들을 걱정하는 사이, 제르송과 후스 두 사람은 그사이 시그리드가 내내 조용히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스 선생님께는 제안을, 그리고 제르송 박사님께는 통보를 하고자 합니다.”
후스와 제르송,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곳 비셰흐라트까지 온 백송고리 용병단과 얀 지슈카를 모두 돌아보며, 시그리드는 드디어 저의 머릿속에 뚜렷이 맺힌 생각을 입 바깥으로 꺼내놓았다.
처음 이곳 보헤미아에 올 때부터 머릿속 한 구석에 품고 있던 뜻, 신대륙으로 갈 사람들을 더 모은다는 발상과 이단 혐의를 벗는다는 목표, 그리고 새로이 –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 각인된 일곱 사람의 이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서 떠오른 계획.
“우리는 이미 신성로마제국과 피사 공의회의 분노를 샀어요. 설령 이 모든 것이 오해와 실수 때문임을 알아차린다 할지라도, 저쪽은 자존심과 권위 때문에라도 물러날 수 없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 자존심과 권위를 꺾어주면 그만 아니겠어요?”
시그리드는 곧 이 땅에서 후스파 전쟁이 일어나고, 그때 얀 지슈카가 불멸로 남을 업적을 세우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 불가피한 전쟁에 개입하여, 이후 벌어질 수많은 다른 전쟁을 예방하고, 나아가 빈란드를 개척할 토대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교회와 제국 양쪽에 우리의 요구사항을 내미는 거에요. 이게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우리는 물러나지 않겠다고 단언하면서요.”
“뭐라고? 온 세상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것이냐? 너희 홀로?”
후스가 제르송의 말을 독일어로 옮겨주기 무섭게, 지금까지 무표정하게 시그리드의 지시만을 따랐던 얀 지슈카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홀로’라니? 말 똑바로 하시오. 비단 프라하뿐 아니라 보헤미아의 다른 도시 사람들도 오늘 행해진 불의를 들으면, 프라하 시민들과 어깨 나란히 하며 대성당에 돌을 던지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길 것이오.”
시종일관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던 스베인과 달리 눈매는 그저 무덤덤하였지만, 그렇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더욱 섬뜩함을 느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고작 보헤미아 왕국 안의 일부일 뿐이고, 기사도 없이 그저 평범한 도시와 농촌의 백성이 있을 뿐이오.”
허나 이단 정죄가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낳는 – 지금까지 이단이 얽힌 분쟁은 대개 그렇게 끝났던 것이다 – 무력분쟁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 제르송은 계속 토를 달았다.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당연히 제국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가만 있지 않을 것이었기에 이 계획이 성립할 수 있었다.
시그리드는 마차 짐칸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보였다.
“제가 이 총을 만든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우리는 온 세상과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스스로 온 세상이라 착각하는 이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고 싶을 뿐이지요.”
이런 말을 꺼내는 시그리드라고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물러설 수 없음을 알기에, 애써 태연한 체를 할 뿐.
“프라하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질 겁니다. 그중 우리와 함께할 이들만 데리고 우리는 제국에 맞설 거에요.
제국도, 교회도 권위가 걸린 문제인 이상 적어도 한두 번은 우리를 진압하러 오겠지요. 어쩌면 십자군을 선포할지도 모르고요.
그렇지만 그렇게 제국 각지에서 모인 기사들이 패배하고, 또 패배한다면,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겠지요. 이대로라면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고, 권위는 권위대로 꺾이지 않을까.
그때, 우리는 다시 제안할 겁니다. 기꺼이 이 유럽 땅을 떠날 테니, 우리가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만약 이 유럽 땅 안에서 결착을 보아야 한다면, 그때는 제국과 교회 입장에서도 물러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놓고 양측의 권위를 부정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빈란드로의 이주라는 선택지가 제시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 유럽에서의 삶, 그 부조리에 질린 이들에게 시그리드는 빈란드를 소개해줄 생각이었다. 발트 연안의 독일인들에 이어, 후스를 따르는 보헤미아 사람들이 새로운 이주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그리드와 보헤미아인들도, 제국과 교회도, 사생결단을 보는 대신 적당히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싸워서 상처뿐인 영광만을 얻느니 적당히 화해하고 골칫거리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질 테니까.
(물론 제국이나 교회 어느 한쪽이 완전히 눈이 뒤집혀서, 이단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달려들 경우도 시그리드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에 대한 예비 계획까지 제르송 앞에서 밝힐 만큼 입이 싸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계획의 마지막 단계. 평화롭게 보헤미아를 떠나는 대가로, 빈란드 이주에 필요한 지원과 안전보장을 얻어낸다.
그리하여 시그리드와 그린란드 사람들은, 그 어떤 군주의 호의도 받지 않고, 그 누구에게 종속되지도 않은 채, 그들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빈란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유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다른 유럽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하지만 그 모든 내막을 다 알지 못하는 제르송의 귀에는, 시그리드가 말한 모든 것이 그저 광기의 산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일어를 라틴어로 옮겨주던 후스가, 저와 비슷하게 질린 듯한 표정을 짓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럴싸하다’ 하는 생각을 온 얼굴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을 깨닫고 또 한 번 놀랐다.
“신이시여... 정녕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인가...”
시그리드는 제르송도, 그가 대표하는 교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르그레테 여왕이 걱정해주었던 것도 바로 이 점이었을 것이었다.
이미 더는 지탱하기 어려워진 질서. 그러나 지금 이 땅의 식자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질서. 그 질서 위에 선 세상을 후대 사람들은 중세라 불렀다.
야만과 혼란 앞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그들이 아는 유일한 길. 그러므로 이 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해 중세의 권력자들은 거침없이, 정의감에 가득 찬 채로 폭력을 휘둘렀다.
시그리드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굴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질린 기색 완연한 제르송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박사님께서 잘못 알고 계시는 게 있어요.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세상은 끝나지 않아요. 혼란도 끊어지지 않을 테고요. 종말도, 구원도 찾아오지 않은 채로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더는 작동하지 않는 질서의 이면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위해 조금씩, 당장 자신에게 칼날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세상을 바꾸어나간다. 위에서는 군주가 하나씩 ‘근대적인’ 법안을 만들고, 아래에서는 상인과 농민들이 기근과 가난에서 스스로 구하기 위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고 더 나은 농법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깨닫게 되리라. 더는 중세라는 이 무의미한 연극에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시그리드는 알고 있었다. 그전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 속에서 고통받고 죽어가야 할 것임을. 그리고 그 혼란이 잦아들 무렵에는 이미 그린란드는 멸망한 지 오래일 것임을.
“그것을 네가 어찌 아느냐?”
“그냥 안다고 쳐 두지요. 저더러 마녀에 이단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하얀 마녀쯤 되면 그런 것쯤은 알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시그리드는 기꺼이 이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고자 하였다. 제르송의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압박도, 에릭의 달콤한 제안도 거부한 채, 새로운 길을 찾아서.
가장 먼저 미답의 길을 밟는 사람을 세상이 마녀라 부른다면, 그때는 기꺼이 마녀가 되어야 하리라.
한편,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에 대한 소문은 - ‘창문투척defenestration’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 나머지 유럽으로도 퍼져나갔다.
“그 소문은 저도 들었습니다. 한바탕 폭풍이 불어오겠더군요.”
여동생 필리파를 만난다는 명목으로 로스킬데를 방문한 영국 왕태자 헨리⁴가, ‘그 소문 들으셨느냐’ 하며 넌지시 운을 뗀 세 나라의 임금 에릭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소이다. 우리 미천한 필멸자들이 알량한 권세를 믿으며 무어라 떠들든, 어쨌든 바람은 불기 마련이오.
그리고 그 바람에 마냥 휩쓸리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몫일 뿐. 우리 같은 이들은 오히려 돛을 달고 순풍을 받아 나아가야 하지 않겠소?”
에릭은 검은 책이 실존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책에 담긴 것이 이 시대에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지식이라는 것도.
검은 책을 손에 넣지도 못했고, 그것을 해석할 능력도 없는 에릭이었지만, 검은 책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그는 다른 어느 군주보다도 앞서 있는 셈이었다.
시그리드 리프트라사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그대로 되짚어, 그 경이로운 여인이 행한 바를 따라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에릭은 그것이 정답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폐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기사 옌스가 공손히 다가와 두 사람 앞에서 예를 올렸다.
“좋다. 진행하도록.”
“예, 폐하.”
조심스레 물러난 옌스는, 뒤돌아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일제히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판에 울렸다.
“받들어 총!”
1980년대 초 미 공군 기지요원들이 준용하던 사격통제 절차를 머스킷에 맞게 변형한 구령, 한때 그룬발트의 벌판에서 울렸던 그 구령이 이제는 덴마크군 장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에릭은 단치히를 거쳐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옛 백송고리 용병단 단원의 증언을 (때로는 약간의 강압과 물질적 보상을 곁들여가며) 취합하고, 그 옛날 시그리드의 주문에 따라 머스킷과 라이플을 만들었던 대장장이들을 한데 모아 새로 국영 병기창을 세웠다.
이 모든 것을 위해, 한동안 마르그레테 앞에서는 그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후계자의 모습을 가장하느라 고역을 치러야 했지만, 저 모습을 보자 묵었던 앙금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자, 보시오! 나의 신식 군대를! 그룬발트에서 튜튼 기사단을 몰살시킨 신무기로 완벽하게 무장하고 그에 맞는 전법까지 익힌, 유럽 최강의 보병대요!”
에릭의 호탕한 웃음에 화답하듯, 사격 절차가 이어졌다.
한바탕 총성이 지나가자, 헨리의 눈에도 이채가 돌았다.
“저 군대를 기꺼이 빌려주겠다 말씀하셨지요?”
“그렇소이다. 이미 선례도 있겠다, 이번에는 무슨 용병단 시늉을 하는 대신 당당하게 참전할 것이오. 우리 양국은 엄연히 동맹을 맺은 사이 아니겠소?”
에릭은 덴마크 홀로 이 ‘신식 군대’를 독점하는 시기가 그리 오래 이어지리라는 착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우위가 사라지기 전, 최대한 빨리 많은 이권을 얻어내야 했다. 헨리를 로스킬데에 초빙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동맹은 어디까지나 방어동맹이지요. 프랑스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덴마크가 참전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엇을 바라느냐, 그것을 헨리는 묻고 있었다. 에릭은 또 한 번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국왕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 더 있겠소이까? 오직 부국강병 뿐이올시다.
강병은 갖추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부국富國을 노릴 때 아니겠소? 그대가 훗날 프랑스를 완전히 무릎 꿇리고자 출정할 때, 나의 군대는 그대와 함께할 것이오. 영광은 그대에게, 그에 상응하는 부귀는 우리에게.”
잠시 계산에 들어간 헨리는, 곧 에릭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두 사람 모두, 철저한 속셈에 따라 서로를 향해 입꼬리를 들어보였다.
이만하면, 필리파가 운 나쁘게 – 시종들은 모두 멀쩡한데도 – 흑사병에 걸려 사망한다 한들 잉글랜드와 덴마크 사이가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시그리드가 있을 남쪽, 프라하 방면 하늘을 보게 되는 에릭이었다.
검은 책도, 하얀 마녀도, 반드시 자신의 손에 넣고야 말 것이다. 시대를 무너뜨릴 금단의 지식, 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저의 힘으로 삼아가면서.
거센 바람이 불어와, 화약의 연기를 에릭 코앞까지 몰고 왔다. 그러나 그 매캐한 냄새마저도 에릭에게는 감미로운 향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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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운데손가락을 위로 세우는 제스쳐는 그 역사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올라갈 만큼 서양권에서는 유서 깊은(?) 모욕의 방법입니다.
2. 실제로 신학의 길에 접어들기 전 후스는 뛰어난 내기 체스 솜씨와 두주불사의 주량을 자랑하는 ‘인싸’였다고 전해집니다. 후스 본인이 자신의 ‘방탕한’ 과거를 반성하며 남긴 기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지요. 후스가 프라하 대학을 중심으로 큰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던 데는 이런 기질도 한몫했습니다. 학창 시절 그의 과외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훗날 프라하 대학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되면서, 후스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준 것이지요.
3. 벤첼 4세는 백수 왕the Idle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무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카를 4세로부터 많은 권력을 물려받았음에도 뚜렷한 업적 하나 이루지 못했고, 결국 독일왕 지위도, 보헤미아 국왕 자리의 실권도 잃게 됩니다. 더구나 ‘백수’라는 조롱을 들을 만큼 정사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심지어 알콜 중독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후스가 화형당한 이후로 점차 불거져가던 보헤미아인들의 불만에 대해서도 우유부단한 모습만을 보였고, 결국 이는 1419년 제1차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야사에 따르면, 그는 창문투척 소식을 듣자 놀라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투척사건 후 보름 뒤에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정신적 충격이 그 사인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4. 헨리 5세로 곧 등극하는 왕태자(웨일스공) 헨리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군주의 재목이자 군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정중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극히 냉정해지곤 하는 태도는 당대의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지요. 이 무렵 이미 병약하여 오늘내일 하는 상태였던 헨리 4세가 1413년 사망하자, 헨리 5세로 왕위에 오른 그는 곧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프랑스 정국에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 정파와의 협상이 결렬되자, 힘으로써 저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프랑스를 침공하지요.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였던 백년전쟁에는 다시 불이 붙고, 헨리 5세가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대패시킨 이후로 계속 프랑스는 잉글랜드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그 기세가 뒤집힌 것은 아쟁쿠르 전투로부터 14년 뒤,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부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