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39화 (39/116)

살아서 버티다 (4)

9. 살아서 버티다 Stayin’ Alive (4)

불과 일이 년 사이에 어지간한 도시가 일백 년 동안 겪을 격변을 다 겪은 듯한 프라하 시에도 조금씩 일상이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지슈카의 민병대와 함께 프라하 시에서 대피했던 부유한 시민들과 노약자들은 짧지만 격렬한 교전을 겪으며 엉망이 된 저들의 집과 거리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는 터전을 기꺼이 싸움터로 내주었으니, 프라하 시민으로서 나름의 소임은 다한 셈이었다.

피난민들은 십자군에게 짓밟힌 저들의 천막촌을 다시 정비했고, 지기스문트와의 협상을 위해 보헤미아 각지에서 찾아온 전국의회 대표들 뒤에는 전쟁을 겪은 도시에 필요할 물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오는 상인의 행렬이 잇따랐다.

어물쩍 해산한 십자군 중 상당수는 도로 뭉쳐, 프라하 시민들이 지기스문트를 무사히 방면할 때까지 프라하 근교에 주둔하겠노라며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저들의 주군에 대한 의리, 혹은 주군이 약속한 보상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허나 처음 도시 근교를 불태우고 프라하를 포위했을 때에 비하면, 거의 삼분의 일로 줄어든 이 십자군 부대는 제법 정중하게 보헤미아인들을 대하곤 했다.

마치 그 옛날, 온 서유럽을 제패하고서 자만에 차 있던 게르만계 귀족들이 바이킹들의 도끼날 앞에서 다시금 겸손을 배웠던 것처럼, 머스킷과 대포는 다시금 그들에게 잊을 뻔한 미덕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렇게 (비교적) 수더분해진 십자군을 상대로 누군가는 장사를 하고, 몇몇 대담한 후스파 신부들은 십자군 진영 근처에서 목청 높여 설교를 시작했다.

“고작 배 타고 바다 건너갈 사람을 모으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였다는 말인가.”

아직도 처음 프라하 성에서 ‘마녀’ 시그리드가 후스의 손을 잡고 이 난리를 일으킨 배경 설명을 들었을 때의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지기스문트의 넋두리였다.

“고작 교회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고 이 모든 일을 벌인 쪽에서 할 말은 아닌 듯한데요.”

시그리드는 몇 번이나 거듭해 설명했다. 처음 그들이 보헤미아에 온 것은, 그저 마녀 누명을 벗고, 겸사겸사 보헤미아에서 저들과 함께 떠날 이들을 모으기 위함이었다고.

그러나 흑사병이 덮쳐왔고, 이어서 이단과 마녀를 단죄하겠다는 교황 사절이 찾아왔으며, 그 다음으로는 지기스문트의 십자군이 닥쳐왔다.

“그런 상황이라면, 항거할 수 없는 힘 앞에 굴복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우선 무력을 동원하기 전에 먼저 대화부터 하는 게 훨씬 서로 편하고 합리적이었겠지요.”

모두를 지키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신대륙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시그리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몇 번 들어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지기스문트에게는, 시그리드의 고집이 그저 막무가내로 제 뜻을 관철시키겠다고 날뛰는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런 막무가내 억지에 당하여 결국 자신은 이곳 프라하에 억류당했으니, 그저 한탄만 나올 뿐.

물론 시그리드 역시 지기스문트가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피사 공의회에서 교회의 실추된 권위를 되살리고자, 만만한 이단자 후스와 더 만만한 ‘마녀’ - 그때만 해도 모두가 오해를 조금 산 벽촌 처녀라 여겼던 – 시그리드를 단죄하자고 했을 때, 그때 만약 지기스문트가 먼저 이 시그리드와 직접 협상을 했다면 훨씬 더 적은 대가만 지불해도 되었을 것이었다.

이곳 보헤미아에 남아 있어본들 문제만 일으켰을 후스와 그 추종자들을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바다 건너 땅에 보내버리고, 그 수고비라 생각하며 약간의 재정적 지원만 해주면 그만이었으리라.

허나 지기스문트는 결국 그런 기회를 걷어찼고, 그로 말미암아 비단 시그리드와 후스뿐 아니라 두 사람이 끌어들인 보헤미아 전국의회 쪽에도 만만찮은,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이 요구한 것보다 몇 곱절은 더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하게 되었다.

당장 지금도, ‘프라하 유수’의 놀라운 결과를 전해듣고 후다닥 달려온 보헤미아 전국의회 대표들 앞에서 ‘프라하인들의 3개조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 공언하기 위해 시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기스문트 폐하의 행차를 알리는 그 어떤 나팔소리도 울리지 않고, 오직 냉소나 조롱의 시선만이 쏟아질 뿐.

아마 시청에 도착한 뒤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그런 조롱을 들어야 할 것이었다. 주제를 모르는 괘씸한 보헤미아인들은, 온갖 추가적인 조항이 덕지덕지 붙은 요구사항을 들고 나와 지기스문트 그에게 ‘동의’를 강요하리라.

마침내 시청 앞에 당도할 무렵, 지기스문트는 시그리드를 노려보며 가시 돋힌 말 한 마디를 던졌다.

“이것만은 알아두거라. 너의 그 무모한 계획은 지나치게 성공했다. 그 성공의 함정이 곧 너희를 덮칠 것이다.”

“만약 비트코프 언덕 전투가 끝났을 때 저희에게 이렇게 협상을 청해오셨더라면, 폐하의 위신만 적당히 깎이고 끝났겠지요. 무모하게 프라하로 진격해온 것은 폐하였습니다.”

“그래. 그랬을지도 모르지.

허나 지금은 내 위신이 깎이다 못해 아예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았느냐? 그로 인해, 내가 이 끔찍한 도시에서 어떤 약속을 하든 그것이 이행되기는 어렵게 되었다.”

“앗...”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적에, 시그리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사이 지기스문트는 함께 억류된 저의 측근들과 함께 시청으로 걸어들어갔다.

이단자든 아니든, 저의 영지에 거하던 백성들이 가산을 처분하고 그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떠난다는 것은 그 어떤 영주도 반기지 않을 일이었다.

존 윌슨 중령이 살던 시절의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라면, 토지 생산성이나 인구 과잉 등을 운운해가며 오히려 사람이 조금 줄어드는 게 유리하다는 주장을 펼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경제학은커녕 그런 지식조차 존재하지 않고, 관련된 몇 토막 지혜만이 ‘제왕학’이라는 비밀스러운 이름으로 암암리에 전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므로 시그리드가 요구한 것, 원하는 이들이 모두 신대륙으로 떠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고, 소정의 지원까지 해달라 한 것은, 결국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성실히 이행해줄 상대가 존속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의 지기스문트가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시그리드가 언뜻 생각해보아도 확실치 않았다.

허나 시그리드가 고민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그리드가 멍하니 시청 앞 광장에서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광장을 지나는 이들은 분주히 저들의 할일에 열중하곤 했다.

부서진 가구를 치우는 이들, 그 부서진 가구 자리에 채워넣을 새 가구를 팔러 돌아다니는, 딱 보아도 프라하 바깥에서 온 듯한 상인들.

아직도 곳곳의 병원과 임대한 저택 등지에 나뉘어 수용되어 있는, 시가전의 부상자들을 간호하기 위해, 바쁘게 의료물자를 짊어지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프라하의 연금술사들이 의대 교수들의 요청을 받아 증류한 ‘생명의 물¹’이 그냥 술인 줄 알고 살짝 맛을 보았다가 그 독함에 연신 ‘에퉤퉤’하는 사람도 보였다. 필시 프라하에 새로 정착하여 아직 견식이 넓지 못한 피난민 출신 젊은이일 테다.

내일이 종려주일(Palm Sunday, 부활절 직전의 일요일)이었기에, 슬슬 그간의 소란을 딛고 부활절 준비를 하려는 이들로도 광장은 붐볐다.

그렇게 바쁘게 전란 이전의 삶, 또는 전란을 거치며 새로 얻은 삶에 열중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시그리드가 앞에 보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프라하 토박이들에게도, 그리고 프라하로 떠밀려 온 피난민들에게도 이 은발 여인은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피난민들이 저들의 집을 잃게 된 책임이 자신에게도 일부 있음을 아는 시그리드로서는 솔직히 미안한 심정이었다.)

좌우지간 그렇게 ‘안녕하십니까’ 나 ‘오늘따라 더 아리따우십니다, 아씨’나, ‘백송고리 먹을 고기라도 한 근 드릴까요’ 등등. 도저히 건성으로 사람을 대하지 못하는 시그리드도 어느새 활짝 웃으며 화답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절로 기분은 좋아지고, 앞날을 어찌 헤쳐나갈지 고민하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활기를 되찾는 프라하 시내 모습에 취했다.

“누군가의 형제든, 누군가의 어머니든 / 어쨌든 살아서 버티고 있잖아, 살아 버티고 있잖아.

도시가 무너지고 모두가 몸을 흔드는 걸 느껴봐 / 그렇게 우리는 살아서 버티고 있잖아, 살아 버티고 있잖아.”

산탄 파편에 맞아 파손된 외벽을 보수하는 망치 소리에 맞춰 한참 욘이 부르던 노래가락을 흥얼거리던 시그리드의 노랫소리는, 가사 한 줄에 이르러 딱 멈췄다.

“우리는 이해하려 노력해볼 수도 있겠지 / 뉴욕 타임스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이야.”

지기스문트가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에 놓였음을 간파한 전국의회 사람들은, 참관하던 얀 후스조차 너무한 것 아닌가 싶을 만큼 과격한 요구사항을 내어놓았다.

보헤미아 전국의회를 정기적으로 소집하고, 반드시 모든 국가 대사를 의회와 함께 논의해야 하며, 왕위 계승 역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었다².

그에 비하면 ‘프라하 3개조 요구’에 따라 몰수된 교회의 부당한 – 물론 그 정당함과 부당함을 판단하는 것은 교회가 아닌 보헤미아인들이었다 – 재산 절반은 이번 십자군 원정 피해 복구에, 나머지 절반은 신대륙 이주 지원에 쓴다는 후스와 시그리드의 요구는 그나마 온건한 축에 들었다.

룩셈부르크 가문이 이번 패배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든, 그로 인해 기껏 분열을 봉합하던 교회가 또 어떤 위기를 맞게 되든, 보헤미아 사람들이 알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기스문트가 ‘이 모든 요구사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라 답하자, 기세가 잔뜩 오른 프라하 시의원들을 필두로 보헤미아 사람들은 ‘지기스문트 폐하의 보헤미아 왕위 계승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라 응수했다.

나중에 약속을 번복하더라도 우선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지기스문트는 녹초가 된 채로 ‘요구사항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성실히 임한다’라 쓰인 각서에 서명을 하고서 겨우 프라하 성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고초로 가득한 토요일이 끝났다.

다음날 일요일은 그래도 제법 그럴듯하게, 그리고 – 신께 감사하게도 – 조용히 시작하는 듯했다.

시그리드가 프라하에 남아있던, 이단을 단호히 지양한다 자처하던 성직자들을 모아준 덕에 지기스문트는 성 비투스 대성당에 딸린 작은 예배당에서 신도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얀 새나 백발 노파만 보아도 질겁할 지경이던 성직자들이었지만, 지기스문트와 안면을 트면 훗날 저들이 입은 금전적 손실을 어떻게든 보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다들 시그리드의 초대에 응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사히 예배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지기스문트의 입에서는 신경질적인 물음이 튀어나왔다.

“또 무얼 원하느냐?”

참으로 제왕답지 못한 어조였지만, 이미 어제 하루종일 보헤미아인들에게 시달렸던 지기스문트로서는 예배당 밖에서 떡하니 기다리는 은발 여인을 보자마자 이런 반응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시그리드 리프트라사 한 사람만 있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판에, 그 뒤에 생면부지의 보헤미아 사람 여럿이 작은 책과 필기구, 잉크통까지 지참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영 섭한데요. 들어보세요. 폐하께도, 저희에게도 도움이 되는 생각을 떠올렸어요. 이번에는 누구의 권위도 꺾지 않고, 또 누구 하나 다칠 일도 없을 거에요.”

만약 이 자리에 튜튼 기사단원이 있었더라면, 시그리드가 그룬발트에서 ‘마녀의 불꽃’으로 기사들을 픽픽 쓰러뜨리고 다닌 것보다 ‘사람 목숨 살리겠다’며 전상자들을 구호한 것이 기사단국에게 훨씬 큰 타격을 주었음을 지기스문트에게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었다.

허나 지기스문트 곁을 지키고 있는 측근 피포 스파노는 드래곤 기사단원이지 튜튼 기사단원이 아니었다.

“일전에 저희가 ‘진실’이라는 책자를 발간한 것은 들어보셨겠지요?”

“그래. 무슨 사술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도 기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놨더군.”

날 선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시그리드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해볼까 싶어요. 책을 찍어내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똑같지만, 이번에는 지기스문트 폐하가 그 중심이 될 거예요.”

십자군의 목적은 이단을 없애는 데 있었다.

그리고 프라하로 향한 십자군은, 어쨌든 이단을 이 유럽 땅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이단들이 창칼이나 화형대의 불길을 만나는 대신, 제 발로 범선에 올라 대양 건너로 사라질 것이라는 사소한 차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점을 너그럽게 무시하고 생각해보면 어쨌든 몇 년 내로 후스파 이단은 보헤미아에서 사라질 것이었다.

“그 얘기를 온 유럽에 퍼뜨리는 거예요. 폐하께서 이곳에서 하신 일은 항복이 아니라 협상이었고, 그 협상의 결과로 십자군은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성공을 거두었다고요.”

“온 유럽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자는 게냐?”

“따지고 보면 완전히 진실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이 거짓말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하느냐에 따라 폐하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 ‘큰 이익’이라는 게 고작해야 저의 권좌를 지키는 것이라는 게 아쉽고 분통 터지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지금의 지기스문트에게는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그리고 ‘십자군을 이끌고 갔다가 도리어 이단에게 포로로 잡힌 황제 지망생’보다야, ‘십자군을 데리고 떠나 (비교적)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군주’가 훨씬 더 듣기도 좋고, 무엇보다도 덜 망신스럽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옛날 황제 프리드리히 2세도, 성지를 무력으로 수복하는 대신 외교협상으로 ‘이론상’ 예루살렘 통치권만을 받아온 뒤 성공을 자처하지 않았던가.

“네 말을 따른다고 치자. 어차피 지금 내게 딱히 선택의 여지가 많을 것 같지는 않으니.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프라하 시민들과 피난민들에게 사과하세요. 폐하를 따라왔다가 지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십자군 기사들에게도 사과하시고요.

조금 더 일찍 프라하 사람들과 대화에 나섰더라면, 다치는 사람을 더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지모가 완벽하지 못했던지라 그만 충돌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말예요.”

“뭐라고? 나더러 거짓 참회를 하란 말이냐?”

마치 군주들이 거짓 참회를 한 것이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처음 있는 일인 것처럼 지기스문트가 되물었다.

“참회가 아니라 사과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런 사과. 어쨌든 폐하는 잘못을 범하셨고, 또 스스로 잘못이 없다 여길지라도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하는 입장이시잖아요.”

그제야 시그리드가 종탑에서 총을 겨누었을 때만큼 진지하게 제안을 하고 있음을 깨달은 지기스문트였다.

“교회와 제국이 있는 질서는 이 땅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질서지요. 그 질서를 바꿔보자고 하는 이들이 나타났을 때, 선뜻 따르지 못하고 그저 억누르려고만 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신이 왜 그 전에 있던 질서를 그토록 열심히 지키려 했는지 그 본뜻을 잊고 그저 욕심에 가득 차 새로운 목소리를 찍어누르기만 한다면, 그건 정말로 잘못일 거예요.”

수많은 시행착오와, 수없이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 속에서 중세가 근대로, 근대가 현대로 변해갔음을 아는 시그리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부디 프라하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사과해 주세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는 언론의 힘으로 폐하를 최대한 긍정적인 인물로 포장해서 전 유럽에 홍보를 해 드리겠습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폭력이 아닌 관용으로, 대화와 타협으로 이단을 몰아낸 군주로 말이에요.”

무심결에 언론이니, 홍보니 하는 말을 꺼낸 시그리드였지만, 차마 시그리드가 아는 낱말을 저는 모른다는 티를 낼 수 없던 지기스문트는 그 단어의 뜻을 묻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딱히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개탄하며, 여기서 잃을 것이 뭐 더 있겠냐는 심정으로 따라나설 뿐.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갔다.

“프라하 시민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이해했소이다!”

광장에서 마음에도 없는 연설도 하고.

“내가 부덕하여 이토록 크나큰 오해가 벌어지는 것을 방치하였소. 미안하오.”

“아이고, 귀하신 분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열심히 지기스문트 욕을 하다가도 본인이 앞에 떡 나타나자 어찌할 바 모르는 천한 이들 앞에서 역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였다.

“경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내 지모가 부족하여, 이 도시의 이단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고 그들을 대화와 화해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그대들이 피를 흘리게 되었다.”

“폐하! 아닙니다! 모두 저희가 부족한 탓입니다!”

일부러 쇠조각이나 쇠구슬 따위를 넣지 않았다지만, 사람의 눈을 망가뜨리고 귀를 찢기엔 위력이 충분했던 산탄에 맞아 아직도 침상에 누워 있던 기사들을 찾아간 자리에서는 이렇게 서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주고받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에 없는 소리라 할지라도, 그것을 입 밖에 낸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울림을 일으키기 마련.

어느 순간부터, 지기스문트는 자신이 내뱉는 말이 그 자체로 저를 옭아매는 구속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자신을 관용과 화해의 군주로 포장하여 겨우 수복한 권위는, 그 관용과 화해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 도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저도 모르는 새 마녀의 족쇄를 차게 된 현실을 한탄하려 한들, 어디서 그 한탄을 내어놓을 것인가.

“여기, 원고가 완성되어서 가져와 봤어요. 이제 여기에 그림까지 덧붙여서 출판할 예정이랍니다.”

부활절을 앞둔 성토요일. 그런 울림과 속앓이를 뒤로한 채 프라하 성으로 돌아온 지기스문트에게 시그리드가 찾아왔다.

“보시다시피 제목은 『어느 일요일 프라하에서 벌어진 놀라운 일들과, 보헤미아 국왕 지기스문트 폐하의 많은 미덕, 그리고 관용과 용서의 아름다움에 관한 교훈적인 사실들의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원고의 노란 표지에 수기로 쓰인 그 긴 제목을 보여주며 시그리드가 말했다.

(줄이면 ‘일요일의 프라하Sunday Prague’쯤이 될 것이었는데, 약간 신뢰성이 떨어지는 듯한 제목이라는 의견이 인쇄소 내에도 간혹 있었다.)

지기스문트는 원고를 훌훌 넘겨보았다. 눈앞의 여인이 장담한 것처럼, 지기스문트가 겸허히 용서를 구하는 모습, 그리고 거기에 감동하는 프라하 사람들의 모습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보면, 정말로 지기스문트가 십자군을 이끌고 대화로써 이단을 뉘우치게 만들었으며, 그간 보헤미아 곳곳을 얼룩지게 만들었던 폭력은 전혀 그 본의가 아니었던 것처럼 오해하기 딱 좋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믿고 이것이 온 유럽에 널리 퍼지리라 장담하는 것이냐?”

“별책부록 때문이지요.”

“별책부록?”

“네, 보시겠어요?”

이미 맨 처음, ‘시대상’을 보헤미아 전역에 흩뿌릴 때 썼던 끼워팔기 수법.

그러나, 고작해야 몇몇 대학의 교수와 학자들이나 관심을 가졌을 법한 말비욤 이야기 대신, 이번에는 온 유럽의 어지간한 상인이라면 눈이 벌게질 수밖에 없는 부록이 준비되어 있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랍니다. 어떻게 이 책을 만들었는지, 그것을 이번에 공개할 심산이에요. 어차피 프라하만의 비밀로 오래 삼고 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보헤미아 각지에서 신대륙 이민자들을 모으고, 단치히뿐 아니라 엘베 강 하구에 위치한 함부르크에도 그린란드 회사 소유의 배들이 정박할 수 있도록 조율하고 – ‘덴마크 국왕 폐하의 권고’에 따라 그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석연찮은 답변이 돌아왔다 – 하느라, 1411년 봄이 여름으로 접어들 때까지도 시그리드는 프라하에 붙잡혀 있었다.

물론 이 도시에 머무는 게 결코 싫증나지는 않았다. 그 난리를 겪고 난 프라하 사람들은, 흑사병을 물리쳤을 때보다도 더욱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고, 조금 과장하면 동녘정착지 다음으로 비요른의 딸 시그리드를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해도 무방하였으니까. (물론 시그리드 덕에 보헤미아 국왕으로부터 많은 권력을 빼앗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 1411년 부활절 축일을 쇤 뒤에 인쇄에 들어간 ‘일요일의 프라하’는 곧 온 유럽에 반향을 일으켰다.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 정도가 가장 실제에 맞닿는 표현일 것입니다.”

별다른 예고도 없이 프라하에 나타난 지기스문트의 충복 피포 스파노가, 이전과는 대비되는 사뭇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가요? 사실 수익을 바라고 낸 책은 아니었는데.”

“그 뜻이 아니라, 정말로 온 신성로마제국이 그 책 때문에 불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무렵의 유럽에서, 파벌을 나누어 다투는 것은 일상에 가까웠다. 비단 귀족들뿐 아니라 도시의 시민들조차, 어느 한 파벌에 몸을 담고 다른 한 파벌을 공격하는 것을 당연하게, 심지어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다.

그 파벌이 후스를 따르냐 증오하느냐, 독일인이냐 보헤미아인이냐 같은 말끔한 기준으로 나뉜 프라하가 특이한 경우였다.

일이백 년 전 북이탈리아를 양분했던 기벨린Ghibellini파와 구엘프Guelfi파의 다툼, 그리고 지금 가뜩이나 잉글랜드 왕에게 반토막나 있는데 거기서 또 프랑스를 반으로 가르고 있는 아르마냑Armanac파와 부르고뉴Burgundy파의 다툼처럼, 평범한 시민이나 하급 귀족의 삶 자체에는 그리 중요치 않은 것을 두고 벌이는 다툼이 더 흔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다툼이 신성로마제국 전역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미 장작은 열심히 쌓아주셨지 않습니까. 거기에 불씨까지 던져주셨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장작이라고요?”

시그리드가 놀라 물어보자, 스파노는 저의 주군만큼 교활한 듯하면서도 때로는 한없이 순진한 이 처자를 일시 한심하게 여겼다가, 그 한심한 여인에게 된통 당한 저와 저의 주군에 대한 자조에 연이어 휩쓸렸다.

“비트코프와 비셰흐라트에서 붙잡힌 포로들에게 그 ‘진실’이라는 책을 나누어주셨지 않습니까. 그들이 누구보다 앞서서 지기스문트 폐하를 변호하고 나서자, 폐하의 독일왕 즉위를 반대하던 이들도 하나의 파벌로 뭉쳤습니다.”

제국 안에 난립하고 있는 제후들이 각각 편을 나누고, 제국 내의 자유도시 안에서도 파벌이 갈리고, 다만 한자 동맹시들 중 덴마크 왕 에릭과 모종의 거래가 있던 도시들은 하나같이 지기스문트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이토록 흥미로운 전개에 큰 감명을 받으신 지기스문트 폐하께서는, 저를 이렇게 프라하로 보내 한 가지 제안을 시그리드 여사께 전해드리라 명하셨습니다.”

“어떤 제안인가요?”

“이왕 미답의 땅 신대륙을 개척하기로 한 것, 굳이 보헤미아에서만 개척민을 구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잘 나아가다가 지기스문트가 십자군 원정을 ‘성공’하면서 완전히 좌초될 위기에 처한 피사 공의회.

그곳에 찾아와 온 유럽을 마저 불태워달라는, 차마 자신만 당할 수 없다 여긴 지기스문트의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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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코올’의 어원인 알 쿨Al-kuhl은 본디 화장품으로 고대부터 널리 중근동에서 쓰인 삼황화안티몬Sb2S3을 부르는 말이었고, 16세기에 처음 ‘알코올’ 또는 ‘알코폴’이라는 번역어가 유럽에서 쓰일 때만 해도 마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알코올’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증류법을 적용해 얻는 모든 물질을 ‘~의 알코올’이라 부르게 되었고 (예컨대 에탄올은 ‘포도주의 알코올Alcohol vini’) 18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우리에게 익숙한 의미로 바뀌게 되었지요.

작중에서는 그런 과정을 완전히 건너뛰고, 그저 ‘생명의 물’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소독 작용을 한다는 것이 시그리드의 소독 도입과 차후의 임상경험을 통해 밝혀진 상태입니다.

2.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후스파 중 온건파인 양형영성체파는 타보르파 궤멸 이후에도 그대로 살아남아 보헤미아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지기스문트가 후사 없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합스부르크 가문도 한동안 후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틈을 타, 이들은 보헤미아 왕위 계승 문제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등 점차 자치권을 키워나갔습니다. 이후 1500년 체코 최고最古 헌법으로 여겨지는 블라디슬라프 전국법이 선포되어 의회의 권한이 완전히 보장되게 되지요.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가 확립되면서 점차 의회의 권한은 축소되었고, 결국 1848년 자유주의 혁명이 실패하면서 해체되기에 이릅니다.

작중에서는 엉뚱한 과정을 거쳐, 이러한 변화가 수십 년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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