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31화 (31/116)

연락두절 (3)

7. 연락두절 Communication Breakdown (3)

다들 알고는 있지만, 세상의 평화를 위해 밝혀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다들 생각하고는 있지만, 영혼의 안식을 위해 입 밖에 내어선 안 되는 질문도 있다.

교회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지, 권력의 정의로움은 어디서 발하는지.

제멋대로 흐르는 생각의 흐름은, 자칫 악마가 날뛰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에, 교회라는 강둑이 있어 그런 생각을 올바르게 선도하고 규율하였다.

그러나 그 강둑은 이제 한낱 흙더미로 전락하였고, 터져나온 물은 거침없이 주변으로 흘러나갔다.

“‘하얀 마녀’가 아니라 대탕녀 바빌론이었는가!”

이미 최후통첩의 단계는 지났고, 남은 것은 단죄뿐. 프라하에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전달하러 온 드래곤 기사 피포 스파노Pippo Spano¹의 곁에서, 그를 따라온 한 신부가 탄식했다.

몇 달 전, 그러니까 그 악명 높은 창문 투척사건을 즈음하여 실권 없던 독일왕 루프레히트가 병사했다.

곧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왕 선거에서,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국왕 지기스문트는 독일왕으로 추대되었다. 전 보헤미아 국왕 벤첼이 프라하에서 도망치면서 왕위를 지기스문트에게 넘긴 덕이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교황 알렉산데르 5세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독일왕 지기스문트와 기독교 세계 동쪽의 다른 모든 왕후王侯에게, 이미 파문당한 프라하의 이단 수괴heresiarch 얀 후스와 마녀를 토벌하는 십자군을 일으킬 것을 촉구하는 칙서.

지기스문트는 피포 스파노를 프라하로 보내, 교황칙서의 사본과 더불어 지기스문트 자신을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하고 이단자를 단죄하는 데 혼신을 다해 협력할 것을 명하는 보헤미아 국왕 명의의 칙서를 함께 전달토록 하였다.

피포 스파노의 상식대로라면. 사실상의 황제 – 아마 십자군 원정이 성공하게 되면 이를 명분삼아 로마에서 대관식을 올리게 되리라 – 와 교황 두 사람의 칙서를 들고 보헤미아에 접어든 순간부터 두려움에 떨며 용서를 청하는 귀족과 상인들이 수북하게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보헤미아 국경을 넘어 프라하 목전까지 온 지금까지, 그들이 거쳐온 도시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용서를 구하는 속죄의 청원도, 무수한 악수의 요청도 아닌 무관심뿐이었다.

“파문이라는 말도, 십자군이라는 말도 이토록 가볍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건만... 마치 우리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던 거룩한 연결이 마녀의 농간으로 말미암아 두절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미 주요 도시의 유력자들과 귀족들은, 프라하 시에서 그리 머지 않은 자유시 쿠트나 호라Kutna Hora에서 프라하 시의회의 이름으로 소집된 전국의회Land diet에 참석하러 떠났고², 나머지 모두는 그 프라하에서 출간된 ‘시대상Times’ 이야기만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문자와는 연이 없을 것만 같은 농민들조차, 주변에 수소문을 해서라도 그 내용을 접하려 애쓴 뒤, 저들끼리 책의 내용을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하곤 했다.

그것이 바로 책의 무서운 힘이었다. 사람의 말로만 전해지고 또 와전되면서 자연스레 난상亂想으로 끝나버리던 것에 뚜렷한 초점을 부여하여, 무의미한 수다와 잡담만 있던 곳에 대화와 공론을 만들어내는 것.

허나 그런 학자다운 감상과는 거리가 먼 피포 스파노에게는, 그를 따라오는 성직자들이 한탄을 하든 말든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하얀 마녀의 땅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랄 뿐.

프라하에서 벌어진 소요가 보헤미아의 다른 지역으로 퍼지지 못하도록 경고하러 떠났던 지기스문트의 수하들이, 귀족들의 확답 대신 문제의 서책만 덩그러니 들고 돌아온 이래, 하얀 마녀 시그리드의 악명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당당히 적힌 후스의 이단적 논설에 어찌 대응할지 고민하며 격무에 시달리던 교황 알렉산데르 5세가, 십자군을 선포하는 칙서를 반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사하면서 그 악명은 한층 더 높아졌다³.

상식을 발휘해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보헤미아 각지에 뿌려진 그 ‘시대상’ 책자는 모종의 방법으로 대량인쇄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허나 이미 항간에는 그 책에 어떤 무시무시한 저주가 서려 있었으며, 그 글자를 눈에 담는 자들은 곧 지독한 꼴을 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정신 똑바로 차리시오들. 저기 저곳이 프라하요.”

스파노가 본인의 두려움부터 애써 억누르며 주변에 말했다. 하도 주변에서 호들갑을 떨다 보니, 부풀려진 소문 중 아주 약간은 진실도 담겨 있지 않을까 내심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든 말든 들판을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 강. 그 강이 흘러가는 곳에 거대한 도시의 성벽이 서 있었다. 이단과 마녀의 소굴 프라하.

그리고 그들 머리 위를 맴도는 하얀 새 한 마리와, 길가에 서 있는 노파 하나...

“저기, 혹시 파문 소식을 들고 오신 분들이신가요?”

억양 묘한 독일어로 여인이 물었다. 그제야 상대가 노파가 아니라, 은발의 여인임을 깨달은 스파노가 답했다.

“그렇소만.”

“때맞추어 잘 오셨어요! 아, 제 소개를 안 했네요. 그린란드의 시그리드랍니다.”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성호를 긋던 심약한 성직자 하나가 혼절하여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

시그리드가 괜찮으시냐며 묻자, 다들 한사코 손 내저으며 시그리드의 호의를 거절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많이 아프셨을 텐데...”

웃는 낯에 차마 침은 뱉을 수 없던 스파노가 나름 정중하게 물었다. (함부로 침을 뱉었다가는 마녀가 또 어떤 끔찍한 저주를 내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맞추어 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십자군 선포 소식에, ‘오게 두어라’ 같은 섬뜩한 답이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하며 스파노가 물었다.

“아, 다른 건 아니고, 군자금을 마련하려고 프라하 시내 교회의 귀중품을 압류하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 칙서가 있으면 설득이 한결 쉬워질 것 같아서요. 함께 시내로 들어가시겠어요?”

“시내로?”

“네. 싫으시다면야 그냥 돌아가셔도 되고, 이대로 의회가 열리는 쿠트나 호라로 가셔도 되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전장도 몇 번 누빈 적 있는 자신이 갓 소녀 티를 벗은 여인에게 두려움을 느껴 도망찬다면 그 또한 곤란한 일이었다. 결국 스파노는 시그리드의 말을 따라 프라하 시내로 들어서게 되었다.

피사에서 프라하의 반란 소식을 들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평온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이 스파노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단자 후스를 단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벌어졌다는 폭동의 상흔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흑사병이 이곳을 덮쳤을 때 행해졌다는 무시무시한 주술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인과 보헤미아인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합심하여 애쓰는 듯한 묘한 분위기만이 감돌았다.

반면 곧 닥쳐올 십자군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기야, 지기스문트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진작에 프라하 시를 벗어났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다.

그렇게 그들은, 누군가는 두리번대고 누군가는 눈과 귀를 닫고 앞만 바라보며 한참 시내로 들어갔다. 중간에 조금씩 사람들이 따라붙어, 어느새 그들의 첫 번째 목적지인 듯한 제법 번듯한 교회 앞에 도착했을 때는 군중 한 무리를 이루었다.

꾹 닫힌 문 앞에서 시그리드가 목청을 높였다.

“신부님! 신부님, 안에 계신가요? 저 시그리드에요!”

그리고 꽉 닫힌 문 안쪽에서는, 작센 억양 물씬 풍기는 독일어로 단호한 응답이 돌아왔다.

“썩 꺼져라! 너 간악한 마녀야! 내 비록 부족하여 신도들이 너의 간계에 넘어가는 것은 막지 못했으나, 네가 이 거룩한 교회를 더럽히는 것만은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

스파노가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우리를 여기 데려온 까닭은 무엇이고?”

“아, 별 건 아니고, 우리네 군자금으로 쓰려고 여기 안에 있는 이런저런 귀중품을 꺼낼 생각이거든요. 성상을 파괴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귀중품만요. 자세한 내막은 저희 쪽에서 낸 책자를 보시면 잘 나와 있답니다.”

교회에 이런저런 부가 많이 쌓여있다는 것은 이 무렵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에 반기를 든 프라하의 이단자들은, ‘시대상’에서 교회의 청빈을 요구한 바 있었다.

“그러면 그냥, 그러니까...”

“프라하 사람들을 몰고 와서 폭력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랬다가는 이 교회 안쪽의 성상이나 다른 예술품들도 파손되기 십상이겠지요. 예술품은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다른 이들에게는 금시초문인 이야기를 태연하게 꺼내는 시그리드였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파문이랑 십자군 선포를 알리는 칙서를 가져와 주셨으니, 딱 시기가 적절한 셈이지요.”

스파노와 성직자들의 상식이야 무너지든 말든, 저의 상식선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시그리드는, 이만하면 알아들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곤 다시 교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부님! 여기 피사에서 오신 지기스문트 폐하의 대리인과 훌륭한 성직자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도 문을 안 열어주실 건가요?”

“설령 네가 성인의 환상을 이 앞에 현현시킨다 할지라도 이 문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신부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저희도 그냥 물러나겠습니다!”

시그리드는 그 자리에서 스파노 일행과 군중을 향해 빙 돌더니, 안쪽의 신부가 훤히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보셨지요? 여기 이 교회는 파문까지 당한 이단과 마녀가 설치는 프라하에서 일말의 훼손도 당하지 않고 멀쩡히 남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성 비투스 대성당도 휩쓰는 이단의 무리가 왜 이 교회는 멀쩡히 남겨두려는 걸까요? 혹시 이 안의 고매하신 신부님께서 실제로는 우리 후스 선생님을 존경하고 지지하기에, 이단자들과 모종의 협약을 맺었던 것은 아닐까요?”

“뭐라고? 지금 무슨 망발을 하는 것이냐?”

교회 안쪽에서 항의하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이단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멀쩡히 있는 교회라면 그 역시 이단 아니겠어요?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직자 중 하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들이야 진상을 알지만, 그저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을 멀리서 보고 헤아려야 하는 교황청과 공의회 입장에서는 시그리드가 떠든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신이시여, 용서해주시옵소서!”

같은 생각을 교회 안쪽의 신부도 한 모양이었다. 곧 문 뒤편에 마구 끌어다놓은 의자와 가구 등을 치우는 소리가 나더니, 마침내 빗장 드는 소리도 났다.

“빌어먹을. 그래, 다 털어가라, 너 사악한 마녀야!”

“네, 감사합니다. 영수증도 드릴까요? 저 중에 정말로 정당하게 벌어들인 재화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필요 없다! 필요 없어!”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뭐.”

군중 사이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듯한 청년 여럿이 우르르 나와, 교회 안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잊지 마세요! 당장 우리가 쓸 수 있는 금화와 은화만 챙겨 나오셔야 합니다! 다른 걸 슬쩍했다가 걸리면 책임 안 져드릴 거에요! 모두 챙긴 다음에는 지슈카 선생님께 그대로 전달해 주시고요!”

“아가씨, 우릴 못 믿으십니까? 흑사병 때부터 손발 맞춰본 사이인데 의심하시면 서럽습니다.”

“에이, 그냥 혹시나 해서 덧붙인 군말이지요. 섭섭하셨다면 미안합니다.”

시그리드와 프라하 사람들은 저들끼리 웃고 떠들면서 교회를 털고, 신부는 망연자실하여 털리는 저의 교회를 바라보고, 분명 엄정한 선전포고여야 했을 무언가를 들고서 먼길 온 이들은 저들의 상식이 뒤집히는 이 기묘한 광경에 말 한 마디 못하고 그저 눈만 꿈쩍거리고 있었다.

“자, 이제 한 군데 끝났고, 아직 여럿 남았답니다. 자, 다음은 어디지요?”

잽싸게 그 옆에 나타난 다른 청년들이 답해주었다.

“설상雪上의 성모 교회입니다. 여기서 금방입지요,”

“크헤헤, 배불뚝이 요한 신부님께서 오늘은 조금 수척해지시겠구만.”

그 모습을 목도한 스파노는, 설령 자신이 가장 장엄한 방식으로, 경외를 자아내며 선전포고를 전달하고자 했다 한들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미 프라하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강대한 권력과 광대의 우스갯소리는 서로 뒤엉키고, 저들의 뜻에 따라 정해지는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으므로³.

얀 후스와 프라하 대학의 교수들, 그리고 프라하 시의원 대부분은 쿠트나 호라로 떠나 있었다. 전국의회에서 저들의 주장을 온 보헤미아의 주장으로 정립하고, 명료하게 정리해서 다시금 교황과 지기스문트에게 전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그사이 남은 이들은 차근차근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라하의 공방은 후스를 따르는 프라하 시민들과 주변에서 모여든 일손들로 붐비고, 프라하 교외의 민병대 본부 역시 물자를 나르는 이들과 나날이 찾아오는 신병들로 매한가지로 북적였다.

하지만 이 무렵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용이나 신앙심, 기사도가 아니라 바로 황금이었다.

피포 스파노 일행이 넋이 절반쯤 나간 채로 프라하 시내를 한 바퀴 돌고 – 설령 시민들 손에 조리돌림을 당했다 한들 이만큼 정신이 혼미해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 전국의회가 열리는 쿠트나 호라로 떠난 뒤.

객들을 떠나보낸 직후에 열린 민병대 작전회의는, 바로 그 전비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알리는 시그리드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 정도면 전비 걱정은 없겠지요?”

“이야, 교회에 돈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물론입니다. 이 정도면 이전에 지슈카 대장께서 말씀하신 물량 그 이상으로 화포를 찍어낼 수 있겠는걸요.”

후스를 따르는 장인들을 중심으로 급조된 화포장 길드의 길드장 마테이가 보기 드문 웃음을 만면에 가득 띄웠다.

“전에 말한 물량 이상이라? 얼마만큼을 말하는 것이오?”

얀 지슈카가 물었다.

“이만하면 민병대에게 지급할 그 머스킷이랑, 시그리드 여사님과 명사수sharpshooter 몇몇에게 지급할 라이플 외에도 여력이 남겠습니다.”

“그러면 사석포를 조금 만들 수 있겠소? 지난날 그룬발트에서 기사단이 쓰는 걸 보니, 밀집한 기병대나 보병진 상대로 그만한 게 없을 듯하던데.⁵”

뭔가를 떠올린 시그리드가 끼어들었다.

“사석포를 만드느니, 차라리 작은 대포 여럿을 만들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그쪽에서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검은 책’의 존재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지슈카는, 시그리드의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책 어딘가에는, 신학도였다가 공산주의자로 돌아선 소련의 강철 서기장조차 신이라고 인정한 ‘포병’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으므로, 지슈카가 시그리드에게 보내는 신뢰는 결코 배신당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화약무기를 많이 쓰게 되면, 당연히 화약 소모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듣자하니 그 총이라는 물건도 한두 번 전투 치르고 나면 못 쓰게 되어서 새로 갈아야 한다던데요.”

민병대 재정을 담당하는 시청 재무관 온드레이가, 그의 직무에 충실하게 딴지를 걸었다.

“우리 계획의 대강은 전투를 최대한 안 치르는 쪽으로 잡고 있어요. 그쪽으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상대는 지기스문트 폐하 아닙니까. 거기에 십자군까지 선포되었다는데...”

지성과는 별개로 견식이 좁은 이들은 십자군이고 백자군이고 다 같은 기사 나으리들이니 때려잡으면 그만이라 여겼다⁶.

또한 시의회에 자리 얻을 만큼 견식이 넓은 이들은, 애초에 그 십자군이라는 게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시대에 성지를 탈환한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뭔가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당장 프랑스인들이 세계 제일의 기사라 떠받드는 부시코Boucicaut 원수가 지휘하던 십자군이 투르크인들에게 허망하게 대패한 것이 15년 전이었다.⁷)

하지만 양측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어중간한 시민들, 예컨대 재무관 온드레이 같은 이들로서는 십자군 이야기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세요. 여기 지슈카 선생님이시라면 막아내고도 남으시니까요.”

“거 과찬은.”

그러나 지슈카 본인도 시그리드의 ‘과찬’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은근히 직감하고 있었다. 그 옛날 처음 전투에 나설 무렵, 대체 왜 지휘관들은 적아를 막론하고 저토록 무능할까 궁금해하던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

다른 것은 몰라도, 신은 지슈카 자신에게 남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군사적 재능을 내려주셨다는 사실.

일개 용병단 단장을 넘어, 제국 제일의 실권자이자 곧 황제가 될 지기스문트에게 맞서는 반란을 조직하면서 지슈카도 그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온드레이 씨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전쟁은 아무리 잘 계획해도 항상 의외의 일은 터지기 마련이니까.”

지기스문트가 더 이상의 망신을 감당하지 못할 때까지, 그의 군세를 가장 굴욕스러운 방식으로 흠씬 두들겨주기.

이것이 프라하 반란군의 간명한 대전략이었다.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 변수를 줄여나가는 게 우리가 이렇게 회의를 하는 목적 아니겠어요?”

“그건 또 그렇지.”

지슈카는 자신의 재능에 한계가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길 수 있는 때와 장소에서 싸운다면 상대가 누구든, 또 얼마나 많은 병력을 이끌고 왔든 승리를 거둘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때와 장소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어떻게 상대를 그런 곳까지 끌고 올 것인가? 이미 벌어질 수밖에 없게 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런 전투를 벌어지게 만드는 것은 장군의 재능 바깥의 일이었다.

“우선은 쿠트나 호라에서 열린 의회에서 우리 쪽 입장문 채택되기를 기다리고... 아, 잠깐, 그러면 되겠네요.”

“뭐 뾰족한 수가 떠오른 게냐?”

“네, 지기스문트가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찾아와서, 우리가 정성껏 준비한 함정에 빠져서 거하게 망신당하게끔 만들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욘은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말해주었던 미래의 역사는, 바로 그런 전쟁과 정치의 연속선상에서 이어져온 것이었다.

그 흐름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본 시그리드에게 묘안 하나가 떠올랐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전쟁을 잘 한다는 칭찬을 듣는 데 있지 않잖아요. 오히려 ‘저놈들 전쟁 참 욕 나오게끔 하는구나’ 하는 반응을 얻어야겠지요.”

지기스문트로 하여금 호승심도, 복수심도 느끼지 않고, 그저 올라오는 짜증을 견디지 못하고 창칼을 던지게끔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다시금 서방교회의 유일한 수장으로 우뚝 선 교황의 명을 받드는 신실한 군주의 시늉을 하며, 지기스문트는 십자군을 모았다.

그리고 유럽 동쪽 곳곳에서 이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십자군은 같은 기독교인 상대로 더 전적이 좋았다. 이는 라틴 제국을 세운 (그 제국이 어떤 제국을 정복하고 세워졌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게 예의였다) 제4차 십자군뿐 아니라, 이단들을 상대로 벌어졌던 다른 십자군들의 예로도 증명되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프라하의 이단을 진압하는 십자군 역시 성공이 보장된 것과 다름없었다.

튜튼 기사단에서는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써 없는 병력을 쥐어짰고, 폴란드 왕 요가일라마저 잠시 그 유혹에 흔들렸다.

독일왕 자리를 노렸으나 실패한 모라비아 변경백 욥스트를 비롯한 지기스문트의 정적들도 그가 영예를 독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저의 기사들을 서둘러 소집했다.

프라하의 이단들이 또 한 번 불경스러운 방법으로 찍어낸 책자를 유럽 각지에 흩뿌린 것은 그때였다.

이번에는 쿠트나 호라에서 소집된 보헤미아 전국의회의 이름으로 작성된 선언문. ‘보헤미아인의 세 가지 요구’였다.

신의 말씀은 교회와 세속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요, 성직자들은 불필요한 모든 재물을 포기하고 사도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둘이요, 모든 인간은 군주부터 농노까지 다 같은 죄인이므로 잘못에는 예외 없이 징벌과 참회가 있어야 함이 셋이었다.

무엇 하나 후스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고, 무엇 하나 더 많은 자치와 이익을 바라는 보헤미아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게 없었다. 쿠트나 호라에 모인 독실한 신도들도 그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기스문트로 하여금 책자를 창밖에 던져버리게 만든 것은, 부록 한 쪽이 더 붙은 채 피포 스파노 편으로 부쳐진 ‘지기스문트 폐하께 진상하는 특별증보판’이었다.

그 ‘증보판’은 이런 문장으로 끝났다.

‘지기스문트 폐하께. 유럽의 모든 기사들을 모아 프라하가 보이는 비트코프Vitkof 언덕으로 오십시오. 농민 일백 명을 거느리고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자유로운 프라하 시민들과, 그들의 친구인 시그리드 리프트라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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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사단의 원조는 십자군 전쟁 시기의 기사수도회지만, 정작 이런저런 기사단이 널리 세워지게 된 것은 기사의 시대가 저물던 중세 후기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이미 기사도는 귀족 간의 유흥에 가깝게 형해화되어 있었고, 지기스문트가 설립한 드래곤 기사단처럼 친목 도모와 정치적 세력 결집에 그 의의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몰타의 구호기사단처럼 독자적인 세력과 경제적 기반(노예무역, 해적업 등)이 있는 경우에는 근세까지도 유지되기도 했지요.

피포 스파노(본명 필리포 부온델몬티)는 피렌체의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지기스문트의 측근이자 수족으로서 헝가리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약했습니다.

2. 원 역사에서는 1421년, 쿠트나 호라에서 조금 떨어진 차슬라프에서 열린 전국의회는, 후스파가 내세운 프라하의 4개조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지기스문트의 보헤미아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보헤미아인들의 이름으로 의결했습니다. 작중에서 서술된 3개조 요구는 이 4개조 요구에서 양형영성체파 교리 인정이 빠진 것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합니다.

이 차슬라프 전국의회의 흥미로운 점은, 비단 후스파뿐 아니라, 독실한 가톨릭교도 귀족들, 후스에게는 동정적이었으나 그 교리에는 찬동하지 않던 도시 유력자들 등이 모두 참여하여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후스파 반란에는 단순한 종교적 문제를 넘어선 여러 층위가 존재했고, 중세 후기의 사회적 격변을 거치며 조금씩 누적되어 왔던 그러한 욕구들은 후스의 부당한 처형 – 보헤미아인들은 후스의 안전을 보장했던 지기스문트가 정작 후스가 화형당할 때는 방관하고 있었다는 데 격분했습니다 – 을 계기로 하나로 모여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힘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3. 원 역사의 대립교황 알렉산데르 5세는 피사 공의회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지 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1410년 5월 선종합니다. 교회통합을 위해 종교와 세속 양면으로 노력했지만, 그 성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지요. 1409년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이미 70세의 고령이었기에, 급사도 결코 이상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지만, 당대에는 독살설이 나름 진지하게 퍼지기도 했습니다. 즉 그 뒤를 이어 대립교황 요한 23세가 되는 발다사레 코사 추기경이 그를 독살했다는 것인데, 요한 23세가 워낙 악평을 많이 들었기에 그런 소문이 더욱 퍼진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4. 원 역사의 후스파는 비록 작중에 나온 것처럼 인쇄술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저들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팜플렛을 제작해 온 유럽에 유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프라하의 후스파 세력이 발간한 팜플렛 중에는 멀리 프랑스 북부의 아미앵 근교에서 발견된 것도 있어, 이들의 여론전이 유럽 전역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방증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후스파가 사용한 무기 중 하나는 바로 유머였습니다. 남아있는 후스파 선전물 중 가장 오래된 ‘지기스문트에 대한 풍자’는, 도저히 보헤미아인들과 후스파를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지기스문트가 대신 이들에게 아첨을 하여 마음을 돌리고자 한다는 내용의 풍자물입니다.

5. 얀 지슈카의 군사적 천재성 중 하나는, 바로 신문물을 거리낌없이 배우고 또 자신의 전술로 흡수하는 데 있었습니다. 일례로 그의 대표적 전술이었던 전투마차 전술은 그룬발트 전투에서 본진으로 후퇴한 튜튼 기사단이 이미 동원한 바 있었지요. 후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지슈카가 전투마차를 선보인 것을 보면, 이미 그가 전쟁 이전부터 – 아마 그룬발트에서 – 이 전술을 보고 익혔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6. 지슈카를 우두머리로 추대한 후스파 중의 급진파, 즉 타보르파는 기사 계급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타보르파가 기층 민중 사이에서 지지를 받으며 오래 유지되는 원인이자 다른 온건파로부터 도외시되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미 봉기 초반부터 타보르파는 온건파가 전장에서 사망한 십자군 기사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을 가로막으며 갈등을 초래했고, 나중에는 항복한 십자군 중 일반 병사들은 모두 그대로 방면하고 기사들은 남김없이 학살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7. 작중 언급되는 니코폴리스 전투는 바예지트 1세 치하에서 발칸 반도로의 팽창을 본격화하던 오스만 투르크를 견제하기 위해 벌어진 십자군이 패퇴한 전투였습니다. 이미 땅에 떨어진 교황권이었지만, 헝가리와 지중해 교역이 위협받는 상황은 유럽 군주들을 십자군의 명목 아래 하나로 묶기에 충분했지요. 그러나 결국 이 십자군은 오늘날의 불가리아에 위치한 니코폴리스에서 참패했고, 동로마 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로마 최후의 명군 마누일 2세의 필사적인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뜬금없이 동쪽에서 나타난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괴물에게 오스만 투르크가 대패하면서 동로마 제국은 반세기 넘게 더 살아남을 수 있게 됩니다.)

부시코 원수, 즉 장 2세 르 맹그르는 전장에 나가는 족족 패배했음에도 전쟁의 달인이자 기사도의 모범으로 떠받들어졌던 기묘한 인물입니다. 그가 말아먹은 대표적인 전투는 니코폴리스 전투 외에도 아쟁쿠르 전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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